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전지(田地)와 이웃을 잘 만나야 된다!'라고.

 아주 몹쓸 이웃들만 소복히 모여 살아가고 있는 곳이 우리동네 골목길이다.

 살갑게 지나던 경무네 집은 15여 년 전, 시청앞 무지개 아파트로 이사갔고, 상수네 집은 시내 한복판으로 집을 지어 갔다.상은이네는 재작년 봄에 늘봄아파트로 이사갔다.

 

 우리 집 오른쪽에 사는 일흔아홉 살 땅딸이 할매는 SBS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가 끝나고 이사간 경무네 집을 사가지고 이사왔다. 15여 년 전, 땅딸이 할매는 이사오자마자 도둑이 전봇대를 타고 자기네 집으로 넘어왔다며, 동사소를 찾아가 떼를 써다시피 해서 가로등이 달려있는 전봇대를 뽑아버렸다. 도둑을 맞았으면 문단속을 할 일이지 애궂은 전봇대는 왜 뽑는가 말이다. 전봇대를 뽑았으니 오갈데가 없는 가로등은 그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왜 가로등이 달려있는 전봇대를 뽑았느냐?'고 항의를 했더니 땅딸이 할매는, "우리 집엔 불이 필요 없은께 가로등이 좋으면 띠다가 댁네 집에 가져가 다소."라고 했다. 땅딸이 할매는 어쩌다 교회 다녀올 때 말고는 밤엔 거의 출입을 안 한다. 대문 닫아걸고 집안에 틀어박혀산다. 그런 심통스런 할매이고보니 가로등이 필요없다는 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뽑힌 전봇대는 체신주(遞信柱)마냥 작달막 했지만 구입비와 설치비, 철거비용까지 합치면 몇십만 원은 되었을 것이다. 되지못한 한 노인네의 고집으로 시민의 혈세 몇십만 원이 물거풍 되어 사라져 버렸다.

 기가 막혔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할매였다. '가로등이 뉘 집 꽃병인가 제멋대로 세웠다 뽑았다 하게' 땅딸이 할매네 집은 골목길 네거리 코너에 있다. 반드시 가로등이 있어야 되는 곳이다.

 지나가는 행인들 밤길 편하고 안전하게 걷게, 도선생(盜先生) 설치지 않게 방범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게 가로등이다. 있어야 될 곳에 가로등이 없다며 시청에 민원을 넣어서라고 달아야하는 것이 가로등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땅딸이 할매는 초등학교6학년쯤 되어보이는 손자를 시켜 우리 집 골목쪽으론 불빛이 덜 비취게 가로등을 돌려버렸다. '가로등을 왜 돌렸느냐.'고 물어봤더니 돌리지 않았다고 항변을 했다. '그집 옥상엔 밤이면 도깨비가 나타나서 가로등을 돌리나보다.' 어쩔 수없이 동사무소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면 동직원이 다녀갈 때뿐, 가고 나면 또 그모양이었다.

 땅딸이 할매는 입만 열면, "난 남에게 쪼끔도 피해 안 주고 경우되로 사니대이. 거짓말은 절대로 안 하니대이."라고 했다.

 '남에게 피해주고, 거짓말도 밥먹 듯 한다만'

 땅딸이 할매가 이사오기 전 경무네가 살았을 적엔 가로등은 지금처럼 점등(點燈)과 소등(消燈)이 자동이 아닌 수동(手動)이었다.

 해서 가로등 가까이에 있는 집이 가로등에 불을 켜고 꺼곤 했다. 우리 집 골목길 가로등 담당은 경무네가 맡았었다. 집이 가로등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해가 떨어져 가로등을 켤 시간이 되면 경무 엄마는, "가로등 켜야겠네!"라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경무 엄마는 시장에서 무나 배추, 쪽파 같은 채소를 사오면 우리 집과 짝가름 하려고, "명아야, 명아야!" 집사람을 부른다고 했다. 명아는 우리 집 고명딸 이름이다. 담너머로 우리 집사람을 너머다보며 장 봐온 채소를 반쯤을 넘겨준 경무 엄만, "이웃 잘 돘지(뒀지)." 라고 한다나. 그러면 "그케."라고 응수를 한다고 집사람이 얘기하곤 했다.

 

 수년 뒤, 옥상으로 올라간 가로등은 집수리한다는 명분으로 철거되고 말았다. 가로등이 없어졌으니 골목길은 밤이면 암흑천지가 되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너나없이 불편을 겪었다.

 늦은 밤 직장에서 돌아오는 우리 집 딸아이는 폰 후라쉬를 켜들고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깜깜나라로 근 보름이 지나갔다. 시청에 찾아가서 민원을 넣어보고도 싶었지만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근데 우리 집 맞은편에 살고 있는 목화연립 이웃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우르르 시청으로 달려가 항의를 해댔다. 

 명천교회는 우리동네 유일한 가게인 다산수퍼 건너편에 있다. 우리 집 맞은편 목화연립에 사는 이웃들 중에는 명천교회에 다니는 교인이 많다. 가로등이 없어졌으니 새벽기도 나다니기가 아주 불편했을 것이다. 우리 집사람에게 '김명하이 아지매!'라고 부르는 동갑내기 친구 김성득이는 명천교회 은퇴장로다.

 친구 성득이는 나와 집사람을 만날 때마다 "교회좀 나오게.", "김명하이 아지매, 교회좀 나와요!"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성득이 말을 걷 듣곤 했지만, "우리도 나가는 데가 있어요." 라고 집사람은 대꾸를 하곤 했다. 집사람이 그렇게 대답을 하면 성득이는 "아가씨가 그러대요. 안 나간다고." 라며 오금을 박았다.


 집단민원의 효력은 금방 나타났다.

 시청에서는 현장을 확인 후, 우리 집 맞은 편 이층집 뒤안에 쇠전주를 세워 가로등을 설치했고, CCTV까지 달아줬다.

 세상은 상대적으로 돌아간다.

