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미술사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세계Ⅲ - Berthe Morisot,[풍경인물,정물]

작성일 작성자 淸岩 張基萬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세계Ⅲ - Berthe Morisot,[풍경인물,정물]

 

[French Impressionist Painter, 1841.1.14.부르주 ~ 18953.2. 파리]

 

 

 

 

Calvary (after Veronese) 1858 Oil on Canvas

 

On the Terrace 1874 Oil on Canvas

 

 

In the Wheat Fields at Gennevilliers. 1875 Oil on Canvas

 

 

Eugene Manet on the Isle of Wight. 1875 Oil on Canvas Musee Marmottan France

 

 

Marine (The Harbor at Lorient) 1869년.0il on Canvas 43.5 X 73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USA, 

Boating on the Lake  1892 Oil on Canvas

 

Harbor in the Port of Fecamp 1874  pastel

View Paris  from the  Trocadero Heights  1872 Oil on Canvas  46.2 x 81.5cm

Santa Barbara Museum of Art, USA

The Little Windmill at Gennevilliers  1875 Oil on Canvas

Villa with Orange Trees, Nice 1882  Oil on Canvas

The Garden at Bougival  1884 Oil on Canvas

 

Old Path at Auvers 1863  Oil on Canvas

Girl in a Boat, with Geese 1889 Oil on Canvas

Child in the Rose Garden  1881 Oil on Canvas

 

Rose Trémière. 1884

A Corner of the Rose Garden  1885 Oil on Canvas

 

Snowy Landscape (aka Frost) 1880 Oil on Canvas

At the Exposition Palace   pastel

 

View of Tivoli (after Corot)  1863  Oil on Canvas


Farm in Normandy 185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노르망디의 초가집 Thatched Cottage  in Normandy 186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andscape of La Creuse  1882  Oil on Canvas

 

 

Landscape near Valenciennes 1875 Oil on Canvas 

 

 

The Seine below the pont d'Lena, 186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Un village (Le village de Maurecourt)  1873

 

 

Hanging out the Laundry to Dry, 1875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The Goose  1885 Oil on Canvas
 


Willows in the Garden at Bougival  1884,  Oil on Canvas 

 

 
On the Cliff at Portrieux  1894,  Oil on Canvas

 

The Beach at Nice  1882  Oil on Canvas 

 

 

 Landscape at Gennevilliers  1875  Oil on Canvas 


 

Haymakers at Bougival  1883, Oil on Canvas 

 

 

Haystack  1883, Oil on Canvas 

 

Autumn in the Bois de Boulogne  1884  watercolor


Carriage in the Bois de Boulogne 1889  watercolor

The Bois de Boulogne  watercolor


 

Swans    watercolor


Fall Colors in the Bois de Boulogne  1888 watercolor

 

The Tuileries  1885  watercolor

 

 

Rosbras (Finistere), 1866-1867  Oil on Canvas 

The Seine at Bougival  Oil on Canvas


The Beach at Petit-Dalles (aka on the Beach) 1873  Oil on Canvas

 


The Port of Nice 1882 Oil on Canvas

 

  

 Boats under Construction  1974 Oil; on Canvas

 

Boats on the Seine 1880 Oil on Canvas 

 

 

Boats on the Seine. Villenueve-la-Garenne 1875, Oil on Canvas

Harbor Scene, Isle Wight 1875, Oil on Canvas

 

 

English Seascape, Newark Museum,(United States) 

 

The Quay at Bougival 1883 Oil on Canvas

 

The Port of Nice 1882, Oil on Canvas 

 

 

The Banks of the Seine  1894  watercolor

 

Aboard a Yacht  1875 watercolor


Boat at Dock  1875  watercolor

 

 

Boats - Entry to the Medina in the Isle of Wight (aka pugad baboy) 1875 watercolor

 

 모리조(Berthe Morisot)는 1841~1895 활동 했으며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J.B.C.코로의 지도를 받았으나,  마네를 알게 되면서 인상파 화가들과 교제하였으며, 1874년에 시작된 인상파 그룹전(展)에 처음부터 참가하였다.  그후 1886년의 제8회전까지, 제4회전(1879)을 빼고 매회 출품하였다. 

