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Tretyakov Gallery Room 56-62. 11~18세기 러시아 성상화 <이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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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Tretyakov Gallery Room 56-62. 11~18세기 러시아 성상화 <이콘> 1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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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세기 러시아 성상화 <이콘>

마지막 56번부터 62번까지의 방은 고대 러시아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는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를 받기 전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종교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종교화라면 이콘화를 말한다.

​이콘은 러시아 정교에서 사용하는 종교 도상을 담은 그림으로 
예수와 성모,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컴퓨터에서 쓰는 '아이콘(icon)'이란 단어가 바로 이 러시아어 이콘(Икон)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아이콘은 작게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누구나 쉽게 알아보도록 만들어 놓은 것처럼 
이콘 또한 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중세 민중들이 교리와 성인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신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콘 중 대표작으로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구세주>와 <삼위일체>를 들 수 있다. 
루블료프는 정형화되어 있고 틀에 짜여 있던 동방 정교 형식의 이콘을 변형시키면서 
러시아의 정서에 맞는 예술성 짙은 작품들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루블료프가 활동한 15~16세기를 러시아 이콘 예술의 황금 시대라 부른다. 
또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이콘 전시실이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는 이유는 
이콘 제작이 러시아인들의 일상 생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으나 
예술품으로서의 이콘이 본격적으로 연구 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말엽에 와서라 한다. 
그래서 이콘이 전시실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이콘의 기원과 지역별 화파들

1. 초기 교회의 예술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게 되면서부터 
회화도 신이나 성인들을 주제로 하여 그리게 되었는데, 
그 기법이나 재료는 고대보다 매우 진보되고 복잡해졌다. 
로마 근교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카타콤바에서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초기 예술의 정수가 잘 보여 지고 있다. 
이들 카타콤바에는 이교도들이 무덤에 장식하였던 그림들도 보여지나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물고기나 십자가, 또는 착한 목자, 요나의 이야기 등 
성경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그림에서는 이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오란스형),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성인들의 초상도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유다이즘의 영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인물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물고기, 십자가, 종려 나무 가지 등의 상징물이 더 많았다.

4세기 말경에는 순교자들의 일생을 그린 작품들이나 성인들의 초상화로 
교회 내부를 장식하도록 장려하였는데, 이는 성서를 읽을 수 없는 문맹자들이 
그림을 관람함으로써 성인들의 덕행을 본받아 행하도록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일종의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아직 공경의 대상으로서는 논의되지 않았었다. 
가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도 자신의 저서 <교회사>에서 
"사도 성 바울로나 성 베드로, 주 그리스도의 이콘이 
가이사리아 필립보 마을에 자신의 시대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고 증언하고 있다.

목판에 그려진 이콘들 중 현재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려져 
후에 시나이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자 이콘과 
콥트 교회에 기원을 둔 그리스도와 성 메나스 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2. 비잔틴 예술
비잔티움 제국 및 그 세력이 미친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미술의 중심지는 콘스탄티노플이었다. 
330년 제국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짐에 따라, 
예술의 주요 후원처인 궁정과 교회도 같이 옮겨지게 되었다.

비잔틴 예술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을 바탕으로 하여 소아시아, 시리아, 알렉산드리아 등의 
미술을 첨가한 것으로 5세기 경에 발달하여 이후 대략 천년 간에 걸쳐 얼마 간의 성쇠 및 
변화는 있었으나, 대체로 이미 확립된 여러 형식들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독자적인 미술을 형성하였다.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치세에는 그 절정에 달했으며 성화상 논쟁(726~843)을 거쳐 
마케도니아 황제 시대에는 이른바 마케도니아 르네상스(9~11세기)를 출현시켰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527~565)에는 황제의 후원 하에 새로운 건축물과 모자이크를 비롯하여 
상아 조각, 금속 공예 등의 다양한 재료의 작품들이 고루 발달할 수 있었는데 
조각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미술과 마찬가지로 거의 부조에 한정되었다. 
당시 조각가들이 고전주의 시대에서 다루어지던 방법을 종전 그대로 사용하면서 
당대의 시대성을 잘 반영시킨 탁월한 상아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건축가들은 교회의 건축에 있어서 장방형, 정방형, 십자가형 평면도상에 
돔을 얹은 집중식 건축을 시도하였는데, 종종 바실리카 형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 작품은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며 
이후 비잔틴 세계 도처에서 돔 양식은 보편화 되었다.