 뭇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가로등을 뽑는 사람도, 개인 사유지에 전주를 박아 가로등을 달게 동의해줘 밤길 걷는 사람을 편리하게 해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집수리한다며 자기집 옥상으로 올라간 가로등을 떼어낸 땅딸이 할매는 4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집수리를 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도둑을 맞았다는 얘기도, 가로등이 달린 전주를 뽑기 위한 핑게 같았다. 도란도란 살아가는 골목길 주택가는 어느 집에 도둑이 들면 금방 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땅딸이 할매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얘긴 아무도 듣지 못했다.

 어느 간 큰 도선생이 백주 대낮에, 가로등이 환하게 비취는 밤에 전봇대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집안으로 들어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언젠가 구성공원에 올라가 미리 와있는 풍류객들에게 섞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동네 골목길 얘기를 꺼냈다.

 모여든 풍류객 중엔 오십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땅딸이 할매가 다니는 교회의 교인같아 보였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저씨, 땅딸이 할매가 다니는 그 교회는 성서대로 살아가는 교회랍니다. 어디에 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땅딸이 할매같은 사이비 신앙인은 동네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이웃되어 살아보니 땅딸이 할매는 사회성이 현저히 부족했고, 공중도덕과는 거리가 먼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나이 일흔 아홉이니 나보다 여섯살쯤 더 먹었다. 여섯살 더먹었다고 하지만 그 나이가 그 나이다. 함께 늙어가는 형편이다.

 땅딸이 할매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다.

 불자든 크리스찬이든 또 그 어떤 종교를 믿든, 신앙인은 자기가 믿고 따르는 숭배자를 닮으려고 성당이나 교회나 절에 다닐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를, 산상수훈(山上垂訓)을 통해서 사랑을 설파하던 예수님을 닮으려고 성당이나 교회, 절에 다닐 것이다. 

 설령 그렇게 까진 못할지라도 조금쯤이라도 닮아보려고 절이나 성당, 교회를 다닐 것이다. 그러나 땅딸이 할매는 왜, 뭣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땅딸이 할매가 다니는 그 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은 성서대로 살며,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며 모범적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젠가 땅딸이 할매가 말했다."법은 약한자를 도우려고 있니대이."라고.

 지독한 이기주의자이면서도 교회에 왔다갔다 하는 사이 얻어들은 풍월은 퍽이나 많아 보였다. 

 전통적인 개신교에서는 할머니가 다니는 그 교회를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부정(否定)하고, 예수가 선지자(先知者)일뿐 하느님의 아들이란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단으로 분류한다고 했다.

 그 교회 신도들은 입영은 하되 집총(執銃)을 거부한다. '내 형제와 이웃을 살상할 수 있는 총은 들수 없다.'란게 그 사람들의 주장이다. 군인이 집총을 거부한다면 군의 존재 의의(意義)가 없다. 군인이 총을 들지 않는다면 외적으로 부터 나라가 침략을 받았을 때, 나라는 누가 지킨단 말인가. '대체복무제'는 그 교회 때문에 세상에 선을 보였다.

 그러고 보면 시민, 즉 국민 스스로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로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침해되는 것을 최소화함으로서 인간이 존엄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제도, 민주주의란 것이 좋긴 하지만 한편으론 희한한 제도로도 보인다.

 전봇대를 뽑아낸 그 자리에 할매는 커다란 플라스틱 화분을 서너개 내어놓고, 해마다 무와 배추를 가꾸었다. 그렇게 심은 배추와 무는 참으로 실했다. 밤에 가로등 불빛을 받으면 배추와 무는 잘 자라지 않을 것이다.

 땅딸이 할매는 요즘도 이렇게 얘기한다.

 "내땅 앞에 서있는 가로등 내가 뽑는데 아재가 왜?"

 억지도 웬만큼 쓰면 애교스럽지만 저 정도면 웬수덩어리다.

 땅딸이 할매 얘긴 담으로 돌린다.


 우리 집 옥상 물받이에 조그만 틈새가 벌어져,"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로 시작된 옆집 아지매와 우리 내외와의 다툼이 월요일인 오늘아침엔 급기야 큰 싸움으로 번졌다.

 우리 집과 옆집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기 집 계단을 통해 옥상을 오려내린다.

 지난 토요일, 옆집과 우리 집 사이에 있는 우리 집 쪽 물받이에서 누수가 발생해 자기네 집 옥상올라가는 계단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옆집 아지매가 알아낸 듯했다.

 비가 오지도 않는데 벌어진 틈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은 늦가을 결로현상(結露現像)때문이다.

 지붕덧씌우기를 한 우리 집 양철지붕 물받이와 우리 집보다 5년 먼저 지붕덧씌우기 공사를 한 아지매 집 지붕의 물받이는 붙어 있다. 우리 집 지붕 덧씌우기 공사를 할 때, 물받이기 띄워져 있으면 띄워진 틈사이로 빗물이 새서 두집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 십상이라고 시공업자가 얘기해서 그렇게 하기로 두집사이에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집사람과 난 물이 샌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고, 이달 중순쯤 업자에게 연락해 고쳐주려고 맘먹고 있었다. 옆집 아지매 성격이 조선천지에선 가장 까탈스럽고, 별스러운지라 미리 말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작년 12월, 지붕덧씌우기공사를 한후 하자가 발생한 부분에 받지 못한 수리도 받을겸 그리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12일인 토요일아침, 여덟시 이십여 분쯤이었다.

 집사람이 말했다.

 "바깥에 이상한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요. 현관문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고. 난 무서워 못 나간께 당신이 좀 나가봐요!"

 집사람은 심장이 아주 약하다.

 해서, 깜짝깜짝 잘 놀란다. 요즘들어서는 밥도 잘 먹지 못한다.

 섬뜩했다.

 '밥을 제대로 먹지못하더니 속이 비어서 헛것을 봤나'라는 좋지 않은 생각도 들었다.

