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어른들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전지(田地)와 이웃을 잘 만나야 된다!'라고.

 아주 몹쓸 이웃들만 소복히 모여 살고 있는 곳이 우리동네 골목이다.

 살갑게 지나던 경무네 집과 숙희네 집은 15여 년 전에 시청앞 무지개 아파트로 이사갔고, 상은이네는 재작년봄에 늘봄아파트로 이사갔다.

 

 우리 집 오른쪽 집, 경무네 집을 사가지고 이사 온 일흔 아홉살 땅딸이 할매는 15년 전 이사오자마자 도둑이 전주를 타고 넘어왔다며, 동사소를 찾아가 떼를 써다시피 해서 가로등이 달려있는 전주를 뽑아버렸다. 도둑을 맞았다면 문단속을 할 일이지 애궂은 전주는 왜 뽑는가 말이다. 전주를 뽑았으니 오갈데가 없는 가로등은 그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왜 가로등이 달려있는 전주를 뽑았느냐?'고 항의를 했더니 땅딸이 할매는, "우리 집엔 불이 필요 없은께 가로등이 좋으면 띠다가 댁네 집에 다소."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할매였다. '가로등이 뉘 집 꽃병인가 제멋대로 왔다갔다 하게' 땅딸이 할매 집은 우리 집 오른쪽, 골목길 네거리 코너에 있다. 반드시 가로등이 있어야 되는 위치다.

 지나가는 행인들 밤길 편하고 안전하게 걷게, 도선생(盜先生) 설치지 않게 방범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게 가로등이다. 있어야 될 곳에 가로등이 없다며 시청에 민원을 넣어서라고 달아야하는 것이 가로등이다.

 항의가 거슬렸는지 땅딸이 할매는 초등학교6학년쯤 되어보이는 손자를 시켜 우리 집 골목쪽으로 불빛이 덜 비취게 가로등 방향을 돌리곤 했다. 그럴때마다 '가로등을 왜 돌리느냐.'고 항의를 하면 돌리지 않았다고 항변을 했다. '그집 옥상엔 밤이면 도깨비가 나타나서 가로등을 돌리나보다.' 어쩔 수없이 동사무소를 찾아가 하소연을 하면 동직원이 다녀갈때뿐, 며칠 뒤면 또 그모양이었다.

 

 수년 뒤, 옥상으로 올라간 가로등은 집수리한다는 명분으로 결국 철거되고 말았다. 가로등이 없어졌으니 골목길은 밤이면 암흑천지가 되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너나없이 불편을 겪어야했다.

 늦은 밤 직장에서 돌아오는 우리 집 딸아이는 폰 후라쉬를 켜들고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깜깜나라로 근 보름이 지나갔다. 시청에 찾아가서 민원을 넣어보고도싶었지만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근데 우리 집 맞은편에 살고있는 연립주택 이웃들이 가만히 보고만있지 않았다. 우르르 시청으로 달려가 항의를 해댔다. 

 명천교회는 우리동네 유일한 가게인 다산수퍼 건너편에 있다. 우리 집 맞은편 연립주택에 사는 이웃들 중에는 명천교회에 다니는 교인이 많다. 가로등이 없어졌으니 새벽기도 나다니기가 아주 불편했을 것이다. 우리 집사람에게 '김동하이 아지매!'라고 부르는 동갑내기 친구 김종득이는 명천교회 은퇴장로다.

 친구 종득이는 나와 집사람을 만날 때마다 "교회좀 나오게.", "김동하이 아지매, 교회좀 나와요!"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종득이 말을 걷 듣곤 했지만, "우리도 나가는 데가 있어요." 라고 집사람은 대꾸를 했다. 집사람이 그렇게 대답을 하면 종득이는 "아가씨가 그러던데 안나간다고 하던데요." 라며 오금을 박았었다.


 집단민원의 효력은 금방 나타났다.

 시청에서는 현장을 확인 후, 우리 집 맞은 편 이층집 뒤안에 쇠전주를 세워 가로등을 설치했고 CCTV까지 달아줬다.

 세상은 상대적으로 돌아간다.

 뭇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가로등을 뽑는 사람도, 개인 사유지에 전주를 박아 가로등을 달게 동의해줘 밤길 걷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집수리한다며 자기집 옥상으로 올라간 가로등을 떼어낸 땅딸이 할매는 4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집수리를 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도둑을 맞았다는 얘기도, 가로등이 달린 전주를 뽑기 위한 핑게 같았다. 도란도란 살아가는 골목길의 주택가는 어느 집에 도둑이 들면 금방 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땅딸이 할매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얘긴 아무도 듣지 못했다.