당시 세계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에 의해 위로부터 통제된 일종의 직사각형 상자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사상은 교회 건축에서 잘 드러나 교회 내부의 장식도 그에 따라 제작되었다. 
하느님이 세계를 지배함을 묘사하기 위하여 <전능하신 그리스도(판토크라토르)>의 그림을 
중앙의 돔에 그려 신자들을 굽어 보게 하였고 주위 동서남북으로 4명의 대천사들, 
또는 그보다 많은 천사들이 둘러싸 있고 그 아래에는 사도들을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예배에서 재현되듯이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여겨져, 
성당 내부에 그려지는 그림들은 지상에서 예수가 체류했던 특정 장소들을 연상하도록 의도되었고 
성당 안에서 각기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었다. 
즉 그리스도의 탄생은 베들레헴을 연상시키며, 세례 장면은 요르단 강을, 성모 영보는 나자렛을, 
성 라자로의 부활은 베다니아를 연상시키고 있다. 
이렇게 성당 안에 그려지는 장면이나 인물의 배열 등은 교회가 정한 규약을 충실히 따라야만 되었다. 
따라서 화가는 제멋대로 그 규약을 이탈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성당 안의 장식들은 위의 원칙에 따른 모자이크, 이콘, 미니어쳐 등으로 제작되었으며, 
비잔틴 예술의 최후의 전성기였던 팔라이올로고스 황조 시대에는 프레스코화가 융성하게 된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비잔틴 모자이크 제작자들은 뛰어난 구성의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모자이크는 9세기와 10세기 사이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많이 제작되었는데 
초기 작품에서 인물 구성은 이교의 원형을 답습한 것에 불과한 것도 있었지만, 
표현이나 개념에 있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고전 시물의 특징인 장엄함과 다소 설명적이지만 
보다 새롭고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양식을 결합한 것이었다. 
인물을 배경과 분리시켜 공간으로부터 고립된 채로 서 있도록 하였으며, 
흑색 반면 영상(半面影像)으로 처리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성화상 논쟁 이전에는 대체로 초기 그리스도교적 주제 밖에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논쟁이 종식된 이후에는 전적으로 도그마의 설명적 묘사가 행해졌고 동시에 인물의 표현은 
점차 도상학적으로 통일된 상(像)이 생겨 11세기에는 인물의 얼굴을 그리기 위한 
모자이크용 각석이 엄격하게 평행선으로 되고, 인물들은 엄격하게 
정면을 향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무표정한 인상이 되었다.

그러나 12세기 초에는 그와 대조적으로 부드러움과 친근감 있게 묘사되어 
휴머니즘을 새롭게 강조하는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양식을 반영한 것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블라디미르의 성모>이다. 
이 양식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발생된 후 곧 비잔틴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가 
오늘날도 러시아, 발칸 반도 등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비잔틴 예술은 중세 유럽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쳐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 등의 로마네스크, 고딕 및 13세기 이탈리아의 예술에서도 
그 영향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3. 성화상 논쟁
5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 많은 이들이 신에 대한 거리감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우상 숭배의 위험을 염려하여 신자들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였다. 
그러나 이미 성 바울로는 그리스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형상으로, 
또는 인간을 신의 형상 중 하나로 보았다. 
즉 그리스도는 본성이 신에 가까운 데 비하여 인간은 다만 그 외모만 신과 가깝다. 
따라서 이콘들에 묘사된 그림들도 원상의 모상이므로 원상에 유사한 점을 교려하면 
원상의 한 몫을 차지한다고 간주하는 신 플라톤 철학에 의거한 회화 사상이 
이러한 목판에 그려진 그림들에 다시 적용되었다.

