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Tretyakov Gallery Room 32 - 34. 20세기 모더니즘 초기 작품. 브루벨 (Mikhail Vru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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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Tretyakov Gallery Room 32 - 34. 20세기 모더니즘 초기 작품. 브루벨 (Mikhail Vrubel)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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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32-34> 20세기 모더니즘 초기 작품 ㅡ 미하일 브루벨, 러시아 대표적인 상징주의 작가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750 x 1400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한 개 층의 중앙 홀을 꽉 채운 작품을 만난다.
트레챠코프 미술관에서 브루벨의 전시장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미하일 브루벨은 러시아 상징주의의 대가이자 아르누보 예술의 최고 정점을 이룬 작가이며 
러시아 모더니즘의 시작을 연 천재 화가다.  


그는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이 반영된 우울한 영혼의 천사와 악마를 탄생시킨다. 
입체적인 붓터치와 기하학적인 무늬, 강렬한 색채를 통해 기존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과감히 탈피한 브루벨의 작품들은 러시아 미술 혁명의 대표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마몬토프(아브람체보파의 후원자)를 만나면서 브루벨의 천재성은 
벽화, 무대 미술, 의상 디자인,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그의 창작물은 러시아 미술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며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끼친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작품 전시실

미하일 브루벨은 러시아의 옴스크, 즉 시베리아의 어느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리야 레핀보다 10년 쯤 뒤에 태어나 19세기 말에 활동한 상징주의 및 아르누보 사조의 화가이다.
시베리아,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시려오는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가 귀에 맴맴 돌고, 
러시아 민속 악기 발랄라이카 소리가 가슴을 후벼파는 곳이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땅 시베리아에서 브루벨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브루벨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미술 실력을 인정 받았지만, 
집안의 뜻에 따라 188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다. 
하지만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는 임페리얼 아카데미 예술 학교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1884년 브부벨은 키예프의 키릴로프스키 수도원의 프레스코화 복구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이 벽화 복원 과정을 통해  향후 자신의 예술 세계를 좌우할 중요한 조형적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그 후 모스크바로 나와 S. I.마몬토프의 오페라극장에서 
무대미술을 담당, 일련의 대장식(大裝飾) 패널을 완성하기도 했다. 
특히 마몬토프(아브람체보파의 후원자)를 만나면서 브루벨의 천재성은 벽화, 무대 미술, 
의상 디자인,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그의 창작물은 러시아 미술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며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끼친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작품 전시실

그는 그동안 배워온 유럽 전통의 사실적이고 합리적 표현을 넘어 
비잔틴 미술 특유의 아름다운 선과 장식적인 면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중세 기독교 미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이 반영된 우울한 영혼의 천사와 악마를 탄생시킨다. 
입체적인 붓터치와 기하학적인 무늬, 강렬한 색채를 통해 기존의 사실주의 기법에서 
과감히 탈피한 브루벨의 작품들은 러시아 미술 혁명의 대표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신화 · 성서 · 영웅서사시와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 강렬한 개성과 대담한 구도와 필치 등으로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확립하였다.

 

1910년 정신병으로 사망하기까지 그의 그림의 화두는 '악마'였다. 
브루벨의 등장은 러시아미술계에서 이단아로 불릴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는 악마 그림을 통한 독창적인 상징주의로 러시아 미술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세기말 사상과 데카당스와 맞닿아 있으며, 비잔틴 미술을 재해석해 새롭게 재창조했다. 
브루벨은 회화 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등과 같은 분야를 아우르며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로 평가받았다.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작품 전시실

브루벨의 작품은 초기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눈에 띄는 재능을 보여준다. 
시베리아의 극단적인 자연 환경 속에서 어린시절 형제 자매의 죽음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어둡고, 서늘하다.

