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한국의 의상학 교육의 문제점들-이제는 좀 짚고 넘어가자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새벽기차를 타는 시간


패션기업 (주) 세정에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상품기획자, 디자이너를 포함해 임직원 분들과 생각을 나눕니다. 새벽 일찍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강의가 10시 부터라, 6시발 기차를 타야 했거든요. 제 강의는 매번 기업 별로 내용을 달리합니다. 기업의 요구사항에 따라 탄력적으로 내용을 바꾸고, 복식사에서 캐낸 내용도 맥락에 따라 조정을 합니다. 복식사를 통해 디자인의 영감이란 테마로 꽤 오랜동안 강의를 해왔고, 최근엔 패션의 사회사와 패션철학, 심리학등을 결합한 경영전략도 함께 강의했습니다. 그만큼 이 나라에서, 의상학, 의류학, 패션 디자인으로 나뉘어진 학과체계에선, 인문학적인 깊이를 제공하기 어려운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화나는 건 기술적인 부분 조차도 명쾌하지 않고, 유사 전공으로 대학원을 간다한들, 학부지식의 확장이라기 보다 그냥 사회에 나가는 기간을 유예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나라에 의상관련 학과의 엄밀한 현실이죠. 툭하면 기업과의 면밀한 관계개선 및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디자인한다지만 79년 이후로 이 나라의 패션스터디엔 너무나 변화가 없습니다. 정체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일일이 캐묻고 글쓰기가 힘듭니다.


한국의 패션기업에 많은 강의를 다니고 현업의 디자이너들과 상품기획장, 혹은 최고 경영자들을 뵐 때마다 이 나라의 대학교육에 대한 회의가 밀려옵니다. 그렇다고 대학만 야단치기도 어렵습니다.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령 경력이 많은 상품기획자나 경영자들은 자신의 일을 이론화하는 작업에 서툴고, 그렇다 보니 지식은 항상 주관적인 속성을 띠거나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지식은 산발적인 성격을 띠기 쉽다는 것입니다. 의상학 코너를 가도 항상 필요한 책들은 없습니다. 


그러니 현업에서 회사인력의 교육이나 전략기획을 담당하는 분들의 고충은 비슷합니다. 고민이 비슷하다는 건, 이 나라의 패션교육과 업계간의 연결고리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대학교육을 하는 분들에게 일차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스스로 혁파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다. 경력이 많은 이들이 왜 학교에 가지 않냐고 묻습니다. 여기엔 그들의 경력과 지식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이용만 해먹으려 드는 일부 '교수집단의 이기심과 영역지키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의상학 관련 학생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패션 마케팅이나 혹은 상품기획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8할이 넘습니다.


패션 내부에서 새로운 직군이나 직업,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니, 의사결정의 틀이 고정되기 마련입니다. 세정은 좋은 패션기업입니다. 최근엔 유통쪽 영역을 확장하면서 기업역량에 대한 기준을 다시 잡고 있는데요. 이럴수록 기업 내에 수혈되는 새로운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패션계의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갈급하는 지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은, 그만큼 이 땅의 의상학 관련 교육 기관이 현실과 멀다는 뜻입니다. 기업과 패션 디자이너들, 엠디들을 상대로 하는 재교육 기관이라 불리는 곳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자칭 트렌드 예측 강사들은 판에 박은 이야기만 해서 직원들은 직무교육이 짜증난다고 말하기도하죠. 이 나라의 모든 패션기업들이 갖고 있는 불만사항입니다. 


저는 패션 큐레이션을 하지만 이 영역은 예술로서의 패션과 상업으로서의 패션 이라는 두 부분을 함께 봐야 하고 설득하고 갈등하며 앞으로 나갑니다. 매번 글을 쓸때마다 현재 의상학 교육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합니다. 철밥통 속에서 눈먼 정부 프로젝트에나 눈길을 돌리고, 그저 자신의 이력에 한줄 올리는 용도로 사회 내 전문가들을 써먹으려 하는 이들이 있기에, 발전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싸워야지요. 학계라고 해서 다 그런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고인물은 썩고 말라서 없어질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패션계의 주변부에 계속해서 머물 생각입니다. 주변부에서 중심을 공격하고, 의지를 가진 기업들을 규합하고, 힘을 합쳐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일. 오늘도 제가 열심히 다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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