 이웃되어 살아보니 땅딸이 할매는 사회성이 현저히 부족했고, 공중도덕과는 거리가 먼 할매였다. 나이 일흔 아홉이니 나보다 여섯살쯤 더 먹었다.

 땅딸이 할매는 하느님을 믿는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다.

 불자든 크리스찬이든 또 그 어떤 종교를 믿든, 신앙인은 자기들이 믿고 따르는 숭배자를 닮으려고 성당이나 교회, 절에 다닐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를, 산상수훈(山上垂訓)을 통해서 사랑을 설파하던 예수님을 닮으려고 성당이나 교회, 절에 다닐 것이다. 

 설령 그렇게 까진 못할지라도 하는척이라도 하려고 절이나 성당, 교회를 다닐 것이다. 그러나 땅딸이 할매는 왜, 뭣때문에 교회에 나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언젠가 땅딸이 할매가 말했다. "법은 약한자를 도우려고 있니대이."라고.

 교회에 왔다갔다 하면서 얻어들은 풍월은 많은 듯 보였다.

 전통적인 개신교에서는 할머니가 다니는 그 교회를 이단이라고 한다. 이유인즉슨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부정(否定)하고, 예수가 선지자(先知者)일뿐 하느님의 아들이란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주를 뽑아낸 그 자리에 할매는 커다란 플라스틱 화분을 서너개 내어놓고, 해마다 무와 배추를 가꾸었다. 그렇게 심은 배추와 무는 참으로 실했다. 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면 배추와 무는 잘 자라지 않을 것이다.

 땅딸이 할매 얘기는 담으로 돌린다.


 우리 집 옥상 물받이에 조그만 틈새가 벌어져,"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로 시작된 옆집 아지매와 우리 내외와의 다툼이 월요일인 오늘아침엔 급기야 큰 싸움으로 번졌다.

 우리 집과 옆집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기 집 계단을 통해 옥상을 오려내린다.

 지난 토요일, 옆집과 우리 집 사이에 있는 우리 집 쪽 물받이에서 누수가 발생해 자기네 집 옥상올라가는 계단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옆집 아지매가 알아낸 듯했다.

 비도 오지 않는데 벌어진 틈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은 늦가을 결로현상 때문이었다.

 지붕덧씌우기를 한 우리 집 양철지붕 물받이와 우리 집보다 오년 먼저 지붕덧씌우기 공사를 한 아지매 집 지붕의 물받이는 붙어 있다. 우리 집 지붕 덧씌우기 공사를 할 때, 물받이기 띄워져있으면 띄운 틈사이로 빗물이 새서 두집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 십상이라고 시공업자가 얘기해서 그렇게 하기로 두집사이에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집사람과 난 물이 샌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고, 이달 중순쯤 업자에게 연락해 고쳐주려고 맘먹고 있었다. 옆집 아지매 성격이 조선천지에선 가장 까탈스럽고, 별스러운지라 미리 말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작년 12월, 지붕덧씌우기공사를 한후 하자가 발생한 부분에 받지 못한 수리도 받을겸 그리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12일인 토요일아침, 여덟시 이십여 분쯤이었다.

 집사람이 말했다.

 "바깥에 이상한 사람이 왔다갔다 해요. 현관문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고. 난 무서워 못 나간께 당신이 좀 나가봐요!"

 집사람은 심장이 아주 약하다.

 해서, 깜짝깜짝 잘 놀란다. 요즘들어서는 밥도 잘 먹지 못한다.

 섬뜩했다.

 '밥을 제대로 먹지못하더니 속이 비어서 헛것을 봤나'라는 좋지 않은 생각도 들었다.

 '대문이 잠겨있어 사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낀데, 참말로 얄궂대이.' 그렇게 궁시랑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밖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뒤안으로 가봤다. 옆집 아지매가 옥상계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지매는 옥상계단으로 넘어와서 이십여 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현관문을 두드리고 당겨보며 기척이 없느니 되넘어가려는 듯했다.

 옥상을 오르는 계단 중간쯤은 ㄱ자로 꺾여있고, 50cm가량 되는 나지막한 담이 옆집과 경계이다. 여자라도 그 나지막한 담을 넘는 것은 손바닥뒤집기처럼 쉬운 일이다.

