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

종교와 거장의 만남 '롯과 그의 딸들'

작성일 작성자 목마
   종교와 거장의 만남  


               롯과 그의 딸들 (Lot and his Daughters) 


중세 가톨릭 시대에는 개인적으로 성경 읽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교회 벽면에 그려놓았다. 성도들에게 성화는 곧 성경 이상의 권위를 가지게 된다.

또한 그림은 시대를 읽게 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특히 성경 내용을 주제로 한 성화는 시대적 신앙을 반영한 것이기에 교회사적 가치가 있게 된다. 그렇다고 성화 한 편에 성경의 내용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화는 중세 교회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졌다. 교회 역사 중 가장 화려하게 만개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당시 신앙 배경은 일반인들에게는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고 배우는 것이 금지되었다. 성경을 단지 구약시대의 법궤처럼 교회에서 모셔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성경은 마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처럼 접근할 수 없는 금지의 책이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성경을 말하기 보다는 교회법을 만들어 성경의 권위 이상의 무게를 두었다. 교회 내부의 벽면은 모두 성경을 배경으로 한 성화로 장식되어졌다. 성화는 곧 성경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 성화에 종교적 예를 갖추는 성상 숭배의 종교로 타락하기에 이른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성화의 현실적 가격은 상상할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미술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그림일 수 있으나 신앙적으로는 교회를 암울케 했던 모순된 그림이기도 했다.


롯의 역사는 창세기 19장 1절에서 38절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소돔과 고모라 두 도시가 막 파괴되려할 때 천사가 와서 가족과 함께 이곳을 떠나라고 경고하였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하였음에도 롯의 아내는 불타는 소돔도시를 뒤돌아 보았기 때문에 소금기둥으로 변하고 말았다. 롯과 그의 딸들은 피난처 동굴에 도착하였다. 지구상에 후손이 없이 그들만이 있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두딸은 그들의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고 아버지를 유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그림의 주제는 후반부 일화를 형상화 한 것이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의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인종을 전하자 하고..." (창세기 19:31)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17세기 유럽의 대표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 '롯과 그의 딸들'이 2016년 7월 7일 런던 크리스티에 출품되었습니다.

실제 낙찰가는 678억원입니다.

루벤스의 작품 최고가는 헤롯왕의 '유아 학살' 순간을 표현한 1611년 작품 '유아 대학살'입니다.

2002년 7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864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 루벤스.  《 롯과 그의 딸들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190 x 225 cm. <출처 : Christie's> ]

⊙ £ 44,882,500 ($ 58,167,720)  |  런던 크리스티 2016년 7월


'롯과 그의 딸들'은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이라는 비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아버지 롯(Lot)은 루벤스의 또 다른 걸작 '시몬과 페로'에 등장하는 아버지 시몬(Cimon)과 인상 착의가 비슷합니다. 

아래 그림 속에는 늙은 노인이 젊은 처자의 젖을 빨고 있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보기에 는 늙은 노인과 젊은 여자가 부적절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실제는 이들은 부녀 관계입니다. 시몬의 딸 페로가 굶어 죽게 하는 형벌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아버지를 면회 갔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나 굶주린 탓에 거의 죽음에 이른 것을 보고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려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마 당국은 그녀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해 시몬을 석방했다고 전해지는군요.


 [ 루벤스, 1630년경.  《 시몬과 페로   버스에 유채, 155 × 190 cm. <소장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근친상간의 아픔을 다룬 거장들의 작품 '롯과 그의 딸들'을 따라서 성경 여행을 떠나 봅니다.

롯의 비극을 다룬 루벤스의 또 다른 작품들입니다.

천사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상심한 표정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는 롯과 그의 가족들...


[ 루벤스, 1613-15년.  《 The Flight of Lot and His Family from Sodom   버스에 유채. <소장 : 배스 미술관> ]


[ 루벤스, 1625년.  《 The Flight of Lot   패널에 유채. 74 × 118 cm. <소장 : 루브르 박물관> ]


그리고 이제 진짜 비극이 시작됩니다.

