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미술사

바실리 바실리에비치 베레시차긴의 작품세계 Ⅱ

작성일 작성자 淸岩 張基萬

 바실리 바실리에비치 베레시차긴의 작품세계 Ⅱ

Vasily Vasilyevich Vereshchagin [1871~1890]

 

[러시아 화가 역사화가  : 1842~1904]



Tamerlan's gate, 1869~1871


 
The Rich Kirghiz Hunter With A Falcon, 1871


Unawares attack , 1871, Turkestan series, 82 x 206.7 cm , military-and-soldiers, battles-and-wars, mountains-and-cliffs 

터키 기병의 기습에 맞서, 소수이나마 대열정연히 중대를 편성한 러시아 육군의 용맹을 보여준다.

 

 

 Present trophies​, 1872

 

  

The Doors Of Timur, 1872,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축제> Cannibal, 1870-80


홀로 죽음을 맞이한 러시아 병사의 시체와 그 시체로 인한 짐승들이 벌리는 축제 호랑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투르키스탄 연작의 일부로 보인다 


  

전쟁예찬 The Apotheosis   of War, 1871. Oil on canvas, 127 X 197cm.
 
베레시차킨의 투르키스탄 전쟁 연작의 시리즈릐 마지막 그림이자 그의 반전 작품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베레시차킨은 이그림의 주석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정복자에게 바친다>라고 명시하여 전쟁의 비극와 무의미를 강조하였다.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쌓아 놓은 해골들이 작은 산을 이루었다.  까마귀들은 하늘에서해골 위에서 햇빛아래 탈색되고 부서져가는 해골들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그리고 몸은 다 어디에 가고 머리만 모여 있는 것일까

 

전쟁이 끝나고 미처 치우지 못한 주검들은 푸른 하늘 밑에서 풍화되어 가고 있다.  너무 맑은 날이어서너무 밝은 때여서 더 처참하다전쟁은 살아있는 영()을 파멸 시키기도 하지만 죽은 혼()도 비참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베레시차킨은 러시아의 체레포베츠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집안은 부유했고 지주나 귀족의 아이들이 장교가 되거나 외교관이 되던 당시의 풍습대로 그의 부모도 그가 여덟 살이 되던 해알렉산더 예비 사관학교에 그를 입학 시킨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정식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예비학교를 졸업하고 베레시차킨은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행위는 모든 국가의 역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일이지만, 러시아에서는 특히 수없이 반복된 침탈과 전쟁의 역사로 전쟁이 국민모두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시대는 표트르 대제를 지나고 지나, 19세기 근대의 문턱까지 달려온 상태였다. 그 사이 러시아의 국력과 병력수준은 획기적으로 높아졌지만, 그 못지않게 숱한 전쟁을 치러야했다.

 

그 전쟁은 때때론 '영웅적인 조국방어 전쟁'이었으며,  때때론 '영웅적인 조국확장 전쟁'이었다. 그러나 모든 전쟁에서 격렬한 피가 흘렀다는 것은  어느전쟁 할 것 없이  공통적 분모였고, 여기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것은 징집된 병사들이었다. 

 

러일전쟁을 지휘한 쿠로파트킨 장군의 회고록에서 나오듯이,(이 회고록은 국내에도 번역/발간되어 있다) 18~19세기 러시아 군대의 숫자는 약 100만에서 150만을 헤아렸으며 이들 상당수는 서유럽, 그리고 중앙의 코카서스 산맥 일대, 남측 터키국경 등과 같이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투입되었다.

 

이러한 대규모 군대의 운용과 전쟁은 국가적인 부채 증가, 남성 인력의 징집으로 인한 농업생산력 저하/농촌피폐, 농촌의 식량생산 저하로 인한 식량부족의 만연/기아발생 등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민이 일을 아무리한다해도 대부분을 세금으로 빼앗기고, 징집되어 군대로 간 아들들은 시체로 돌아오고......이것이 당시 러시아 인구 대부분을 차지했던 농민을  고통의 수렁속에 빠뜨린 원인이었다.

