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잊혀져가는 것들을 위한 레퀴엠-볼탕스키의 작업을 보다가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잊혀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틀 전 모 해외 언론에서

가슴 한 구석을 매우는 작은 기사를 읽었습니다. 20년을 동거동락한

개의 부고소식이었는데요.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개를 위해 주인은 매일 호수에 

나가 멱을 감고, 온천에 다니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나 봅니다. 8개월 되던 해 개를 입양했던

남자는 전 주인으로부터 갖은 폭행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신의 품에 안겼던 강아지

에게 사랑을 찾아주려고 노력했었나 봅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상처받으면

마음이 치유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나 봅니다. 다를게 없더라구요.



오늘 소개할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프랑스의 조각가이자

사진작가, 화가, 영화감독이기도 합니다. 저명한 아티스트 아네트 메사제의

파트너입니다.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철저한 카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술과 관련된 정식교육을 받은 적이 없던 그는 1958년 회화작업을 시작했지만 대중들에게 알려

진 것은 1960년대 몇 권의 작가노트와 단편영화 작업을 통해서였습니다. 인간의 삶에 용해된 실제와 허구의 

세계,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그는 진흙, 설탕, 거즈 등 

다양한 실제 오브제들을 이용해서 설치작업에 푹 빠지게 되죠. 이 작품들은 어떻게 인간의 

조건에 질문을 던지는 걸까요? 수 많은 옷으로 만든 거대한 조각상과 마당에 깔린 

옷들은 곧 그 옷을 입은, 입었던 인간에게 바치는 일종의 레퀴엠입니다.  



1970년대, 볼탕스키는 인간의 형태와 무의식, 기억에 대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 사진을 이용합니다. 1976년 이후 그는 사진에 회화작업을 곁들이거나 

정물사진과 일상의 평범한 사물과 사건을 다룬 사진들을 콜라주하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보드지와 실, 코르크, 사진을 이용해 거대한 사진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볼탕스키에 대해 푹 빠지게 된 것은 이번 포스팅의 첫 번째에 

걸려있는 거대한 옷들의 묘지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예전 워싱턴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에이즈 환우의 가족들이 자신들의 옷과 죽은 이들의 옷을 함께 가지고 

나와 만들었던 거대한 설치미술작품이 떠올랐지요. 옷은 이렇게 인간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함부로 버리고 소비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죠. 



자본주의 소비논리는 일단 많은 것을 소비하고 빨리 버리는 것을 

그 중심에 둡니다. 의도적인 진부화는 바로 그러한 논리의 중심에 서 있는 

마케팅의 핵심이지요. 그저 시즌이 지났다고 한물 갔다고 믿는 것, 더 이상 그 사물이

나와 정서적인 관계가 없다고 믿는 것. 이런 태도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소비에 열을 올리고 

그저 소유 중심의 삶으로 존재 중심의 삶을 내버리게 한 장본인들입니다. 우리는 사물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물들 속에서 태어나고 결국은 사물들이 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사물의 표면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물의 실재성이 말과 사유의 애매모호함보다 낫다고 본 것이죠. 표면의 생생함

과 질감, 색조, 실루엣을 깊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근원적 모호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 표면이 우리에게 주는 감격의 

기쁨은 명멸의 순간이긴 합니다. 그만큼 짧습니다. 



그 짧다는 시간성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기억을 통해서입니다.

한 벌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칼을 가다듬는 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환희와 기쁨에 대한 예배입니다. 생의 감격을 기억하기 

보다, 브랜드에 매이고, 사물이 환기하는 욕망에만 천착하게 되면 우리는 제대로 된 기억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사물과 인간은 기억으로 매개되며, 기억의 효과와 누적된 경험을 통해서만 

연결되기 때문이겠죠. 볼탕스키의 작업 앞에서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다면 

그만큼 사물과 사람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억지스럽거나, 혹은 그 의미를

잃어가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의 사진 앞에서 묵상하는 이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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