 교양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여자였다. 나이 일흔 아홉인 옆집 아지매는 나보다 여섯살 더 먹었다. 그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륜'이란게 있다. 그러나 옆집아지매에게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아름다운 물체인 연륜이 없어보였다. 눈을씻고 찾아보아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사람이 현숙한 여자라는 건 결코 아니다.

 불쾌했다.

 '볼일이 있으면 인터폰을 누르고 대문으로 들어올 일이지, 그 무슨 화급한 일이라도 일어난 듯, 옥상을 넘어온담. 남자도 아닌 여자가 말이다. 우리 집 인터폰이 고장이라곤 하지만 "딩동!" 벨소리가 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오셨나요?"

 "명아 엄마 있니껴?"

 "예, 기다려보세요."

 방에 들어가 집사람에게 옆집 아지매 왔다고 일러주고 나가보라고 했다.

 "집에 물받이가 새서 우리집 옥상 쎄멘 다 파인다만, 옥상에 그렇게 뿔락거리면서 뭘 받노. 남 피해주지 않게 빨리고치지 않코."

 콘크리트바닥에 삽끄는 듯한 아주 듣기 싫은 옆집 아지매 쇠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피해라고 해봐야 계단에 떨어지는 물한방울 뿐인 것을.

  "......"

 불시에 당한 일이라 어벙벙한지 집사람은 더듬거렸다.

 안되겠다시퍼 밖으로 나갔다.

 "물받이 이음새에 틈이 생긴 모양입니다. 업자에게 연락해 고쳐줄께요."

 '드릴게요'가 아니라 '줄께요'라고 했다.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계단 쎄멘 다 파이요. 한시가 급해요. 빨리 연락해요."

 '떨어지는 물한방울에 시멘트가 다 파인다?'

 낙수되어 떨어지는 물한방울로 시멘트가 파이려면 한자리에 십년 이상은 흘러내려야 할 것이다.

 "알았어요."

 '어저고 저쩌고......' 중얼거리며 옆집 아지매는 대문을 열고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그날, 토요일 열두시 조금 넘어 업자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리 하자가 발생했다해도 아침부터 AS를 해달라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업자는 다음주 목요일 오후에 들리겠다고 했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딸내미집에라도 갔는지 옆집 아지매는 잠잠했다.

 월요일 아침나절이었다. 아홉시 조금 넘어서였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러댔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았다. 바깥에서는 그 사이를 못 참고 "탕,타다당, 탕 탕!" 대문을두드려댔다.

 "나가요. 나간다니까요!"

 현관문을 여는 도중에도 대문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대문을 열었다.아니나 다를까. 예감이 적중했다. 대문박에는 싸가지 없는 옆집 아지매가 서있었다.

 황당했다.

 "나간다하는데도 왜 그렇게 대문을 두드립니까?"

 "전화했니껴?"

 "엊그제 토요일날 했어요. 목요일 두시쯤 업자 온다고 합디다."

 "목요일 나 어디 가니대이. 수요일날 오라고 해요. 그리고 그 사람들 아무리 불러도 안오니더. 그카이 다른데 불러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참을만큼 참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냅다 고함을 질렀다.

 "세상이 어디 아지매 뜻대로 돌아간답디까? 아지매가 업자에세 맞춰야지 일정 다 짜인 업자가 우째 아지매에게 맞춥니까? 당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요. 다른 데 부르라니요? 업자를 불러보지도 않고, 오는지 안 오는지 어찌 압니까. 그리고 목요일날 업자 불러서 물받이 고쳐준다고 하잖아요. 누가 안고쳐준다고 합디까? 기다려볼 일이지  왜 그렇게 사람을 덜덜 볶아요?.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이 있다고 사람숨통을 그렇게 조여요?"

 "깐돌이 아버지는 한개도 잘한 것도 없이 왜 그리 고함을 지러니껴."

 "내가 모한게 뭐가 있습니까? 물받이 고쳐준다했고, 참을만큼 참았잖아요. 그라이 소리 안 지르게 됐습니까? 그라고 우리 집사람과 내가 뭘 그리 아지매에게 잘못했다고 그 난리를 피웁니까?"

 '깐돌이'는 올해 마흔 네살인 우리 집 막내 아명(兒名)이었다.

