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영화 체인질링 속 1920년대 패션의 유혹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S#1-어미를 아프게 한 자, 화있을 진저

 

특정 시대를 다룬 영화를 자주 보는 건 당대의 패션을 살펴볼 수 있는 재미 때문입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는 흔히 미국의 재즈시대 1920년대 초기 패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영화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체인질링』은 1928년부터 1938년까지 10년 단위의 근대패션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1920년대 재즈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 중엔 미아 패로우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았던 『위대한 개츠비』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특히 미아 패로우가 쓴 캬프린 모자와 윈저노트로 맨 타이에 레이어드로 겹쳐입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스웨터 의상은 정말이지 압권이었죠.

 

사실 『체인질링』은 패션의 진수를 볼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아이의 실종을 덮으려는 경찰과 모성의 투쟁이 신랄하게 드러납니다. 그 속에서 지금의 한국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또한 영화의 매력이자, 씁쓸한 현실이지요.

 

L.A 경찰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집단. 입으로는 시민의 안전과 보호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밀주와 도박, 사채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는 시장 개인을 위해 일하는 사병집단과 다를바가 없지요.

 

치안유지를 빌미로 기관총 특공대란 걸 조직하고 실제 장전한 총을 지급하여, 정치/경제적인 적들을 숙청하는 모습은 사뭇 정치권력의 패악에 환멸감 마저 느끼게 합니다. 사람을 무차별 학살하고 죽였던 이유는 바로 '치안' 때문이었죠. 부패로 찌들려 있던 LA 경찰의 초기사가 너무나 잘 드러나 있습니다.

 

1920년대 세계 대전 이후 산업 전반에 조금씩 여성의 일자리가 창출되던 때지만, 여전히 여성차별이 엄존하던 그때, 경찰은 다른 아이를 데려다가, 경찰조사상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아이를 떠맡기고,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크리스티나를 엄마의 역할을 저버린, 비정한 히스테리아 환자로 몰아, 코드 12란 레이블과 더불어 정신병원에 수감시킵니다. 경찰의 아내였으나 잦은 남편의 구타를 견디지 못해 신고한 여자도 코드 12, 술집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고소를 해도 코드 12 로 정신병원에 구금시키던 경찰세력. 그 힘에 저항하며 싸우는 엄마의 이야기는 사뭇 그리스 신화 속 딸을 찾아 지옥까지 찾아갔던 곡식의 여신 데미테르를 연상하게 합니다. 지옥을 관장하는 하데스까지 무릎을 꿇게 했던 그 엄존한 모습이,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의 우아한 변신을 통해 드러나지요.

 

 

이 영화는 1920년대라고 하지만 거의 말기에 가까운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세계대전 당시 남성들을 대신해 산업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은 기존의 빅토리아 풍의 화려한

레이스와 코르셋, 질질끄는 긴 스커트를 버리고 작은 가슴, 일자형 실루엣의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다시 여성성을 되찾기 시작하지요.

졸리가 입은 드레스가 바로 그런 20년대 말기패션의 정점입니다.

 

1929년 10월 29일 대공황이후, 패션 산업은 급속도로 파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장식과 패턴, 자수와 같은 기술은 완전히 포기하기에 이르렀죠.

그렇다 보니 여성복을 자세히 보면 심플하기 그지 없습니다.

모피로 소매단과 목선을 장식해서 포인트를 두었고

샤넬이 유행시켰던 코스튬 쥬얼리를 하고 있네요.

 

이 당시 패션을 보면 허리 라인을 엉덩이 아래로 가져온

드롭트 웨이스트 라인의 옷과 종모양의 클로슈 모자가 패션의 대세였습니다.

패션의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20년대 패션의 진풍경이었죠.

 

 

크리스티나(안젤리나 졸리)는 아침마다 월터의 키를 잽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연초록색 데이 드레스를 보세요. 이 제품은 레이온 소재로 만든 것입니다.

흔히 비스코스 레이온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레이온이란 소재를 비스코스란 회사에서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20년대 초반만 해도, 인조실크로 알려진 이 레이온은

쉽게 올리 풀리고 광택이 좋지 못해, 실크보다 인기가 없었습니다.

 

이후 1926년 이후부터 생산기술이 발달하면서

란제리와 안감, 데이웨어 등에 자주 사용하게 되었죠.

