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18세기의 인조로봇-안드로이드의 시작을 알리다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18세기 로코코 시대는 흔히 계몽주의 시대라고 불린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초자연과 신적 통치가 당연히 받아들여진 중세적 가치를 허물고 인간의 이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계를 지었다. 그들의 의지가 만들어낸게 바로 인조로봇,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란 ‘사람을 닮은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안드로'는 남성, 인간이란 총칭이고 로이드는 ~의 특성을 지닌 이란 뜻이다. 결국 인간의 특성을 담아낸 것이란 개념이다. 

원래는 사이언스 픽션의 영역이었던 이 인조로봇은 점차 현실에의 적용성이 커지면서 미래의 수익시장으로 다가오고 있다. 2년전 일본에 갔다가 보았던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의 얼굴을 한 '고도모로이드' 성인 여성의 자태를 그대로 옮긴 '오토나로이드' 마지막으로 특정 인물의 형태와 몸을 배제한 안드로이드 텔레노이드에 이르기까지. 그 기능도 놀랍기만 하다. 세계의 각 뉴스를 여러 형태의 언어와 음성으로 주인에게 읽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과학개념을 풀어주기도 한단다. 더 놀라운 것은 특수 실리콘으로 사람 피부와 같은 촉감을 갖도록 한 탓에 히키코모리들에겐 음험한 성적 환타지를 품게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속 인조인간들은 언제나 참신한 상상력의 시작이었다. 터미네이터의 로봇이나, 바이센테니얼의 주인공, 가위손의 조니뎁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인조인간들은 항상 비정한 인간의 삶과 양식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었다. 1735년에서 1810년 사이 놀랍게도 유럽에선 오토마톤이란 자동인형, 오늘날의 인조인간의 초기 개념들이 등장했다. 이것을 만든이들은 당시 최고의 기계공들이었던 시계공이나 궁정의 기술자들, 프랑스와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의 장인들이었다. 이들은 음악연주와 글쓰기, 드로잉과 같은 창의적 활동을 위해 설계된 것들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계몽주의 시대의 자동인형들은 당대의 비판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는 근대 산업사회의 전조로서 인간의 육체와 영이 어떻게 기계란 언어를 통해 통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였다. 이번에 구매한 <계몽주의 시대의 안드로이드 Androids in the Enlightenment>는 두 개의 인조인형, 바로 피아노를 치는 인형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사가인 아델하이드 보스큘은 이 인형을 둘러싼 스위스와 프랑스 두 나라 내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펼쳐진 철학적 단상을 반영해 보여준다. 당시의 조악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이 인조인형은 음악연주 뿐만 아니라, 머리와 눈, 상체를 움직여 18세기, 인간의 신체움직임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음악이 결국 인간의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주관적 성질을 가진 매체임을, 당시의 로봇 공학자들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대의 인조로봇이 산업기술을 통해 인간의 기계화가 이뤄지던 시대의 불안감을 표현하기보다, 시민사회의 감성적 문화를 더욱 심화하는, 긍정적 방향으로의 진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책에서 보여주는 연구의 내용을 실로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패션사가로서 사실 별로 연관이 없어보일듯 한 이 책을 손에 든 것은, 인조인형들이 입고 있는 패션 때문이었다. 그 옷이 마치 마네킹에 입힌 옷처럼 워낙 고증이 정확하고, 당대의 패션미감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18세기는 경이의 세기였다. 근대사회, 물질성,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때다. 산업사회의 시작은 문화적으로는 어떤 시대였을까? 저자는 두 개의 안드로이드를 통해 흔히 기술이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의 자아를 불편하게 하는 시대의 불안감을 중화시키고, 오히려 인간의 확장으로서 감성을 가진 존재로서 호흡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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