 "속상하고 분통이 터져 어젯밤엔 잠 한숨 못잤니더."

 "그건 아지매 성격탓이고요. 나캉 집사람이 아지매 골탕먹이려고 우리 집 물받이에 구멍이라도 뚫었단 말입니까?"

 '망할노무 할망구 더덕같은 소리하고 나자빠졌네.'입안에서 욕설이 틔어나오는 걸 억지로 참느라 혼이났다.

 두 노인네가 쌈박질을 해대니 골목길이 시끌벅적했다.


 옆집 아지매 바깥양반은 요즘 시설에 있다. 이여 년 전부터 시설에 수용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제작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녁무렵이었다고 했다.

 옆집 아저씨, 조명욱씨는 나보다 열살가량 연배이다. 큰 형뻘 되는 인생선배다.

 제작년 여름 어느 날, 거나하게 술에  취한 조 선배가 갈지자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기 집 대문에 거의 다 다달았을 무렵 발을 헛디뎌 "꽈당!"하고 넘어졌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방향감각도 수평감각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신에게 따져야 될일이다. 그대도 나도 그러한 현상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넘어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조 선배를 이웃에 사는 누군가가 옆집에 알려 아지매가 병원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옆집 양반은 혈압이 높다는 걸 이웃에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조 선배는 술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집안엔 소줏병이 가득하다고 했다. 

 병원에 실려간 조 선배는 중풍을 얻고 말았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해도 중풍은 난치병이다. 어쩌다 완쾌에 가깝게 회복되는 수도 있지만 거의 몸 한쪽을 못 쓰거나 아님 말이 어눌한 상태로 살아가는 게 중풍이란 병이다.

 그렇게 실려간 조 선배는 병원에 딸려있는 시설로 이송되었고, 지금껏 시설에서 보내고 있다.

 길에서 만나면 그저 수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었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웃이었다. 해서 집사람과 함께 시설에 한 번 찾으가려고 위로금까지 준비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아내는 남편을 잘 보양할 책임이 있다. 그것은 아내가 할 내조(內助)이자 도리일 것이다.

 바깥양반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형편인데, 옆집 아지매는 누가 얼만큼 더 잘했던 잘못했던 그렇게 이웃과 쌈하며 지낼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바깥양반 떠올리며 맘 누그리고 살아야할 일이라고 본다.

 

 꽃동산 뒷동네에 살던 우리 집이 이골목으로 이사온 것은  1986년 3월이었다. 올해가 2019년이니 이 동네로 이사온지도 꼭 33년째다.

 우리 집이 이사오던 그 당시만해도 땅딸이 할매 집도, 우리 뒷집도 벌거숭이 빈터였다.

 지금 땅딸이 할매가 살고 있는 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경무네가 집을 지어 이사왔고, 뒷집도 그해 가을, 집을 지어 이사왔다.

 우리 집은 골목길 가근방에서 세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고참이다.

 '싸가지 없는 할망구!'라고 내가 속으로 욕하는 옆집 아지매는 우리 집이 이사를 와 보니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 집과는 강산이 세번 바뀌는 오랜 세월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이웃이었다.


 1986년 3월, 이사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연탄을 들여놓아 마당이 새카매졌다. 대야로 물을 퍼담아 연탄창고로 가는 좁다란 통로를 씻었다. 까만물이 수채를 통해 바깥으로 줄줄 흘러나갔다. 문박이 어찌됐나 보려고 대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물은 거의가 하수도로 흘러들었고  얼만큼의 물이 옆집 대문앞을 까맣게 물들였다.

 그때였다. 옆집 아지매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33년 전이니 아지매는 당시 사십대 중후반의 아줌마였다.

 아줌마가 말했다.

 "아저씨, 새카만 물을 이렇게 바깥으로 흘려뿌리만 우린 어케 사니껴?"

 쇠된 소리었다.

 '아저씨, 집에 연탄들여 놓았니껴? 마당 씻은 물이 수채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왔니더. 물이 수채구멍으로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이니껴. 그러니 괜찮니더 내가 말끔하게시리 씻어낼께 걱정마세이!' 그렇게 말했다면 천사처럼 보였을 텐데 퍽이나 아쉬웠다.

 "바깥이 어찌 됐나시퍼서 이러케 나와봤다 아입니까. 알았니다. 물뜨다가 깨끗이 씻어 줄게요."