 

브루벨은 초기 크리스트 미술을 바탕으로 동방의 문화를 흡수한 헬리니즘 미술, 
고대 아시아와 페르시아 왕조의 미술이 섞인 비잔틴 미술에 매료되었다. 
비잔틴 미술은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중시하는 미술이다. 
브루벨은 그 중후하고 선명한 색채, 화려한 장식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 낸다. 
비잔틴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인 화려한 모자이크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보여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890년부터 브루벨은 모스크바에서 활동한다. 
그는 아르누보적인 그림,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 건축, 의상, 무대 제작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브루벨은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트프(Lemontov)의  
낭만적인 시와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그 유명한 '악마' 시리즈를 발표한다. 
대표작으로 <악마>(1890) <술탄왕 이야기>(1900) <라일락>(1900) 등이 있으며, 
도기나 유리를 소재로 한 작품 등도 남겼다.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750 x 1400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시인의 악마는 아름다운 공주를 사랑했다. 
'타마라'라는 공주는 그를 두려워 하면서도 마침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의 밤이 지나자 그녀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하고, 
커다란 마음의 고통을 안은 이 악마는 그녀의 영혼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나타난 천사가 그녀의 영혼을 데리고 가버렸고 악마는 그녀의 영혼을 따라 
신 앞에 나가고 싶었지만 악마로서는 허용되지 않은 신성한 곳인 신 앞에 갈 수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못하고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에게조차 버림받은 악마, 
브루벨은 그 숙명적인 존재를 슬프고 고독하게 표현했다.

브루벨은 중성적인 얼굴에 뾰족한 귀, 노을지는 하늘과 화려한 꽃을 배경으로 
깍지 낀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먼 산을 응시하는 악마를 창조해 냈다. 
그의 눈은 우수에 잠겨있고, 마치 눈물이 고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브루벨은 그의 작품 속 악마에 대해 '여성과 남성의 외양을 통합한 영혼, 
악하기 보다는 강하고 고귀한 존재로서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영혼' 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 대해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천재의 매력적인 교향곡으로 악마를 창조했다" 라고 극찬을 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야생적 추함' 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Princess Reverie. 리베리 공주. Detail (부분)

미하일 브루벨 그는 옴스크 태생으로 쌍트 뻬쩨르부르그 대학에서(1874-1880) 법학을 공부하고 
예술아카데미에서(1880-1884) 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러시아의 대표적 상징주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미술 디자이너, 무대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건축가였다. 
그의 가족은 러시아, 폴란드, 타타르, 덴마크 등 여러 민족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의 여동생 예카테리나와 남동생 알렉산더는 어린시절 죽었고 
이것은 그에게 깊은 내적인 상처를 남았다. 
그는 라틴, 프랑스, 독일 등의 문학 작품 등을 어려서부터 배웠으며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한때 독일 철학 중에서 특히 니체, 칸트, 쇼펜하우어에게 빠지기도 했다.

젊어서 부터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교수들의 만장일치로 1884년부터 1889년까지
키예프의 키릴로프스키 성당의 벽화(프레스코화)를 복원하는작업을 수행했다. 
한동안 그가 머물렀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괴테, 레르몬토프 등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강렬하고도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색채와 결정을 이어 놓은 것 같은 
퀼트의 패치워크법과 같이 여러 조각을 이어 붙인 것 같은 표현법, 
그림의 대담한 구도 등으로 당대 화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확립했다.

브루벨은 "예술세계"협회 회원(1900년부터)이었으며, 예술 아카데미(1905년)의 회원이었다. 
1889년부터 아브람쩨보 콜로니에 동참하게 되었다. 
1889부터 1891년 사이 마몬또프의 모스크바 저택에서 "앉아 있는 사탄"을 그렸고 
마몬또프 가족의 초상화도 그렸다​

 

The Swan Princess, 백조공주, 190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42.5 x 93.5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백조 공주를 연기한 
브루벨의 아내 자벨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호수처럼 맑고 깊고 커다란 눈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의 눈빛에 빨려들 거 같이 느껴진다. 
백조의 새하얀 날개에 투영된 무대 조명빛 같은 색채가 백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돋보이게 하고 전체적으로 통일된 은빛 색감이 그림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황제 술탄 이야기>는 1900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으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원작을, 페루스키가 리브레토를 썼다. 
어느 날 악마의 성에서 호박벌의 습격을 받고 있던 가여운 백조를 왕자가 구해 주었는데, 
그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줄거리다. 
2막 1장에 나오는 <왕벌의 비행>이 가장 대중적이다.

1896년 브루벨은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오페라 가수 나데즈다 자벨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아내를 위해 그 유명한 오페라 <백조공주>의 무대 세트와 의상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브루벨은 화려하고 조형적인 작품들을 많이 제작한다. 
하지만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고통으로  
1901년 다시 '악마'를 테마로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는 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렸고, 결국 한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매독 3기로, 근육과 골격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병마는 이미 뇌까지 침범하여 브루벨은 회복 불능한 상태였다.  
그는 1906년부터는 전혀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고, 1910년 매독의 고통속에 생을 마감했다. 