 '대문이 잠겨있어 사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낀데, 참말로 얄궂대이.' 그렇게 궁시랑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밖엔 아무도 없었다. 뒤안으로 가봤다. 옆집 아지매가 옥상계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지매는 옥상계단으로 넘어와서 이십여 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현관문을 두드리고 당겨보았지만 기척이 없으니 되넘어가는 듯했다.

 옥상을 오르는 계단 중간쯤은 ㄱ자로 꺾여있고, 50cm가량 되는 나지막한 담이 옆집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여자라도 그 나지막한 담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되바라진 여자였다. 나이 일흔아홉인 옆집 아지매는 나보다 여섯 살 더 먹었다. 그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륜'이란게 있다. 그러나 옆집아지매에게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아름다운 물체인 연륜이 없어보였다. 눈을씻고 찾아보아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사람이 현숙한 여자라는 건 결코 아니다.

 불쾌했다.

 '볼일이 있으면 인터폰을 누르고 대문으로 들어올 일이지, 그 무슨 급한 일이라고 옥상계단을 넘어온담. 남자도 아닌 여자가. 우리 집 인터폰이 고장이라곤 하지만 "딩동!" 벨소리가 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오셨나요?"

 "명아 엄마 있니껴?"

 "예, 기다려보시소."

 방에 들어가 집사람에게 옆집 아지매 왔다고 일러주고 나가보라고 했다.

 "어떻게요."

 "이제 일어났남, 지금이 몇신데."

 "어젯밤에 늦게 자서요."

 "집에 물받이가 새서 우리집 옥상 쎄멘 다 파인다만, 옥상에 그렇게 뿔락거리면서 뭘 받노. 남 피해주지 않게 빨리고치지 않코."

 콘크리트바닥에 삽끄는 듯한 아주 듣기 싫은 옆집 아지매 쇠된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피해라고 해봐야 계단에 떨어지는 물한방울 뿐인 것을.

  "......"

 불시에 당한 일이라 어벙 벙한지 집사람은 더듬거렸다.

 안 되겠다시퍼 밖으로 나갔다.

 "물받이 이음새에 틈이 생긴 모양입니다. 업자에게 연락해 고쳐줄께요."

 '드릴게요'가 아니라 '줄께요'라고 했다.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계단 쎄멘 다 파이요. 한시가 급해요. 빨리 연락해요."

 '떨어지는 물한방울에 시멘트가 다 파인다?'

 낙수되어 떨어지는 물한방울로 시멘트가 파이려면 한자리에 십년 이상은 빗물방울이 떨어져야 할 것이다.

 "알았어요."

 '어저고 저쩌고......' 중얼거리며 옆집 아지매는 대문을 열고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그날, 토요일 열두시 조금 넘어 업자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리 하자가 발생했다해도 아침부터 AS를 해달라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업자는 다음주 목요일 오후에 들리겠다고 했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딸내미집에라도 갔는지 옆집 아지매는 잠잠했다.

 월요일 아침나절이었다. 아홉시 조금 넘어서였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러댔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았다. 바깥에서는 그 사이를 못 참고 "탕,타다당, 탕 탕!" 대문을두드려댔다.

 "나가요. 나간다니까요!"

 현관문을 여는 도중에도 "나간다!"는 소릴 못들었는지 대문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대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감이 적중했다. 대문박에는 싸가지 없는 옆집 아지매가 서있었다.

 황당했다.

 "나간다하는데도 왜 그렇게 대문을 두드려대요?"

 "못들었어요. 전화했니껴?"

 "엊그제 토요일날 했어요. 다음 주 목요일날 온다고 합디다."

 "목요일 나 어디 가니대이. 수요일날 오라고 해요. 그리고 그 사람들 아무리 불러도 안오니더. 그카이 다른데 불러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참을만큼 참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냅다 고함을 질렀다.

 "세상이 어디 아지매 뜻대로 돌아간답디까? 아지매가 업자에세 맞춰야지 일정 다 짜인 업자가 우째 아지매에게 맞춥니까? 당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요. 다른 데 부르라니요? 업자를 불러보지도 않고, 오는지 안 오는지 어찌 압니까. 그리고 목요일날 업자 불러서 물받이 고쳐준다고 하잖아요. 누가 안고쳐준다고 합니까? 기다려볼 일이지  왜 그렇게 사람을 덜덜 볶아요?.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이 있다고 사람숨통을 그렇게 조여요?"

 "깐돌이 아버지는 한개도 잘한 것도 없이 왜 그리 소리를 지러니껴."

 "내가 모한게 뭐가 있습니까? 물받이 고쳐준다했고, 참을만큼 참았고, 그라이 소리 안 지르게 됐습니까? 그라고 우리 집사람과 내가 뭘 그리 아지매에게 잘못했다고 그 난리를 피웁니까?"

 '깐돌이'는 올해 마흔 네살인 우리 집 막내 아명(兒名)이었다.

 "속상하고 분통이 터져 어젯밤엔 잠 한숨 못잤니더."

 "그건 아지매 성격탓이고요. 물받이 고쳐준다고 했잖아요. 고쳐준다는데 왜 그렇게 난리를 피워요. 우리 집이 어디 야반도주라도 한답디까. 나캉 집사람이 아지매 골탕먹이려고 우리 집 물받이에 구멍이라도 뚫었단 말입니까?"

 '망할노무 할망구 더덕같은 소리하고 나자빠졌네.'입안에서 욕설이 틔어나오는 걸 억지로 참느라 혼이났다.

 두 노인네가 쌈박질을 해대니 골목길이 시끌벅적했다.


 다음날 화요일 오후 한 시 경이었다.

 인터폰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서서,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보았다. 덮어놓고 대문을 열어주면 십중팔구 교회나 절에 나오라고 찾아오는 반갑잖은 방문객들로 낭패보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옆집 아지매니더."

 대문을 열자 얼굴조차 대하기 싫은 아지매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사람들 몇시에 온단고 하니껴?

