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남자의 우정이 사랑보다 아름답다-영화 '연을 쫓는 아이'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S#1-내 인생의 최고의 친구

 

오랜동안 묵혀둔 커피빛깔 표지의 앨범을 꺼내본다. 지나온 날들, 가족들과 함께 한 사진들과 더불어 어린시절 부터 사진을 찍을 때, 내 옆에 우연이든, 혹은 관계에 의한 것이건, 함께 있는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과거를 미화하는 버릇이 있다. 나 또한 이러한 심리적 덫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린시절은 순수하고 지금은 아닌가? 천만에 말씀이다.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당시의 미숙함이 심상에 떠오르는 건,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끌어내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때는 안그랬는데"란 표현도 사실은 현재 성숙하고 더욱 아름다와진 본인의 관점에서 과거를 비판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때 순수했던 당신은 여전히 순수하고 곱다. 자꾸 상처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말라.

 

사람의 삶에서 친구만큼, 자신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설명해주는 존재도 없지 싶다. 어린시절 가장 기억나는 친구를 당신은 가지고 있는가?

 

이 점에서 난 매우 아쉽다. 어린시절 한곳에 진득하게 살아본 기억이 없이 여러차례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친구에 대한 강한 기억들은 서울 생활을 시작한 청소년 시절에 머물러 있다.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후에 <바이 준>이란 영화의 편집을 했던 녀석이었는데, 지금도 영화쪽 일을 하는 지 잘 모르겠다. 그 녀석과 나는 수업시간에 툭하면 영화를 주제로 수다를 떨다 걸려서 혼이 나곤 했다. 오늘 이야기 할 영화 <연을 �는 아이>는 바로 두 아이의 우정과 성장, 그 속에서 다시 한번 곰삭여 볼 소중한 관계와 만남에 대해 따스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낸다.

 

 

이 영화는 칼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는 아이>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배경은 아프가니스탄 카불이다.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초토화된 땅, 극중 대사처럼

이곳 카불에선 해골만이 존재하고, 어린시절 함께 먹던 양고기 케밥은

더이상 찾을 수 없다. 바로 그곳에 나와 함께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소중한 친구의 아들이 있다.

 

 

소중한 친구의 이름은 핫산이다. 주인공은 당시 사회의 주류였던 파슈툰족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친구 핫산은 하인의 아들이다. 더구나 불가촉 천민처럼

천대를 받는 하자라 족이다. (하자라 족은 돌궐족이다)

 

아세프란 녀석이 있다. 주인공 아미르가 핫산과

어울려 다니는 걸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아미르를 혼내주려 하지만

용감하게 핫산이 새총으로 위협하며 위기를 벗어난다. 당시 아이들의 연놀이는 매우 큰 행사여서

여기에 참여한 아미르는 1등을 한다. 승리의 부산물로 끊어진 연을 �아가는 핫산

"당신을 위해서라면 천번도 갈수 있다"며 시장을 가로질러 달려가지만

아세프와 조우한다. 그는 핫산을 폭행하고 이도 모자라 강간까지 한다.

(올해 초 아동의 동성애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된 장면이다)

 

이를 알고도 돕지 못했던 아미르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오히려 핫산을 멀리하고 그를 도둑으로 몰아 집에서 �아낸다.

 

 

이후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과

지배자의 손이 세월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이란 말 자체가 '다스리기 힘든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단다.

지금까지도, 도대체 무슨 저주를 받았길래, 저렇게 끊임없는 투쟁과 싸움이 일어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서 벌어지는 두 아이의

우정은, 어른이 되어서도 연결된다. 탈레반에 인해 사망한 친구 핫산과

그의 아들, 소라브, 아버지는 죽기전에 소라브가 자신의 조카임을 밝힌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두번 보았다. 한번은 통독을 하고 두번째는 정독을 했다고 할까. 연을 쫓는 다는 것은 여전히 간직한 핫산의 우정을 상징하는 표현물이다.

 

히잡을 쓴 여인들, 수염을 기른 남자들, 무장한 탈레반이 거리를 휩쓰는 모습이며, 어린시절 핫산을 폭행한 아세프는 여전히 무장세력으로 성장, 핫산의 아들 소라브를 매일 매일 성적으로 학대했다. 끝내는 미국으로 건너와 자유를 얻게 되지만 여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는 소라브를 위해 어린시절, 핫산이 가르쳐준 연 날리기 비법을 가르쳐준다.

 

얼어붙은 아이의 마음도 언젠가는 치유될거다. 사실 꽤 오래전 <네버랜드를 찾아서>란 영화를 보면서 감독 마크 포스터에세 반해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기적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자면 한도 끝도 없다. 철저하게 미국적인 영화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시절의 성적 학대란 상처의 모티브를 끌어낸 것도 결국은 이 지역 사람들을 폄하하기 위한 작은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핫산에 대한 개인적인 반성은 의외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 전개 구성이 작위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는 점,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소설가로 성공한 아들은, 주유소에서 일하면서도 언제든 성공시킬 수 있는 미국이란 사회에 대한 미화이자, 의료혜택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사회인양 그려낸 건, 아마도

 

 

작가가 친 미국적 성향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영화 속 두 어린이의 우정을 윤색시키는 것 또한 적합하지 않은 독법이다. 사회학적 영화 비평을 싫어하는 이유는, 모든 걸 삶의 조건에 의해 변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어른으로 성장한 후의 우정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자세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쉽지만, 지금까지 아미르의 가슴속에 품어온 죄의식은 입약한 핫산의 아들을 통해 그 푸른 멍이 풀어지겠지.

 

연을 날리는 풍경이 이렇게 동적이고 아름다운지는 처음 알았다.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 쳐치에 살 때, 브라이튼 해변에 가서 연을 날리곤 했었다. 한적한 바다의 표면위로 떠오르는 연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갑자기 한강 둔치라도 나가 연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내 영혼의 연줄엔 뭘 달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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