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사랑 앞에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영화 '엘레지'리뷰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S#1-사랑후에 오는 것들

 

영화에 대한 리뷰를 올릴 때마다, 고민을 할때가 많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후, 완전히 스토리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썩 길지 않기 때문에, 바로 글로 정리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간, 기억의 소실과 더불어 영화에 대한 감흥을 담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최근 상영되는 미국 영화들 중 상당수가 무비 타이즈 인(Movie-Ties In)의 형태로 마케팅을 하기 떄문에 관련 소설이나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영화에 대한 후술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이겠지요.

 

오늘 소개할 영화 엘레지는 바로 유명한 퓰리처상 수상자인 필립 로스의 소설 『The Dying Animal』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소설을 읽고난 후 본 영화 작품이라, 소설 텍스트와 영화를 함께 비교해 볼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소설을 읽을 때 가졌던 호흡과 영화 내의 화면구성에서 드러나는 호흡의 차이들을 가늠해 보는 재미또한 있었죠,

 

생각보다 필립로스는 미국 내의 인지도에 비해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소설 작품 중에 번역된 것도 많질 않고요. 사실 이번에 영화화된 The Dying Animal도 <가슴 Breasts>과 <욕망에 사로잡힌 교수 Professor of Desire>의 3부작 마지막 연작입니다. 앞의 두 소설과의 내용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결국 작가의 철학을 포괄적으로 연계해서 읽어낼 수 있기에 반드시 함께 읽어봐야 한답니다.

 

영화 속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문학비평가 데이빗 커페쉬는 어느날 수업시간에 들어온 콘수엘라라는 여학생에게 마음을 빼았깁니다. 그녀는 11살때 미국으로 건너온 쿠바출신의 여인으로 로펌의 비서를 거쳐, 문학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을 하죠. 데이빗(벤 킹슬리 분)은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 분)를 보고 '우아한 엄격함이 있다며 그녀를 자신의 칵테일 파티에 초대합니다. 여기서 잠깐 교수역을 맡았던 벤 킹슬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어린시절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간디역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 영화로 1982년 아카데미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었죠. 이후로도 '쉰들러 리스트'와 '교전규칙과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선 굵은 영국 특유의 선 굵은 연기로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영화로 들어가서 콘수엘라에게 한눈에 반한 데이빗은 그녀를 칵테일 파티로 초대해서 피아노도 연주해주고 하룻밤의 격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소설이나 영화 속 모두 가상의 인물인 데이빗은 기본적으로 쾌락주의자입니다.

 

사업에 바빴던 것으로 보이는 아내와도 육체적으로만 관계를 맺을 뿐, 감정에 기반한 교류나 관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지요.

 

영화가 시작되는 초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미국의 청교도들이 성적으로 매우 엄격한 위선을 갖게 되었다며 자신이 쓴 <미국 쾌락주의의 역사>란 책에 대해 열렬한 옹호를 하는 모습이 보기기도 하지요.

 

칵테일 파티에 초대된 콘수엘라에게 스페인의 궁정화가 고야가 그린 <옷을 입은 마야>의 그림을 보여주며 그림 속 여인이 콘수엘라를 닮았다며 칭찬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소설 속 표지에는 모딜리아니의 <거대한 누드>를 사용했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들긴 합니다.

 

30년이란 나이차를 극복하기 어려운데다, 자꾸 질투의 감정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데이빗은 고민합니다. 육체적 관계가 정서적 관계로 발전되는 일이 두려웠던 그는 그녀를 떠나게 되지요. 몇년의 세월이 흘렀을까.

 

그녀는 데이빗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만큼 나를 사랑해준 이가 없다며" 유방암에 걸려 곧 가슴 한쪽을 도려내게 되는데 그 전에 사진을 찍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바로 모딜리아니의 그림 처럼, 그 속에 담긴 여인의 향기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에 들어가게 되죠. 세계의 명감독이 참여했던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에서 바스티유 편을 만들었던 여성감독 이자벨 코이셋. 많은 비평가들이 그녀의 연출력을 가리켜 여성적 특유의 섬세함과 절제미를 가졌다고 이야기 합니다만, 사실 이 정도의 설명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녀는 스페인의 영화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가장 아낀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페넬로페 크루즈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겠죠. 페넬로페 크루즈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뮤즈랍니다. 그가 연출한 영화 <귀향 http://blog.daum.net/film-art/8641490 >에도 페넬로페 크루즈가 등장하지요.

