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패션잡지를 읽는 이유-시대의 표면위를 걷다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패션매거진을 읽는 시간

 

큐레이터의 서재를 꾸미면서 많은 단행본을 구매하고 관련 잡지들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이번달엔 220불을 주고 어렵게 구매한 인상주의 시대의 이탈리아 출신 화가 지오반니 볼디니의 한정도록이 들어왔습니다. 인상주의라는 시대는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시대적 개념이지만 하나같이 프랑스의 인상주의가 대부분이죠. 그들이 그린 파리의 풍경과 여인, 패션의 풍경은 너무나 부드러운 붓터치로 벨벳처럼 그려진 탓에, 당대의 패션을 너무 예쁘게만 받아들이기가 쉽답니다. 지오반니 볼디의 그림터치는 지금으로 치면 약간 로모 카메라로 찍은 풍경같다고 할까요? 그가 그린 파리지엔의 패션이 다소 독특한 색감을 자랑하는 건 그런 이유일겁니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분들이나 패션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잇는 분들에게도 좋은 통찰력을 줄 거 같아 힘들게 구했습니다.

 

이외에도 패션 디자이너의 전시도록으로서 가와쿠보 레이의 전시를 담은 <Refusing Fashion> 화려한 색채의 마술사 다카다 겐조의 여정을 담은 <겐조 40주년> 한 장의 천으로 옷을 조형해온 '건축적 패션'의 철학자 <이세이 미야케>의 전시도록이 입고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1950년대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당대 상층 부르주아 귀족들의 화려한 패션을 정리한 <Chicago Chic>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런웨이의 이면을 다룬 <Backstage Dior>가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단행본 이야기는 이 쯤하고 잡지에 관하여 몇 마디 드리려 합니다. <보그>나 <엘르><하퍼스바자><WWD><DAZED & CONFUSED>과 같은 기존의 매거진 이외에도 한국에서 패션관련 매거진의 종류는 거의 손으로 셀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16세기 화가들이 판화로 당대의 의상을 재현하고 설명을 붙이는 원시적인 책자들이 나온 이후로, 패션 매거진은 여성의 자아와 정체성의 형성, 근대의 자본주의와 쇼핑이라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패션 도서관을 세우고 그 속에 들어갈 컨텐츠들을 모으겠다고 결심하면서, 몇 가지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협소함을 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료의 디지털화가 시급하고 다종의 정기간행물 또한 관심을 갖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대중적인 패션 잡지 이외에도 디자인 작업을 하는 분들에게 영감이 될 만한 통합적 관점의 매거진이 필요합니다. 건축에 비중을 둔 <DOMUS>외에도 패션과 건축, 디자인과 문화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매거진을 중심적으로 구매해서 컬렉션 할 생각입니다. 오늘은 그래서 <WAD>와 <SURFACE> 두 권의 잡지를 소개합니다.

 

통합적 관점에서의 글쓰기가 눈에 돋보여서 구매하기 시작한 매거진입니다. 특히 쉬르파스는 건축과 디자인 순수미술, 패션을 한 자리에 묶어 따로 따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상호간의 영향력과 그 힘의 정도를 함께 풀어내는 기사들이 종종 들어있어 즐겨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베네치아에 새롭게 공방을 연 루이비통 내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현대화된 기계를 통해 구두를 만드는 장인들의 면모들이 드러나 있더군요. 이외에도 디자인 페어의 다양한 오브제 하나하나를 읽어가면서 시대의 표층과 표정을 짚어내는 글들은 꽤나 영양가가 있습니다. 제가 디자이너들(장르에 구분없이)의 사고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인간의 제 2의 옷'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패션 매거진이 눈에 띄는 건 장르별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상상력을 교류하는 방식이 좋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이런 '경계지르기'를 실제로 행하면서 글로 표현해낼 수 있는 견고하고 두터운 필진이 있다는 점이죠. 여기에 비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국판 패션 잡지들 만드시는 분들, 그 속에서 자칭 '수석 에디터'로 활동하시는 분들, 많은 반성이 필요합니다.

 

비전공자로 패션의 역사와 이론을 공부하면서 저술작업과 강의에 열을 올리다보니 사실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 특히 의상 디자인과 일반 디자인 학생들이 꼭 봐야 할 좋은 책이나 잡지들은 분과별로 다 차이가 조금씩 있어서 제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죠. 미국의 저명한 도서관과 접촉해 관련 분류법을 하나씩 배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요즘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민간에서 하는 도서관일지라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데이터베이스의 접근이 어려우면 아날로그 도서관에 머물고 맙니다. 이걸 극복해야 하고 결국 막대한 돈을 들여서 외국의 비싼 데이터베이스를 사야합니다. 해외 논문 및 저널들, 정기간행물들을 고화질의 이미지와 PDF로 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입니다.

 

저도 유학을 했지만 학비가 비싼 대학들, 최고의 학교들일 수록 데이터 베이스에 들어가는 목록들이 탄탄하지요. 국가에서 제대로 된 전문도서관을 운영하지 않는 한국이기에, 이 모든 것이 민간의 노력에 의해서 겨우 이뤄질 것 같습니다. 그걸 위해 오늘도 이렇게 바득바득 대는 것이죠.

 

패션 도서관이 없는 나라. 디자인 전문 도서관이 없는 나라에서 세계 10대 패션 브랜드, 혹은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지경부가 떠드는 나라입니다. 기본적인 서지작업도 없고,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디자인 센터를 짓겠다며 운운하는 현 서울 시장의 모습도 썩 마뜩치 않습니다. 어찌된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디자이너를 키우려는 밑그림을 보여주는 사람은 없고, 그저 자신의 임기 중에 뭔가 눈에 살짝 띨 만한 것들만 보여주려하는데 혈세를 쓰려 하는 것인지 저는 분개합니다.  

 

세계적인 패션의 도시가 되려면, 패션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만큼 유행현상에 대해 예민하면서도, 때로는 거리를 두고 자신의 관점과 미를 찾아가는 이들이 많아야만 가능합니다. 그것이 스타일의 본질이고 유행이란 집단적 모방 현상 속에서도 '나 자신의 중요함을 찾아가는 방식이 되는 것이죠.

 

디자이너들은 이런 사람들을 만날수록, 대화할 수록, 자신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정신적 촉매를 만날 수록 내부의 열정에는 불이 점화될 겁니다. 우리는 언제쯤 꿈꾸게 될까요? 주가가 얼마를 돌파했다고 삼성의 주가가 언제까지 고공행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언론은 치열하게 광고를 벌이지만, 항상 허한 마음이 있습니다. 맨날 말만 번지르르한 현상의 배후에, 척박한 우리들의 감성과 그것을 벼릴 도구가 없는 사회는 불행합니다. 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저란 한 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기만 합니다. 여러분의 집단적 도움과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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