 

이러한 침략전쟁과, 비효율적인 전쟁 운용방식에 대해 비난을 제기한 화가가 바로 바실리 베레시차긴이었다. 베레시차긴의 작품을 보자면, 거의 모든 작품이 전쟁 및 국경지대와 관련된 그림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의 작품세계에서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중요한 주제였다.

 

베레시차긴은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1842년), 군사적 문화를 많이 접할수 있었던 어릴적 환경에 의해 이미 10대에 러시아 해군학교를 다녔으며, 투르키스탄 전쟁, 발칸전쟁, 러시아-터키 전쟁(투르크 전쟁)에 참전하여 몇번의 가벼운 부상, 한번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반전(反戰)의 주제가 완전히 자리잡게 된다다.

   

베레시차긴의 1871년 작품. 제목은 <전쟁 예찬> 베레시차긴의 투르키스탄 전쟁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 그림이자, 그의 반전 그림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 이 그림의 주석에서, 베레시차긴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정복자에게 바친다]라고 명시하여  전쟁의 비극과 무의미함을 강조하였다.

 

이 <전쟁예찬>이라는 그림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쌓여있는 해골에는 일자(一)로 가로로 긴 도끼자국으로 보이는 상흔이 남아있다. 이미 전투 중에 도끼로 살해당한 시신을 왜 또다시 목을 잘라 그 목을 전시하듯 높게 쌓았는가.... 일찍이 인간이 해왔던 전쟁 속 [승리의 자랑]으로써 으레 행해진 적군의 목베기와(대상자가 살았든 죽었든) 그것을 자랑하게끔 만드는 인간과 전쟁의 잔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된다다.

 

이 셀수 없이 높게 쌓인 해골의 수, 그것을 파먹었을 법한 통통하게 살이 오른 까마귀들,  전쟁으로 파괴되었을 집(우측 후편)과 이 와중에도 끊임없이 푸르고 푸른 하늘....

 

이러한 장치들이 기묘하게 얽혀들어가면서 이 그림은 "전쟁을 하지 말자"는 몇백장의 포스터와 몇만글자의 연설보다. 전쟁을 하면 안되겠구나...라는 감성에 젖게 만다. 이처럼 베레시차긴은 전쟁에 대해 극구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하였으며, 실제로도 어러한 말을 남겼다. "나는 화가로써 전력을 다해 전쟁을 비난한다. 나의 비난이 효과적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정면으로 맞서 가차없이 비난한다."

 

때문에 베레시차긴은 위의 <전쟁예찬> 말고도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는 <시프카에서 모두 평온하다>, <치명상>, <전리품을 보이다> 등의 그림을 다수 남겼다. 한편으로는, 전쟁화의 주인공을 항상 말단에 있는 병사로 내세움으로써 민중화가로써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적국의 침략에 맞서 단호히 싸우는 러시아 병사와 민중, 곤혹스러워하는 적군에 대해서도 그림으로 표현하여 합당한 전쟁수행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가 그린 나폴레옹 전쟁당시를 묘사한 그림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나폴레옹 전쟁관련한 그림 가운데 가장 극적이라고 평가받으며, 엄청나게 많은 화가들이 그의 그림을 모사하게된다.

 

자국의 침략전쟁에 대해 비난하고, 적국의 침략에 대한 방어전쟁에 대해 찬사를 높힌 이 화가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해군사령관 마카로프 제독이 타고 있던 러시아 해군 기함 '페트로 파블로프스크'호가 침몰할 때 배와 같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을 하기는 쉬워도, 전쟁을 알기는 어렵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도시 성벽에서, ‘안으로 진격 , At  the City Wall , 'Let them enter.1871.
OIl on canvas, 95 X 160.5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성벽의 한 구석이 허물어졌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이 그 틈으로 진격을 시작했다맨 앞 줄의 병사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적의 공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성급하게 덤비는 병사를 손으로 막는 병사는 분위기로 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처럼 보이다.