691년에서 692년에 걸쳐 개최되었던 트룰란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함을 규제하였다. 
교회의 이러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성화상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726년 성화상을 논박하기 시작했고 
잇달아 성화상과 성화상을 공경하는 자들을 제거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이슬람교도들과 유다인들의 개종을 가장하여 절대 군주가 되고자 하는 야심으로 
교회를 자신의 권위에 굴복시키려고 성화상 공경자들을 박해한 것이었다. 
그는 군대에 의한 폭력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도 
아나스타시오스로 교체하여 그의 동의를 얻어 730년에 성화상 파괴에 대한 칙령을 반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성화상 논쟁이 일어났고 843년까지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성화상들이 파괴되었고 성화상 공경자들은 박해를 당했으며 
수많은 이들이 그로 인해 순교까지 당해야 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2세와 그의 후계자인 교황 그레고리오 3세는 성화상 파괴 중지를 요청하고, 
성화상에 대한 파괴와 비방의 행위에 파문이라는 벌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레오 3세의 아들인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741~775) 치하의 동방에서는 
성화상에 대한 박해가 더욱 격렬해졌다. 
그는 754년 히에레야에서 성화상 공경을 반대하는 주교 338명을 모아 놓고 공의회라 명명하였다
하지만 총대주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아 공의회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 회의에서 황제는 자신의 원의에 따라 성화상 파괴를 재가받았고 
성화상 공경은 우상 숭배라고 선언되었으며 성화상 공경 옹호론자들을 파문하였다. 
이후로 제국의 모든 주교들은 이 결정에 동의를 해야 되었으며 모든 성화상들은 일제히 교회에서 
제거되어야 했고, 벽화와 모자이크에는 석회칠을 했고, 그 자리는 세속적인 풍경화로 대처하였다. 
이러한 조처에 반대한 것은 거의 수도자들이었다. 
그로 인해 761년 이래 수도자들은 무자비한 박해를 받아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고, 
또 많은 수도원들은 몰수되어 무기고 등으로 바뀌었다. 
이후, 콘스탄티노스 5세와 레오 4세 치하에서는 좀 완화된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역시 전대의 형법이 존속하고 있었기에 신고가 있을 때는 형이 집행되고는 했다.

레오 4세 서거 후 그의 미망인 성 이레네 황후가 미성년자인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 섭정을 맡았을 때(780~790)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이콘은 공경했고 또 그로 인해 추방당한 일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타르시오스의 도움으로 
교황 아드리아노 1세와 일치 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787년 가을에 니카이아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 약 350명의 주교들은 
754년의 시노두스의 결정 사항을 배척하고, 옛 전통에 의하여 십자가, 그리스도, 천사, 
성인에게 촛불, 향 등과 함께 무릎을 꿇어 공경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함을 선언했고, 
그럼에도 참다운 흠숭은 오로지 신에게만 합당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결의는 이후 약 30년 동안 비잔티움 제국에서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출신 황제인 레오 5세(813~820)는 815년에 성화상 파괴를 
다시금 명했고 754년의 성화상 공경 반대의 결의를 다시금 복귀시켰다. 
이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니케포로스가 해임, 추방되었으며 
또 다시 무수한 수도자들이 종교 재판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러한 박해는 레오 5세를 이른 미카엘 2세와 테오필로스 황제 때도 계속되어 거의 30년이나 지속되었다.

이상한 일치 속에서 세 사람의 성화상 박해자들이 지나간 다음, 
다시금 테오필로스 황제의 미망인 테오도라는 미성년자인 아들 미카엘 3세의 섭정이 되어 
신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메토디오스의 도움으로 843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 이콘 공경을 다시금 인정케 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사순절 첫 주일을 '정교 주일'로 정하였다. 
이 기념 축일은 오늘날까지도 보존되고 기념되고 있다. 
정교 주일에는 정교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 의식을 거행한다. 
이 의식은 대영광송, 삼덕송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이콘을 높이 치켜 들고 행렬한다. 
그 다음 사제는 제 7차 니카이아 공의회의 기록을 큰 소리로 낭독한다.

