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인생의 여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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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olic/영화에 홀리다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인생의 여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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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풀한 그레이스씨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의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영화 속 패션을 좋아하는 제겐 한 시대의 배우로서, 왕비로서 패션의 아이콘이 된 여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라 비앙 로즈를 연출했던 올리비에 다한 감독에 대한 기대도 컸습니다. 적어도 이 감독이라면, 한 인물의 내면에 흐르는 다양한 동기들, 삶과 지속적으로 협상과 타협의 시소를 타는 인간의 긴장감을 잘 그려내겠다 싶었지요. 게다가 배우도 니콜 키드만이었으니까요. 


영화 <디 아워스>에서 10년 단위로 변해가는 여성의 삶을, 텁텁하고 때로는 잔혹한 노후가 되는 여정을 특유의 냉랭함을 잃지 않고 연기했던 그녀니까요. 이번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선 왕비가 된 시대의 배우, 그레이스 캘리를 연기했습니다. 정말 이름대로 그레이스풀, 기품이 뚝뚝 떨어지는, 하지만 지금껏 살아왔던 상황과 판연히 다른 삶의 장에서 어떤 연기를 하며 살아야 하나를 진정 고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영화 초반 헐리우드의 명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모나코의 궁정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인 히치콕을 존경합니다. 프랑스의 작가주의 감독인 프랑수아 트튀포가 쓴 <히치콕과의 대화>를 한번이라도 읽어본 분은 아실거에요. 꿈의 공장 헐리우드가 그 자체의 형식미학을 갖추고 내부에서도 작가로서의 감독을 산출하게 된 것, 그 중에서도 새로운 영화언어의 문법을 만든 것은 히치콕이죠. 그런 그가 영화 속에서 그레이스 캘리에서 차기작 <마니 Marnie>의 여주인공을 맡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시 개런티는 100만불. 


보수적인 모나코 궁정은 그녀의 영화출연을 반대합니다. 가헐리우드 배우로 살다가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하고 그들의 역사와 풍속에 동화되지 못하는 공비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의 삶의 숙제는 무겁기만 합니다. 이 영화에서 저는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렸습니다. 그녀도 빈 출신이지만 스타일의 도시 파리에서 볼 땐 한 마디로 촌구석에서 살던 공주일 뿐인 어린 공주를 향해, 궁정의 여인들이 던지는 비아냥과 추파는 두렵기만 합니다. 어디에나 있는거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항상 기존의 성원권을 가진 자들이 외부에서 유입된 이들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과 그들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배타적이란 사실 말이에요. 그러나 어쩝니까? 견뎌내고 그들과 동화되어야지요. 정말 살아가려고 한다면 말이에요. 



아이엠 그레이스 자기소개 하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삶을 제대로 연기하는 법을 익히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 영화는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걸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생, 왕후로서 받는 관심의 깊이는 사실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의 모습과 다르게 포장되어 있고, 그 속에서 다른 생을 기웃기웃 거려가며 후회하기 쉽습니다. 세상의 모든 동화는 '그들은 그 이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 되지만, 사실 이말처럼 기만적인게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의 사랑과 열정은 쇠락해가고, 자기를 둘러싼 환경은 변화하며, 소중하다고 믿었던 가치들도 허물어질때, 인간은 과연 어디에 자신을 의탁해야 할까요?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엠티가서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게임을 하며 이름을 익힐려고 해도 한동안 헤매고 몇대 꿀밤을 맞아야 익숙해지는 법인데, 최고의 배우의 반열에서 내려와 공비가 된 여인이, 헐리우드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의 정서 속에 '반듯하게' 기억되는게 얼마나 어려울까요. 여기야 말로 진정 배우의 연기력이 요구되는 시점이겠지요.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배우여야만 한다


