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조의연 판사를 위한 한 장의 그림-법은 무엇인가?

작성일 작성자 패션 큐레이터



제라드 다비드 <캄비세스의 재판 The Judgement of Cambyses>

1458년, 목판에 채색, 그로닝엔 미술관 소장, 벨기에 


판결을 내리는 자, 준엄하라!

특검이 가열차게 몰아붙였던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이 기각되었습니다. 영장심사를 맡았던 조의연 판사의 법적 논리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는 앞서 최순실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머물던 수감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했던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었고 증거인멸을 위해 상호 입을 맞추려한 정황도 포착이 되었음에도, 조의연 판사는 영장을 기각합니다. 변론권을 주기 위해서라지만 정작 주범의 영장은 기각하고, 상대적으로 변두리에 있는 이에게만 영장을 발부했다는 점에서, 많은 법조인들이 법적 판단의 논리에 의심을 품고 있지요. 게다가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공여죄에 대해 소명부족과 뇌물 수수자인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란 것이 법조계의 의견입니다. 


캄비세스의 재판

네덜란드의 화가 제라드 다비드가 그린 이면화 작품인 <캄비세스의 재판>을 보시겠습니다. 한 남자가 발가벗겨진 채로 살가죽을 벗겨지고 있네요. 형장에 누운 이 남자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재판관 시삼네스입니다.범죄자에게 뇌물을 받고, 죄인을 풀어주었다가 당시 페르시아의 황제 캄비세스의 명으로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살가죽을 벗기는 것은 재판관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벌이었습니다. 벗겨진 살가죽은 그림 속 뒤편, 부패로 물러난 판관의 뒤를 이를 차기 판관의 의자 아래 깔았습니다. '전관의 죄를 기억하며 더욱 투명한 판결을 하라'는 뜻이었지요. 우리는 흔히 의자를 권력이란 추상적 단어에 연결시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권좌'란 단어를 쓰는 건 그런 이유입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록,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였지요. 놀라운 건 시삼네스의 뒤를 이은 이가 그의 아들이란 점입니다. 


법은 도시의 자유와 성장을 만든다

당시 통치자인 캄비세스 2세는 재판관들의 비리나 뇌물수수를 가장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법의 준엄함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원래 이 그림은 이면화, 그러니까 두 장의 참나무 목판으로 그려진 이야기를 담은 그림입니다. 캄비세스의 이 처벌 이야기는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나오는 사례였습니다. 때는 15세기 말의 북유럽 르네상스의 절정에 이른 브뤼헤란 도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브뤼헤 시당국은 시청사 내, 부시장의 방 벽면에 일련의 패널화를 그려서 장식하기 위해 화가였던 제라드 다비드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때 그려진 그림이지요. 그럼 왜 부시장일까요? 흔히 Deputy라 불리는 부시장이 한 도시의 실제적 법적 처리, 계약, 상인들의 거래와 공증 등을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1488년 브뤼헤에서 시당국의 법조인들 사이에 법의 정당성과 정직함을 상기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법과 정의에 대한 엄정함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한국의 법체계, 그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들

사법체계 또한 혁신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와있습니다. 법을 판결한다고해서, 그가 법이란 체계 위에 있거나 '법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개입하된, 인간의 역사 저편, 무시간성에 존재하며 시간의 힘에 구속되지 않는 것은 '신의 존재'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이 점을 너무 오랜동안 방치해두었습니다. 조의연 판사의 석연치 않은 영장기각은 차후로도 많은 비판의 연단 위에 서게 될 겁니다. 되짚어보면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이 되는 경로는, 참 단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삶의 체계입니다. 인간이 사회란 직물에 새겨놓은 무늬입니다. 인문학의 가장 큰 담론이지만, 이 땅에서 법을 판결하는 이들에게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과연 있는가를 제대로 질문하고, 시행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조롱하면서도, 끝내 법의 보루를 지킨다고 스스로 자임해왔던 그들의 평결에 대해서는, 과정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이 저지를 법적 판단의 실수로 인해 사회 전체가 안게 될 상처에 대해 한번도 사죄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의사는 사고를 내면 의사면허를 박탈당하지만, 법관이란 자들은 하나같이 사표수리와 함께 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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