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클림트 전시회 리뷰-베토벤 프리즈 앞에서 얼어붙다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S#1 클림트 전시회 보러 가는 길

 

토요일 2시, 약속했던 블로그 독자분들을 모시고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구스타브 클림트의 전시를 보러갔습니다. 오랜만에 미술관을 향해 걸어가는 길, 볼에 와닿는 바람의 감각엔 겨울의 환은 지워지고 봄의 기운이 미만하게 차오르는 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도슨트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을 한 이상, 저도 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가긴 했는데, 정작 주요작품들 보다는 드로잉 작품과 빈 공방에서 제작한 소품들이 주력을 이루어서 작품 하나하나의 깊은 이야기를 하기 보단, 클림트와 오스트리아 제국의 시대상황, 프로이트의 영향, 장식미술과 총체예술을 지향한 빈 분리파의 미술사적인 위치들을 주로 설명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클림트란 작가를 패션 디자인이란 관점에서 오랜동안 지켜봤고 연구해 왔습니다. 많은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이 그에게 영감을 얻었고, 그가 주로 사용한 장식과 패턴, 무늬를 차용해 그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 오마주를 포현하기도 했죠.

 

 

 

2008년 S/S 영국출신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컬렉션에서

 

 

 

존 갈리아노는 미술품 컬렉터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항상 미술에서 많은 상상력을 빌려오지요. 그의 2008년 봄/여름 컬렉션의 메인 테마는 클림트의 황금빛 유혹에서 빌려온 아이디어가 주를 이룹니다. 장식미술의 대가였고, 수공예 공방을 오랜동안 하면서 화가이기 전에 산업 디자인 작업을 하고, 패션 디자인과 직물 디자인에도 손을 댔던 만능 아티스트였던 클림트의 그림과 작품들은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에게도 동일하게 영감을 주었다고 볼수 있지요. 클림트가 연인 에밀리 플레게와 함께 빈에서 유명한 의상실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클림트의 풍경화를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꽤 여러점이 들어와서 다시 한번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클림트 하면 <키스>나 <희망>과 같은 작품들을 자주 떠올리시는데, 안타깝게도 주요 작들은 정작 뉴욕에 가 있고,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미술관에서 가져온 것이라 주요 그림은 11점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예전 빈을 여행하면서 잘쯔 캄머 구트를 다녀왔기에, 그가 그렸던 풍경 속에 아터제 호수가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아터제 호수는 알프스 기슭의 호수 중 하나입니다. 잘쯔부르크의 동쪽이지요.

 

 

클림트는 매년 여름이면 이 잘쯔 캄머 구트란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냈죠. 세기말의 빈은 퇴폐와 향락, 산업주의로 도시미관은 더럽고, 매춘이 성행하던 곳이였지요. 파리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 시절을 복식사에서 왜 가장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라고 부르는지 의문입니다. 그는 아침 6시면 배를 타고 나가 너도 밤나무 숲에 들어가 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무늬를 그렸고 저녁에는 포플러 나무숲을 그렸답니다.

 

그의 풍경화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정사각형의 형태를 띤다는 것과, 2차원적인 평면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 신인상주의의 쇠라에게서 영향을 받은 점묘법을 이용해 자연과 주변 공간을 잘 녹여낸 화면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배에 이젤을 싣고 호수 중심에서 풍경을 보되 오페라 망원경을 이용해서 산의 형새와 무늬, 형태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줌효과로 인해 화면이 평평해지는 느낌이 들었겠죠. 장식미술의 대가답게 그의 풍경화는 패턴과 구조를 추구하여 마치 자수나 편물작품을 연상시키는 일정 길이의 빽빽함이 드러납니다.

