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한국 가곡에 젖는 밤-소프라노 김혜선의 음악회에서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어제 다음포털이 내주한 일신방직 건물에 갔다. 다양한 건으로 다음

포털을 종종 찾아가곤 했지만, 건물 내의 아트홀 공연을 위해 가보긴 처음이다.

소프라노 김혜선의 한국가곡 공연은 네번째, 한국의 숨은 가곡들을 찾아 소개하는 연주 

공연이다. 파버 카스텔의 이봉기 대표님께서 초대해주신 덕분에 오랜만에 음악회

에 갔다. 연극이나 뮤지컬, 미술 전시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음악회는 그 

특성상 상연기간이 아주 짧아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친다.



한남동 일신방직 사옥은 건물 자체부터 강력한 힘을 품는다. 원로 건축가인 

우시용씨가 설계한 건물이다. 평론가들 사이에선 어깨에 너무 힘을 준 건물이란 평. 

사실 주변부와 조화되는 건물은 아닌 듯 했고. 건물 내부에는 일신방식 김영호 님이 

직접 모은 미술 컬렉션들이 있다. 정면에 설치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브네의 조형물 부터 시작

회화, 조각, 설치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들이 놓여있다. 다음 포털에 강의 갔을 때도

하나씩 살펴보곤 했는데, 음악회 30분 전에 도착하여 천천히 또 돌아봤다. 



미술이 인간이 가진 시각의 구조를 빚는 영역이라면, 음악은

인간의 청각을 통해, 호소력이란 미덕을 되살리는 영역이다. 어린시절

부터 줄곧 피아노를 쳐왔지만, 클래식 기크, 흔히 말하는 광은 되지 못했다. 음악

의 강력한 위계랄까? 이 나라에선 가곡을 불러도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것을 부르면 있어

보여도 이 나라의 것을 소화할 생각이나 시도를 잘 못했다. 정신의 식민주의도 

한 몫을 하겠지만, 서구의 가창기법으로 이 나라의 정신세계를 담기란 

또 다른 버거움이 있다. 딕션의 문제부터 정서를 푸는 것 까지



그래서인지 이날따라, 가수의 노래가 유독 마음에 젖어들었다.

여전히 딕션은 깔끔하지 않아서, 노래가사를 함께 읽으며 듣고 있지만

이날 목소리를 우리를 사로잡은 소프라노 김혜선은 3월이면 독일로 떠나서 한국의

가곡을 독일에서 강의할 예정이란다. 이런 작은 시도가 우리의 것을 서구에 다시 한번 각인

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음악회의 주제는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항상 많은 시와 관련 작품들을 낳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 조차도 기다림에 대해, 사랑하는 자가 선택하는 피말림이라 하지 

않던가? 기다림은 설렘과 실망, 다가올 기대로 가득한 모순의 공간이자 시간이다. 그 

공간을 거니는 이들을 위한 음악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어린 시절 들었던 귀에

익숙한 가곡들도 좋지만, 대학시절 사랑한 시인 이성복과 고정희 같은 

분들의 시가 가곡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어제서야 알았다.


내 땀의 한 방울도 날줄에 스며 / 그대 영혼 감싸기에 따뜻하여라

고즈너기 풀어 감은 고통의 실꾸리 / 한 평생 오가는 만남의 잉아 / 우리 님 

생각과 실실이 짜여 새벽 바람 막아줄 실비단이거라 / 기다리마 기다리마 기다리마

하루에도 열두 번 끊기는 실이여 / 무작정 풀리기엔 무서운 밤이거든 / 단번에 끝내기엔 아쉬운

밤이거든 / 허천 들린 사랑가 밤새도록 불러주마 / 기다리다 흘린 눈물 모조리 스며 / 그대

아픔 덮어 주는 비단길 이어라. 지리산에서 때아닌 작고를 해야 했던 시인 고정희의

가사가 선율에 입혀져 귓가에 떨림을 만든다. 베틀노래란 제목의 시다. 베틀은

생의 고리고리를 순환하는 셔틀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막 패션의 인문학

에서 직조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원고를 보낸 나로서는 

이날 이 가사가 너무나도 와 닿았던게 사실이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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