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영화 까밀 리와인드-내 생의 찬란한 시간은 언제였을까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내 생의 찬란한 시간들

 

사람은 왜 시간여행에 관심을 가질까? 타임슬립이란 소재가 드라마의 단골이 된 적이 있다. 시간 여행에 대한 열망이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은 과거를 성찰하는 힘 때문이다. 언어에서 사용되는 가정문의 절반은 과거의 행동과 연결된다. '그때 ~을 했었더라면' 혹은 '~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시작되는 문장들 말이다. 모든 문제가 일그러지기 시작한 한 시점을 포착, 당시로 돌아가 경우의 수를 되돌려보고 싶기 때문일거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시간의 중요한 차원 중 하나가 불가역성, 바로 뒤집을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간은 역설적으로 모순같은 불가역성으로 인해 찬란하다. 인간이 시간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일까? 영화 <까밀, 리와인드>는 이점에 주목한다. 주인공 까밀은 마흔살의 무명배우. 여기에 알콜중독자다. 16살에 낳은 딸은 자신을 떠났고, 남편인 에릭도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상태, 집을 팔아 나가겠다고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문제가 꼬인 것일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부모님에게 16살 생일선물로 받은 시계 밧데리를 갈고, 친구의 파티에 갔던 까밀에게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16살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녀의 나이 16살 때, 엄마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그녀는 급격하게 알콜에 의존하게 된다. 그녀로서는 복원하고 싶은, 그러나 자신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틀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남편 에릭을 고등학교에서 만나도 모른 척한다.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전의 엄마와 아빠를 다시 만나 기쁘고, 모든 순간들을 만끽해보려고 노력한다. 이점이 참 좋다. 부모님과 보내는 순간들을 녹음하고 기록한다. 하지만 에릭과의 만남은 당췌 생각같이 안되는 거다. 피하고 도망가고 해도 끝내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과거란 시제는 참 얄궃다. 인간의 힘으로 뭔가 바꿀 수 있을거 같은데, 한번 정해진 노정은 당췌 선로변경이 안되는 건지.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것은 있다. 과거의 사건이 발생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변한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변한다는 점이다.



변화될 수 있는 것과, 변화될 수 없는 것의 틈새


에릭과의 사랑이 처음부터 나빴을까? 통계를 보니, 연인들 중에 그래도 뜨겁게 사랑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커플이 상대적으로 이혼율이 낮다고 한다. 인간의 기억은 항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 과거의 한 시점과 비교하면서 앞으로 지속된다. 중요한 것은 이때도 과거의 소중한 기억, 사랑했던 기억들이 마치 단단하게 정박된 닻처럼, 흔들리는 생의 파고 속에서 우리들을 견고하게 지키는 방패가 된다. 영화 속엔 신학자 라이홀드 니버의 기도문이 대사로 나온다. 인터넷에는 기도문의 변종이 꽤나 떠돈다. 중세 수도사가 쓴 글이라는 둥, 여러 의견이 있으나 이 기도문은 니버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함을 주시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시간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 용기와 지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본 한 편의 영화 <까밀, 리와인드> 관객이10여명도 안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참 서럽게 눈물이 흘렀다. 극중 주인공 까밀은 나와 나이가 같다. 단순한 감정이입이라고 하기엔, 그녀의 처지와 내 처지는 다르지만 닮은 부분도 많다. 처음 포스터를 봤을 땐, 인생의 가장 찬란한 나날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길래, 그저 타임슬립정도를 재미있게 뒤섞은 코메디려니 했다. 인생을 마치 테이프처럼 되감고 싶을 때가 있다. 얄궂은 사실은 우리는 인생을 되감아 볼 수는 있지만 되감아 살수는 없다는 것. 그러니 바로 지금, 삶의 변화의 국면들을 잘 살펴보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매번 뵐 때마다 키가 작아지는 엄마 생각에, 나도 모르게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엄마와의 이별을 막아보려고 했던 주인공이 떠올랐다. 내게 찬란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이라고 답한다. 팔순이 훌쩍넘은 부모님과 언젠가는 이별하게 될 것이다. 이 지상에서. 누군가는 그 상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숨을 끊기도 한다. 힘들때마다 부모님 생각을 자주한다. 나의 20대는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예술의 전당 도서관에 들어가 마음껏 비디오로 공연을 보거나 해외에서 나온 예술 저널들을 읽곤 했던 거 정도. 그리고 열심히 연극 한거 정도. 되짚어보면 그때 읽었던 것들이 세월 속에 곰삭여지고,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나온 과거는 무시못하는 거 같다. 감사의 제목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변화될 수 있는 것과 변화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사는 한 주가 되길, 55주가 쌓이면 또 한 해의 지층이 삶의 기반 위로 쌓이는 것임을 믿고 살거다. 아무렴. 누가 뭐래도 지금의 내 생은 찬란하니까. 뒤집을 수 없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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