 

게다가 그는 4각형 액자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그리고 싶은 풍경을 포착했기에, 항상 4각형의 풍경이 많습니다. 인간과 절연된 자연을 그려야 했기에 그의 풍경화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들어설 수 없는 밀폐된 다른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고 하네요. 쇠라에게서 배운 점묘법으로 그려낸 색색의 모자이크는 침투할 수 없는 내면의 벽처럼 화가의 마음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장식미술학교를 나와 상업미술에 뛰어들었던 그가 지인들과 함께 이전의 미술가 협회에 항거하며 <비엔나 분리파>를 형성합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동떨어져 있던 빈의 미술을 부활시키기 위해, 서유럽의 작품을 들여와서 전시하고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발굴, 전시시켜 줄 것을 요구 하게 되지요. 오스트리아 정부의 후원으로 사진으로 보시는 빈 분리파 전시관도 마련합니다. 황금빛 올리브잎으로 덮힌 구체가 건물위에 얹어 있죠? 입구에 쓰인 독일어가 눈에 보이시나요?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이란 빈 분리파의 모토입니다. 앞에 보이는 Ver Sacrum은 라틴어인데 성스러운 봄이란 뜻입니다. 분리파가 발행했던 회지의 이름입니다.

 

빈 분리파란 말은 원래 그리스에서 정치적 이의를 표명하는 형식<성스러운 산에서 평민의 분리>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분리파는 건축을 중심에 두고 아래 다른 모든 예술의 평등성을 주장했죠. 공예를 회화나 조각에 종속된 것이 아닌 고유의 권리를 가진 장르로 발전시켰습니다. 토털아트란 표현도 결국은 건물과 각 부분이 동일한 장식적 감수성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는 단어인거죠.

 

 

 

흐르는 물이란 작품입니다. 흐르는 물 속을 부유하는 여인의 형태가 마치 무중력 상태를 떠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당시 클림트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유럽의 상징주의 미술에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 효과들이 그림 곳곳에 드러나지요.

 

왼편에 보이는 것이 바로 독일의 조각가였던 막스 클링거가 제작한 베토벤 조각입니다. 미술사책을 뒤져보니, 막스 클링거의 작품은 다소 혼성적인 성격이 강했다고 하네요. 당시 신의 위치로까지 격상되었던 음악가 베토벤을 위해, 막스 클링거는 독특한 작품을 만듭니다. 권태로움과 고전적인 이미지가 교묘하게 결합된 그런 작품이었죠.

 

이 작품은 다채색 조각상입니다. 물론 채색을 한 것은 아니고 색과 형 질감을 가진 돌을 조합해서 만든 것이죠. 베토벤 상의 경우, 토르소와 발은 순백색 대리석으로 했고, 의상은 갈색 기운이 도는 설화석고로, 앉은 좌석은 암적색과 청색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혼란 스러운 장식과 색채, 질감, 화려한 보석들을 배치시켜 당시 예술가인 베토벤을 신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미와 진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성스러운 의식을 주관하는 일종의 사제처럼 표현합니다. 그는 조각가 클링거를 통해 악성 베토벤을 넘어 정신의 제사를 주도하는 사제가 된 것이죠.

 

클림트를 비롯 비엔나 분리파는 이 막스 클링거의 작품에 모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클림트 또한 이 조각을 위해 삼면에 벽화를 그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베토벤 프리즈입니다. 이번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는 베토벤 프리즈는 원형을 보존하여 투어용으로 만든 버전입이다.

 

거대한 리프로덕션 작품인 셈이죠. 가벼운 재질의 보드를 이용하여 만든 이 작품은 전 세계를 다니며 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베토벤 프리즈가 설치된 14회 분리파 전시회는 지금의 기준으로 해도 블록버스터 전시로 성공을 거둡니다. 5만 8천명이란 엄청난 인원이 이 전시를 구경했다고 하더군요.

 

 

베토벤 프리즈는 삼면에 그려진 그의 거대한 벽화작품을 말합니다. 프리즈란 것이 바로 석고벽이란 뜻이죠. 지하 전시실의 삼면을 길게 둘러싸고 있는 이 작품은 무려 총길이 34m에 이르는 벽화입니다. 