브루벨이 무대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부인 '나제즈다 자벨라'와의 만남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6년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한 오페라에서 가수 나제즈다 자벨라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브루벨이 무대 뒤로 찾아갔고 반년 후에 둘은 결혼했다. 
<황제 술탄 이야기>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원작을, 페루스키가 리브레토르를 쓰고 
1900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이다.
자벨라는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노래를 잘 불렀다. 
이 작품 "백조 공주"는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백조 공주로 분한 아내 자벨라의 의상을 스스로 디자인한 뒤 다시 그림으로 옮긴 모습이다.

어느 날 악마의 성에서 호박벌의 습격을 받고 있던 가여운 벡조를 왕자가 구해 주었는데, 
그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줄거리다. 
2막 1장에 나오는 <왕벌의 비행>이 가장 대중적이다.

여기에 동양 미술, 특히 페르시아 카펫에 대한 관심이 겹쳐지면서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거장
알폰스 무하나 구스타프 클림트와는 꽤 다르면서 어딘가 비슷하기도 한 화풍이 완성된다.
어떻게 보면 동양(페르시아)의 영향과 금색(정교회 이콘) 등 화려한 색상이라는 
두 사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브루벨 역시 회화 외에도 색유리화, 도예, 무대미술, 의상 등등에도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그린 백조공주는 다른 작품 속의 그 눈빛이면서도 젖어 있는 우수를 표현하는 걸로 충분한,
우아함 가득한 그림이었으나, 그가 그렇게 파들어갔던 그림은 이런 소품과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좀더 추상적이거나, 많은 부분 중동으로부터 영향받은, 장식적이고 단순화된 문양과 
색감 등이 나타나는 여러 다른 작품에서도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 데몬 시리즈에서 작가가 찾고 싶었던 그 뭔가, 
그리고 끝내 구현해내지 못하고 정신병에 빠지게 한 그 뭔가는 사람 속에 뭔가 깊은 감정, 
그것이 슬픔이건 절망이건 사람이 겪어야 하는 지독하게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Pan, 판. 1899.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24 x 106.3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판'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달빛을 등지고 앉아있는 남자는 쉬링크스를 사랑한 반수 반인의 판으로 
열심히 구애하지만 요정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판의 사랑을 피해 갈대로 변해 버린 쉬링크스를 잊지 못한 판은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고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불었다 하는데, 사랑을 잃은 판의 마음이 실려 있어서인지 
'판의 피리-팬 플루트'는 가냘프고 애절하다. 
그렇게 사랑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모습의 판, 절대 고독의 모습으로 블루벨에 의해 탄생된다.

절대 고독 '판', 아르카디아 산자락에 사는 요정 쉬링크스는 아르테미스를 따르며 사냥을 즐긴다. 
천사같은 그녀를 보고 우락부락한 얼굴에 염소 다리와 뿔을 가진 괴물 판은 한눈에 사랑을 느낀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쉬링크스에게 열렬히 고백해 보지만 공포의 꽥꽥거림으로 나타나는 판의 목소리에 
요정은 필사적으로 도망만 다닌다. 
영어의 panic 이란 단어는 이 pan(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판은 존재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인 괴물이었나 보다.

그런 판의 구애에 진저리 난 쉬링크스는 결국 자신을 포기해 버리고 갈대로 변해 버린다. 
사랑을 잃어버린 판의 한숨 소리가 갈대 속을 지나 가냘프고 애끊는 소리로 변하니 
그 갈대를 엮어 만든 피리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끌게 된다. 
요정의 이름을 따 '쉬링크스'라고 불리는 판의 피리인 팬 플루트는 
그 애절한 음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준다. 
쓸쓸한 음색만큼 슬픈 사연의 악기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내 속에 너무 많은 내가 다양한 목소리로 싸우지만 그들의 언어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어떤 형태의 옷을 입고 세상과 맞이해야 할 지 몰라 마음 속 테두리에 갇혀 안으로만 잦아들게 된다. 
그럴 땐 마음의 쓸쓸함, 고독함을 바위처럼 웅크린 채로 안으로 곰삭아야 한다. 
그림의 판처럼 말이다. 그래야 내 안의 쓸쓸함은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사랑이든, 슬픔이든, 행복이든, 절망이든.

