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꼰대는 많다.....

지금껏, 패션관련 방송과 다큐멘터리 제작에 자주 동참해왔다. 패션을 테마로 한 방송은 항상 일정한 '톤'과 방향성이 있다. 시청자에게 패션산업은 성찰없는 소비의 세계일 뿐이며, 패션모델은 하나같이 머리가 텅빈 집단으로 묘사된다. 드라마에선 패션 잡지사 편집장이 나와서 '엣지' 타령을 한다. 방송작가들에겐 이것이 패션산업의 전부인줄 안다. 정말이지 뗏지하고 싶다. 그럼 뭐 패션이 별거인가? 라고 답변을 다는 이들이 바로 나온다. 패션공부를 하면서 미학이나 역사 이야기를 하면 '잘난 척 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꽤 된다. 


당신들이 인문학 공부를 하는 이유나 내가 패션에 대하여 깊은 사유를 전하기 위해 공부하는 이유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너네와 달라'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패션은 역사를 통해 풀어갈 때, 자칭 쾡한 눈으로 보는 이들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이거다. '한 마디로 다 가지려고 한다'는 식의 발언들이다. 너네는 돈도 잘벌고, 화려한 세계에 살면서, 어디 감히 고독 속에서 사유하는 저 깊은 철학자의 세계까지 소비하려는 것이냐라는 전제가 여기엔 들어있다. 인문학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교양을 뽐내는' 혹은 뽐내고 싶어하는 이들의 우월감 내적 우월감 속에 묻어나는 그들의 발언을 듣다보면 불편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 경향은 영국도 마찬가지. 최근 BBC에서 영국판 보그지의 제작과정을 다룬 다큐를 내놓았다. 다큐제목은 Absolutely Fashion. 온통 편집자들의 옷사랑만 늘어놓거나, 일부 에디터가 옥스포드/캠브리지 출신인게 놀랍다며 빈정거리다 욕을 먹었다. 이번에는 INSIDE DIOR이라는 디오르 브랜드의 패션 다큐를 방송에 내보냈다가 혼쭐이 났다. 패션모델이 피팅을 기다리는 동안, 계단에 앉아 가브리엘 마르케즈의 소설을 읽는게 신기하다는 식의 다큐 메이커의 인터뷰가 나온다. 디오르의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 대해 던지는 질문도 하나같이 어른이 아이를 다루는 꼰대기질, 남자들의 가르치듯 말하는 습관, 맨스플레인의 태도로 가득차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나는 이것이 패션산업을 보는, 이른바 꼰대질/맨스플레인에 익숙한 남자들의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패션을 항상 이런 톤으로 묘사하는 방송작가들을 비롯한 제작과정의 매개자들은 패션에 대한 깊은 생각을 용납하려고 들지 않는다. 이 와중에 오해만 커진다. 패션을 인문학적으로 푸는 일을 하면서, 내가 갈아엎고 싸워야 할 대상의 폭과 넓이가 커진다. 내가 패션을, 트렌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읽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화려함, 글래머, 쉬크하다는 식의 형용사로만 설명하기엔, 패션은 그 자체로 인간의 삶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일상을, 인문학의 렌즈로 읽지 못한다면, 왜 우리는 인간의 무늬인 인문학을 공부하는가? 여전히 이 땅에는 인문학이 대학의 권좌에서 전수되는 비급인양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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