지구상 인류의 존재 이후 최악의 대참사, 인간의 잔혹성을 가장 잘 드러낸 홀로코스트인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부터 약 6주간 일본군에 의해 자행 되었다. 


공식기록으로 난징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30만명의 어린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민간인이 

일본군에 의해 게임하듯 잔인하게 도륙 되었고, 2만이 넘는 나이어린 소녀와 부녀자들이 강간당하고

심지어 임산부까지 강간한 후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노는 만행이 이루어 졌다. 

 

▲ 일본군의 칼날에 목이 떨어져간 난징 시민들

 

난징대학살은 일본의 교묘한 술책으로 인해 수십년간 역사 속에 뭍혀 왔다가 미국에서 생활하던

30대 중국계 작가인 아이리스 장 (Iris Chang)이 "난징의 강간 - Rape of Nanking"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베스트 셀러가 된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37년 8월 상하이 침공시 양민을 학살하는 모습.


당시 무수히 많은 양민들이 일본군의 잔인한 총칼에 도륙 되었다.

불허가(不許可)라고 씌여진 일급 비밀사진으로 당시 출판금지된 사진 

 

일본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상하이


상하이 점령 후 난징으로 진격을 하면서 일본군의 만행은 도를 넘어서 난징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그
와중 죽은 인명의 수가 30만을 넘었고, 강간을 당하며 죽어간 여인네들의 수가 2만을 넘었다. 

마치 게임 즐기듯이 인간을 살육하기에 광기가든 일본군은 산 사람에 등유를 부어 태워죽이거나, 임
산부를 강간하고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는 등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총으로 양민을 죽이는데 실증난 일본군은 산사람에게 디젤 오일을 부어 태워 죽였다.


강간후 옷을 벗겨 희롱하는 일본군 


일본군은 임산부를 강간하고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기도 하였다. 


일본군에 잔인하게 살해된 7살짜리 아이


3살 짜리 아이도 일본군의 총칼을 파해갈순 없었다.

거리청소라 불리워진 당시의 학살에 수천의 어린아이들이 잔인하게 학살 당했다.


칼날을 시험하듯 공개적으로 목을 치고 있는 일본군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총검술을 연습하는 일본군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고 있는 난징은 더 이상 지구상의 땅이 아닌 생지옥 그 자체였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난징 대학살 사진
베이징=연합뉴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5/story_n_8298406.html


난징(南京)대학살 당시 일본군이 중국군 포로들을 참수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들이

유네스코(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사실이 확인됐다.


연합뉴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리스트에 오른 난징대학살 자료들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들을 한 명씩 무릎을 꿇게 한 뒤 검으로 목을 베는 사진 등 사진은 총 16장이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사진 속 중국인 포로들은 대체로 앳된 모습이었고 일부 사진 속에는 참수 직후의 참혹한 순간도 담겨 있었다.

이 사진은 당시 일본군들이 직접 찍은 것으로 1938년 난징의 한 사진관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국인 청년 뤄진(羅瑾)이 몰래 추가로 현상해 숨겨두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충격과 비통함 속에 사진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첩'을 만들었고 지인을 통해 보관해 왔다.

이 사진은 일본군의 끔찍한 죄행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개최된 난징 전범 군사법정에서 '1호 자료'로 채택됐다.



  • 연합뉴스/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쳐



  • 연합뉴스/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쳐


  • 연합뉴스/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쳐


  • 연합뉴스/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쳐


  • 연합뉴스/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쳐


  • 연합뉴스/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쳐

  •   연합뉴스/중국 제2역사당안관 홈페이지 캡쳐


이 사진들을 포함해 길거리에 중국인 시신 수십구가 널브러져 있는 사진과

일본군이 부녀자를 욕보이는 사진 등 총 16장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채택됐다.


일본군이 난징대학살 당시 얼마나 잔인하게 양민과 중국군 포로들을 학살하고 짓밟았는지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사진들이어서 심사위원들의 심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30만 명 이상(중국 측 추정)에 달하는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번에 등재된 기록물들은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와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실을 증명하는 각종 기록물과

1945년 이후 전쟁 범죄자의 재판 관련 기록물 등 총 11종에 달한다.


이 중에는 난징대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촬영해 전 세계에 알린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가 당시 촬영에 사용한 16㎜ 카메라와

원본 필름, 중국판 '안네의 일기'로 불리는 청루이팡(程瑞芳)의 일기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네스코등재 '난징대학살' 자료에 中포로 참수사진 포함 1937년 중일전쟁 발발 당시

난징의 진링(金陵)여자대학 기숙사 사감이었던 그는 1937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자신이 직접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방화, 살인, 약탈, 강간 등 일본군의 각종 만행을 일기로 남겼다.


"이들은 미쳐 날뛰며 온갖 나쁜 짓을 다 한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강간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일본 헌병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 없어 시체 사이를 뚫고 다닌다고 한다"는 등의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심경고백도 담겨 있다.


당시 일본군에 저항하다 30여 군데를 찔린 뒤 가까스로 살아남은 중국인 리슈잉(李秀英)의

법정 증언도 등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1947년 3월 난징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일본군 중장 다니 히사오(谷壽夫)에 대한 판결문 원본도 포함됐다.

여기에는 난징대학살에 따른 사망자 총수가 30만명 이상이란 내용이 적시돼 있다.


또 난징시 임시 참의원이 난징대학살 범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만든 조사보고서와

난징시 군사법정에서의 범죄 조사 결과 등도 포함됐다.


난징국제안전처 위원이던 미국인 마이너 셜 베이츠의 증언,

당시 국제적십자사 소속 외국인 직원의 일기 등도 세계기록유산으로 채택됐다.


중국 정부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자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자료들 외에 일본군이 촬영한 사진,

외국인들의 기록 및 증언 등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자료 구성에도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을 크게 환영했지만

일본 측은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 중단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쇼킹'이란 표현까지 동원하며 일본 측을 맹비난하는 등

난징대학살 자료들의 세계기록유산을 둘러싼 중일 간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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