"예언자들이 본 대로,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교회가 이어 받은 대로, 교부들이 가르친 대로, 
온 세상의 교회가 합의한 대로, 거짓이 쫓겨난 대로, 지혜가 떳떳하게 전파한 대로, 
그리스도가 치하하신 대로,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생각하며, 말하며, 전파하라. 
그 분의 성인들의 말로, 저서로, 명상으로, 성제로, 성당에서 이콘으로 공경하라.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경배하라. 
그리고 또한 그 분의 성인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사자들로서 연관적으로 공경하라."

이렇게 성화상 논쟁 이후 종교적 감동, 강한 영성과 절제에서 나온 형태의 이콘들이 나타났다. 
이는 비잔티움 제국의 참담한 멸망 때까지 이콘의 표준이 되었다. 
성화상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성서와 교회의 전통에 의거하였는데, 
그러한 것들 중 하느님을 그림으로 묘사해도 되는 가가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부인하는 데는 모두 합의를 보았는데, 
그 이유는 그 누구도 그를 눈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그림은 성화상 지지파들의 입장이 관철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었으므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이콘에 대한 공경은 인간의 손에 대한 작품에 대한 공경이 아니고 
성 바실리오의 말처럼 그 원상에 대한 경배인 것이다. 
따라서 787년 니카이아 공의회에서는 성화상에 대한 의무적인 규정과 
이콘에 관계 되는 사랑들을 결정했고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의 
"그림이란 원상을 표현한 유사란 것이어서 원상과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라는 주장도 받아 들여 졌다. 
이렇게 니카이아 공의회에서 결의된 성화상에 대한 규정은 훗날 이콘 제작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이콘 제작자들이 가능한 한 원상에 가깝게 그리도록 촉구하였고 
이러한 그림만이 진정한 성화로 간주되었다. 
이로써 화가들은 그림의 전형에 따라 제한된 묘사를 하게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이콘 제작 기술은 제국의 선교가 이루어진 여러 나라들로 전파되었다. 
따라서 러시아,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헬라스, 아토스, 루마니아, 폴란드 등에 전해져서 
각 민족 고유의 독창력과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발전되어 여러 화파들을 발생시켰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1) 헬라스 지역의 화파들
헬라스 지역에서는 비잔틴 화법을 계승하여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이 지역의 이콘들은 비교적 소박하며 극도로 정제된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이콘들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반항하던 헬라스 민중이 겪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성화상에 나타나는 성인들 중 성 니콜라스, 세례자 성 요한 등이 매우 사랑받고 있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2) 러시아 지역의 화파들
러시아의 모든 문화적 성과들 중에서 이콘만큼이나 러시아적 국민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없다. 
모자이크, 또는 나무판 위에 눈부신 색깔로 그려진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 천사 등은 
종교적 정열이 일상 생활의 일부였던 러시아 국민들의 신앙심을 그대로 표현해 놓았다. 
이콘은 황제의 궁전에서부터 농부의 오두막집에까지 모셔져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키예프의 성 블라디미르 대공이 989년에 동방 정교회로 개종했을 때 
사제들과 함께 초청되어 새로운 교회의 건축과 장식을 담당하였던 비잔티움 제국인들에게서 
이콘의 제작 기술을 배웠으나 곧 러시아 특유의 민족적 양식을 지닌 이콘들이 출현하게 되어, 
슬라브 의상을 입은 생기가 넘치는 상이 딱딱한 비잔틴 양식의 그림들을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콘의 깊은 종교성만큼은 상실되지 않았다. 
따라서 완성된 이콘은 성직자에 의해 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 물감이나 
붓까지도 축성을 받았으며 이콘 제작자 자신도 신적인 영감에 싸여 일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1. 키예프 화파
988년, 키예프 대공 성 블라디미르는 비잔틴 의식에 따라 세례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러시아인들이 동방 정교회를 받아 들이게 되었다. 
성 블라디미르 대공은 새로 건축되는 교회들을 위해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건축업자, 모자이크 제조자, 이콘 화가들을 불러 들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돕기 위해 러시아인들을 고용해 여러 조형 기술을 습득하게 하였다. 
이들 러시아인들은 다시 러시아인 제자들을 받아 들여 그 당시의 수도였던 키예프를 중심으로 
점차 러시아의 건축 양식과 러시아 회화의 고유한 예술적 표현을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다. 
몽고족의 침입으로 살펴 볼 수는 없으나, 다만 키에프의 동굴 수도원에서 나온 성직자 화보를 통해서 
우리들은 그 곳에서 이콘을 제작했던 사실과 성인으로 인정받은 이콘 화가 알림피가 
바로 그 동굴 수도원에서 활동한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2. 노브고로드 화파
노브고로드는 러시아 서북쪽 일멘 호수 근처의 볼초프 강가에 위치한 도시로 
중요한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또한 그 당시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타타르인의 침입을 받지 않아 많은 예술가에게는 
보다 유리한 작업 환경과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으므로 11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러시아 이콘의 황금 시기를 이루었으며 따라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들도 많다.