 

 

문학과 에로티시즘은 그리 신선하지도 남다른 소재도 아닙니다. 다만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대한 솔직한 시선들을 담는 노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지요. 육체적 관계 이후의 문제, 사랑이란 감정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필립로스의 시선과 이를 따뜻한 화면 속에 담아내는 감독의 영상미는 왜 단순하게 화면구성이란 표현보다, 각 씬들의 미학적인 구성과 이음새 없는 연결을 의미하는 미장센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한지 보여줍니다.

 

데이빗이 칠판에 쓴 이름을 보니 롤랑 바르트네요. 개인적으로 영화 기호학을 비평언어로 공부한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호학 내부에도 많은 비판과 변화가 생겼지만 사실 일일이 그 내용들을 추적해 머리 속에 담아내는 일에 게을렀지요. 그가 쓴 <모드의 체계>는 복식을 공부하는 제게도 큰 도움이 되었던 책입니다. 그가 쓴 일본제국의 여행기 <기호의 제국>도 떠오르는 군요. 무엇보다도 영화나 소설작품 모두, 시대에 따라 읽는 이의 입장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 12살때 읽었던 햄릿이 어른이 되어 읽을 때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것. 결국 수용하는 자의 몫으로 돌려야 하는 문학의 역할에 대해 이 영화를 보며, 작품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최근들어 바르트의 많은 저작들이 한국에 번역이 되어 나왔기에 한번 쯤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어제 <글쓰기의 영도>란 그의 책을 사서 들어왔어요.

 

 

개인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많은 언론들이 페넬로페 크루즈의 연기에만 특필을 하는 현실이 조금 아쉽습니다. 데이빗의 절제된 연기 속엔, 30년이란 나이차이를 극복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남자의 패색짙은 페이소스가 담겨 있었고, 그와 현실적 육체관계를 지속하는 캐롤린 역의 패트리샤 클락슨 또한 연극무대에서 쌓은 오랜 관록을 한없이 녹여냈습니다. 비단 페넬로페 크루즈의 연기에만 몰입하는 건 영화 전체에서 연기가 차지하고 있는 몫을 설명하는데 부족합니다.

 

 

두 사람이 엮어내는 화면 속 사랑은 매우 탐미적입니다. 모든 영상 속 두 사람의 호흡, 섹스신이건, 혹은 벤쿠버의 화려한 풍광 속을 거닐던 연인의 모습이건, 그 속엔 여성 감독만이 포착할 수 있는 여성적 호흡이 숨쉬고 있지요. 그 호흡의 섬세함을 따라, 미세한 욕망의 균열과 사랑앞에 머뭇거리는 남자의 심리를 읽어내는 작업은 우아하고 엄격미를 가집니다. 오랜 세월 문학비평가로 살아온 남자의 서재와 피아노가 있는 방, 실내풍경은 남자 주인공의 연기를 더욱 끌어내기 위해 친숙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극적 소도구들이 기호적인 연금술을 불러일으키죠.

 

 

사랑이란 감정이 앙금처럼 쌓여 우리 속 내밀한 풍경을 구성하고 이것이 오랜 시간속에 숙성될 때, 자연스레 드러나는 마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사랑앞에 뒤 늦은 후회를 하지 않는 법이랄까. 후회없는 사랑은 없다지만, 다가온 사랑 앞에서 너무 머뭇거리며 놓쳤을지 모를 당신의 그 사랑을 이 영화는 한번쯤 환기시켜준다는 점.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끌리더군요. 영화 속 음악도 선곡이 아주 좋았어요. 에릭사티가작곡한 Gnosiennes No3가 퍼져나오며 그들의 위태로운 관계를 설명합니다. 관계의 빛깔을 이렇게 음으로 담아내는 것도 연출의 힘이라고 봐야겠지요.

 

오늘이 April Fool's Day, 바로 만우절이죠? 사랑앞에서는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라면서......

 

 

음악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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