모두가 절대 고독이란 모습으로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마 음속에 집을 짓게 된다. 
브루벨의 <판>을 보면 그런 내 안의 절대 고독이 투영된다. 
다가가 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 하며 쓰다듬고 싶어진다. 
'널 이해할 거 같아’하면서 말이다. 
판의 근원적 외로움 또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쓸쓸함과 같은 모양이다. 
사랑을 잃고 홀로 주저앉은 판의 웅크림에서, 그의 텅 빈 눈빛에서, 둥근 어깨에서, 
그리고 한 손에 꽉 움켜 쥔 요정의 분신에서 우리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게 된다.

현실적 외로움과 정신적 어려움을 고귀하게 지켜내겠다는 '백석'의 굳은 의지도 브루벨의 '판'이 웅크리고 있다. 
백석 또한 자신의 쓸쓸한 내면을 그의 시적 언어로 고백한다. 백석과 판은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린 그들을 읽으며 공감하며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시와 그림은 우리 인생에 최고의 동반자가 되는 거다. 
그리고, 백석의 시적 자아와 브루벨의 판이 이렇게 질문 하는 듯 하다. 
"여러 현실적 어려움 앞에 정신적 고결함을 너는 어찌 지킬 것이냐?"라고 말이다.

넓적하고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달이 낮게 뜬 초저녁 판은 피리를 들고 앉아 있다. 
유리알같이 파란 눈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투명하고 텅 비어 있다. 
거친 손을 보면 금방이라도 그가 나무 등걸로 변해버릴 것만 같다. 판은 자연력의 상징이다. 
그는 사람이면서 짐승이고, 동물이면서 식물이다.  
'판'과 '백조 공주'는 모두 반인반수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 살고 있다.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공존하는 보랏빛 시간에 그들은 기꺼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는 러시아의 전래 동화와 민중 서사시에 담겨 있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The Demon Seated" 앉아 있는 악마. 189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212.5 x 115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산등성이에 앉아서 서글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겨 있는 이 아름다운 청년은 악마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은 출구 없는 열정의 꿈틀거림처럼 느껴진다. 
그는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 속에서 길을 잃고 이곳 카프카즈의 돌산 위에 잠시 머물러 있다. 

이 작품은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 레르몬토프의 서정시 
<악마, 1839>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이다.  
레르몬토프의 악마는 신에 대한 반역으로 낙원에서 쫒겨났다. 
추방된 천사를 악마로 만든 것은 바로 세계의 모순과 부조화다.
이 악마는 순수한 악을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이 대립하는 
구역질나는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영웅적인 반항이다. 
그는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하는 데카당이다. 
세상과 불화하는 자, '악마'는 브루벨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서 
그의 스타일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으로 브루벨은 빛을 어둠으로 바꾼다. 
이것은 보랏빛 시간이다. 
브루벨의 다른 작품 <저녁으로> <세이렌> <판> <백조공주> 등에도 
이 보랏빛 시간이 표현되어 있다. 
레르몬토프의 시구처럼 '낮도, 밤도, 황혼도, 여명도 아닌' 시간이다. 
그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휴지부 같은 시간이다. 
모드 것이 혼돈에 빠져 있으며,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이다.

그에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라면 
이것 "앉아 있는 악마(Демон сидящий)"를 비롯한 악마 시리즈일 것이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낭만시에서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은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는 
거칠고 추악하다는 악평을, 우호적인 후원가들로부터는 천재성이 번득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레르몬토프의 시가 아니더라도 그는 예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어두운 구석이 있었으나 
결혼 뒤 생활이 안정되면서 디자인과 관련된 다방면의 작업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7살에 자기를 질투한 젊은 귀족들에 둘러싸여 권총 결투를 하다 사망했던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토프가 믿어지지 않지만, 15살 때부터 구상하고 수정해서 출간했던 서사시 '악마'는 
원래 천사였다가 날개를 잃고 (신을 배반하고) 지상으로 축출된 데몬의 이야기이다.

'타마라' 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지상에 떠돌던 데몬은 그녀에게 반하고, 그녀 곁에 있고 싶어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 했다.
그가 데몬임을 알았던 그녀의 두려움과 회피, 그리고 데몬 자신도 알고 있었던 파국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극이 그렇듯 둘은 사랑하게 되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데몬을 사랑하겠다던 
타마라와 첫날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데몬은 그녀의 죽음을 본다.