1223년 몽고의 침입에 의해 러시아의 수많은 도시들은 비잔티움과 발칸 반도와의 
문화적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었고, 따라서 비잔티움의 영향이 거의 사라지고 민족적 특성이 
강조되어 지엽적인 독자성을 형성함으로써 완전히 창작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옛 비잔티움의 관점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으나 엄격했던 인물 묘사는 
보다 가볍고 역동적인 요소와 혼합되었고, 색채도 새로운 다양성과 생동감을 얻고 있으며, 
얼굴의 표정들도 보다 자연적이며 민족적 유형의 얼굴들로 전환되었다. 
또 복잡하고 추상적인 상징주의를 피하고 설명이 필요없는 단순하고 쉽고, 
빠르게 이해할수 있는 주제들을 취급하고 있다. 
즉 이 지방에서 특히 존경을 받던 농경, 목축, 상업 교역을 보호하고 성인들을 많이 그렸다. 
예를 들면 화재를 막고자 옛날 가르멜 산에서 불을 불러 내린 성 엘리야 예언자를 진홍의 배경에 
반신상으로 그리기도 했고, 금요일이 교역 시장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성녀 파라스케비(금요일이라는 의미)를 
그렸고, 목축이나 마부의 보호자로 성 라오로스나 성 풀로로스를 그렸다. 
이와 같이 비잔티움의 영향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독자적 이콘을 제작하려 하였던 것이다.

12세기에는 키에프와 노브고로드 외에도 여러 지방에 새로운 화파들이 생겨나고 발전하였는데 
블라디미르와 수즈달, 야로슬라브, 프츠코프등이 그 중심지였다. 
이들을 북러시아 화파라 부른다. 이러한 최초의 독창적인 러시아 이콘 화파는 13세기 말에 
수즈달에서 등장하여 14세기에 꽃을 피웠으며 15세기 초에 모스크바 화파와 합해졌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① 블라디미르, 수즈달 화파
이 화파의 절정은 1250년 경이며, 이 시기에 볼가 강 북쪽 지역에서는 
데에시스 이콘들이 큰 인기를 끌어 자주 그려졌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시는 1238년과 100여년 후 타타르인들에 의해 파괴되어 
오늘날 순수한 이콘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블라디미르의 이콘은 비잔티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귀족적이고 정교하며 
우아함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부드러운 색상으로 그려졌다는 특징을 지닌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② 프스코프 화파
프스코프 시는 노브고로드 시 다음으로 러시아 북부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였다. 
프스코프 시도 역시 타타르의 침입을 면하여 12세기와 14세기 사이에 안정된 발전을 했다. 
이 도시의 이콘 화가는 노브고로드 화파의 이콘에 많이 종속되어 있었고, 비잔틴식의 엄격함을 
재차 현저히 감소시켰고, 좌우대칭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으며, 색상이 독특하다. 
즉 비잔틴식 회화의 육중하고 어두운 색조들을 피하고 보다 생생하고 밝은 색채로서 대치되었는데 
짙은 바다 초록색과 약간 갈색이 나는 붉은 색이 지배적이다. 
그 양식은 간결하고 형상들은 극히 양식화되었으며, 제스츄어는 단순하고 움직임은 완만하다.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③ 야로슬라프 화파
야로슬라브 화파의 전성기는 13세기 초이다. 
그러나 몽고족의 침입으로 이 문화 중심지는 막을 내려야 했다. 
그러다 16세기에 새로운 발전을 시작했다. 
이 화파의 작품의 특징은 배경을 채우는 쪼개진 건축 재료들이 특징들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그려 넣는 묘사가 전형적이다.