벽 너머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짐작을 하고 하겠지만 그 위험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다는 것은 애써 피하고 싶겠다. 뒤쪽에 줄을 지어 계속 행진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며 전쟁터에서의 인간의 목숨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베레시차킨은 학교 재학 시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고 때문에 앞으로 잘 나가는 장교가 될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다그러나 사람의 운명은 순간에 길을 바꾸기도 한다.  군사 미술에 관심을보였던 그는 사관학교를 다니면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 야간반에서 그림을 배운다.

 

열 여덟 살 되던 해 베레시차킨은 우등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 종일반에 입학한다장교가 되는 길을 걷어 차고 화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Sale Of The Child-Slave, 1872, oil on canvas,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Triumph, 1872



  They celebrate, 1872, oil on  canvas , 195.5cm x 257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가운데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전쟁이 끝나고 그 결과를 알리는 모양이결과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되었다면 과정은 어떻게 되었든 상관 없는 것이 전쟁이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고 했다.

 

 혹시 사람들 사이로 우뚝 솟은 장대에 걸린 것이 보인다. 사람의 머리이적의 머리를 베어 전리품처럼 세워 놓았3자가 보기에는 야만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통쾌하기 이를 데 없는 승리의 상징이인간은–-- 어떤 생물인가요?

 

파리에 도착한 베레시차킨은 장 제롬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러나 스승인 제롬의 가르침 역시 그가 배우고자 했던 화법과는 맞지 않았새로운 주제를 찾아 코카서스를 여행하면서 그 곳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스케치하며 공부를 하기도 했.

 

1867스물 다섯 나이의 그는 투르키스탄에 있는 러시아 군대에 지원한그리고 사마르칸트 방어전에서 영웅적인 활동으로 그는 러시아 최고의 훈장을 받게 되었이 때 참전했던 내용을 그림으로 제작한



Temple in Tokyo, 1871~1873


About the war, 1873,   oil on  canvas , 58.5 x 7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Bukhara soldiers (Sarbaz), 1873


Chinese, 1873


Indian, 1873


Kalmyk-lama, 1873


Looking out, 1873


Mullah Rahim and Mullah Karim quarrel on his way to the marketm 1873


 
치명상, Mortally Wounded, 1873m oil on  canvas ,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요새 공격중 치명상을 입고 후퇴하는 러시아병사....그의 주변에 이미 많은 병사가 쓰러져있고....


 

At The Door Of A Mosque, 1873. oil on canvas ,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Turkestan officer, when there will no campaign , 1873


Turkestan soldiers in the winter form, 1873


Uzbek dishes seller, 1873


Uzbek Woman in Tashkent, 1873,   oil on  canvas ,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Mendicant dervishes-douvana (holy fools), 1873,


Douvana (Begging dervishes), 1873


Samarkand zindan (Underground prison), 1873


Bhil, 1874


Buddhist temple in Darjeeling. Sikkim, 1874


Evening on the lake. one of the pavilions on the marble promenade in Radzhnagar (Principality of Udaipur), 1874


Radzhnagar. Marble, adorned with bas-reliefs quay on the lake in Udaipur, 1874,


Buddhist lama in a monastery on a holiday Pemionchi. Sikkim, 1875


Buddhist Prayer Machine, 1875


Coolie (porter), 1875


Gate near the Qutub Minar Old Delhi, 1875,



 
Glacier on A Road From Kashmir In Ladakh, 1875


Hemis Monastery in Ladakh, 1875


Himalayan ponies, 1875


Himalayas in the evening, 1875


Himalayas. The main peak, 1875


Indian motif, 1875


Monastery in a Rock. Ladakh, 1875, 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Mountain stream in Kashmir, 1875