살아 있는 순간이 아닌 죽음 이후의 영혼은 신의 것.
그녀의 영혼이라도 자기가 지켜주고 싶었으나, 손가락 사이로 물이 쏟아지듯 데몬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신의 하늘로 타마라의 영혼은 올라가고 데몬은 지상에 남겨졌다.

부르벨의 그림은 홀로 있는 데몬의 눈에 통곡이나 분노가 아니라 
공허하게 생명이 꺼져가는 것 같은 묘사를 해 놓았다.
너무 깊어서 감당이 안 되는 슬픔, 돌덩어리를 닮은 사람의 몸, 노을을 닮은 사람의 눈,
이리도 모질게 구는 신과 악마로 강등되어서도 굽히지 않는 그 아래의 존재.
19세기는 유달리 영웅들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수많은 영웅상이 그려졌었다.

레르몬토프의 데몬은 인간을 뛰어 넘는 하나의 영웅이었겠지만, 
부르벨의 데몬은 굴복하진 않았으나, 끝내 부러지고 죽어가는 모습이다.
짜르의 폭정에 대항하던 혁명가들이 드디어 등장하는 제정 러시아에서, 
난폭한 신 앞에 선 인간을 표현했던 데몬은 그 절망 때문에 인간적이었다.

어떤 말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고독, 그 무엇과도 소통하지 않으려는 고집,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는 비애같은 것이 앉아 있는 모습에서 배어난다.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데카당스, 아르누보의 러시아적 퇴폐미가 
브루벨의 손에 의해 새로운 빛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Demon Downcast, 상처입은 악마. 1902.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39 x 387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추락하는 악마. 가로로 매우 길다. 가운데 눈과 머리가 보인다.
브루벨의 악마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그림 속 악마는 온 몸이 심하게 상처받은 듯 목이 꺾여 있고 몸은 일그러져 있다.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온 몸으로 감내하는 예술가의 아픈 현실이 그대로 그림에 배어 있는 듯 
악마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부루벨은 이 악마에 자신을 투영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했다 하는데,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미 정신병 증상이 악화되어 <상처 받은 악마>를 마지막으로 
악마 시리즈를 더 이상 그릴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통해 고뇌하고 절규한은 듯한 작가의 울부짖음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패배한 악마 (Демон поверженный)"의 끝없는 작업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급기야 신경 쇠약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되기에 이른다.
더불어 매독에 의한 신체의 손상이 시작되고 아들이 죽으면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던 그는
시력을 잃으면서 작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10년 사망했다.

 

The Lilacs, 라일락. 1900.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60 x 177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화사하게 만개한 연보라빛의 라일락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반복되는 그림의 터치를 보고 있자면 라일락의 알싸한 향기가 그대로 배어져 나오는 듯하다. 
브루벨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마르가리타의 정원>을 듣고 
여름 저녁의 정취를 떠올리며 이 그림을 그렸다 한다.

 

Lilacs, 라일락 꽃. 1901.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브루벨은 작품 초기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눈에 띄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시베리아의 극단적인 자연환경 속에서 그가 겪었던 어린 시절 형제 자매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어둡고, 서늘했다.
브루벨은 초기에 기독교 미술을 바탕으로 동방의 문화를 흡수한 헬레니즘과 
고대 아시아 및 페르시아 왕조의 미술이 섞인 비잔틴 미술에 매료되었다. 
비잔틴 미술은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중시했다. 
브루벨은 그 중후하고 선명한 색채, 화려한 장식을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 내었다. 
비잔틴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인 화려한 모자이크가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보여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카엘 브루벨 작품에는 두 점의 라일락이 있다. 
하나는 1900년에 완성되었고 다른 하나는 1901년에 미완성으로 작성되었다 . 
작가 자신은 “작년의 라일락은 실물을 그림의 스케치로 언급합니다. 
거기에서 나는 단지 무언가를 잡을 수 있었고 , 정말로 더 잘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라고 말한다.

오른쪽 하단에는 벤치가 있고 소녀가 벤치에 앉아 있다. 
작가가 이 그림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캔버스에 준비용 목탄 그림만 보인다.
미카엘 브루벨은 모든 세부 사항을 보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그림을 들여다 보게 한다. 
사물의 윤곽은 어둠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의 예술가는 창조주와 같이 혼돈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캔버스에 바른 페인트는 세상이 생기는 물질이 되고 붓은 도구가 된다. 
그리고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생물이나 식물이 원자의 조합에서 태어나므로 
브루벨에게는 우연이 없지만 엄격한 법이 있다.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만 가능한 유일한 순서와 리듬으로 캔버스에 페인트칠을 한다.