술을 따르는 딸과 술에 취해버린 아버지를 유혹하는 딸...


[ 루벤스.  《 Lot and His Daughters in a Rock Grotto   버스에 유채, 108 × 146 cm. <소장 : 슈베린 국립중앙박물관> ]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입니다.

저 멀리 화염에 쌓인 도시가 배경처럼 펼쳐져 있고, 붉은 옷을 입은 딸의 머리 위 봇짐에서 약간 왼쪽 뒤편에 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가 처량하리만큼 조그맣게 묘사돼 있습니다.


[ 뒤러, 1496-99년경.  《 딸들과 함께 소돔을 떠나는 롯   패널에 유채, 52.4 × 42.2 cm. <소장 : 워싱턴 국립 미술관> ]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판화가 루카스 반 레이덴의 작품입니다.

소금기둥을 뒤로 한 채 부녀들의 엄숙하고 비장한 결의가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위하여. 

어느 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 레이덴, 1508-1515년경.  《 롯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롯의 딸들  

  오크 패널에 유채, 32.4 x 22.9 cm. <소장 : 런던 내셔널 갤러리> ]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기둥과 잔혹하게 불타는 도시,

그리고 원죄를 다시 잉태하기 직전의 원초적인 부녀의 모습을 이렇게 현대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니 대단하군요.


[ 레이덴, 1520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패널에 유채, 48 × 34 cm. <소장 : 루브르 박물관> ]


독일 르네상스기의 화가였던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입니다.

산 속 피난처에서 롯과 그의 큰 딸이 누워 있다.

큰 딸은 포도주 잔을 들고 롯은 반인반수의 모습이 되어버렸고...

약혼자를 읿어버린 두 딸은 종족의 대가 끊어질 것을 염려했지만,소돔과 고모라의 교훈을 잃어버린 것인지 염려가 됩니다.


[ 알트도르퍼, 1537년.  《 Lot and His Daughters   Color on linden wood, 107.5 × 189 cm. <소장 : 빈 미술사 박물관> ]


1565년에 제작된 얀 마시스의 작품입니다. 

언니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고, 동생이 아버지에게 술잔을 건네고 있습니다

동생의 무릎 위에는 성적 욕망을 암시하는 과일이 놓여 있군요.


[ 얀 마시스, 1565년.  《 Lot and his Daughters   Oil on oak, 148 x 204.5 cm. <소장 : 벨기에 순수예술 왕실 박물관> ]


인간의 성적인 욕망과 타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요아킴 브테바엘의 작품 2점입니다.

큰 딸이 아들을 낳아 모압이라 하였고 후에 모압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벤암미라고 하였고 암몬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 요아킴 브테바엘, 1600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버스에 유채, 209 × 166 cm. <소장 : 에르미타주 미술관> ]



[ 요아킴 브테바엘, 1630년.  《 Lot and his Daughters   버스에 유채. <소장 : 베를린 국립 회화관> ]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 귀도 레니의 작품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그려진 롯과 그의 딸들입니다.


[ 귀도 레니, 1615-16년.  《 소돔을 떠나는 롯과 그의 딸들 (Lot and his Daughters Leaving Sodom)  

  ?버스에 유채, 115 × 148 cm. <소장 : 런던 국립 미술관> ] 


'로마의 영웅들'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헨드리크 골치우스의 작품입니다.

지금 바로 여기가 지상낙원 유토피아인가요.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의 새끼줄 변주곡입니다.

도덕적 타락을 뜻하는 개와 현명함과 지혜를 뜻하는 여우가 던지는 메시지.


[ 골치우스, 1616년.  《 Lot and his Daughters   버스에 유채, 140 × 204 cm. <소장 :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작품 2점입니다.

빛과 어둠의 대가 카라바조의 친구이자 계승자답게 색채와 빛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그림입니다.