1874년, 마네의 동생 우젠과 결혼하였으며, 《발콩》 《휴식》 등에서 자주 마네의 작품모델이 되었다. 모리조의 작품은 코로의 감화를 받은 초기의 풍경화로부터 차차 인상파의 밝은 색조로 바뀌어갔으며, 집 안팎의 가정적 정경이나 정물화를 자유롭고 경쾌 한 필치로 그려, 섬세하고 감미로운 감각을 나타내었다.  수채화에도 뛰어나서 유화 못지않은 경쾌하고 멋있는 가작들을 남겼다.

그녀의 완숙한 붓터치와 색채의 활용은 17세기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화풍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세부 묘사의 정확함과 함께 다루기 어려운 포우즈를 빈틈없이 잡아내는 모리조의 솜씨는 인상파 그림이 보여 주려 하는 모든 것을 화면위에 펼쳐 놓고 있다.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작품을 전시했으며, 친구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상파 화가들의 투쟁에 계속 참여했다. 정부 고위관리의 딸(그리고 중요한 로코코 화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손녀)로 태어난 모리조는 일찍부터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진지하게 미술에 몰두했다.

1862~68년에 그는 코로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1868년에 만난 마네는 그의 작품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마네는 모리조의 초상화, 예를 들면 〈휴식 Repose〉(1870경,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하로비던스 로드아일랜드 미술관 소장) 등 여러 점을 그렸다.

마네는 모리조의 작품을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모리조는 마네에게 야외에서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모리조의 작품은 마네와 같이 구도를 강조했으며, 동료 인상파 화가들처럼 광학적 색채실험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모리조의 그림에는 그의 가족들이 자주 등장했는데, 특히 여동생 에드마는 〈풀밭에 앉아 있는 화가의 여동생 퐁티용 부인 The Artist's Sister, Mme Pontillon, Seated on the Grass〉(1873,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화가의 여동생 에드마와 어머니 The Artist's Sister Edma and Their Mother〉(1870, 미국 워싱턴 D. C. 국립미술관 소장)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섬세하고 미묘하며 아름다운 색채(그는 차분한 에메랄드 빛이 섞인 빨강색을 자주 사용했음)로 모리조는 동료 인상파 화가들의 존경을 받았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리조의 작품도 많은 평론가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풍부한 교양과 매력을 갖춘 여성인 모리조는 말라르메와 드가, 르누아르 및 모네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는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다. 

 
 

 

The Cage. Oil on canvas, 1885 

 

Tureen And Apple. 1877 Oil on Canvas 

 

  

Dahlias. Oil on canvas, 1876  

 

 

Roses Oil on Canvas

 

 

The Blue Vase 1888 Oil on Canvas   

 

 

Daisies  1885, Oil on Canvas

 

 

Daffodils  1885 Oil on Canvas

 

 

Peoniws  1869

 

에두아르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 


도발적인 그림을 선보여 파리를 발칵 뒤집어 놓던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화풍을 바꾸고, 자신의 인생 전부를 바친 여자... 인상파 화가들이 세상에 내놓은 것은 특유의 그림만이 아니다. 세상의 시선 아래에서 사랑을 감춰야만 했던 에두아르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비밀스러운 러브스토리.


사교계의 인기녀를 쟁취하다

 

고위관리의 셋째 딸이었던 베르트 모리조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배웠다. 그녀의 증조부 프라고나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던 화가였고, 그녀의 언니 에드마 역시 화가였기 때문에 그녀도 자연스레 붓을 잡을 수 있었다. 부유한 가정이었기에 그녀는 밀레에게 영향을 줬던 카미유 코로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다.

 

그는 모리조의 재능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당시는 여성의 활동을 비하하고, 여성의 그림을 한낱 취미생활로 폄훼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했을 때, 코로의 칭찬은 모리조가 화가 인생을 시작하는 데 큰 격려가 되었다. 에두아르 마네를 만나기 전, 그녀는 이미 살롱에 풍경화를 출품했을 정도로 어엿한 화가로 인정받은 상태였다.