 "집에 가시소. 집사람에게 폰 보낼테니 직접 전화해 보시소"

 방에 들어와서 주소록을 찾아 업자를 클릭해서 집사람 손에 폰을 쥐어주며 말했다. "옆집 아지매에게 직접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하거래이."

 보내놓고 생각하니 전화번호만 적어 들려 보낼 걸 괜한 짓거리를 했다고 후회를 했다.


 "그 노무 자식들이 날 혼자 산다고 깔보고 골탕먹이려고 공사를 그렇게 해놨다 아이가. 나쁜노무 새끼들!."

 옆집 아지매가 넉두리를 하자,

 "누가 누굴 깔보고 골탕먹이려고 공사를 그렇게 해요.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지. 아지매가 혼자 사는지 둘이 사는지  업자들이 어떻게 알아요?"

 "안 그래, 일부러 날 골탕먹이려고 엉터리로 했어. 깐돌이 아버지도 그래. 여태껏 좋게 봤는데 그게 아니대에."

 "우리 아바이 성격이 원래 그래요. 그라이 맘써지 말아요."

 집사람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하자 옆집 아지매는,

 "망할노무 영감쟁이 병은 들려가지고 날 이렇게 힘들게 해."라며 눈물을 찔금거리며 울먹였다고 집사람이 돌아와서 내게 전했다.


 폰을 들고 나간 사람이 한참이 지나도록 종무소식(終無消息)이라 옆집 인터폰을 눌렀다.

 "누구세요?"

 "옆집 아저씨니다. 집사람이 안 오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요."

 집사람과 함께 현관을 나선 아지매가 말했다.

 "아저씨, 우리 이제 싸우지 마시대이!"

 "예, 아지매 그래요. 어쨌든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그날의 싸움판은 그렇게 판막음 됐다.


 다음날인 수요일 점심을 먹고 나서였다. 한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인터폰이 울렸다. 마당에 나가서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옆집 아지매니더. 어마이 있니껴?"

 쇠된 소리였다.

 "기다려봐요."

 눈치를 챘는지 집사람은 거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가보거래이, 옆집 아지매 왔다."

 옆집 아지매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마이는 물새는 거 빤히 알면서 빨리 고쳐놓지 않고 여태껏 뭐했노?"

 "뭐요? 모르니까 안고쳤지 알면서 안고쳤을까."

 "그기 말이돼나."

 "몰랐으니까 안 고쳤지, 생트집 잡지 말라고."

 "물받이는 누구 맘대로 붙여했는데?"

 "집에서 합의를 했잖아, 업자가 붙여하라고 권고해서. 그때 우리 두사람과 인부 다섯이 있었고. 지금와서 딴소리하면 안 되지."

 집사람 목소리도 톤이 높아졌다. 존대어도 반말로 바뀌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했던지 옆집 아지맨 작심하고 제대로 한판 붙어 보려고 찾아 온것 같았다.

 나이 여든에 가까운 듯한 덩치 꽤나 됨직한 시동생이라는 노인네가 골목에 서있었다. 든든한 호위무사처럼 보였다.

 일흔이 넘고 여든이 다된 두 안노인네가 골목길 한복판에서 쌈을 하는 것도 볼성사납지만 그보다도 집사람 몸이 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집사람은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노인네라고 해도 독이 오를대로 오른 두 노인네를 떼어놓는다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나는 집사람을 붙들고 늘어졌고, 시동생이란 사람은 자기 형수를 코뚫지 않은 송아지 몰듯이 옆집 대문앞으로 몰아갔다. 길길이 날뛰던 집사람이 내손아귀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악에 받힌 집사람이 옆집 아지매에게 달려갔다.

 

"물받이 고쳐준다고 했으면 됐지 왜 또 찾아와서 난리야. 어제 우리 아저씨가 날 데리고 나가면서, "어쨌던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잖아. 당신도 어제, "아저씨, 우리 이제 쌈하지 말아요."했고. 그래놓고 왜 딴말을 해."

 "사과! 언제? 어마이만 데려가더만."

 "이 여자야, 정신차려. 맛간 소리, 엉뚱한 말 하지말라고!"


 집사람이 대차게 대들자 옆집 아지매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고, 그를수록 집사람은 그녀를 세차게 몰아부쳤다.

 싸움은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밀리게 되고 급기야 패자가 되어버린다.

  "됐니더. 아지매 그만 하시고 어른 따라가시소."

 보기가 거북했는지 시동생이 한 마디 툭 던진다.

 분이 안 풀려 앙알거리는 집사람을 데려오느라 힘 꽤나 빼버렸다.

 쌈하지 말고 지내자고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또 다시 싸움을 걸어오는 옆집 아지맨 사이콘지 천성이 덜 돼먹은 여잔지 참으로 헷갈린다.

 

 애노가 짖는다. 길에 낯선 사람이라도 지나가는지 "컹컹컹!"짖어댄다.

 애노는 우리 집 옆집, 옆집 옆집 옆집 채정이네 집에 사는 검둥개 삽사리다.

 애노는 우리동네 불침번이다. 밤새워 골목길을 순찰하는 든든한 순라꾼이다. 컹컹! 짖다가도 우리 내외가 지나가면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우리 내외의 발자국소리를, 냄새를, 귀와 코에 담아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애노는 우리 내외와 아주 친하다. 어슬렁거리며 골목길을 지나가다가도 우리 내외가 부르면 쪼르를 달려온다.

 동물은 사람과는 다르다. 인간은 이해득실에 따라 배신을 밥먹듯 하지만 동물은 한 번 정을 주면 죽어도 배신을 안한다. 안하느 것이 아니라 할줄 모른다.

 

 옆집 아지매 바깥양반은 요즘 시설에 가있다. 이여 년 전부터 수용된 듯 했다.

 옆집 아저씨, 김명욱씨는 나보다 열살가량 연배이다. 큰 형님뻘 되는 인생선배다. 광산(光山) 김 씨다.

