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기-대관령 양떼목장을 산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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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느리게 걷기-대관령 양떼목장을 산책하며

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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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로부터 탈출하게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자발적인 귀향이라 불리는 여행을 방송일과 집필 때문에 하지 못한채

8개월을 보냈네요. 새벽 첫차를 타고 강릉으로 떠났습니다.

그저 하루뿐인 여행일지라도 마음대로 내가 걷고

싶은 곳을 걷고 생각하며 사진도 찍고 싶었죠.

 

가을하늘의 내면은 깊고, 코발트 블루빛으로 환하지만

풍경 속을 거니는 인간의 형세는 남루하기 그지 없습니다.

'경쟁과 효율'을 신조로 했던 미국식 자본주의가 거대한 성찰과 반성을

요하는 요즘, 산에는 그저 돈이 될만한 것이면 다 캐어가려는 이들의 발자국으로

산새가 엉망입니다. 기본적인 사회안전망도 무너지고, 민영화의 논리

아래 모든 것을 자본의 힘에 굴복시키는 이 정권의 운명은

바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의 운명을 닮았지요.

 

 

대관령에 서니, 바람의 무게가 육중합니다. 잠시 차를

주차 시켜놓고 산새에 흔들리는 억새를 담습니다. 차가운 바람의 알갱이가

속살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 시간, 햇살의 미립자와 바람의 대립이

엮어내는 풍광의 조형 속에서, 억새의 운명은 바투

흔들리며, 운명의 형세를 그려냅니다.

 

 

아쉽게 단풍이 절정이라던 북부지역은 이미 흔적들이

다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보면서, 단풍의 시작과 끝을 생각합니다.

흔히 꽃들의 피고 짐, 나무들의 생장과 사멸을 생각할때 봄꽃은

남쪽에서 시작되는 밀물에, 가을단풍은 북쪽에서 밀려오는 썰물에 비유합니다.

지금 우리 내 산하의 미만한 단풍놀이엔, 씁쓸한 기운만 가득한 것이

왠지 그 속에는 자본의 속도와, 그 속에서 혹사당하는 인간을

더 이상 껴안아내지 못한채, 욕망의 무질서 앞에 적응방산하지 못한,

실패한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바람이 강한 굽이 골목마다 세워진 풍력발전기들이

솜털처럼 곱다란 질감의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서둘러 양떼목장으로 향했습니다.

수억의 화소로도 소화시키지 못할 만큼, 화려한 자태를 꿈꾸던

이 땅의 단풍이 더 이상 터질듯한 여인내의 에로티시즘을 발산하지 못하는 것은

이 목장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전같으면 노랗게 물들었을

단아한 언덕과 구릉사이, 자작나무 숲들의 풍경들이

하나같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더군요.

 

 

미만한 초록빛과 연두, 블루가 감산혼합을 통해

토해내는 구릉의 표면에는, 그저 한 그루의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목장길을 따라 걷는 시간.

속도에 지치고, 경쟁에 지친 이들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보폭의 운용을 달리 해봅니다. 느리게 걷기, 걸으며 호흡하고, 내가 숨을 쉬고

있음을, 그렇게 들숨과 날숨을 쉬고 있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노란 은행잎을 따서 꾸욱 눌르면

환희의 샤프란 황색물을 들인 드레스가 연상될만큼

깊어가는 가을의 어느 날. 천천히, 내 자신에 대한 생각,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 방송인을 하게 되면 얼마나 잘 하게 될까 하는 생각

회사를 접게 될 경우, 기회비용은 과연 어떨가 하는 생각

별별 생각들을 하나하나 풀 포기 접어내듯

각을 내어 접으며 걸었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차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춥기도 하고, 혹시 하는 마음에 차콜 그레이 후드티 속에

입어두었던 페일핑크빛 폴라티가 따뜻하다고 느끼게 되더군요.

 

 

흙길을 걸은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워커홀릭(Workerholic)에서 걷기홀릭(Walkholic)으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 로하스니, 느림의 미학이니 하는 말들이 일종의 트랜드가 되어

또 우리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지금, 진정한 쉼은 걷기에서

나온다는 걸 새삼스레 배우고 맙니다.

  

 

양떼가 모여있는 초지를 지나며 유유한 모습에 취해보기도 하고

 

 

아빠양, 엄마양, 아기양? 일까요? 그냥 곰 세마리 노래가

장난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사선으로 흐르는 느린 햇살아래, 누워 초록빛

음식으로만 배를 채우고 싶은 요즘입니다. 어디를 가도

식재료의 위험이 뒤따르고 멜라닌에서 광우병까지

우리의 욕심으로 지은 모든 것들이, 인간에 대한 역습을 시작한 지금

느림의 아름다움은 지난 길들을 되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양들을 만지면 그 표면이 부드럽지요.

하긴 양모가 괜히 양모겠습니까. 뉴질랜드에 있을 때

양털깍기 체험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건초를 집어주니 좀 먹긴 하는데

표정이 썩 그리 밝아보이진 않네요.

 

 

예쁜 아기가 준 것이 아니어서 그랬나 봅니다.

내 안의 우울을 양도 느낀걸까요. 아님 배가 덜 고파서였을까요.

 

 

 

 도시의 회색빛 구름과

짙은 안개, 눅진한 비 소식을 뒤로 하고

달려간 대관령에서 그래도 푸른 하늘을 다시 보게 되어

마음이 좋았습니다.

 

 

식사를 하러 가는 중에

함께 사진을 찍던 분들이 알려주셨던

나즈막한 구릉의 우아한 선들이, 황토빛과 초록, 붉은 기운의

땅과 하늘빛이 서로를 반영하는 시간. 자연은 그대로 있음에 아름다움을

다시 느껴보네요. 산하를 휘감고 도는 풍광의 외곽선들이

고혹적인 40대 여인의 원숙함을 닮아가는 가을입니다.

 

 

오래 걸었더니 배도 고팠고

수수 점뱅이와 감자 옹심이란걸 먹었네요.

수수떡안에는 달콤한 팥이 들어 있었는데, 따스하고

보드라운 느낌이 미각의 한쪽을 자극했다면, 감자 옹심이는

전분이 아닌, 생감자를 채로 곱게 갈아서 만든 탓에, 씹을 때, 감자입자가

사각사각 씹히는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해외에 나가서는 잘도 그 지방의 고유한 음식들, 퀴진이란 걸 맛보고

글도 써봤지만, 사실 이 문화의 제국을 지켜온 주인장은

대한민국땅을 제대로 가본적이 없는 도시 촌놈이었기에 이런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주 행복합니다.

 

 

바다를 보며, 마음이 넓어짐을 느낍니다.

사실 이번 하루 여행의 목적은 바다를 보고 그저 멍하니 있다 와도

좋을것 같다며 생각없이 떠난 시간들이었지요.

 

환한 푸르름 속에 잠긴 저 바닷물이 짠 이유는

그 바다를 보며 눈물 흘리는 인간의 영혼을 위무하는

자연의 응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속에서 편히 쉬다 돌아왔네요.

 

케빈 컨의 연주로 듣는 Paper Clouds 입니다.

구름의 형상들이 너무 고와, 마치 인간의 손으로 접어낸 것 처럼

고운 하늘......그 아래 아름답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행복한 한주 시작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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