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계란프라이로 뒤덮힌 거리-환경미술, 세상에 말을 건내다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회색빛 하늘 아래, 서울이란 익명의 도시를 걷다보면 다양한 종류의 표지판들을 만납니다. 지하철 내의 방향표시에서 부터 거리의 사인포스트, 허물어진 거리의 벽화, 산책로에 놓여진 돌로 만든 벤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도시란 캔버스천 위에 그려진 거리가구입니다. 건축을 하시는 분들은 이걸 가리켜 Street Furniture라고 부릅니다.

 

순수미술을 하는 분들은 공공미술의 영역에서 이런 부분들을 살펴보죠. 환경의 일부로 조각이나 작품이 편입된다는 의미에서 흔히 환경미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런 공공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환경미술작품을 살펴봅니다. 네덜란드의 행크 호프스트라가 도심거리 광장에 설치한 100피트 길이가 넘는 거대한 계란 프라이 설치물입니다

 

 

정말 거대하지요? 6개월이란 한시성을 갖고 도시의 표면을 덮은 백과 황의 조율감. 계란 프라이로 뒤덮힌 도시의 빛깔이 경쾌합니다. 왠지 이곳을 지나다보면 배고픔이 경감될것 같기도 하고요. 환경미술은 보존이 용이하지 않아서 설치 과정을 비디오 레코딩을 통해 남겨둡니다. 그만큼 설치과정 자체, 프로세스가 정치적인 퍼포먼스가 되기도 하고, 사회에 대한 발언이지요.

 

1960년대 도시를 가득 매운 인공 건축물에 대항해, 자연의 일부를 천으로 감싸기도 하고 예술품을 박제처럼 보관하는 박물관과 싸우기 위한 대지미술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뒤돌아보면 호흡을 잃은 인간이 자신의 공간을 성찰하면서 반작용으로 나오게된 미술 운동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서울이란 도시는 미감이란 불리는 단어를 쓰기가 참 어려운 곳입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공무원들의 탁상행정과 서구의 150년 주기의 재개발은 건설족의 정치권력과 결탁해 30년이란 짧은 시간을 두고 연속적으로 도시를 파괴하고 새로 짓습니다. 단기적인 부동산 가치는 올라갈지 몰라도, 결국 남은 것은 얼기설기 찟어진 헝겁조각을 이어 붙인 불균일한 퀼트조각처럼 되어 버렸죠.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고 일괄적으로 계획을 추진하고, 하천을 개발하고 4대강 유역 정비란 이름으로 주변의 지가만 올렸지, 강물을 따라 자연스레 개발되었어야 할 인간의 마을과 그 속의 거리가구, 환경전반에 대한 조율점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것이 빠릅니다. 전쟁 후 우리가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기적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 그 빠름의 미학이 가져온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도시 미관이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하지만 결국 지하철 역세권 안에 들어갈 아파트를 얼마나 인공적으로 꾸미고, 문화 복합시설 하나 유치해서 주변 상권의 값이나 올리는 데 혈안이 된 우리들이 무슨 미감을 이야기 하고 미학을 이야기하는지요.

 

행크 호프스트라가 만든 저 거대한 계란 프라이 설치물은 잦아들어가는 유럽경제를 위해, 환한 격려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제겐 저 노란색 계란을 누군가에게 확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입으로만 성찰을 떠드는 사회. 결국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대에서, 자신이 희생할 생각은 전혀없는 사회. 그 구성원들 모두에게 확 달걀 세례를 퍼붓고 싶은 요즘입니다. 자기성찰적 사회가 되지 못하는 한, 그 도시의, 국가의 지속가능성은 한없이 떨어지고 말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경제살리기를 운운하며, 정작 우리 안에 살펴봐야 할 마음의 태도와 습관을 새롭게 하지 못하고, 경제란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수렴시키는 사회는 위험사회입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선, 경제살리기를 운운하며 그저 건설족의 배만 채우려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몰락하는 기적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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