 

비슷한 글, 비슷한 그림이라면 비주얼이 더 나은 작가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현 시대처럼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파리에서 화가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물론 경제적 형편은 별개의 문제다.) 남자인 화가가 여자인 모델을 간택하는 시대에, 여성 화가인 모리조는 파리의 사교계를 주름잡는 여인이었다. 이십대 초반부터 공식 살롱에 6번이나 입선하는 등 화려한 경력에 매력적인 외모가 더해지니 그녀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특히 그녀가 활동하던 때는 드가,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시절이었다. 그녀 스스로 인상파에 속하기도 했던 모리조는 자연스레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을 나누며 인상파의 뮤즈가 되었는데, 수년 후 르누아르가 그녀의 아이인 ‘줄리 마네’를 그려 호평 받았을 정도로 대를 이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실 그녀의 관능적인 외모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붉은 빛이 감도는 섬세한 머릿결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눈... 모든 화가가 그녀의 자태를 화폭에 담고 싶어 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이들은 그녀의 그림에 열광했다. 모든 여자가 파스텔 톤 드레스를 입던 시대에 모리조는 검은색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사실 검정은 보헤미안을 의미하며 ‘무정부주의’를 상징했다. 또 죽음을 뜻하는 색이었다. 그 속에 든 진지한 의미와는 별개로, 그녀의 하얀 피부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컬러이기도 했다. 남자들은 이 팜므파탈의 매력에 자꾸만 빠져들었다. 이 남자들 중 마네도 한 명이었다. 적어도 모리조가 그의 감정에 동조했다는 점에서 마네는 행운아였다.

 

 

 

두려움 없는 사랑

 

1868년, 두 사람은 팡탱 라투르의 소개로 살롱 드 파리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에로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네의 작품을 야유했지만,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시간을 보냈던 모리조는 마네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앞서 말했듯이 모리조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미모,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여인이었기에 마네가 모리조와 사랑에 빠진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 해, 마네는 그녀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고, 남아있는 수만 해도 스무 점이 넘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에는 걸림돌이 많았다. 일단 마네는 공식적으로 유부남이었다. 마네의 아내 쉬잔은 어린 시절 마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가정교사였다. 그리고 법률가였던 아버지의 정부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죽은 후 그는 자신보다 세 살 많은 그녀와 결혼을 감행했다. 사실 관계를 따지자면 배다른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옹은 공식적으로 마네의 아들이 되었다. 장남인 마네가 가족의 명예를 위해 집안의 비밀을 짊어진 것이다.

 

이렇듯 비통한 사연을 지닌 마네가 안쓰러워보였기 때문일까? 모리조는 마네에게 더 빠져들었지만, 유부남 화가와 미혼 여성이 남들의 눈을 피해 계속 만남을 이어가기엔 파리 사교계에 눈과 입이 너무나 많았다.

 

결국 마네는 그녀를 오랫동안 보고 싶은 마음에 이기적인 제안을 하고 만다. 즉, 자신의 동생인 외젠과 결혼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팜므파탈이라 불리던 여인도 진짜 사랑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던 것인지, 모리조는 마네의 아이디어에 동의하고 마네의 ‘제수’가 된다. 그리하여 마네는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비밀을 2대째 이어가게 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확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리조가 그녀의 언니 에드마 모리조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들이 연인 사이임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던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한 그 어떤 로맨틱한 발언도 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그리고 인상파 동료다.

 

하지만 마네는 모델을 반복해서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오직 모리조만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화폭에 담았다. 뿐만 아니라 모리조는 그렇게 ‘얌전한’ 제자도 아니었고, ‘고분고분한’ 여자도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 마네를 소개받을 때는 마네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싶어 했고 그의 스타일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모리조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뚜렷했고 또 기질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러니 단순히 스승 마네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 모리조라고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곁에서 두 사람을 오랫동안 지켜본 조지 무어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마네가 이미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모리조가 그와 결혼했을 것이 틀림없다.”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다

 

모리조의 초기 작품은 스승이었던 코로의 영향을 받아 풍경화류에 속했다. 하지만 마네를 만난 이후 점점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인상파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현재는 인상파 화가의 명단에 모리조 역시 포함된다. 실제로 1874년에 인상파 그룹전이 시작되었는데 그녀는 첫 회부터 참가하여 매회 출품했다.

 

당시 비평가들은 드가와 마네의 작품에 대해선 굉장히 심한 혹평을 쏟아냈지만 그녀의 작품은 늘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적당히 앞선 감각과 현재 트렌드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줄 아는 화가였다.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한 후 드가의 지도를 받았다.