Posthumous monuments in Ladakh, 1875


The three main gods in a Chingacheling Buddhist monastery in Sikkim , 1875


Throne Hall of the Great Mughal Shah Jahan and Aurang-Zeb in Delhi Fort, 1875


Vehicle in Delhi, 1875



Vehicle of rich people in Delhi, 1875


Yaqui, 1875


Church of God of War (shrine, Buddhist Temple), 1875, 30.8 x 23.4 cm

Radishchev Saratov State Museum of Art, Saratov, Russia

 

 

Bania (trader). Bombay, 1874~1876

 

 

Brahminic temple in Adelnure, 1874~1876

 

 

Fakir, 1874~1876

 

 

Fakirs, 1874~1876

 

 

In India. Himalayas snow, 1874~1876

 

 

Moti Masjid (Pearl Mosque), Agra, 1874~1876

 

작품의 무대가 궁금해서 찾아 보았더니 인도 북부 아그라에 있는 아그라 요새의 진주 모스크인 것으로 추정된.  이 모스크의 강 건너에는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다고 한다티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흰 대리석이 눈부시건물의 그림자마저도 푸른색을 담았계단 아래에서 건물과 하늘을 올려다 보는 사람도 그 아름다움에 취한 모습이.

 

전쟁을 묘사한 베레시차킨의 작품은 그에게 상당한 명예와 함께 그의 이름이 러시아 상류 사회에 알려지는 기회를 주었지만  한 편으로는 러시아를 떠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  전쟁의 참상과 러시아 병사들의 비극적인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몇 몇 작품은 사람들에 의해 파괴 되었고 2년 간 러시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그러나 전쟁의 야만성과 병사들의 죽음그리고 모든 전쟁의 파국적인 결과에 대해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철학적인 고민이 그의 작품에 담기기 시작했.

 

 

Parsi priest (fire-worshiper). Bombay, 1874~1876

 

 

Roses in Ladakh, 1874~1876,   oil on  canvas ,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Sowar, the Messenger of the Government, 1874~1876,    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Statue of Vishnu in the temple of Indra in Ellora, 1874~1876

 

 

Taj Mahal Mausoleum, 1874~1876

 

 

Taj Mahal Mausoleum  in Agra, 1874~1876,   oil on  canvas ,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어려서 타지마할이 왕궁인줄 알았커서 무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 견디기 힘들었던  남자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22년에 걸쳐 이 무덤을 만들었덕분에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

 

어찌 보면 무덤을 남긴 것이 아니라 아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남긴 것이다. 말년에 막내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감옥에 갇혔지만 다행히 그 감옥에서는 타지마할이 보였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배신을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겨 낼 수 있었을까?

 

처음 전쟁에 참여 한 10년 뒤베레시차킨은 러시아-터키 전쟁에 다시 참여한전쟁에는 반대했지만 전쟁의 참상은 꼼꼼하게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전쟁 중 여러 번 부상을 당하면서도 그는 전쟁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차질 없이 해 냈

 

그의 작품에는 전쟁의 희생자들이 등장한전쟁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병사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Vereshchagin, Vasily (1842-1904) - 1874-76 Taj Mahal, Evening

 

 

The colonnade in the Jain temple at Mount Abu in the evening, 1874~1876

 

 

Tomb of Sheikh Salim Chishti in Fatehpur Sikri, 1874~1876

 

 

West Tibetans, 1874~1876



Cart for the Wounded, 1877,   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Corner of the Turkish Redoubt Captured on May 30 but Abandoned on May 31, 1877,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Bashi-bazouk (Albanian), 1877~1878


Frozen corpses of Turkish soldiers, 1877~1878


Moving columns of M.D. Skobelev through the Balkans, 1877~1878


Soldiers in the snow, 1877~1878

Picket in the Balkan Mountains, 1878, 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Battlefield at the Shipka Pass ,  <시프카 전투에서의 소코블레프(러시아군 장성)>, 1878 

자료를 보니 시프카 고개는 불가리아의 발칸산맥을 넘는 고개로 러시아와 터키 전쟁 당시 격전지였다고 한다. 전투 중에 죽은 병사들의 모습이 처참하푸른 색 옷과 밝은 색 옷을 입을 주검들이 하늘을 향해,더러는 땅을 향해 얼굴을 눈 속에 파 묻고 있.

