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네

나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너를 존중하는

작성일 작성자 세포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순종과 사랑이 있어야 함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에는 큰 거부감이 없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에는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고
          그래서 요즘 같은 때에 
          이런 독서를 성가정 축일의 독서로 택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은 남성우월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고,
          여자들은 성전에서 머리를 가려야 된다고 
          바오로 사도가 얘기한 바 있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오류가 없어야 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인데
          이럴 경우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에 대해 호교론적으로, 
          아니 바오로 옹호적으로 얘기할 수 있지요.
            
          바오로 사도가 
          여자를 무시하거나 낮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바오로 사도가 얘기한 
          순종과 사랑이 서실은 같은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순종과 사랑이 
          같은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과거에는 더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사랑과 순종은 다르게 작용하고 있지요. 
          순종은 상호순종이나 존중이 아니라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요,
          사랑은 상호존중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거라고 말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이런 
          과거와 현재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섣부른 호교론이나 변명은 
          진정 우리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고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우리로 하여금 
          성가정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도 순종과 사랑은 상호적이어야지만 
          순종과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호 순종하는 사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순종은 나를 굽히는 것이 아니고 
          너의 뜻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위에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존경이며 나눔입니다.
            
          과거에는 더 그랬었고 지금도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제가 저희 형제들이나 신자들을 사랑은 많이 하는 편이나
          존경은 말할 것도 없고 존중도 많이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물론 제가 대놓고 위에서 베푸는 사랑을 하지 않고 
          같은 위치에서 사랑하는 양 시늉을 하지만 겉 사랑과 달리
          저는 진정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존중하고 존경치 못합니다.
          늘 더 많이 가진 내가 준다는 식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다면 존경까지는 못해도 존중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하느님 중심적, 특히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에서 
          서로를 예수님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예수님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우리 공동체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성가정답지 못하다고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니, 너무 권위주의적이니 하며 
          너무 인간적으로 진단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문제의 해결도 심리학적인 방법에서 찾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방법들도 필요하지만 먼저 해야 할 것이
          우리는 지금 함께 주님 앞에 있는지 봐야 하고 
          오늘 예수님의 성가정이 함께 예루살렘 성전 순례를 하였듯이
          같이 주님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도 이렇게 나무람을 듣습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함께 성전으로 가야하고 
          성전에 머물러야 함을 깜빡 잊어도
          그럴 수 있겠다고 위로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다시 한 번 그래도 우리 공동체는
          함께 주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고 
          함께 주님 앞에 머물러야 함을,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공동체가 
          성전이 되고 성가정이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하고 오늘 같은 성가정 축일에는 
          더더욱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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