이 작품에서 롯의 딸들은 종족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한 것처럼 당당하게 표현되었습니다.


[ 오라치오, 1621-23년경.  《 롯과 그의 딸들   캔버스에 유채, 120 × 168.5 cm. <소장 :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


[ 오라치오, 1628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226 × 282 cm. <소장 : 빌바오 미술관>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의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입니다.


[ 아르테미스, 1635-38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230.5 × 183 cm. <소장 : 톨레도 박물관> ]


바로크 시대의 피렌체 화가 프란체스코 푸리니의 작품입니다.

어두움을 배경으로 딸들의 나신이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 푸리니, 1640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123 × 120 cm. <소장 : 프라도 박물관> ] 


독일의 화가 크리스토퍼 파우디스의 작품입니다.

렘브란트의 제자답게 빛의 명암을 섬세하게 처리했습니다.


파우디스, 1649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155.5 x 198 cm. <소장 : 부다페스트 미술관> ]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로렌초 리피의 작품입니다.

불 타오르는 소돔이 건너다보이는 동굴 속에 롯과 그의 두 딸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큰딸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하고, 작은딸은 진지하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군요.


 [ 리피, 1650년초.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148 × 185 cm. <소장 : 우피치 미술관> ]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화가 루카 조르다노의 작품입니다.

술잔을 치켜든 롯의 모습에서 흡사 '악법도 법이다'를 외치며

마지막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 조르다노, 1665년.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출처 : WikiArt> ]


이탈리아의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란제티의 작품입니다.

강한 조명이 비치는 듯한 이 작품에서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화가였던 카라바조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이 느껴집니다.


[ 란제티, 17세기.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136.8 × 181.5 cm. <출처 : Sotheby's> ] 


이탈리아 화가 페데리코 세르벨리의 작품입니다.

빛과 칼라를 중요시했던 베네치아 화풍은 조반니 벨리니에서 시작하여 

조르지오네, 티치아노, 틴토레토를 거쳐 베로네세로 이어집니다. 

베네치아 학파의 느낌이 배어나오는 '롯과 그의 딸들'입니다.


[ 세르벨리, 17세기.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135.3 by 167 cm. <출처 : Sotheby's> ]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산토 페랑다입니다.

롯의 검게 그을린 피부와 딸들의 백색 피부의 명암이 대비되는 작품입니다.

선과 악, 순수와 타락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페랑다, 17세기.  《 Loth et ses filles   캔버스에 유채102 x 168 cm. <소장 : 마냉 미술관> ]


17세기 프랑스 아카데미를 이끈 화가 노엘 쿠아펠의 작품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거역하고,  자신의 재물이 불타는 것이 아까워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가 우측 아래에 보입니다.  

성경은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제의 슬픔보다는 오늘의 기쁨과 내일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축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쿠아펠, 17세기.  《 Loth et ses filles   캔버스에 유채89.2 x 108.2 cm. <소장 : 렌 미술관> ]


17세기 볼로냐 화파의 대표 화가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필명 구에르치노)의 작품 3점입니다.

적청황의 옷색깔은 구에르치노의 고전 감각입니다.

노랑은 탐욕과 위험을, 빨강은 유혹과 열정을, 파랑은 기다림과 이성을 의미합니다. 


 구에르치노, 1617년.  《 Loth et ses filles   캔버스에 유채, 175 × 190 cm. <소장 : 산로렌초 수도원> ] 


구에르치노, 1651-52년경.  《 Loth et ses filles   캔버스에 유채176 x 231 cm. <소장 : 톨레도 미술> ] 


 구에르치노, 17세기.  《 Loth et ses filles   캔버스에 유채172 x 222 cm. <소장 : 루브르 박물> ]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 마르칸토니오 프란체스키니의 작품입니다.

프란체스키니는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던 볼로냐의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 프란체스키니, 1676-77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106.3 × 89.7 cm. <소장 : 덜위치 미술관> ]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의 작품입니다.