 안동 구담이 고향이라고 했다.

 안동 구담은 순천 김 씨와 광산 김 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제법 큰 시골마을이다.

 제작년 여름 어느 날, 거나하게 술에  취한 김 선배가 갈지자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자기 집 대문앞에 거의 다 다달았을 무렵 발을 헛디뎌 "꽈당!"하고 넘어졌다고 집사람이 어디에선가 듣고와서 내게 전해줬다.

 나이가 들면 방향감각도 수평감각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신에게 따져야 될 일이다. 그대도 나도 그러한 현상앞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술에 취했기에 김 선배는 더했을 것이다.

 넘어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김 선배를 이웃에 사는 누군가가 옆집에 알려 병원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지붕맞대고 살아가는 이웃은 그렇게 중요하다.

 옆집 김 선밴 혈압이 높다는 걸 이웃에서는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김 선배는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집안엔 소줏병이 가득하다고 했다.

 김 선배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다.

잘 생긴 아들이었지만 뇌성마비였다. 맘은 착한 아이었다. 어릴 적, 골목에서 만나면 인사도 곧잘 했다. 학교갈 나이가 되자 아이를 어딘가로 보낸 것 같았다. 특수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김 선배는 그 아들 때문에 술을 달고 사는 듯 했다.

 병원에 실려간 김 선배는 중풍을 얻고 말았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중풍은 난치병이다. 어쩌다 완쾌에 가깝게 회복되는 수도 있지만, 거의가 몸 한쪽을 못 쓰거나 아님 말이 어눌한 상태로 살아가는 게 중풍이란 병이다.

 그렇게 실려간 김 선배는 병원에 딸려있는 시설로 이송되었고, 지금껏 시설에서 보내고 있다.

 길에서 만나면 그저 수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었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웃이었다. 집사람과 함께 문안한 번 가려고 위로금까지 준비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 일은 누가 뭐래도 우리 내외의 불찰이었다.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을 잘 보양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아내의 내조(內助)이고 도리(道理)일 것이다.

 바깥양반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형편인데, 누가 얼만큼 더 잘하고 잘못했던 가까이에 사는 이웃을 그렇게 표독(慓毒)스럽게 몰아붙이며 쌈하며 지낼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바깥양반 떠올리며 맘 누그리고 자숙(自肅)하며 살아가는 게 아내된 자의 도리라고 본다.


 집사람은 이번일이 있기전까지만 해도 옆집을 들락거렸다.

 일부러는 가지 않고 놀러오라고 부르면 다녀오곤 했다. 다녀올때마다 집사람은 가슴에 생채기를 담아오는 듯 했다.

 옆집 아지매는 집사람을 만날때면,

 "나이도 많지 않는 사람이 얼굴에 주름이 왜 그리 많노. 난 어디가도 내나이를 안보는데......"

라고 한다고 했다.

 그말을 바꿔 말하면 '나는 내 나이 안보는데 나보다 젊은 자기는 왜 그리 늙어보이냐.'는 것이다.

 여자는 예나 지금이나,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예쁘다면 좋아하고 늙어보인다면 질색을 한다.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다독이며 덕담을 해주는 게 손윗사람의 덕목이다.

 집사람이 그렇게 가슴에 생채기를 담고 돌아오는 날이면,

 "갈때마다 가슴에 생채기 담아오려면 옆집에 가지 말거래이."하고 일러주곤 했다.

 

 꽃동산 뒷동네에 살던 우리 집이 봉화통로 뒷골목으로 이사온 것은 1986년 3월이었다. 올해가 2019년이니 이 동네로 이사온지도 꼭 33년째다.

 우리 집이 이사오던 그 당시만해도 땅딸이 할매 집도, 우리 뒷집도 벌거숭이 빈터였다.

 지금 땅딸이 할매가 살고 있는 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경무네가 집을 지어 이사왔고, 뒷집도 그해 가을, 집을 지어 이사왔다.

 우리 집은 골목길 가근방에서 세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고참이다.

 '싸가지 없는 할망구!'라고 내가 속으로 욕하는 옆집 아지매는 우리 집이 이사를 와 보니 이미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 집과는 강산이 세번 바뀌는 오랜 세월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사는 이웃이었다.


 1986년 3월, 이사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연탄을 들여놓아 마당이 새카매졌다. 대야로 물을 퍼담아 연탄창고로 가는 좁다란 통로를 씻었다. 까만물이 수채를 통해 바깥으로 줄줄 흘러나갔다. 문박이 어찌됐나 보려고 대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물은 거의가 하수도로 흘러들었고  얼만큼의 물이 옆집 대문앞을 까맣게 물들였다.

 그때였다. 옆집 아지매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33년 전이니 아지매는 당시 사십대 중후반의 아줌마였다.

 아줌마가 말했다.

 "아저씨, 새카만 물을 이렇게 바깥으로 흘려뿌리만 우린 어케 사니껴?"

 쇠된 소리었다. 아줌마 얼굴은 파랗게 변해있었다.

 '아저씨, 집에 연탄들여 놓았니껴? 마당 씻은 물이 수채구멍으로 흘러나왔니더. 물이 수채구멍으로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이니껴. 괜찮니더. 내가 말끔하게시리 씻어낼께 걱정마세이!' 그렇게 말했다면 천사처럼 보였을 텐데 퍽이나 아쉬웠다.

 "바깥이 어찌 됐나시퍼서 이러케 나와봤다 아입니까. 알았니다. 물뜨다가 깨끗이 씻어 줄게요."

 이사 잘못 왔다는, 이웃 잘못 만났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해 가을엔가 수도사업소에서 하수도개수공사(下水道改修工事)를 했다. 그때 빗물과 하수물이 하수도로 곧장 흘러들게 우리 집 수채배관을 하수도로 곧바로 연결했다.


 도시의 주택가가 거의 다 그렇 듯, 옆집과 우리집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처음 이사를 와 보니 우리 집 테라스는 쇠파이프에 울긋불긋한 두꺼운 천을 씌운 천막으로 되어있었다.

