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완소남을 향한 두 할머니의 로맨스-영화 '라벤더의 연인들' 리뷰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S#1-여자의 로맨스는 영원하다

 

나는 노년의 사랑을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예전 <코쿤>이란 영화에서 처음 만났던 배우, 제시카 탠디. 그때만 해도 그 분이 연극 무대에선 거장의 반열에 오른 배우였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이후 난 탠디 할머니의 광팬이 되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란 영화는 아직도 내 기억 속의 영화로 각인되어 있고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았던 그때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러고 보면 은근히 할머니 연기자들을 좋아하는 나다. 노년의 배우에게선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 힘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많은 걸 내려놓은 자연스런 연기가 나오는 것. 그것은 세월의 힘이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노년의 할머니 연기자 두 사람이 듀엣으로 나온다.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에 007의 수장으로 나오는 주디 덴치와 매기 스미스가 나오다니. 세상에나......거기에다 남자 주인공은 며칠 전 <굿바이 레닌>에서 엄마를 속이는 깜쪽같은 거짓말 연기를 보였던 완소 배우 다니엘 브륄이라니. 뭔가 일을 낼 영화 같았다.

 

영화가 시작하면 영국의 작은 해변 마을 콘윌을 산책하는 두 할머니의 뒷 모습이 보인다. 호흡이 부드럽고 안온하다. 둘은 자매다. 자넷과 우르슐라. 어느날 폭풍우가 치고 난 후, 바닷가에서 그녀들은 이름모를 한 총각이 바다에 떠내려온걸 발견한다.

 

이후 그 청년이 폴란드 출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안드레아 마르스키인걸 알게된다. 조용했던 그녀들의 삶에 작은 행복과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으로 곱게 살아갔던 두 자매에겐 생각지 않은 우연이 시작된거다. 그를 위해 아버지가 입던 옷을 내어주고, 양복점에 가서 옷을 맞추어주기도 하고, 정성스레 그를 돌본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제목이 너무 좋다.

라벤더의 연인들(Ladies In Lavender)다. 어떤이가 전치사 In을 착용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라벤더 옷을 입은 여인들이라고 번역하던데, 미안하게도 틀렸다.

그건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단편소설을 안 읽었기에 하는 소리다.

 

라벤더의 꽃말이 침묵인걸 아는가?

청년에 대한 로망스, 사랑은 표출되지 않는다. 명시적으로는

(물론 영화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선은 자매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

그 사랑은 침묵 속에서 곱게 걸러지고, 자제된다. 원래 라벤더가 나아드 향유를 만드는데

사용된 것임을 안다면, 이 영화의 끝부분을 보면, 향유가 왜 축복을 위해 사용되는

기름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한 청년에 대한 두 할머니의 소중한 축복.

적어도 난 영화를 그렇게 읽었다.

 

더 정확하게 원작을 영국적 전통을 통해 읽어보자면

라벤더 꽃을 옷에 흩뿌리는 행위는 옷을 오랜동안 보관하기 위한

일종의 방법이다. 실제로 화학적으로 라벤더를 뿌리면 벌레가 안낀다.

돌아가신 아빠의 옷에 뿌렸던 라벤더 꽃을 사랑했던 청년에게 사준 트위드 정장에

또 뿌리며, 오랜동안 그 사랑을 기억할거다. 그 기억의 과정이 정금같이 곱고 아름답다.

 

 

남편을 전쟁에서 잃었던 아픈 경험이 있는 자넷(매기 스미스)와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채 언니와 살고 있는 우르슐라(주디 덴치)의 연기가

머금어내는 노년의 사랑, 떨림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준다.

 

 

두 할머니의 청년을 향한 강한 애착과 보호의식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물론 감춘 여인의 사랑, 억누르고 있는 로맨스와 섹슈얼리티를 보면

주디 덴치의 연기 앞에 아련하게 울고 싶기도 한 영화였다.

 

하지만 연기는 반드시 절제의 힘 앞에서

더욱 큰 매력을 갖는 법이다. 노년의 배우를 괜히 칭찬하는게 아니다.

실제로 감성의 라인을 철저하게 호흡을 통해서 절제하는 힘이 보는 이에게도

느껴질 정도다. 정말 연기 잘하는 두 분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연기를 한 다니엘 브뢸도 놀랄 정도로

심리연기를 잘 했다. 유럽에서 최근 가장 촉망받는 배우라는데

괜히 그러는게 아니지 싶다. 하긴 두 할머니 배우가 신인과 하게 될걸

그리도 기뻐했다던데, 젊고 늚음의 차이가 연기에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눈에 쏘옥 들어온 것은

할머니가 공동 연금을 깨서 청년에서 맞추어준 트위드 소재의 정장이다.

둔탁하지만, 특유의 따스한 소재로 만들어진 옷이 너무 보기에 좋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

분한 다니엘 브뢸을 위해 연주해 준 이는 <레드 바이올린>에서 신기에 가까운

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 조슈아 벨이 맡았다. 여기에 로얄 필하모니의 협연은

영화의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묘미다.

 

마지막 씬이 참 좋았다. 사랑했던 다니엘을 보내고

다시 고요한 콘윌 해변가를 걷는 두 할머니의 모습, 아버지의 은빛 고기떼가

유영하는 적요의 바다, 그 위를 걸어가는 노년의 단정한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인의 로맨스는 영원하다....란 말은 바로 그런 풍광 속에서 빚어지는 걸거다.

두 할머니의 사랑 앞에 축복의 라벤더 꽃잎을 뿌리고 싶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띄웁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라디오 방송이 점점 몸에 익어가서 행복한 홍기랍니다.

 

 

음악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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