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열한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자전거는 가흥교 아래 굴다리를 지나 복싱체육관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키가 나지막한 여든은 넘어보이는 듯한 할머니가 길을 묻는다.

"아저씨, 시니어클럽에서 점심먹고 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집을 못찾아가겠어요. 여기가 어디라요?"

시니어클럽이면 구 가흥1동사무소자리다.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할머니, 댁이 어디래요?"

"강변아파트요."

"강변2차아파트요?"

"야!"

"그라면 요 위, 둑에 올라가서 다리 건너가시면 되니대이."

부축을 해드릴려고 했더니 사양하셨다.

빙그레 웃었다.

나도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길을 헤맬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뉘집 담장아래 나팔꽃이 피어났다. 연분홍빛나팔꽃이다.

나팔꽃은 아침이슬 머금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진보랏빛나팔꽃이 제일 곱다.


불바위 아래 빈집 한채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채 퇴락되어가고 있다.

저 빈 집도 집주인 가족들이 머무러고 있을 때는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을 것이다.

가족들은 비어있는 저 집에서 앞날을 설계하며 저마다의 꿈을 키우고 있었을 것이다.

불바위를 돌아 집으로 오는 길에 농협마트에 들려 감자 한 상자를 샀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며 물어보았다.

고기는 어디서 파느냐고.

점원이 대답했다.

담당점원이 급한 볼일로 자리를 비웠다고.

감자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끙끙거리며 집에왔다.

싣고 온 감자상자를 집사람이 지정하는 곳에 내려놓고 거실로 들어왔다.

"고기는 점원이 자리를 비워서 못샀네."

내 말끝에 집사람은 이랬다.

"그참 얄궂네. 점원이 자릴 비웠다니.에그, 내가 따라가야 되는 긴데."

'에라, 놀부마누라 만큼도 못한 여자야! 그카면 당신이 사오지 뭣때문에 날 시켜?'

그렇게 고함을 지르려다가 쌈하기 싫어서 참았다.

집사람은 목디스크와 척추디스크 수술을 받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해서,

쌀 두 됫박도 못 든다. 그러나 입은 아주 건강하다.

내가 한마디했다하면 세마디 이상은 기본으로 응수해온다.

티격태격 쌈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올해로 꼭 47년 째다.

우리 내외가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세월은 한치의 동요도 없이 눈길 한 번 주지않고 앞만보고 흘러간다.

빨리도 천천히도 아닌 스리슬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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