한때 연기공부를 하면서, 연기론과 기법들을 익혀보기도 했습니다만 지금껏 학생들이 읽는 텍스트 중에 하나가 스타니슬라브스키란 연출가이자 연극교육가가 쓴 배우수업이란 책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객관화시켜서 기억하고 그것을 몸의 반응과 조응시켜야 합니다. 특히 배우는 이 과정, 감정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몸을 벗고 새로운 몸을 가진 인간이 되지요. 자 그런데요 되돌아보면 배우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이 과정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극복하고, 또는 회피하고, 동시다발적으로 힘을 토해내는 그 배후에는, 과거의 어느 한 시점, 뇌리에 박히고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레이스 캘리는 이제 공비로서 한 나라의 정치적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고, 그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눈을 뜹니다. 좋은 엄마로서 항상 자기가 몸담던 영화계의 글래머한 세계를 잊어야만 합니다. 뭔가 상실의 의미를 담보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또 다른 삶 속으로 편입하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죠. 궁정에서 의전을 담당하던 신하를 찾아가 불어와 예법, 모나코의 역사를 배웁니다. 본격적으로 모나코인이 되려고 마음을 먹는 것이죠. 

 

 

사실 이 영화는 그다지 긴장감을 유발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프랑스와 모나코의 갈등을 주요 원인으로 삼고는 있습니다. 작은 공국 모나코를 프랑스는 세금문제를 빌미로 삼아 모나코를 강제병합하려고 합니다. 이때 프랑스의 대통령이 샤를 드골 대통령입니다. 한편으론 참 아이러니 합니다. 최근에 함께 상영하게 될 <이브생로랑>에서만 해도 사실 드골은 문화대통령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지위를 사회적으로 승인하고 높여준 멋진 사람이지만, 이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선 하나같이 성급한 식민주의자로 밖엔 그려지지 않습니다. 아마 프랑스 평단의 평가가 박한 것은 그런 이유겠지요. 


그러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프랑스는 좀 이중적인 면모들이 있는게요. 한국사회의 자칭 먹물들, 인문학자들이 프랑스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런 말을 하면 공격도 받겠지만, 프랑스인들은 자기 국가, 자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잘 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 가장 결정적인 때는 그 누구보다 애국보수로 쉽게 전환하고 이전의 식민주의적 가치관에 대해서도 구렁이 담넘어 가듯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미즈 그레이스씨, 모나코에 가다


일촉측발의 상황에서 그레이스는 나라를 구하는 왕비로 그려지죠. 군사경계선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빵을 나눠주는가 하면 유럽의 정상들을 위한 파티를 열어 읍소하기도 합니다. 헐리우드 영화답게, 구태스런 문제 해결방식을 따라갑니다. 영화 <미스터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에서 1930년대말, 미국의 공화주의적 꿈을 설파하던 시골촌놈의 이미지를 그대로 여성에서 투사해, 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아름다움은 영원하니까, 당신들은 아름다운 모나코를 가질 수 없다, 나는 왕비다.....와와, 뭐 이런 식입니다. 유럽 각국의 보편적 양심과 미에 대한 가치들, 이를 수호하자고 말하는 그레이스 공비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레이스풀합니다. 우아의 결정체랄까요? 



너희가 그레이스를 아느냐?  


그레이스 공비의 담화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녀의 말에서 딱 한가지 단서를 얻었습니다. 삶은 어디에서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우아함의 의미가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다라는 동사적 삶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대사를 통해 말해줍니다. 동화 속 세계가 간과한 것들을 채우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들리더라구요. '그 이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란 동화속 결말은 그녀가 어디에 소속되고, 어떤 삶의 자리에 배치되는가에 따라 또 다른 선택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그 선택 앞에서 떨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인생의 여왕이 된다는 것은 선택 앞에서 주저하지 않으며, 타자를 향해 나를 조응시키고 타협하는 삶을 살아내겠다는 의지, 그 자체를 키울 각오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공비로서 진정 삶의 그레이스(Grace)를 찾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 입니다. 저는 그레이스란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우아함, 담아함, 아취스러움을 뜻하고 이것이 복수형이 되면 장점이란 뜻이 되죠. 결국 한 인간의 장점이란 우아함이 누적된 삶을 통해 보여지는 것일 겁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빚진자에게 내려주는 은혜, 바로 지불유예란 뜻도 있죠. 여기에 '자진하여 좋은 일을 하는 것'이란 뜻도 있습니다. 영화 속 그레이스는 정말 언어의 의미, 결의 속속을 자신의 몸에 알알이 박아넣은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런 삶의 그레이스를 채운자, 진정한 인생의 여왕이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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