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사랑의 타성을 극복하는 힘-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리뷰

작성일 작성자 김홍기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을 봤다. 아내와 함께 하는 금요일 밤은 영화를 보는 시간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언제까지 영화란 예술을 향유할 수 있을까? 40년이 흐른 후에도 이 영화라는 푸른꽃은 그 청신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영상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시각성이 우선되는 이 시대에, 새로운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영화는 '매체'로서의 본질과 확장가능성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2009년 질 시멘트의 <영웅적 판단>을 원작으로 한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영화 포스터를 보자마자 마음이 뛰었다. 익숙한 브루클린과 윌리엄스 버그가 배경이고, 그곳에 갈 때마다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던 기억들이 많아서일거다. 



영화 속 다이앤 키튼은 참 멋지다.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심지어 사진까지 함께 찍었다. 예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전시에서 그녀를 만나, 내가 그녀의 오랜 팬임을 조목조목 이야기해주었다. 우디 앨런의 <애니홀>에서 부터 바로 지금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우아하고 단단하며, 자신의 내면을 옷을 통해 잘 표현하는 진정한 멋쟁이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그저 노 부부의 이스트 사이드 탈출기를 뜻하지 않는다. 40년된 노후된 아파트를 버리고, 계단이 있는 아파트로 가려는 부부의 이야기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너무나 다른 것 같은 두 사람, 한 사람은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이고, 또 한 사람은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가르쳤다는 교사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인터뷰때마다 필독을 권하는 책 목록 순위 5위의 책이다. 위선과 자기기만, 무엇보다 타성에 젖어사는 삶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텍스트 전반에 촘촘하게 짜여있다. 왜 이 소설을 언급했을까 했는데, 체호프의 소설과 영화 속 노 부부의 삶이 교차되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이후로 그들의 멋진 선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나저나 다이앤 키튼이 집을 구하느라 애를 먹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인건 참 재미있다. 그녀는 인테리어의 귀재다. 이건 영화 밖에서 그녀가 실제로 디자인한 집을 본 이들은 잘 알것이다. 그녀는 미국의 대표적인 건축 및 인테리어 매거진인 아키텍쳐 다이제스트가 뽑은 집안 가꾸기로 유명한 배우다. 



그저 노부부의 이야기라고만, 가슴 한켠 따스하게 해주는 노년의 풍경을 그린 영화라고 단촐하게 표현하기에는, 사실 이 영화에는 그들의 사랑이 숭고하고 그들의 연대가 영웅적인 표현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언급하는 부분들이 많다. 30년전만 해도 흑인과 백인의 사랑이, 그들의 결혼이 법적으로 불가했던 시대, 알렉스와 루스는 이 시대의 광폭함을 사랑으로 돌파해온 이들이다. 게다가 자칭 미술시장의 트렌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기쁨을 그려온 화가는, 현대의 미술시장 앞에서 위태위태하다. 중요한 건 그를 옹호해주는 아내의 변이다. 화가를 딜러들이 진정 어떻게 다루고,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의지를 화폭으로 끌어내야 하는지도 언급한다. 



늙어간다는 것, 청춘에 대한 회환과 회고, 짧지않은 반성문쓰기. 영화를 비롯한 모든 매체들이 요즘 복고풍에 몰두하면서 시니어 계층들의 삶을 다룬다. 그들이 지나온 삶에 대해,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대차대조표라도 작성하려는 듯. 다리 아래 흐르는 물은, 시시각각 새롭고, 과거의 껍질을 벗어 깊은 과거의 심연으로 던져버린다. 우리가 흔히 인간의 연령에 따라 인위적으로 구획하는 양상들은, 현재 그 경계선들이 점차 유연해지고 허물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년이라 현명한 것도 아니고, 젊다고 해서 순수하다는 식의 구분짓기야 말로, 얼마나 인간에 대한 '대충대충'의 인식을 보여주는가? 부부의 삶도 그랬다. 오래 함께 살았다고 다가 아니었다는 것과, 사는 순간순간을 지난 기억의 힘 위에서 새롭게 지어가는 이들이야말로, 함께 살고 함께 연대하며 함께 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생각한다. 



아내와는 하고 싶은게 참 많다. 디자이너로 일이 너무 바쁜 아내는 주말이면 나와 함께 육아에 지쳐 예전같은 근사한 시간들을 보내기란 힘겹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런 시간이 계속 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서로의 꿈에 대한 응원이자 존재의 진실함을 함께 믿으며 걷는 것일 거다.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사랑 없는 삶이 얼마나 불가능하고, 오히려 그 속에 비루하지만 역동적인 잠재력의 삶이, 그 비밀스런 본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이런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뉴요커의 삶과 대조하며 표현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진정한 삶을 위해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영화의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혼자서 생각해봤다. 


저 거대한 바닷물의 염분을 결정하는 것이 실은 3퍼센트의 성분이듯, 나와 아내가 함께 보내는 시간의 3퍼센트만이 우리의 실존적인 사랑의 방식을 결정하겠지...... 그 성분의 일부가 되어가도록 오늘도 노력해야겠다. 힘든 주말 후 월요일을 보내고 있을 아내에게, 영화에 대한 리뷰로 내 마음을 전한다. 우리의 사랑은 진행 중이고, 사랑의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의 화살은 여전히 떨리고 있다고. 고착되고 안정되고, '이 정도면 되었어'라고 치부하는 대신, 그 떨림 속에서, 다가올 미래를 추정하거나, 함께해온 날을 판단하지 말자고. 마지막까지는 여전히 멀었다고. 중요한 건 바로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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