        Klimtroom in the Secession. Foto: Magherita Spiluttini

전시회 이후 작품은 철거, 훼손되었고 한동안 어느 수집가에 의해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져 보관되던 것을 1973년에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구입하여 1986년부터 특별히 마련된 이곳 전시실에 안치되어 오늘날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분이 클림트 하면 항상 떠올리는 황금빛 그림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과 같은 작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왼쪽부터 시작하여 작품은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왼쪽 벽면의 ‘행복의 열망’으로 여인들이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부유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 한가람 미술관의 클림트 전에도 이 베토벤 프리즈를 원형이 보존된 방의 형태 그대로 살려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이 방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아쉽더군요. 그 의미를 제대로 알면 정말 재미있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클림트의 화가로서의 성장과정에 일종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라서 꼭 보셔야 된답니다. 전시장에 가서 베토벤 프리즈가 있는 방에 가시면 베토벤 교향곡 9번 음악이 흘러나올겁니다. 이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고, 총 3점의 벽화가 음악의 주요 단위와 맞물려 있습니다. 이점 숙지하시면 그림을 보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전시 보시기전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미리 듣고 가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옆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쌍의 남녀와 그들 뒤로 보이는 연약한 소녀를 묘사한 ‘허약한 인류의 고통’과 금빛 갑옷과 칼로 무장한 기사를 표현한 ‘무장된 초인의 유원함’이 이어져 있습니다. 기사 뒤로는 승리의 화관을 들고 있는 여인이 있는데, 이 여인은 야망을 뜻합니다. 머리에 살포시 손은 괸 여자는 공감의 의미입니다. 그 힘이 기사로 하여금 행복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승리와 행복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타자로부터의 공감과, 세상을 향한 내면의 야망임을 보여줍니다.

 

      

 

앞쪽 벽면에는 ‘적의의 힘’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거대한 괴물 티포에우스가 고릴라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약간 코믹한 느낌까지 드는 건 사실입니다. 참고로 티포에우스는 반인반수의 괴물을 의미합니다. 폭풍을 의미하는 타이푼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죠. 진주로 눈을 박아 넣고 마치 뱀처럼 생긴 악의를 상징하는 파란 날개가 벽 전체를 뒤덮고 있고. 고릴라 뒤로 보이는 ‘세 명의 고르곤’은 죽음, 허약함, 광기를 설명합니다.

 

 신화에서 고르곤은 스테노(강한 자), 에우리알레(멀리 뛰는 자), 메두사(여왕)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소는 이들을 가리켜 바다의 신 포르키스와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케토 사이에 태어난 딸들이라고 했습니다.

 

아테네 전설에서는 신들에 대항하는 아들들을 돕기 위해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고르곤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초기의 고전미술에서 고르곤은 날개 달린 여자들로 나오는데 머리카락은 뱀들로 이루어졌고 둥근 얼굴과 납작한 코, 축 늘어뜨린 혀, 튀어나온 큰 이빨을 가졌습니다. 그들 중 메두사만이 유일하게 생명이 한정된 존재였기 때문에 페르세우스가 목을 잘라 죽일 수 있었습니다. 메두사의 머리는 누구든지 보기만 하면 돌로 변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관능과 무절제를 상징하는 자유분방한 여인은 파란색 드레스를 걸치고 있으며 구부리고 있는 여인은 비탄에 찬 큰 고통의 상징입니다.

 

오른쪽 벽면의 빈 여백 이후에 보여지는 리라를 든 여인은 행복에 대한 동경을 상징하며 가장 마지막 부분은 합창단 사이에서 뜨겁게 포옹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둘의 발목은 푸른 실로 꽁꽁 묶여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작품은 한 편의 시로 완성되지요. 클림트는 이 길고 끝없는 작품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순수한 기쁨, 절대적 사랑만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왕국’에의 갈망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클림트가 그린 <아담과 이브>입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 그림을 가리켜 팜므파탈로서의 이브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는데, 저는 꼭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냥 찰랑찰랑한 풍성한 금발머리를 내린 이브의 모습이 곱다는 생각. 에로스의 상징이라는 호피무늬와 이브의 발 아래 다산을 상징한다는 아네모네 꽃의 색감이 눈길을 끌었다는 정도네요.