15세기 후반에는 노브고로드 회화는 모스크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자그마하고 힘이 세어 보이는 인물 대신에 깡마르고 신장이 과장되게 긴 인물들로 
대치되고 지금까지 사용되던 짙은 색들이 은은한 색으로 바뀌었는데, 
분홍색, 보라색과 은색을 띈 초록색들을 즐겨 사용하였다. 
1478년 노브고로드 시는 자치권을 상실하고 모스크바가 장치 중심지로 선두에 서서 
통치하는 모스크바 공국에 합병된 이후에는 의복의 묘사에 있어서 많은 문양을 가미하고 
전체 구도에 있어서도 우아한 조화를 보이는 새로운 양식이 대두되었다. 
1570년, 이반 4세의 대정벌로 노브고로드 시는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지방 도시로 전락하고 만다.

 

St John The Baptist. 1408. 313 × 10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postle Andrew the First-Called. 1408. 

313 × 10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the evangelist. 1408. 312 × 10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Gregory The Theologian. 1408. 314 × 106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Chrysostom. 1408. 313 × 10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gabriel. 1408. 

317 × 12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Michael. 1408. 314 × 12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nnunciation. 1408. 125 × 94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escent into Hell. 1408. 124 × 94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Christ in Majesty. 1410s. 18 × 16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Michael. 1410s. 158 × 10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postle Paul. 1410s. 160 × 11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Nativity. 1410-1430. 71 × 5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scension. 1410-1420s. 71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Cyril of Belozersk. 1424. 28 × 24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Transfiguration. 1425. 31 × 2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Christ Pantocrator. 15세기 중반. 30 × 2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of the sign. 15세기 중반. 133 × 10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ormition. 15세기 중반. 113 × 8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15세기 중반. 103 × 8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Nativity. 15세기 중반. 103 × 8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scension. 15세기 중반. 102 × 8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Royal Doors. 15세기 중반.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Entry into Jerusalem. 15세기 중반. 103 × 8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Hodegetria of Smolensk. 15세기 중반. 131 × 10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S Boris and Gleb. 15세기 중반. 119 × 5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Hodegetria, The Trinity and Selected Saints. 15세기 중반. 

32 × 2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Last Judgement. 15세기 후반. 162 × 11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postle Peter. 15세기 후반. 158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Michael. 15세기 후반. 158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15세기 후반. 160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The Baptist. 15세기 후반. 159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Gabriel. 15세기 후반. 159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postle Paul. 15세기 후반. 159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nnunciation. 15세기 후반. 44 × 34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Demetrius of Thessalonica. 15세기 후반. 