 이사 잘못 왔다는, 이웃 잘못 만났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해 가을엔가 수도사업소에서 하수도개수공사(下水道改修工事)를 했다. 난 그때 빗물과 하수물이 하수도로 곧장 흘러들게 우리 집 수채배관을 하수도로 곧바로 연결했다.


 도시의 주택가가 거의 다 그렇 듯, 옆집과 우리집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처음 이사를 와 보니 우리 집 테라스는 쇠파이프에 울긋불긋한 두꺼운 천을 씌운 천막으로 되어있었다.

 이사하던 그 해 삼월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집사람이 말했다.

 "옆집 아줌마가 그카데요. 비가오면 우리 집 테라스에서 빗물이 흘러내려 자기 집 담벼락 때린다며 천막끝을 짤라달라고."

 "그래? 되지도 않는 소리하네. 그라만 여태까진 우예 살았노. 전번 주인한테 해달라지. 가마이 있다 우리가 이사오니 해달라고 해. 나이도 자기보담 훨씬 작꼬, 이사온지 얼매되지 않았은께 우리가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제."

 "그케요!"

 속이 상했다.

 며칠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빗물이 떨어져도 우리 집쪽으로 다 떨어지라고 낫으로 천막끝을 말끔하게 잘라버렸다. 논리에도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이렇쿵 저러쿵 하는 얘기가 듣기 싫어서 천막끝을 그렇게 싹뚝 잘라버렸다.

 얼마 뒤 우리 집도 옆집도 테라스를 스레이트로 교체했다.

 원래부터 그랬었다.

 옆집 테라스는 높이, 우리 집 테라스는 옆집보다 낮게 달려있었다.

 그 당시만해도 테라스의 물받이는 지름 10cm 조금 넘는 PVC를 반쪽으로 쪼갠 제품을 이용하고 있었다. 요즘 물받이는 넓지만 당시의 물받이는 요즘보다는 아주 좁았다.

 그런 물받이었기에 비가 적당히 내리면 빗물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여름철 장대비라도 쏟아지면 감당이 안 되었다.빗물을 다 수용하지 못한 물받이의 물은 아래로 흘러넘치게 마련이었다.

 옆집 테라스는 담장에서 높이 우리 집 테라스는 낮게 설치되었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그러한 실정이니 옆집 물받이는 위에, 우리 집 물받이는 아래에 매달려있었다.

 그러니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옆집 물받이에서 흘러넘친 물은 우리집 물받이로 흘러내려 두 집 뒤안을 흥건히 적셔놓곤 했다. 그런 형편인데도 옆집 아줌마는 그럴 때마다, "어마이 이리 좀 와봐, 집에 물받이에서 물이 흘러넘쳐 우리 집 뒤안에 다 쏟아진다."며 생떼같은 소릴 하곤했다.

 요즘은 날 이기려고 걸핏하면 목에 퍼런 심줄 세우고, 고함 "깩깩!" 질러가며 덤벼드는 놀부마누라보다 더 고약한 집사람이지만 젊을 땐 순둥이었다.

 그런 순동이 같은 집사람이었지만 오진구석도 있었다.

 이사왔을 때부터 비가 올때면 옆집 아줌마에게 불려가 시달렸던 집사람이 더 이상 아니되겠다시펐는지 어느 해 여름날, 한 번은 오방지게 대들었다.

 "아줌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억수같이 쏟아져 흘려넘치는 빗물을 우린들 어찌 합니까? 뾰족한 수가 있으면 대답좀 해봐요."

 그제서야 옆집 아줌마는  "우리 아저씨가 말하지 마라고 했는데......"라고 하더란다.


 우리 집은 1996년 9월에 집수리를 했다.

 변색, 적벽돌을 붙이고, 창문을 알루미늄으로 교체하고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너들너들 해진 스레이트 물받이를 새것으로 바꾸는 등 아주 대수선을 했다.

 물받이로 인해 근 이십여 년을 몸살을 앓아온 집사람을 인부들에게 당부했다. '옆집으로 물한방울도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지구는 둥글다.

 세상사(世上事)  인간사(人間事)도 지구처럼 둥글다. 둥글기에 뱅글뱅글 돌고 돈다. 반목(反目)과 갈등(葛藤), 사랑과 미움, 배려(配慮)와 독선(獨善)을 주고 받으며 세상사 인간사는 빙글빙글 돈다. 지구처럼 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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