 

살아 남은 병사들은 환성을 지르고 있지만 눈 쌓인 고개에서 젊은 나이를 마감한 혼들은 아득한 산 너머를 향하고 있겠지요혼들이 넘어 가는 산을 올려다 보았산 전체가 흘러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러시아를 떠난 후 베레시차킨은 인도 여행과 시리아팔레스타인을 여행한인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인들에 대한 인도인들의 저항과 건축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

 

팔레스타인 여행을 통해 제작된 신약 성경 관련 작품은 그 표현이 가톨릭교회와 문제를 일으켜 결국 비엔나에서 전시회를 할 때는 광신도들에 의해 작품 두 점이 염산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 난다


 
망자를 위한 의식 Defeated, Servise For The Dead, 1878-79

 

망자를 위해 사제는 향을 피워 흔들었다군인이 되기 전에 각자의 삶이 있었겠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은모두 군인이었다.  편안한 어딘 가에 앉아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전장으로 몰아 낸 그 사람들은 이 광경을이 느낌을 알 수 있을까?   하늘은 온통 회색이다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내리는 빛은망자들이 하늘로 오르는 길처럼 보인다.  전쟁은 인간의 본능일까.


1890년이 넘어서여 베레시차킨은 러시아로 돌아 올 수 있었다모스크바에 정착한 그는 나폴레옹의 러시아침략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제작하는데 여전히 냉정한 사실주의 기법이 사용되었지만 초기에 비해 훨씬 낭만적이고 애국심이 담긴 작품이었다그의 마지막 길은 화가가 아니라 군인의 모습이었다.


러일 전쟁 중 그는 러시아 기함 페테로 파블로프스키호에 타고 있었다그리고 일본군이 쏜 어뢰에 의해 이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 앉았다예순 둘의 나이였다전쟁을 증오했지만 두 번이나 전쟁에 참여했고 그리고 전투함과 생을 마감한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그의 몸 속에는 화가의 피가 더 강했을까아니면 군인?



Dressing station, 1878~1879

At Shipka all is quiet ..., 1878~1879
 

 
죄수들의 휴식 장소   A Resting Place of Prisoners / 1878~1879 / Oil on canvas

 

눈보라가 치는 길전쟁에서 포로가 된 죄수들이 잠시 가던 길을 멈췄가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들판에서 그냥 주저 앉아 쉬는 것이 전부이.  불어 오는 바람은 쌓인 눈을 하늘로 올리고 있고개조차 들 수 없는 상황모두가 팔에 얼굴을 파 묻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제 눈에는 아무리 봐도 휴식처럼 보이지 않는.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무엇을 위해누구를 위해 전쟁에 참여했고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고장이 나서 눈 속에 버려져 있는 바퀴가 마치 역사를 움직이는 바퀴처럼 보인전쟁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주저 않게 한다. 러시아-터키 전쟁을 주제로 한 베레시차킨의 작품들에는 무능하고 무모한 러시아 장군들이 묘사되었.

 

결국 러시아 정부와 갈등이 생겼고 알렉산더 2세는 그를 가리켜 인간 쓰레기가 아니면 미친 놈이라고 했그는 다시 러시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의 그의 작품 전시회는 성공을 거두었고, 군 관련 위정자들은 병사들과 학생들이 그의 작품 전시회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 시켰다고 한다



Picket on the Danube, 1878~1879,   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Shipka field, 1878~1879

 

 

Spy, 1878~1879,   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두 마리의 매(부제: 바시바조우크들), Two Hawks(Bashi-bazouk), 1878-1879, oil on canvas

Gallery: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터키군의 민병대(바시바조우크)들이 포로가 된 모습  

 

 

Winners, 1876~1879

 

 

Road of the War Prisoners, 1878~1879,   oil on  canvas , 181.6 x 280.7 cm, 

Brooklyn Museum, Brooklyn, New York, USA

 

눈 쌓인 길 위로 주검들이 흩어져 있그 사이로 주인을 잃어버린 짐들이 보인크게 돌아 언덕 사이로 빠져 나가고 있는 이 길은 아마 전쟁 포로들이 끌려 갔던 길일 것이다. 부상을 입은 포로들이 이 혹한의 길을 무사히 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낙오된 포로들은 버려졌거나 살해 되었을 수도 있.