 

Faust.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After the Concert Portrait of Nadezhda Zabela. 1905. by Mikhail Vrubel. 
charcoal, paste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Flight of Faust and Mephisto. 188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ortrait of a Businessman K. Artsybushev, 1896,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The Fortune Teller. 1895,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ortrait of S. Mamontov, the Founder of the First Private Opera, 1897.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42.5 x 187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Prophet, 1898, by Mikhail Vrubel. illustration,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Mary 공주와 Grushnitsky. 1890-1891. Tretyakov Gallery Room 32-34
검은 수채화, 백색 도료, 잉크, 세피아, 브러시, 펜, 흑연 연필 종이에.

M. Yu의 소설 삽화. Lermontov의 "우리 시대의 영웅"
브루벨의 예술적 유산에서 그래픽의 역할을 과대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The Demon Defeated (1902) 이후, 그는 사실상 유화로 전환하지 않았고 그래픽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하고 묘사했으며 동시에 이전에는 미술이 접근할 수 없었던 한계와 깊이에 도달했다.

 

Lermontov의 "Izmail-Bey". 자라와 이스마엘에게 작별을 고하십시오. M. Yu의 시 삽화. 
검은 수채화, 백색 도료, 잉크, 세피아, 브러시, 펜, 흑연 연필 종이에.

1900년대 초 브루벨의 열정적인 다큐멘터리 연필 초상화에서는 
미래의 "표현주의"와 20세기의 다양한 형태의 "현실주의"가 예견된다. 
그리고 예술적 예언의 예감이라는 주제가 그의 작품의 평범한 주제 중 하나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Duel of Pechorin and Grushnitsky, 1891, ​watercolor on paper.

 

Pechorin 및 Grushnitsky 발표. (M. Yu. Lermontov.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우리 시대의 영웅"을 요약하면이 소설 전체를 읽었더라도 
이 소설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미하일 레르몬토프(Mikhail Yuryevich Lermontov)의 
러시아 문학 역사상 최초의 심리학 소설이다. 
레르몬토프의 자전적 심리소설로서, 1839년 기록되었고 
1840년 Ilya Glazunov에서 출판되었으며 1841년 개정되었다.
러시아 문학의 고전이다. 

한 사람의 주인공 페초린의 행동을 중심으로 해서 3인칭 또는 
1인칭으로 엮어진 다섯 가지의 일화를 하나의 소설 형식에 묶고 있다. 
이것은 제1화 <벨라>, 제2화 <막심 막시므이치>, 제3화 <페초린의 수기>―첫째 <타마니>, 
둘째 <공작의 딸 메리>, 셋째 <운명론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훌륭한 단편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의 전부는 이기주의자이자 고집 센 청년 사관 페초린의 성격에 있다. 
그는 20세에 불과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낄 뿐, 기쁨을 느끼는 일이 없다. 
그의 권태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행동뿐이다. 
이상이나 인생의 목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그저 따분함을 벗어나기 위해 
한가닥의 들뜬 기분에서 여자의 사랑이나 남자의 우정을 희생시켰고, 
속물인 친구를 결투에서 태연히 죽인다. 
그러면서도 총명하고 진지한 감정도 지니며, 용감하고 의지가 굳은 복잡한 인물이다. 
그의 비극은 자신의 비정상적 정력과 풍부한 재능을 쏟을 목적을 못 지닌 채 이를 부질없이 낭비하는 데에 있다.

페초린은 확실히 전제 러시아 니콜라이 시대의 산물이자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요 인물상인 ‘사냥꾼’의 하나이다. 
그러나 선악을 초월한 ‘무정부적으로 자유분방한’ 그 정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이반으로 통하는 새로운 타입이기도 하다.
 

Tamara and Demon. Ill to Lermontov's poem. 1890. by Mikhail Vrubel. 
Tretyakov Gallery Room 32-34

 

The Judgement of Paris, 1893,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Mikula Selianinovich and Volha, 1899, by Mikhail Vrubel. 
majolica, Tretyakov Gallery Room 32-34

 

At Nightfall, 1900, 저녁.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129 x 180 cm. Tretyakov Gallery Room 32-34

 

Spain, 1894, by Mikhail Vrubel.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Room 32-34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32-34.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작품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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