162 × 5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King of Kings. 15세기 후반. 29 × 24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eesis. 15세기 후반. 102 × 9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Exaltation of the Virgin. 15세기 후반. 25 × 1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Saviour Enthroned. 15세기 후반. 157 × 10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Michael. 1475. 146 × 5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Gabriel. 1475. 146 × 54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The Baptist. 1475. 146 × 5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Holy Women at the Sepulchre. 1475. 80 × 5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1475. 146 × 56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Chrysostom. 1475. 146 × 5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15세기 말. 108 × 4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In Thee Rejoiceth. 15세기 말. 60 × 4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Alexis the Metropolitan with Scenes from His Life. 1480s. 197 × 15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Hodegetria. 1482. 135 × 11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Entombment. 1488. 34 × 2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George and the Dragon. 15세기 말 - 16세기 초. 89.2 × 67.2 × 3.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ormition. 15세기 말 - 16세기 초. 117 × 92 × 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Entry into Jerusalem. 15세기 말. 30 × 2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Battle Between the Novgorodians and the Suzdalians. 15세기 말. 133 × 9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S Florus and Laurus. 15세기 말. 47 × 3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escent from the Cross. 15세기 말. 91 × ​​6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Entombment. 15세기 말. 90 × 6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Presentation in the Temple. 15세기 말 - 16세기 초. 24 × 19.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scension. 15세기 말 - 16세기 초. 24 × 19.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Hospitality of Abraham (Old Testament Trinity). 15세기 말 - 16세기 초. 

145 × 10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Christ in majesty. 15세기 말 - 16세기 초. 145 × 106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Christ Pantocrator. 15세기 말 - 16세기 초. 24 × 19.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Forty Sebastean Martyrs. 15세기 말 - 16세기 초. 24 × 19.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Entry into Jerusalem. 15세기 말 - 16세기 초. 24 × 19.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ormition. 15세기 말 - 16세기 초. 24 × 19.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Dormition. 1497. 145 × 11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Prophets Daniel, David and Solomon. 1497. 67 × 17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Christ in Majesty. 1500. 192 × 13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Crucifixion. 1500. 85 × 5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Doubting Thomas. 1500. 100 × 8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george and the dragon. 16세기 초. 115 × 9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George. 16세기 초. 31 × 2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Holy Trinity. 16세기 초. 132 × 104 × 3.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In Thee Rejoiceth. 16세기 초. 146 × 11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S Florus and Laurus. 16세기 초. 66.7 × 51.5 × 3.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Hexameron. 16세기 초. 110 × 9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S Florus and Laurus. 16세기. 84.3 × 60.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Paraskeva Pyatnitsa. 16세기. 31 × 26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Simeon Stylites. 16세기. 35.4 × 28.5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Demetrius of Thessalonica. 1502. 157 × 6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1502. 155 × 6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The Baptist. 1502. 157 × 6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rchangel Michael. 1502. 157 × 6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postle paul. 1502. 158 × 6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Demetrius of Thessalonica. 16세기 후반. 144 × 4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Prophet Elijah and the Fiery Chariot. 16세기 후반. 100 × 64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Nicholas with Scenes from His Life. 16세기 후반. 128 × 10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Lucas Paints the Virgin. 16세기 후반. 45 × 36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Prophet Jeremiah. Annunciation. Basil the Great. 1589. 70 × 1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Resurrection-The Descent into Hell. 17세기 초. 31 × 2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The Baptist in the Wilderness. 1620–1630s. 33 × 2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Nativity of St Nicholas. 17세기. 36 × 3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of Vladimir. 1652. 104 × 70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Mandylion (Image of Edessa). 1661. 55 × 48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nnunciation. 1670s. 87 × 71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Mandylion (Image of Edessa). 1673. 32 × 2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Annunciation. 1673. 56 × 4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Presentation in the Temple. 1673. 56 × 3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Old Testament Trinity with Scenes from Genesis. 1675. 133 × 12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Mandylion (Image of Edessa). 1678. 53 × 42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St John the Baptist-Angel of the Wilderness with Scenes from His Life. 17세기 후반. 

198 × 14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of Vladimir. 1697. 101 × 7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O Mother All-Glorified”. 18세기. 45 × 39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of Vladimir. 18세기 후반 - 19세기 초반. 33.3 × 26.7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The Virgin of Vladimir. 19세기. 40 × 33 cm. Tretyakov Gallery Room 56-62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56-62. 러시아 <이콘>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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