 

포로로 끌려 가는 길은 그래도 살아 돌아 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길이었지만, 길 위에 주검들은 희망의 끝자락도 잡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길은 문명을 가져 오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야만도 함께 오는 곳이다. 길 옆 전봇대의 전선 위 까마귀 떼마치 진혼곡의 음표처럼 걸려 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후기 고전주의 기법을 원칙으로 하는 학교의 교수법이 베레시차킨의 마음에 들지 않았.율리시즈가 그의 아내를 치근덕거리는 사람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주제인 그림으로 은메달을 수상했지만 다시는 이런 작품을 그리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작품을 부셔버리고 만.  상상이나 환상의 세계가 그에게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스물 두 살이 되던 해베레시차킨은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난. 


 

Site of the Battle Fought on July 18, 1877 in front of the Krishin Redoubt near Plevna, 1877~1880,   oil on  panel , The Museum of Russian Art, Kiev, Ukraine

 

 

The rider in Jaipur,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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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프스키 블라디미르 예고로비치의 작품세계Ⅱ -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91~1920]  露.東유럽 / 외국화가 

2014/08/0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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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프스키 블라디미르 예고로비치의 작품세계Ⅱ

 -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91~1920]

[​러시아 화가 :1846년~1920년]

 

 

A portrait of E. S. Sorokin, 1891, ​Russian Federation

 

 

Declaration of Love, 1889~1891,   oil on  canvas , 53 x 39.5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Hiring a servants, 1891,  Russian Federation

 

 

Iconographer, 1891

 

 

Morning tea, 1891, Russian Federation

 

  

I will not!  1892, oil on canvas ,   Russian Federation

1880년대 말부터 마코프스키의 작품은 조금 더 우울해졌다1894년 마흔 여덟의 나이로 상트페테르부르그 예술 학교의 교수로 임명되는데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일흔까지 학생들을 지도한다또 예술아카데미 예비학교의 교장을 맡게 된다그는 화가이자 선생님이었다.

 

 

Over the chips, 1892,  Russian Federation

  

His First Suit,  1892 ,  oil on canvas, Russian Federation

 

At the porter's room, 1893, Russian Federation


Self portrait, 1893,   ink on paper , 34.2 x 27 cm

Two sisters, 1893,  Russian Federation

A portrait of Dmitry Rovinsky, 1894, Russian Federation


Jesus Christ, 1894, Russian Federation


Goodbye, Papa,  1894, oil on canvas, Russian Federation
  

Summer, 1896,  Russian Federation

  
Summer, 1896,  Russian Federation


Amateur Artist Working en Plein Air, 1896 ,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At Dominique's,  1897

 

 

Teacher Visiting a Village,1896~ 1897 ,  oil on canvas ,  67 x 90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A peasant, 1897, Russian Federation

 

 

At Volga, 1897,  Russian Federation

 

 

The Choice of Wedding Presents, 1898,  oil on  canvas , 40.5 x 54 cm, 

Kharkiv Art Museum, Kharkiv, Ukraine

 

 

Fisher. Finland, 1899,  Russian Federation

 

 

At the doctor's, 1900.  Russian Federation

 

 

Before explaining (Date), 1898~1900, oil

 on  canvas , 83 x 118 cm, Art museum of Samara, Samara, Russia

 

 

Girls lightened by sun, 1901, ​ Russian Federation

 

 

Ukrainian landscape with huts, 1901, Russian Federation

 