트루아는 <굴이 있는 점심 식사>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굴은 옛날부터 정력과 욕망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 트루아, 1721년.  《 Lot with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234 × 178 cm. <소장 : 에르미타주 미술관> ]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르 요세프 베르하겐의 작품입니다.

베르하겐은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루벤스나 반다이크, 야콥 요르단스의 작품처럼 사실적이고 탄탄한 근육의 롯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베르하겐, 1770년.  《 Loth et ses filles   캔버스에 유채150 x 127 cm. <소장 : 발랑시엔 미술관> ] 


환락과 욕망의 덧없음을 과감한 터치로 표현한 18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체스코 고야의 작품입니다.

종교화와 초상화로 이름 높은 궁정화가였지만, 민중을 억압하는 귀족과 종교부패를 비판하는 풍자그림으로도 유명했습니다.


[ 고야, 1774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90 x 125 cm. <출처 : Koller Auktionen> ]


루이15세의 수석화가였던 프랑수아 르무안의 작품입니다.

르무안은 장 앙투안 와토와 함께 로코코 회화를 대표하는 부셰의 스승으로 유명합니다.


[ 르무안, 18세기.  《 아버지를 취하게 한 롯의 딸들   캔버스에 유채, 36.5 x 47.5 cm. <소장 : 랑비네 미술관> ]


18세기 프랑스의 대중적인 생활화가 장 밥티스트 그뢰즈의 작품입니다.

아버지 롯과 큰 딸은 초췌하고 지친 모습으로 잠에 빠져 있고, 작은 딸은 거의 넋이 나간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특히 그뢰즈는 도덕적인 교훈을 주제로 삼아서 감정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격찬을 받았는데,역시 이 작품에서도 타락한 부녀의 군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뢰즈, 18세기.  《 로트와 그녀의 딸들   캔버스에 유채74 x 80 cm. <소장 : 루브르 박물관> ]


영국의 낭만파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입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블레이크는 그의 생애에 가장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미술은 생명의 나무다. 과학은 죽음의 나무다. 미술은 생명의 나무다. 신은 예수다." 


[ 블레이크, 1799-1800년경.  《 Lot and His Daughters  

  Water-based tempera with a glue, 26.3 x 37.8 cm. <소장 : 헌팅턴 도서관> ] 


19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작품입니다.

하예즈의 작품은 주로 성서와 역사, 인물을 주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며,극도로 세밀한 묘사와 인물의 미세한 감정변화까지 포착해내는 정교함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붉게 물든 롯의 얼굴과 백옥처럼 하얀 속살을 드러낸 딸들의 모습이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군요.


[ 하예즈, 1833년.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출처 : WikiArt> ]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입니다.

아버지 롯과 동침하기 위해 술을 권하는 두 딸과 자유의지를 상실한 롯의 모습입니다.  


[ 쿠르베, 1844년.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89 × 116 cm. <소장 : Private> ]


19세기 중반의 저명한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작품입니다.

천사들이 뒤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롯의 아내는 아무래도 미련이 남았던지 잠시 멈추어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돌아선 롯의 아내가 순간적으로 소금 기둥으로 변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담은 작품입니다. 

사해에는 롯의 아내라고 불리는 소금 기둥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소돔과 고모라로 추정되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 귀스타브 도레, 1866년.  《 Lot and His Family Flee from Sodom   성경판화. <출처 : Wikipedia> ] 


마지막으로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오토 딕스의 작품입니다. 

신즉물주의를 주창했던 딕스는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도하면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독일의 모습과 폭력과 죽음, 매춘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삶의 어두운 부분을 탈은폐시켰습니다.


"미술가들은 진실을 수정하거나 개선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저 실체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 딕스, 1939년.  《 Lot and His Daughters   캔버스에 유채, 195 × 130 cm. <소장 : 아헨 주에르몬트 루드비히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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