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열병식 자리에서 보인 現 중국 정치 권력 [2015.09.21 / 이동훈]

지난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天安門)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은 중국 원로들의 힘을 보여줬다고 얘기된다. 이날 천안문 성루 제일 앞줄에 자리 잡은 당 원로들은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江澤民·89), 후진타오(胡錦濤·73), 총리였던 리펑(李鵬·87), 주룽지(朱鎔基·87), 원자바오(溫家寶·73) 등등이다. 특히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현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7인)보다 시진핑 주석의 바로 좌측(성루에서 광장 보는 방향)에 가깝게 자리를 잡았다. 그 옆으로 시진핑을 제외한 현 지도부 6인이 자리를 잡고, 다음으로 역대 지도부 서열 순서대로 자리를 잡았다.

천안문 열병식에서는 후진타오 정권 때만 해도 ‘사실상 2인자’였던 국무원 총리의 비중이 축소됐음을 보여줬다. 리커창 총리는, 인민복을 입고 천안문 성루에서 황제조서를 읽듯이 ‘중요강화’를 발표하는 시진핑 총서기의 뒤에서 사회를 보는 2인자로 각인됐다. 과거 국경절 열병식은 총리가 아닌 베이징시 당서기가 줄곧 사회를 봤었다. 2009년 국경절 60주년 열병식 때는 당 중앙정치국원인 류치(劉淇) 베이징시 당서기가 사회를 봤고, 앞서 1999년 국경절 50주년 열병식 때는 역시 당 중앙정치국원으로 베이징시 당서기로 있던 자칭린(賈慶林·75)이 사회를 봤다. 열병식 사열을 받는 ‘수열부대’ 총지휘를 역대 중국 7대 군구 중 베이징군구 총사령관이 맡아온 관례와 비슷하다. 당 서열 2위 국무원 총리가 국가주석 뒤에서 사회를 봤다는 점에서 “열병식 자체가 격상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보는 사람들은 생경한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칭린(왼쪽부터), 쑹핑, 리란칭, 쩡칭홍, 우관정, 리창춘, 뤄간, 허궈창. /주간조선


자리 배치에서도 총리 위상의 변화를 드러냈다. 장쩌민 정권에서 각각 1기, 2기 총리를 지낸 리펑과 주룽지는 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다음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후진타오 정권에서 10년간 국무원 총리를 하면서 ‘2인자’로 군림한 원자바오는 리펑, 주룽지와 간격을 조금 띄운 채 리루이환(李瑞環·81)과 우방궈(吴邦國·74) 다음에 자리를 잡았다. 리루이환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14기, 15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고, 우방궈는 후진타오 정권에서 당시 의전서열 2위인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에 해당)을 맡았었다. 이로써 시진핑 정권에서는 ‘총리’에 대한 별도의 의전상 특별대접은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후진타오 정권 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당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은 허궈창(賀國强·72)은 말석에 자리 잡았다. 허궈창은 후진타오 정권 당시 의전서열 8위였다. 하지만 시진핑 정권 출범과 함께 9인이었던 정치국 상무위원 수가 다시 7인체제로 줄어들었고 이 때문에 8위였던 허궈창은 가장 말석으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정권 출범과 함께 ‘신(新)사인방’으로 몰려 체포된 서열 9위 저우융캉(周永康·73)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우융캉은 지난 6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노(老)동지’들로 불리는 중국공산당 원로들의 자유분방한 개성도 잘 드러났다. ‘노동지’들 가운데 가장 젊은 리창춘(李長春·71)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DSLR 카메라를 갖고 천안문 성루 위에 올랐다. 리창춘은 후진타오 집권 시절 이데올로기와 선전 등을 담당하는 ‘선전담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일했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등에서는 “리창춘이 고사포를 들고 왔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됐다.


