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고개

2019, 영주문예대학 문학기행 다녀오다/문경아제

작성일 작성자 하늘과 바람과 별시

 

 

 

 

 

 

 

 

 

 

 

 

 

 

 

 

 

 

 

 

향수

 

정 지 용(鄭芝溶)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주절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은 예쁠 것도 없는

사철 헐벗은 아내가

따거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가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어제는 박영교 선생님과 김점순 교무처장을 모시고 영주문예대학 선후배, 동료문인들과 함께 2019,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이 나라 현대시를 정립한 최초의 모더니즘 시인, 정지용 시인의 문학관이 있는 충북 옥천에 다녀왔다.

 

산골짝에서 흘러 내려오는 좁다란 계곡물이 모이고 모여 내를 이룬다.

이 곳 저곳의 내가 합수하여 넓은 강이 된다.

내와 강변 모래밭엔 바람이 스쳐가고 고운 햇살 반짝이고, 물새들의 발자국이 짝혀있다.

그곳 하얀 모래밭, 물새들의 발자국이 찍혀있는 모래밭엔 물새들의 꿈이 익어간다.

 

해저문 바닷가에 물새 발자국

바닷물이 파르르 어루만져요

그 발자국 예쁘다 어루만져요

 

하이얀 모래밭에 물새 발자국

지나가던 실바람이 어루만져요

그 발자국 곱다고 어루만져요

 

월북 시인 윤복진의 시 '물새 발자국'이다.

 

누가, 무엇이 저리 고운 시를 쓰는 시인을월북하게 하였는가?

사상이다.

정치적이념이다.

정치는 무섭다. 난 그래서 정치를 싫어한다.

 

옥천에 도착하니 열두시가 넘었다.

허브농정에 도착해서 농장을 견학했다.

농장 규모는 엄청 컸다. 우람우람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일까 짜임새가 허술해보였다.

낮 한시가 넘어서야 식탁에 앉았다.

메뉴는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꽃밥'이었다. 이 꽃 저꽃을 밥에 넣어 비벼 먹는 꽃밥이란 것이었다.

일흔의 나이를 살다보니, 길 나서서 걷다보니 꽃밥도 맛볼 수가 있었다.

 

정지용문학관엔 예상했던 대로 하늘 같은 선배시인 정지용 시인의 시와 시인이 걸어갔던 인생여정이 문학관 곳곳에 배어 있었다.

지금보다는 십 수년 젊었던 시절, 나는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와 미국 어느 주에 무리지어 거주했던 인디언의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을 끼고 살다시피했었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와 청남대 얘기는 생략한다.

이 블로그를 오가는 칭님들께서 나보다는 더 잘 알 것 같기에.

어제 문학기행의 백미는, 라이라이트는 돌아오는 버스안에서였다.

문예대에 가수가 그렇게 많은 줄은 어제 알았다.

어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노래를 부른 문우들은 모두가 가수였다.

나도 한곡 부르려다가 집사람 당부가 떠올라서 관뒀다.

집사람이 평소 내게 한 당부는 이랬다.

"당신 어디 가서 흥에 겹다고절대로 마이크 잡으면 안 되니대이."

집사람은 내 노래실력을 잘 알기때문이었다.

참고로 내 노래실력은 혼자 부르면 일등, 두 셋이 부르면 이 삼등이다. 그러나 집사람은 나보다는 월등히 잘부른다.

아마추어는 넘어섰다. 처녀 때, 가수의 길로 들어서려다가 돈이 너무 든다기에 포기한 집사람이었다.

어제 돌아오는 버스안은 문예대1기 네 가시나 김경미, 박성우, 전미경, 전미선이가 접수했다.

네 가시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 되어 춤추고 노래하고, 길길이 뛰며 놀아났다.

1기 최선임 기수다웠다.

역시 1기였다. 놀이판의 압권(壓卷)이었다. 글 잘쓰는 사람이 놀기도 잘하는 법이다. 놀 때는 앞 뒤 재지말고 저렇게 놀아나야 하느니.

"문경아제, 나이 들만큼 던 정숙한 여류문인들을 보고 가시나라니요. 어제 막걸리 네댓잔 하더니 아제 맛가버렸수. 왜 그러시우?"

"뭣이라. 가시나 보고 가시나라 카는 기, 뭐가 그리 잘못 됐나. 세월의 축을 한 삼십년 후진시켜 쉰줄에 접어던 여인네를 파릇파릇한 스무살 가시나로 맹글어놓고 가시나라 카는데, 뭐시 고로콤 잘못 됐다말이가. 고맙다고 네 가시나가 날 업어줘야 맞는 말 아이가. 그랴도 할말있나?"

"......!"

어제, 그 환상적인 모습을 폰에 담아두는 것인데 네 가시나들에게 넋을 빼앗겨 그러지 못한 것이 천려일실의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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