 

고대 켈트신화에서는 호랑이 무늬, 호피는 항상 내면속에 잠재된 거대한 정염의 불을 상징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상징의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남성을 파멸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

 

그런 팜프파탈을 그리고 싶었다지만, 정작 화가의 이력과 역사를 보면, 그가 여성을 오히려 울린적이 더 많지않나 싶습니다.  핑크빛 유두가 곱고 발그레한 볼의 빛깔도 곱습니다. 너무 예뻐서 한참을 바라봤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그림 한장 본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번 클림트 전이 마무리 되면 다시는 투어 전시를 볼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기에, 이번 전시는 꼭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다만 아쉬운 것은 대부분 임대 전시다 보니 드로잉 작품이 대부분이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림들은 정작 몇 점 되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사기당한 느낌을 받는다는 평을 하는 걸 종종 듣기도 합니다.

 

드로잉도 자세히보면, 마치 건축의 세부 설계도처럼 그의 필치와 캔버스에 그려낸 세상의 조감도를 알수 있건만, 채색이 되어 있지 않단 이유로 약간 홀대하는 것도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정작 미술을 좋아하는 단계를 어느 정도 넘어가면 드로잉의 매력에 빠질수 밖에 없거든요.

 

 

 

 

 

 

 

클림트의 <아기>를 볼수 있었던 것도 행운입니다. 화가가 죽기전 1년전에 완성한 작품인데요. 완성하는데 4일 밖에 걸리질 않았다는 군요. 그래서인지 다른 그림과 비교할때, 배경처리나 장식적인 패턴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클림트의 그림에 비해 조금 단순한 느낌도 듭니다. 삶의 순환고리를 이루는 아이의 이미지를 그리며 화가는 다시 태어날 자신의 영혼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작품 속 주인공은 아밀리 주커칸들이란 여자입니다. 그녀는 당시 클림트의 지인이자 비평가였던 베르타 주커칸들의 동서였죠. 연초록 배경으로 미만하게 황토빛 투명소재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고혹적이었습니다. 그녀는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간호사 활동을 위해 고국을 떠나게 되는데요 그래서 아쉽게도 미완성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목 부위의 검정색 초커가 눈에 들어오죠.

 

 

개인적으로 시대 의상을 좋아하다보니 한눈에 들어온 그림입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마리아 브로니크란 여자인데 돈 많은 상업가와 결혼하면서 인생이 폈나 봅니다. 그래서 당시 클림트와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레게가 운영하던 의상실의 단골 고객이었다고 하네요. 검정색 벨벳 드레스가 아름답습니다. 이 뿐인가요? 둔부를 감싸고 도는 당시의 복식 형태가 눈부십니다.

 

 

그림 속 의상 또한 클림트가 디자인한 작품이랍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화가이구요. 의상에 들어간 패턴과 장식무늬 또한 배경의 밋밋한 느낌과 대조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토해냅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잠깐 유행한 8대2 가르마처럼 보이는 곱슬머리 스타일이라네요. 여기에 검정색 털로 장식한 네크웨어도 눈에 들어옵니다.  

 

 

총 12분을 모시고 함께 한 클림트 전시회였습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하긴 했는데, 뒤돌아보면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패션을 좋아하다 보니, 이번 전시에 나온 빈 공방 시절의 다양한 상품의 디자인을 많이 봤습니다. 이 또한 좋은 경험이었지요. 그림 설명을 끝내고 사진 한컷 찍고,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더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셨지만, 인원이 너무 많으면 힘이 분산되기에, 10명 정도로 한정했어요. 작년 겨울 도슨트가 되겠단 약속은 지켰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기회 만들어서 여러분과 뵐께요.

 

미술을 좋아하는 분이 부쩍 늘고 있음이 제겐 큰 힘이 됩니다. 미술의 역사를 공부하고 작품을 읽어가는 일이 꼭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이 아니라 오를만한 쉬운 언덕에서의 쉼이 되길. 그 행복한 산책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한주 시작이네요. 행복하세요.

 

 

 

음악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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