천안문 성루에 오른자와 못오른자의 명암 [2015.09.21 / 이동훈]

1989년 6·4 천안문사태 때 강경진압을 주창해 ‘천안문 학살자’로 불리는 리펑(87) 전 총리는 양복 상의에 금빛 번쩍이는 ‘훈장’을 달고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 이에 ‘훈장’의 정체를 두고 “6·4(천안문사태) 진압 훈장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백발이 성성한 주룽지 전 총리와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검정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당 원로 가운데 최고령이자 열병식 최다(3회) 참석자인 쑹핑(宋平·98)은 ‘드레스 코드’를 어기는 파격을 선보였다. 열병식을 주관하는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만 입도록 허용된 인민복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채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 쑹핑은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강경 좌파’의 대부로 불린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당 중앙조직부장으로 인사실무를 총괄했고, 간쑤성 서기로 있을 때 후진타오를 천거해 ‘백락(伯樂·인재를 알아보는 사람)’으로 불린다. 쑹핑은 98세 나이에도 천안문 성루 위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시진핑(왼쪽부터), 장쩌민, 후진타오, 리커창. /주간조선


간발의 차이로 천안문 성루에 못 올라간 당 최고 원로들도 있다. 차오스, 완리, 웨이젠싱이다. 장쩌민, 리펑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했던 당 원로 차오스(喬石·91세 사망)는 지난 6월 작고했고, 덩샤오핑과 함께 중국공산당 8대 원로 반열에 드는 완리(萬里·99세 사망)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지난 7월 작고했다. 2009년 국경절 때 모습을 드러냈던 웨이젠싱(尉健行·84세 사망) 전 기율위 서기 역시 지난 8월 사망해 이날 천안문 성루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날 시진핑 주석이 주관한 열병식 역시 덩샤오핑이 행한 대열병의 틀과 규격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1984년 국경절 35주년에 천안문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인민복을 입은 채 홍기(紅旗) 리무진을 타고 출연해 사열을 진행하면서 “동즈먼하오(同志們好·동지들 안녕하신가?)”라고 외쳤다. 이때 해방군 병사들이 “셔우장하오(首長好·대장 안녕하십니까?)”라고 복창하고, 재차 “동즈먼싱쿠러(同志們辛苦了·동지들 수고한다)”라고 외치면 병사들은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인민을 위해 복무합니다)”라고 재차 답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157㎝의 단신에도 불구하고, ‘쓰촨 사투리’로 막강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이후 열병식을 거행한 장쩌민, 후진타오 역시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시진핑 역시 이 틀을 고수했다.

천안문 열병식 직후 전격적인 감군을 발표한 것도 덩샤오핑 모델이다. 덩샤오핑은 1984년 천안문 대열병 직후 ‘인민해방군 100만명 감축’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 병력의 4분의 1을 감축하는 충격 발표였다. 시진핑 역시 덩샤오핑의 전례를 이어받아 “인민해방군 30만명 감축”이란 카드를 열병식 당일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홍기 리무진을 타고 사열 당시 수차례 ‘왼손’으로 거수경례를 붙여서 ‘인민해방군 경력’의 진위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를 자아냈다

이동훈 주간조선 기자

E-mail : flatron2@chosun.com

1982년 경남 진해의 어촌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산고를 나와 한양대에서 사학(史學)과 아태경제통상을 전공했다. 2007년 조선일보 47기 수습기자로 입사해 현재 주간조선 기자로 근무 중이다.

서방 기자 최초로 마오쩌둥(毛澤東)을 인터뷰한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과 퓰리처상 수상자로 뉴욕타임스 모스크바특파원을 지낸 해리슨 E. 솔즈베리의 ‘대장정’과 ‘새로운 황제들’을 읽고 중국 전문기자를 꿈꾸게 됐다. 국내 언론 최초로 시진핑 주석의 부친(시중쉰) 묘소와 모친(치신) 별장을 소개했고, 천안문사태로 망명한 반체제 작가 류짜이푸(劉再復)와 인터뷰했다.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중국의 변방과 소수민족에도 관심이 많다.


[출처: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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