 

자신의 재능을 더욱 뽐내며 남성적인 구도와 여성적인 색채가 교묘히 조화를 이루는 데 집중했다. 또한, 여류 화가라는 정체성 역시 버리지 않았다. 남자 화가들이 잘 그리지 않았던 정물화나 가정적인 정경을 경쾌한 분위기로 그려냈다. 유화만큼이나 수채화의 실력도 뛰어나 여러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마네가 모리조를 인상파로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리조가 마네와 인상파를 연결해줬다고 봐야 한다. 모리조 덕분에 마네는 야외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 일원들을 만나 인상파에 합류할 수 있었다. 즉 현재 우리가 그를 인상파의 선배로 부를 수 있는 것은 모리조 덕택이다.

 

사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그들을 심하게 괴롭혔다. 두 사람은 비판과 구애, 존경과 질투를 오가며 서로의 사랑을 갈구했다. 마른 몸매였던 모리조는 마네의 아내인 수잔의 풍만한 몸매를 조롱하기도 했다. 결혼 초기, 모리조는 자신의 남편이자 마네의 동생인 외젠을 경멸할 정도로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젠은 형의 화가 활동을 격려하고 헌신적으로 지원해주는 착한 동생이었고, 친절하며 지적인 남자였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존재를 차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모리조 부부는 말하자면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살았다. 마네가 그린 외젠의 모습이 어쩐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1883년, 마네는 세상을 떠난다. 병명은 매독. 그가 아내와 애인 사이에서 문란한 성생활을 벌였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황당하게 아버지로부터 정부와 매독을 함께 물려받은 것이다. 모리조는 마치 남편이 죽은 것처럼 고통스러워했고 오랫동안 시름에 잠겼다. 이들의 비밀을 알고 있던 그녀의 언니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1890년 자신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모리조는 마네의 명성을 지켜주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마네의 가족들과 함께 이듬해 사후 전시회를 기획했고, 경매에서 팔리지 않은 그의 작품을 사비를 써 사들였다. 또한 인맥을 동원해 국가에서 <올랭피아>를 사도록 도왔다. 또 인상파 동료인 드가가 개인 소장품으로 미술관을 세울 계획을 세우자 마네의 작품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사랑으로 바뀐 뮤즈

 

사실 마네의 작품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를 보면 마네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포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목 근처에 달려 있는 섬세한 제비꽃 장식이다. 검은색 케이프를 입고 있는 모르조의 검고 커다란 눈이 너무나 강렬하기에 흰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제비꽃의 존재감은 뚜렷하기보다는 암시적이다.

 

당시 거리의 꽃장수들은 작은 꽃다발을 바구니에 담아 극장 입구 어귀에서 꽃을 사주는 이를 기다렸다. 많은 남자들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기 위해 이 작은 꽃다발을 샀고, 마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리조에게 선물했던 제비꽃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이 그림에 제비꽃을 추가했다.

 

또 정물화를 경멸했던 평소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그녀에게 선물한 제비꽃을 정물화로 그려두기도 했다. 이런 추억이 담긴 초상화이기에 모리조는 마네가 죽은 후 이 그림을 사들였다. 이후, 이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의 명작이 된다.

 

<발코니> 역시 그녀의 매력적인 자태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마네의 그림에 등장하는 그녀는 늘 ‘주인공’이다. 어떤 그림이든 배경은 그녀를 위해 존재한다. 검은색 의상을 즐겨 입는 그녀가 오랜만에 흰색 드레스를 입었을 때는 배경을 검은색으로 깔아준다. <발코니> 속에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2명이지만, 우리의 시선은 모리조에게로 자연스럽게 꽂힌다. 모리조는 존재감이 뚜렷한 모델이었고, 그 장점을 마네는 충분히 살려 표현했다.

 

사실 마네에게는 빅토린 모렝이라는 모델이 있었다. 대중과 평단의 비판을 들었던 <풀밭 위의 점심>의 모델이 바로 그녀다. 마네의 그림 속에서 빅토린은 관능적이지만 싸구려 창녀의 이미지를 대변했다. 그러나 마네의 인생에 모리조가 출현하게 되면서 마네의 그림마저도 변화하게 된다.

 

모리조의 등장 이후 빅토린은 마네의 그림에서 사라진다. 마네가 그려낸 모리조의 형상은 부르주아 여성이다. 모리조는 단아하지만 성적 매력이 가득한, 왠지 범접할 수 없는 모델이었다. 여자의 벗은 몸을 그리지 않고도 도발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음을 마네는 모리조를 통해 배우고 깨달았다. 그녀는 분명 마네의 뮤즈이자 연인이었다. 아니, 그의 인생과 그림을 바꾼 단 한명의 사랑이었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