 

 

무엇보다도 모자 구경 하나는 실컷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920년대 짧게 자른 머리, 보브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머리에 꼭 맞게 덮는 비대칭 형태의

클로슈 모자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샤넬이나 캐롤린 리복스와 같은 유명한 모자 디자이너들은

하루에서 수십종의 클로슈 모자를 디자인해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아이를 찾기 위한 투쟁이 30년이 넘는 기간을

포함하기에, 시기별 패션의 약간의 세밀한 차이들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의상을 맡은 분이 매우 세밀하게 배우의 의상들을 조율한 점을 느낄수 있습니다.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머리길이가 점점 길어지고 여성적이고 우아한 퍼머넌트

웨이브 스타일이 등장을 했습니다. 바로 열을 이용해 웨이브를 만드는 히트 퍼머가 유행했지요.

 

특히 안젤리나 졸리의 헤어스타일을 자세히보면

1930년대초반 유행했던 그레타 가르보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당시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였지요. 그녀의 머리 스타일을 보면

옆 가르마를 하고 바로 아래 모발을 내려거 귀 뒷부분에 크게 소용돌이를 만드는 스타일이었어요.

  

 

1920년대에서 30년대, 남성복 또한 커다란 변화를 겪습니다.

영국 윈저공의 수트가 미국에 그대로 전해져서 버튼 6개의 브이자 형태의 조끼가 유행했고

울 소재의 어깨에 심을 많이 넣은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지요. 허리는 들어가고

힙 부분은 꼭 맞추어서 입었는데요. 바지는 상대적으로 헐렁하게 입었습니다.

남성복에 울이 본격적으로 대세를 이루게 된 시점입니다.

 

1920-30년대 까지만 해도 모자는 여전히 사회적 예법의 일환이었고

모자가 없이 바깥에 나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지요. 위의 사진 속 경찰 반장이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당시 유행하던 페도라(Fedora)란 형태의 모자입니다.

 

 

1930년대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공황을 겪었지만

어두운 현실을 도피하려는 낙천주의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여성의 화장법도 사뭇 화려함을 띄게 됩니다. 30년대의 메이크업을 보면

얼굴을 전체적으로 파운데이션으로 완벽하게 덮고 턱을 좁아 보이게 하는 파운데이션을

바른 후, 아이섀도우는 눈이 움푹 들어가 보이도록 흰색, 검정색, 청색을 이용했죠

 

졸리의 입술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당시 입술화장법이

오무라진 형태보다는 연필을 이용하여 크고 선명하게 그린 후, 빨강색

립루즈로 안을 칠해 입술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영화에선 특히 의상과 시대배경을 20년대에 맞추기위해

세밀한 연출을 했더군요. 그만큼 영화적인 정교함은 더욱 살아있습니다.

이 영화의 말미에 가면 아카데미 시상식을 둘러싸고 어떤 작품이 대상을 받을 까를

전신국 직원들끼리 내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대상을 받은 작품이 바로 1934년작

『어느날 밤에 생긴일』이란 작품이었죠. 클라크 케이블의 페도라 모자가 또한 돋보였던, 이 작품은

흔히 영화사에서 스크루볼 코메디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입니다.

 

스크루볼 코메디란 경제공황기를 배경으로 미국의 사회 경제적인 갈등 속에서

성별/경제적인 차이 때문에 아옹다옹 다투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죠.

잘사는 재벌집 딸과 가난한 기자와의 사랑 같은 류인데, 하나같이 개인과 개인이 결합하면서

공동체로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이야기구조였습니다. 문화적인 갈등과 모순이

마술처럼 없어지고 하나가 되자는 메세지를 전하기에 급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작가의 반열에 오를 감독이라고 느끼는 건

1930년대 초반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날 밤에 생긴일』이 성업하던 시대와 그 내면의

속살을 헤집어, 실화에 근거한 사회의 모습들을 이중으로 병치시킴으로써 당대의 모순을 드러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치경제적 모순이 드러나는 사회일수록

왜 그렇게 매체들은 손쉬운 연예 이야기와 막장 드라마를 제작하는지

이런 식의 사이클이 왜 순환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영화적 현실 속 행복한 결말과, 실종된 아들을 여전히 찾고 있는

엄마의 치열한 투쟁을 대비시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냈다는 점이겠지요.

아이가 실종되고, 엄마가 하루아침에 경찰권력에 의해 정신병자로 취급을 받고 협박을

받는 이 모든 것들이 『어느날 밤에 생긴일』이었을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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