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마이클 반 데어 햄 2013 S/S-호앙미로를 사랑한 디자이너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어제 이태원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북유럽에 

공부하러 간 예린이는 나를 위해 런던에 들러 꼼꼼하게 패션과 미술전을 둘러

보고 빅토리안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 했던 <헐리우드 의상전>의 멋진 연작 카드선물을

해주었다. 또 함께한 민영이는 내가 찾던 칸트의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이란 절판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준 탓에, 일요일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한 줄 한 줄 음미하고 있다. 

어제는 이상기온이었다. 20도 가까운 초여름의 날씨, 새콤한 타르트와 블루베리

파이로 깔끔하게 미각을 채운 후, 아이들과 예술의 전당까지 걸었다. 



반포대교를 걷는 시간, 볼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가 너무 따스했다. 그러다

오늘 다시 기온은 뚝 떨어져 평년을 기록한다. 계절이 점점 뚜렷했던 그 색채를 잃어

버리고 때때로 속으로 아파 쑥물든 내면을 불쑥 불쑥 토해내듯, 사람을 맞는 온도도 시시각각.

하긴 사람이 사람을 추억하고 만나는 일에도 각각의 온도가 있는 법인데, 세상의 모든 인간을 맞아야 하는 

자연이라고 그런 생채기가, 변덕이 없겠는가. 받아들여야지. 마이클 반 데어 햄의 봄/여름 컬렉션을

보는데 색이 참 환하다. 런던의 세인트마틴에서 패션을 공부했던 네덜란드 출신의 디자이너는

이번 봄, 호앙미로와 말리 출신의 다큐 사진작가인 말릭 시디베에게 아이디어를 얻었다.



내가 그의 작업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표면효과를 

만들어가는 디자이너의 손길 때문이다. 그는 일일히 손으로 수채 느낌의 

무늬들을 그려넣는다. 이질적인 직물의 느낌을 자르고 이어붙이는, 미술의 콜라주 

기법을 패션에 도입해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을 발산한다. 옷의 실루엣은 은근히 동양적인 

느낌이 강하다. 일본의 기모노를 착장하는 방식을 익힌 서구인들의 시선이 녹아있다. 겹칩과 여밈.

그 속에서 봄의 환희를 드러내는 빛깔들이 춤을 춘다. <화려한 날개의 미소>란 미로의 작품

속 점과 선과 면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속살을 서로에게 아련히 포갠다. 



동양적 겹쳐입기와 화려한 꽃무늬, 여기에 비대칭적인 옷의 외형선까지

마이클 반 데어 햄의 작품 속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형식적 특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사진은 1960년대, 말리를 배경으로 청년세대들의 하위문화를

사진으로 기록한 작가, 말릭 시디베의 작품이다. 19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청년이 소비의 주체로 활성화된 시기이며, 가장 강력한 기성 세대에 대한 저항의 주체로

성장한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선 히피 문화가 꽃을 피우며 동양의 무늬들을 입었는가 하면 

말리는 아프리카의 기하학적인 패턴들이 가미된 옷을 곱게 차려 입었다. 인간이 무늬를 

입는 이유는 세상에 덧붙일 자신의 정체성의 숫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작품들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건 화려한 무늬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정교해지는 디자이너의 재단 실력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의 

재단미학의 배후를 흐르는 동양적 사유의 흔적이 너무 눈에 확 튀는게 문제이긴 하지만



물을 머금으며 환하게 번지는 종이 위에 그려진 다양한 무늬들이

봄의 찬연한 시간 위에서 본격적인 발아를 한다. 



패션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종종 먹먹해진다. 소재연구, 직물에 대한

연구, 다양한 제작 기법, 실루엣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 뭐 이런 것들에 꽤나 천착

하며 하나씩 정교한 공부를 해가고 있지만, 이제 현대 패션은 더 이상 기계적인 순환론으로

풀어가기엔 그 어휘가 차고 넘치는 듯 보인다. 10년 단위로 재탕과 반복을 지속하는 현대패션은 이제 

지배적인 하나의 스타일보단, 다양한 시대가 함께 도시의 공간 속에서 유영하며 공존하기를 

선택한 것 같다. 그러니 뭔가 항구적인 것을 추출하기가 더더욱 어려워 지는 것이다. 



호앙 미로의 그림은 초기 사물에 대한 절대적인 순수함을 토대로 

그려지다가 1920년대 초반 칸딘스키를 만나면서 초현실의 세계로 변모한다.

패션은 항상 상징계와 상상계를 오가며 그 옷을 입는 주체를 구성한다. 옷을 통해 

말하는 것과 그 옷이 말하는 것, 그 사이를 제휴하며 인간은 끊임없이 생을 지속하는 자신을

드러낸다. 패션은 주체로서의 개인을 욕망과 에너지, 모순을 전이하고 고정시키며 

유행이란 미명의 흐름을 정당화하고 그 속에서 인간을 미궁에 빠뜨린다.



내일은 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예전보다 부쩍 짧아진 봄이라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시간을 만끽하기엔, 내 옷장속 옷의 효모들이 너무 부풀어

오른 탓이다. 올 봄은 과감하게 빨강색을 입고 싶어, 재킷과 바지, 소품들까지 환한 빛깔로

맞추었다. 도시 속 런웨이를 걷는 내 자신의 속이, 지난 겨울 길디 긴 추위 속에 

너무나도 얼어붙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일 것이다. 뭐 어쩔것인가?

우리가 옷을 입는 이유가 이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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