 이사하던 그 해 삼월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집사람이 말했다.

 "옆집 아줌마가 그카데요. 비가오면 우리 집 테라스에서 빗물이 흘러내려 자기 집 담벼락 때린다며 천막끝을 짤라달라고."

 "그래? 되지도 않는 소리하네. 그라만 여태까진 우예 살았노. 전번 주인한테 해달라지. 가마이 있다 우리가 이사오니 해달라고 해. 나이도 자기보담 훨씬 적꼬, 이사온지 얼매되지 않았은께 우리가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제."

 "그케요!"

 속이 상했다.

 며칠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빗물이 떨어져도 우리 집쪽으로 떨어지라고 낫으로 천막끝을 말끔하게 잘라버렸다. 논리에도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이렇쿵 저러쿵 하는 얘기가 듣기 싫어서 천막끝을 그렇게 싹뚝 잘라버렸다.

 얼마 뒤 우리 집도, 옆집도 테라스를 스레이트로 교체했다.

 원래부터 그랬었다.

 옆집 테라스는 높이, 우리 집 테라스는 옆집보다 낮게 달려있었다.

 그 당시만해도 테라스의 물받이는 지름 10cm 조금 넘는 PVC를 반쪽으로 쪼갠 제품을 이용하고 있었다. 요즘 물받이는 넓지만 당시의 물받이는 요즘보다는 아주 좁았다.

 그런 물받이었기에 비가 적당히 내리면 빗물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여름철 장대비라도 쏟아지면 감당이 안 되었다.빗물을 다 수용하지 못한 물받이의 물은 아래로 흘러넘치게 마련이었다.

 옆집 테라스는 담장에서 높이 우리 집 테라스는 낮게 설치되었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그러한 실정이니 옆집 물받이는 위에, 우리 집 물받이는 아래에 매달려있었다.

 그러니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옆집 물받이에서 흘러넘친 물은 우리집 물받이로 흘러내려 두 집 뒤안을 흥건히 적셔놓곤 했다. 그런 형편인데도 옆집 아줌마는 그럴 때마다, "어마이 이리 좀 와봐, 집에 물받이에서 물이 흘러넘쳐 우리 집 뒤안에 다 쏟아진다."며 생떼같은 소릴 해댔다.

 요즘은 날 이기려고 걸핏하면 목에 퍼런 심줄 세우고, 고함 "깩깩!" 질러가며 덤벼드는 놀부마누라보다 더 고약한 집사람이지만 젊을 땐 순둥이었다.

 그런 집사람이었지만 오진구석도 있었다.

 이사왔을 때부터 비가 올때면 옆집 아줌마에게 불려가 시달렸던 집사람이 더 이상 아니되겠다시펐는지 어느 해 여름날, 한 번은 오방지게 대들었다.

 "아줌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억수같이 쏟아져 흘려넘치는 빗물을 우린들 어찌 합니까? 뾰족한 수가 있으면 대답좀 해봐요."

그제서야 옆집 아줌마는  "우리 아저씨가 말하지 마라고 했는데......"라고 하더란다.


 우리 집은 1996년 9월에 집수리를 했다.

 적벽돌을 붙이고, 창문을 알루미늄으로 교체하고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너들너들 해진 스레이트 물받이를 새것으로 바꾸는 등 아주 대수선을 했다.

 물받이로 인해 근 이십여 년을 몸살을 앓아온 집사람은 인부들에게 당부했다. '옆집으로 물한방울도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옆집은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백여 평쯤 되는 밭이 있는 것 같았다. 해마다 밭에 농사를 짓는 듯 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마당엔 자주감자가 가득했다. 밭에서 캐온 감자같았다.

 감자는 아주 실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집사람이 감자를 바라보며 "감자 몇개 주었으면!"했다.  

 그해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속절없이 지나가고 이듬해 봄이왔다.

 옆집 아지매가 집사람을 부르더니 배들배들 곯아빠진 자주감자 몇개를 주며 말하더라고 했다. "어마이, 촉(싹) 띠내고 먹으보래." 감자는 싹이 나 있었다. 감자싹엔 독성이 있다고 한다.

 남정네는 거의가 뚱눈이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뚱눈인 내눈에도 곯아빠지고 싹이 틘 그 자줏빛감자는 먹기에는 거북해 보였다. 감자를 뒤적이던 집사람이 중얼거렸다.

 "이왕에 줄려면 싱싱하고 실했던 작년 여름에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노!"

 사람들은 남에게 주는 것은 실한 것을 준다. 먹거리는 더더욱 그렇다.

 결국 그 배들배들 곯고 싹이 틔인 자줏빛감자는 아려서 먹지 못하고 내다버렸다.


 농사지은 콩이나 들깨, 참깨를 단으로 묶어 집으로 옮긴 뒤 골목길에서 타작을 하는 일은 도심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珍風景)이다. 

 김 선배가 건강할 때였다. 물론 지붕덧씌우기공사를 하기 전이었다.

 어느 해 옆집에서는 콩농사를 지었던 모양이었다. 여늬 집처럼 콩단을 집으로 들여왔다. '골목길에서 콩타작을 하려는구나'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콩단을 옥상으로 올리더니 콩타작을 해대기 시작했다. 누르스럼한 먼지가 우리 집 옥상으로 날아왔다. 날아온 먼지는 옥상을 누렇게 덮어버렸다. 먼지 때문에 옥상에는 빨래도 널 수 없었다.

 이웃이었기에 그러려니하고 하고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지나간 일이었지만 그때 만약 우리 집이그랬었다면 모르긴해도 난리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나이든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느니.


 이 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고 한다.

 옆집 뒷집에 사는 상은이네 부부와 우리 집 옆집 내외사이에 싸움이 붙었단다.

 여자끼리 붙은 싸움에 남정네가 끼어들어 큰싸움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상은이 엄마와 아버지는 올려다보고, 옆집 김 선배 내외는 옥상에서 내려다보며 싸웠다고 했다.

