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리움 미술관의 아니쉬 카푸어 전 리뷰-상처를 치유하는 생성의 힘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토요일 아침, 전날 밤새 내린 겨울비로 말끔히 씻어내린 포도 위로

종종 걸음을 했습니다.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아니쉬 카푸어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죠. 매지구름이 곱게 떠다니는 초 겨울의 시간이 곱기만 합니다.



아니쉬 카푸어는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작가입니다. 1954년 뭄바이에서 

출생하여 19세가 되던 해, 영국으로 건너와 혼지예술대학과 첼시 미술학교를 졸업

했습니다. 저는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를 꽤 자주 봤습니다. 뉴욕을 비롯한 서유럽의 대형 갤러리

에서 그는 항상 인기작가였지요. 이번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전에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인도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2007년 초, 한국의 미술시장이 활황일 때, 중국미술과 더불어 차기세력

으로 등장할 인도미술에 눈을 떴고 그때 다양한 작가들을 당시 한가람 미술관의 큐레이터셨던

송인상 선생님을 통해 뵙곤 했지요. 물론 국적은 영국이지만, 아니쉬 카푸어의 명상적인

작품들은 자신이 태어난 인도적 가치, 안과 밖, 자연을 맞닿은 인간의 감성을

실로 예민하게 짚어내고 숭고한 존재가 되도록 일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11시 도슨트 투어에 맞추어 간 덕에 꼼꼼하고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도슨트 분의 패션감각도 아주 남달랐는데요. 지금 설명하고 있는 작품은

오목한 금속판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이 반전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물성은 분명 강력한 철이지만

그 위에 투영되어 있는 우리 자신들을 잡으려면, 굴곡차 때문에 어딘가로 끊임없이 달아

나고 말지요. 우리는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자신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섬유유리와 안료로 만든 작품입니다. 1990년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아니쉬 카푸어의 대표적인 테마, 바로 Void 시리즈의 하나입니다. 제 카메라가

색을 살려내지 못했네요. 짙은 청색의 세 개의 구체가 벽면 위에 붙어있습니다. 마치 푹 

패인 채 박혀버린 것처럼요. 저는 작품의 청색이 참 좋았습니다. 마치 이브 클랭의 청색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요. 원은 동 서양을 통털어 항상 창조와 탄생을 의미하는 공간입니다.

여성의 자궁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죠. 청색이 끌렸던 건 다름 아닌 심연의 바다색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심해잠수를 좋아하고 형에게서 배웠던 탓이지요. 



이 작품제목은 YELLOW 입니다. 황색입니다. 단순하게 황색의 기호를

드러낸 작품은 아닙니다. 거대한 모노크롬 회화 작품인데요. 가까이 가서 보시면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영화 장면에서 어딘가로 빨려들 것 같은 그런 심연의 구덩이가 실제로

패여 있습니다. 미술관에 인위적으로 가벽을 만들어서 3미터의 깊이로 파 넣었습니다. 



리움 미술관은 오전부터 관람객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니쉬 카푸어의 

동아시아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기 때문이죠. 작품의 제목은 '내가 임신했을때'

입니다. 그는 음과 양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돌출과 함몰된 오브제들을 이용합니다. 

부풀어 오른다는 것은, 어떤 것을 세상 속으로 잉태할 준비가 되었음을 표현하는

일종의 기호입니다. 그는 무한한 벽면 위에, 두 요철무늬의 대상을 집요하게

녹여냄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대칭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바로 이것입니다. 

제목은 나의 붉은 모국 My Red Homeland 입니다. 자연을 복제한 듯

거대한 산의 실루엣을 덮고 있는 건, 붉은색 왁스로 일종의 토양입니다.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요. 자세히 보면 시계의 형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있는 것은 시계바늘인데

망치 형태로 되어 있지요. 재미있는 건 시간에 따라 이 망치 바늘이 돈다는 것입니다. 

이 시계는 아마도 창조와 멸망이 돌고 도는 우주의 시간일 듯 합니다. 그 속에서

시계 바늘은 자기를 스스로 생성하고 만들며 자연의 흔적을 남기고 가죠.



평론가들은 아니쉬 카푸어의 초기작들은 보이드 시리즈라고 부릅니다.

보이드(Void)란 빈 공간입니다. 하지만 마냥 텅 비어있는 곳이 아니지요. 오히려 

이 개념을 가장 깔끔하게 설명하려면 성경에서 창세기의 첫 장을 인용하는 것이 편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며 공허하며"에서 이 공허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보이드

입니다. Void를 다른 영어성경에서는 Formless Mass 라고도 써 있습니다. 그만큼 형태가 없는 일종의 덩어리

질량 덩어리인 셈이죠. 이 보이드를 더 멋지게 설명하려면 요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해도 

좋지 싶습니다. 공허는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기운이죠. 이는 신비로운 현상을 일으키며 물질으로 

표현된 우주입니다.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이 보이드를 참 기가막히게 그려냅니다. 

설치와 조각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두 세계의 만남과 조우를 표현한 것이죠. 

위의 작품은 <나의 몸, 너의 몸>이란 것인데요. 마치 여성의 성기를 

그 내부를 들여다보는 깊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새로운 모델을 위한 실험실>이란 작품입니다.

아크릴을 부어서 만들었는데 굳기 전에 공기를 주입해서 마치 해파리가

유영하는 듯한 사물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어냈내요. 



아니쉬 카푸어는 항상 작품을 통해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허물어왔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는 단단한 물질을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놓지만, 그 세계는 마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정신의 세계를 표현해서 보여준다는 것이죠. 굉장히 명상적인 조각이면서도 

정신을 건축하듯,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작품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동굴(Cave)란 작품도 그런데요. 코텐 스틸(Corten Steel)이란 소재를 사용

했습니다. 자연에 자연스레 놓아두면 풍화된 듯한, 녹슨 표면을 가진 

강철로 변하도록 만들어진 합금된 강철이지요. 이걸 사용해서 

자연에서의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표현한 듯 보입니다. 



원래 리움 미술관에 가시면, 옥외 작은 정원에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이란 거미 작품이

놓여 있었죠. 이번 전시와 더불어 사라져 아쉽지만, 대신 멋진 카푸어의 작품이 자리 했습니다.

작품 제목은 <큰 나무와 눈>입니다. 마치 투명한 금속으로 주변의 사물을 반사해내며 찬란하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거품같은 이 작품. 왜 제목이 큰 나무와 눈일까요? 작가는 독일이 낳은 시인 릴케가 쓴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란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소네트란 시의 형식이고요. 이 릴케가 쓴 시의 내용은 바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현실과 신화 등 대립되는 세계를 그렸습니다. 오르페우스는 거문고를 잘 탔죠.

그래서 그가 연주를 하면 나무들도 신이 났는지,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생명력의 탄성력이겠지요.

이런 연주실력을 칭찬하는 릴케의 시 구절을 따서 이렇게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스테인레스 스틸 공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마치 그 자체로 인간의 

눈을 형상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인간의 성장은 타인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은 아닐까 문득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지지와 성원

격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오롯한 생이었음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늘 거울이란 작품입니다.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네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보는 시간, 거대한 자연을 투영하는 대형 설치작품들과

조각을 보면서, 인간의 내면에서 면면히 숨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음에 대한 작가적인 

태도를 엿보았다고 하면 어떨까요? 코발트 블루빛으로 가득한 초겨울의 어느 날,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보며, 그의 작품을 찍으며, 그 세계 속에 어느덧 녹아드는 저를 발견합니다. 다름 

아닌 치유의 시간이었지요. 숭고함의 재발견이랄까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음악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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