Shepherds, 1903~1904,  Russian Federation

 

 

Waiting for an Audience, 1904,   oil on wood , 

Radishchev Saratov State Museum of Art, Saratov, Russia

 

 

Portrait of I. E. Tsvetkov, 1905, Russian Federation

 

 

Self portrait, 1905,   oil on  canvas , 34.3 x 38.6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1905 19 바실리에프스키 섬의 스케치 Sketch of January 9,1905 Vasilyevsky Island, 1907, The State Museum of Russian Political History, St. Petersburg, Russia

 

바실리에프스키 섬은 상트페테르브르그 근처에 있는 섬이다이 날 섬에서는 무장한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사람들을 향해 발포한 일이 있었다마코프스키가 현장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장면을 그림으로 제작했다뒤에 있는 남자는 겁에 질린 모습이지만 가슴을 열어 젖힌 남자의 표정은 비장하다.

억울하고 분해서 금방 울 것 같다배경만큼이나 흰 가슴이 안타깝다내 가슴은 눈처럼 희고 착하다너희처럼 시꺼멓고 힘을 가져 본 적도 없다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가내가 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최소 권리에 대한 주장이 총을 맞아야 할 일인가?  정말 그렇단 말인가좋다그렇다면 내 이 흰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라.  목이 터질 것 같은 사내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다생각해보면 역사의 일정 부분은 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피를 먹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1905 1 9일은 일요일이었다상트페테르부르그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 등을 요구하며 왕궁을 향하여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시위대를 진압하고자 하는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한 이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 제1혁명이 시작된다.  혁명을 지켜 본 마코프스키는 노동자와 농민도시 빈민과 같은 약자 편에선다.

  


Two mothers. Native mother and stepmother.1905~1906, oil on  canvas, 

120 x 158cm,  Art museum of Samara, Samara, Russia

  

1917 10월 러시아 혁명이 시작됩니다마코프스키는 늘 마음에 두었던 힘없고 핍박 받는 사람들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다.  1918년 러시아 혁명이 완성되고 난 후 2년 뒤일흔 넷의 나이로 마코프스키는 세상을떠난다.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가슴에 담고 그 때 떠났기 때문에 행복했을지 모른다왜냐하면 그 뒤로 흘렀던 역사를 보면 혁명은 혁명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마코프스키는 사실주의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연결시켰다 


 

Musical Evening,  1906,   oil on canvas , 50.5 x 41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Lover of painting. Portrait of a collector I.E. Tsvetkov. 1907, Russian Federation

 

 

Portrait of academician Ivan Yanzhul, 1907,  Russian Federation


 

Tete a Tete, 1909, oil on  canvas , 32.4 x 28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y listen the gramophone, 1910,  Russian Federation

 

 


Without a master, 1911,  Russian Federation

 


Empress Maria Feodorovna, 1912,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At the kitchen, 1913, Russian Federation



Portrait of I. E. Tsvetkov, 1912~1913,  Russian Federation



Young Lady Looking into a Mirror, 1916, oil on  panel , 27.9 x 22.1 cm



Portrait of a man sitting on a park bench, 1917, oil on panel , 24.5 x 19 cm, 

Private Collection



Tobacco taster, 1918, Russian Federation



On the grand staircase, 1914!~1919, Russian Federation



On Deck, 1920,   oil on  canvas , 26.5 x 42 cm, 

Kostroma Regional Art Museum, Kostroma, Russia



A Glass of Ale,  1919, watercolor , Private collection

 

No Date


  

The Apple Pickers ,  Date unknown, Private collection

 


A letter,  Russian Federation



Boys in the field, Russian Federation


 

Contemplation.  Date unknown ,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Evening Company,  Date unknown,  oil on canvas, 108.5 x 14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In the hut of forester, Russian Federation



Market in Poltava,  Russian Federation



Rest on the way from Kiev,



Summer Day,  Date unknown


The artist and the apprentice,  Russian Federation

 


Violinist,  Date unknown. Private collection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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