 내 집 여자와 남의 집 여자가 쌈을 하면 우선은 내 여자를 나무라고 볼일이다. 잘하고 잘못하고는 뒷일이고 그게 순서란 얘기다.

 부녀자 사이의 싸움이 들불 번지듯이 남정네에게로 옮겨 붙은 것은 두 집의 남정네가 방화문(防火門)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결론이다.

 상은이 엄마는 옆집 아지매보다 열 살 적고, 상은이 아버지는 옆집 김 선배보다 열 살 적다.

 김 선배가 고함을 지르자 상은이 아버지도 "지금까진 참고 살았니더만 이젠 못 참겠니더."라며 맞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두집 부부사이에 큰소리가 오간 싸움은 들불 사그라지듯 했다지만 서로의 가슴에 응어리를 남겼을 것이다.

 싸움이 끝나고 화회(和會)를 하면서 상은이 아버지가, "우리 집 늘봄아파트로 이사갑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면서 맘에 드는 쪽 편을 드는 건 세상은 금기(禁忌)로 여기고 있다.

 옆집 뒷집, 상은이네는 부부가 성격이 원만하다. 그러나 옆집 김 선배내외는 성격이 아주 까탈스럽고 자기 중심적이다. 성격이 그래서일까 이웃사이에 다툼이 꽤나 많았다. 특히 아지매는 유별스러웠다. 상훈이 엄마도, 정아 엄마도 옆집 아지매와 이웃되어 살아가는동안 한두번씩 싸움을 했고, 급기야 우리 내외도 물받이 문제로 대판 싸움을 하고 말았다.

 상훈이네도 정아네 집도, 상은이네 집도 다들 이사가고 이젠 달랑 우리 집만 남았다.

 상은이네가 가고난 뒤 갓 오십줄에 들어선 듯한 어느 부부가 집을 사가지고 이사왔다.

 남편은 평범한 샐러리맨 같아보였고 부인은 시내 어디에선가 카페를 운영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집엔 여고삼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있었다. 학생은 땅땅했다. 학생은 이름이 소정이라고 했다. 담배를 피운다는 말도 들렸다. 옆집 아지매가 담배를 피우는 걸 보았다고 한다. 소정이가 버렸는지 피우고 난 꽁초가 자기네 집 뒤안에 떨어져 있었다고 옆집 아지매가 얘기하더라고 집사람이 말했다.

 "아줌마, 딸아가 담배피고 꽁초를 우리 집 뒤안으로 던지는데 주의 좀 시키세이. 그카다 불이라도 나면 우짤라니껴?"

 옆집 아지매가 그리 말했을 때, "예,죄송해요! 주의 시킬게요." 소정이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그 일로 옆집과 옆집 뒷집이 티격태격 다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운다. 어른들이 지나가도 감추려들지도 않는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뒤범벅이 된 세상에 우리 모두가 살아간다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옆집과 채정이네 집 사이엔 커다란 승용차 한 대정도는 세울 수 있을 만큼 안골목이 넓다.

 안골목 왼쪽엔 반장어른 집이있고  오른쪽 집이 소정이 여학생 집이다. 나이 여든은 될성싶은 반장어른은 어디 이사라도 가셨는지 요즘들어 보이질 않는다.

 이사오고 곧바로였다고 했다. 골목이 넓으니 소정이네 아버지와 엄마가 차를 세웠다고 한다. 근데 옆집에서, "그게 차세우면 우리 집 무너지니대이!"라며 주차못하게 딴죽을 걸었다고 했다. 차를 주차하고 발차(發車)할 때 울리는 진동이 건물에 위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에서였을 것이다. 

 그러자 소정이네 집에서는 "빈터에 차좀 세우는데 어르신이 왜 못 세우게 해요?"라며 아버지와 엄마가 대들었다고 한다. 세우느니 못 세우느니 몇차례 쌈을 하며 옥신각신하다 결국 소정이네 집에서 백기를 들었다고 했다. 부모뻘인 옆집 내외와 코피 터지게 싸울 여력도 없거니와 터잡고 살아가는 기득권, 텃세에 밀려서라고 한다.

 소정이네가 빈터에 차를 못 세우고 골목길 연립주택 벽 밑에 차를 세우는 연유는 그래서였다.

 옆집엔 지하차고가 있다.

 옆집 김 선배는 철도공무원이었다. 김 선배가 퇴직을 삼여 년 앞두고 차를 샀다. 진자줏빛깔의 차는 아주 멋스러보였다. 차고가 없었기에 차는 밤낮없이 골목길에 주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기 때문이었다. '누가 흠집이라도 내지 않을까!'라는 조바심 때문에 김 선배는 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런 말이 들릴 때마다 '워낙 깐깐한 성격이라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머리를 스쳐갔다.

 김 선배가 선택한 것은 지하차고였다.

 차고는 안방이 아닌 거실아래를 택했다. 공사를 시작한 얼마 뒤 차고는 완성됐고, 지하차고에 차를 주차하고부터 김 선배는 잠을 편히 잘 수 있었다고 했다.

 언젠가 옆집 아지매가 집사람을 찾아와,

 "집에도 지하에 차고 파지. 요새는 차고 없으만 집이 안 팔린다네." 아지매의 그 말끝에 우리 집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단다.

 "차도 없는 우리가 지하에 차고는 왜 파요? 우리는 어디로 이사갈 맘도 없고요." 집사람이 전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그 아지매 오지랖도 디기(아주) 넓네!' 중얼거리며 피식! 웃어버렸다.

 지하에 차고를 판 수년 뒤 여름날 새벽이라고 했다.

 "쿵!" 하고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며 뭔가가 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았더니 옥상 슬라브 귀퉁이가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잘못을 내 몸 안에서, 집안에서 찾으려들지 않고 몸 밖에서, 집밖에서 찾으려하는 사람을 우리는 이따금 본다.

