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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여행/화엄사 &아쉬웠던 홍매화,흑매화【19년3월13일】

작성일 작성자 아젤리아













봄의 절정이다 보니 포스팅 밀리기 시작이다^^

다시 앞전 3월13일 하루 여행 일정은 광양매화축제&화개장터&화엄사

맨 마지막인 화엄사 홍매화 보려 가 본다











화엄사 가기전 공사 한다는 정보을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각황전 옆의 흑매가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계셨다.

 

흑매의 만개는 아직 이른 감이 있었고,
아쉬운 것은 각황전 옆 전각 주변을 공사하느라고 흑매의 전경을 담기에는 화각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흑매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으시며 봄을 즐기고 계셨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매화는 하얀 꽃에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

복숭아꽃처럼 붉은 홍매화










봄소식 전한 하얀매화 질무렵
노란 산수유 꽃망울 터뜨리고

 

화엄사 홍매화 붉은자태 뽐내
발길 닿는 곳곳 '봄꽃의 향연'











봄의 구례는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매화가 피고 매화가 절정에 이르면 산수유가 피어나고, 또 산수유가 절정에 이르면 화엄사 뜰 안의 홍매화가 피어난다.

다시 홍매화가 절정에 이르면 하얀 벚꽃이 산하를 덮기 시작한다. 꽃들이 계절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흘러가는 셈이다.












월 중하순경 일부러 구례 화엄사를 찾는 것은 우리나라의 옛 매화나무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홍매화나무를 보기 위함이다.

‘화엄사각황전’(국보 제67호) 옆에 서 있는 이 홍매화나무는 견줄 상대가 없을 정도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귀공자처럼 준수한 자태와 오묘한 꽃빛깔은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꽃잎이 붉다 못해 검은빛을 띤다 해서 ‘흑매’라고도 부른다. 인근 길상암 앞에도 수령 450년의 천연기념물(제485호) 매화나무가 하나 있지만, 이 홍매화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뛰어넘지 못한다.

 

화엄사를 떠나온 뒤에도 한동안은 이 홍매화나무의 고혹적인 때깔이 눈앞에 어른거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화엄사 ‘홍매화앓이’가 시작된다.











절 입구 오른 편에 있는 홍매를 찍고 각황전으로 올라가는 길 좌측에 있는 만월당 백매.

오히려 만월당 백매가 흑매보다 더 정감있게 보였다.

마치 흑매화가 틈을 내주지 않는 고고한 선비같은 이미지라면 백매화는 양지 바른 고택의 마루에 다소곶이 앉아 있는

봄 아가씨같은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따뜻한 봄 날씨 속에 천년사찰 화엄사에서 흑매를 주제 삼아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화엄사 뒤에는 구층암, 길상암, 봉천암 등이 있고, 멀리 구불구불 산 깊은 곳에 연기암을 비롯해 십여 개의 암자가 듬성듬성 피어난 봄꽃처럼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본디 매화는 ‘고결한 마음’의 상징으로 절개와 충성, 효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선비의 정신을 상징하는 꽃이다.











화엄사의 홍매화는 그 꽃 색이 진해서 일명 흑매화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 한 그루밖에 없다고 한다.










존재 그 자체로 향기를 발할 수 있는 것이 꽃이다.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으나 향기로 그 자신을 말하며, 향기로 그 자신을 드러낸다. ‘화엄華嚴’의 뜻은 ‘여러 가지 꽃’이다. 화엄을 몸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꽃이 아닐까...




















매화만치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꽃이 어디 있었던가. 고결한 마음, 인내, 정조, 청결, 그리고 충실이라는 꽃말에서도 선비들의 매화사랑이 느껴진다. 매화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는 신흠(1566~1628)의 시구가 떠오른다. 梅一生寒不賣香(매화는 한평생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매화를 빌어 아무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지조를 팔지 않겠다는 선비의 다짐을 노래하는 것이다









진홍이 붉다 붉어 지나쳐 검은빛이 되었던가. 300년 세월 각황전 처마 밑까지 밀어올린 가지마다 붉은 꽃을 피우고 노고단을 향한 흑매는

가까이서 보다는 먼발치 에서 우러르는 맛이 좋다.










 

화엄사는 1500여 년 전(백제 성왕 22년, 서시 544년)  천축국(인도)에서 연이라는 짐승을 타고 온 연기조사가 창건을 한 절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이 터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치며 신라통일의 위업을 달성케 했고, 의상은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을 짓고 벽에 화엄경을 새겨 넣어 화엄사상을 펼쳤졌다. 그 당시 장육전은 3층 규모로 1장 6척(4.8m)의 거대한 석가여래입상을 모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말기(875)에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을 조성하여 화엄사 중흥조가 되었다.

도선국사는 풍수지리의 대가입니다. 도선국사는 화엄사 대가람의 배가 백두산 혈맥의 웅대한 힘과 섬진강의 태극의 힘에 출렁되는 것을 보고 부처님 사리를 두 탑에 봉안하여 요동함을 막음과 동시에 가람의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하였다고 한다












구례 화엄사 홍매화가 새초롬한 봄 대지에 새빨갛게 화룡점정을 찍었다. 화엄사의 봄 절경을 한폭의 수묵화로 표현하면, 홍매화의 발화는 낙관과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홍매화는 조선 숙종(1674~1720)때 각황전을 중건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화엄사 역사를 지켜본 관찰자인 셈이다. 이 홍매화는 다른 것에 비해 꽃이 검붉어 흑매화 라고도 불린다




































































































































































지금 섬진강은 ‘뜨겁다’

섬진강변 19번 국도는 상춘객들로 홍역을 앓고 있는 중. 그런데도 섬진강으로 가야하는 이유는 지금 봄이 가득 내린 그 곳을 보지 못한다면 망설이다가 또다시 일 년,
혹은 10년, 100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떠나자. 햇빛에 반짝이는 고요한 강물에 그간에 찌든 속 때를 씻고 오자!













멀티미디어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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