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영화 '아가씨' 리뷰-욕망을 직조하는 패션의 수사학

작성일 작성자 패션 큐레이터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봤습니다. 영국의 작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지요. 솔직히 박찬욱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들기전부터 저는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레즈비언 소설 3부작을 이미 다 읽었던 터였습니다. 이유는 제가 패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심도깊게 고증이나, 한 사회의 문화적인 요소들을 공부하고 있는 시대가 바로 이때이기 때문인데요.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예전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란 영화를 보면서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코르셋과 페티코트 속에 담긴 여성의 욕망이라는 제목의 해외논문을 스크린지에서 읽고선, 패션은 과연 어떻게 한 인간의 욕망을 스크린에 투사할 수 있도록 돕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사실 이번 박찬욱 감독님의 <아가씨>는 저에게 코스튬 드라마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흔히 코스튬 드라마라고 하면 영화에 대해 비난성 발언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코스튬 드라마도 찾아보면 화려한 의상 못지않게 옷을 통해 시대와 삶을 담아내는 좋은 매개체로 사용한 작품들이 많답니다.


많은 분들이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에 드러난 테마나 네러티브, 역사적 배경설정, 미장센 등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분석을 하고 있죠. 저는 다른 것보다 영화 의상을 맡았던 조상경씨의 이번 작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항상 그랬듯, '참 탁월하다'라는 칭찬을 해주고 싶었거든요.  특히 헤어스타일은 시대 고증을 잘 하셨더라구요. 시폰과 가죽처럼 이질적인 소재를 잘 조화할 수 있도록 스타일링을 해서, 소재 자체가 주인공의 내면을 잘 말해줄 수 있도록 연출한 점 마음에 듭니다. 



말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작품을 일제시대로 치환하다보니, 사실 의상의 고증이란게 어떻게 되어야 할까가 궁금했습니다. 왜냐면 극 중에서 두 여주인공이 보여주는 의상은 일제시대, 유럽의 패션을 소비하며 다이쇼 시대의 신 여성들을 만들어내던 일본의 현대패션과 빅토리아 시대의 코르셋과 30개가 넘는 단추가 달린 드레스가 공존합니다. 그런데 그 공존이 싫지 않았고요. 물론 모자 디자인 같은 건 고증과 멀지만, 워낙 스타일리시하게 화면을 푸는 감독님과 함께 한 협업이어서인지 저는 정말 마음에 들더라구요. 



색채 배합과 빈티지 풍 레이스, 일일이 직물로 표면처리를 한 빅토리아 시대의 세밀단추와 옷들은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게다가 이 옷들이 서로를 입혀주고 벗기는 과정에서, 서로의 몸을 노출하고 은폐하고 타인의 눈에 각인시키는 과정에서 은밀하게 드러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혹은 레즈비언의 시선적 욕망을 잘 담았습니다. 패션을 공부하면서 직물에 담긴 물질성, 촉각을 불러일으키는 텍스타일의 헵틱에 관심이 많다보니, 저라면 이런 부분을 조금 더 섬세하게 연출할 수 있도록 감독님게 조언을 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옷이란게 워낙 공감각적 감각체험을 만들어내는 사물이기에 청각과 시각, 촉각, 후각에 이르는 다양한 감각을 영상이란 그릇 안에 담아내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해왔거든요. 전개과정 마디마디에서 옷이 뭔가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혹은 소품의 미적 사용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저만의 생각들을 해봅니다. 영화 속 패션의 세계는 그저 시대별 고증이 아닌, 주인공의 캐릭터개발과 내러티브 진행, 혹은 화면구성과 같은 요소에 적극적으로 개입할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나름 비판을 하겠다면서 빅토리아 조의 사회문화사를 아주 조금씩 언급해대며 아는 척을 해대는 영화평론가들이 눈에 걸리더군요. 이건 블로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원작들을 꼼꼼하게 읽긴 한 건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각자의 시선에서 체험을 규정하는 방식이 '남성주의적 시선'이라고 공격하는 분들도 있던데, 그럼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여성주의적 시선'의 실체가 뭔지 궁금하긴 했습니다. 영화이론 공부하면서 퀴어나 관련 담론을 공부했는데요. 특히 일제시대 배경과 빅토리아조를 비교하면서, 실제로 각 시대별 비교문화론적 이해가 전무한채 비난에만 열을 올리는 평론가와 블로거도 보이더라구요. 꼭 이런 친구들이 그 방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사에 대해서는 일천한 지식만을 갖고, 시대에 대해 인터넷에 나열된 스테레오타입에 열을 올리며 글을 쓰죠.


예전 대학에서 영화공부를 할 때부터 느낀거지만, 자칭 평론을 하는 인간들의 특징은, 이론적 토대가 되는 담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너무 공부에 매몰된건지, 그 틀로만 영화를 해석하고 짜맞춰내려는 욕망을 자꾸 보입니다. 이 또한 제가 건들 부분은 아닌거 같아 넘어갈게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조상경 영화의상 디자이너를 위한 단독 전시를 하나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볼 때, 옷이 이렇게 잘 보이니, 저로서는 이쪽을 택해야겠죠? 개인적으로 김민희란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지만, 이 배우 정말 옷 스타일링 하나는 일품인듯 해요. 배우로서는 옷을 잘 소화하는 것은 축복이지요. 영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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