 옆집 옥상슬라브 귀퉁이는 왜 떨어졌을까? 정답이 나와 있으니 나도 알고 그대도 알 것이다.

 지하차고에서 차가 올라갈 때, 순풍에 돛단배처럼 곱게 미끄러져 올라 가겠는가?

 아닐 것이다. "부릉부릉!" 용을 쓰며 숨 가쁘게 오를 것이다. 차가 용을 쓰고 올라가니 진동도 꽤 울릴 것이다. 차가 내려갈 때도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의 진동은 울릴 것이다.

 지하차고를 판 뒤, 몇년간 지하차고를 오르내리는 자동차 진동을 옥상은 온몸으로 버텨냈을 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못해 옥상은 자기 몸의 일부인 슬라브 귀퉁이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그 답을 옆집 내외는 안이 아닌 밖에서 찾으려 했다.


 심장이 약하고, 백내장을 수술한 집사람은 안동병원 심장내과와 안과를 심심찮게 들락거렸다.

 아파트경비원으로 근무할 당시엔 진료일을 비번날로 맞춰 집사람과 동행하곤 했다.

 안동병원과 연을 맺은 것인 2012년 추석을 일주일쯤 앞둔 구월 하순 어느 월요일이었다. 밤열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우리 내외는 KBS1TV에서 방영하는 가요무대를 시청하고 있었다.

 TV를 함께 시청하던 집사람은 딸아이가 퇴근할 시간이고, 밖에 할 일이 있다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조금 더 TV를 보고 있던 나도 별로 재미가 없기에 불을 꺼고 누웠다. 내일은 근무라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잠이 든것 같았는데 바깥이 시끌벅적해 깨어났다.

 딸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무슨 약 먹었냐고?"

 "수면제에"

 기어들어가는 듯한 집사람의 대답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밖으로 뛰어나가 딸아이에게 물었다.

 "니 엄마가 왜?"

 "엄마가 샘가에 쓰러져있는 걸 두드려 깨워서 거실로 데리고 와 눕혔어요."

 집사람은 잠이 잘 안온다며 이따금 수면제를 할 알씩 먹곤 했었다. 그날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수면제를 할 알 먹었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이지경이 되도록 아빠는 도대체 뭘 했어요."

 딸아이는 땅벌처럼 무섭게 달려들었다.

 딸아이의 말이 옳았다. 수면제 먹고 현관밖 샘가에 쓰러진 아내도 모르고 자고 있는 남편은 아무 일도 모르고 못 본, 이웃이나 다름없었다.

 택시를 불러타고 기독교병원으로 달렸다.

 응급처치를 해준 당직의사가 말했다. "약물오남용에 의한 쇼크 같으니 안동병원으로 가보세요."

 집사람과 나, 병원측 관계자 한 사람을 태운 구급차는 경광등을 켜고 싸이렌은 요란스럽게 울리며 안동병원으로 달려갔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안동병원에서도 진단은 영주기독교병원과 같았다. 영주기독교병원 직원과 보호자인 내 말을 종합하더니, '약물오남용에 의한 쇼크'라고 진단을 내렸다.

 처음 진단은 그랬다. 그러나 좀 더 있더니 확실한 게 좋다며 MRI촬영을 한 번 해보자고 했다.

 한 시간쯤 흘러갔다. 촬영결과가 나왔다. 당직의사가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약물오남용에 의한 쇼크'맞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좀 쉬면서 안정을 취하신 후 퇴원하십시오."

 새벽네시쯤에 병원현관을 나섰다. 구월이라고는 하지만 밤기온은 차거웠다. 입고 있는 파카를 벗어 집사람에게 입혔다. 집사람은 맨발이었다. 황망히 집을 나서느라고 신발을 신기지 못해서였다. 싸늘한 콘크리트 바닥에 발이 닿으니 얼마나 시려웠을까. 차타는 곳까지 업고 가자고 했다. 그런 집사람을 무릎이 아파 업을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집사람은 내무릎을 베고 잠에 떨어졌다. 빛바랜 나이 든 별하나가 세상모른 듯 자고 있었다. 나는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남편의 위치고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웃이 아닌 남편의 위치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재작년 늦여름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단다. 옆집 아지매가 대문을 열고 나가보았더니 대문앞에 누군가가 똥을 싸놓았다고 했다.

 아지매가 똥 못 누라고 엄나무 가시를 대문 앞에 깔아놓았는데도 이튿날 아침 나가보았더니 가시를 치워버리고 누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밤엔 병을 깨어놓았지만 한쪽으로 밀치고 누었다고 한다.

 한날 밤엔 초인종을 누군가가 누르기에 받지않고 한참뒤에 현관문을 열고 살금살금 나가 대문사이로 빠끔히 내다보았더니 언놈이 대문 앞에 누워자고 있더라고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그 작자를 두드려 깨우며,

 "이봐요.아저씨, 일어나요! 왜 남의 집 대문 앞에 드러누워 자고 있습니까?" 라고 묻자 술에 취한 듯한 그 사람은 게슴츠레 눈을 떠더니 되레,"내집 앞에 내가 자는 데 당신들이 왜?"하더란다.

 내집 앞에 내가 자고 있다는데, 파출소 경찰인들 뭐 어쩌겠는가!

 취객은 소정이 아빠라고 했다.

 얘기를 일러주던 집사람이 말했다.

 "여북 속이 상했으면 궁디 까붙이고 그 짓거릴 했을까. 남의 집 대문 앞에 퍼질러 자고 있었을까!" 

 "그케."

 집사람 말에 맞장구를 치며 싱긋 웃었다.

 

 지구는 둥글다.

 세상사(世上事)  인간사(人間事)도 지구처럼 둥글다. 둥글기에 뱅글뱅글 돌고 돈다. 반목(反目)과 갈등(葛藤), 사랑과 미움, 배려(配慮)와 독선(獨善)을 주고 받으며 세상사 인간사는 빙글빙글 돈다. 지구처럼 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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