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르누아르의 여인 展 후기-행복의 조건을 묻는다

작성일 작성자 패션 큐레이터



행복의 조건을 묻다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의 여인> 전에 다녀왔다. 인상주의 회화전은 사실 한국에서 너무 자주 열린다. 그만큼 사골국물 우려먹는 듯하 전시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 전시는 항상 기획자들에겐 '안전장치'처럼 왠만큼의 관객들을 불러모은다. 이건 인상주의 미술이 우리에게 갖는 일종의 힘이기도 하다. 1980년대의 일본이 우리와 똑같았다. 서양미술사란 거대한 담론, 어찌보면 너무나도 방대하고, 전문적인 인문학의 총아에 접근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학위자들을 봐도 한 두해 공부해서 해결날 문제도 아니었고,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학술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내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미술사 통론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 각 시대별 미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머리가 지끈거릴정도로, 르네상스 이후로는 도상학적인 연구며, 역사에 대한 면밀한 이해, 상징과 비유, 사회적 조건 등 다양한 것들을 공부해내야 그림이 조금씩 친밀감이 느껴진다. 미술은 항상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하나? 하는 자조감이 들 때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인상주의 미술만큼이나 쉽게 다가갈 요소가 많은 사조가 없었다. 일단 그림들이 예쁘고, 심각하지 않으며, 비유적인 의미들을 극한까지 끄집어내고, 재구성하는 이런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림 속 모델들은 하나같이 지금의 내 모습과 흡사했다.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그저 행복하게 웃고 환하게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초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인상주의 그림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이런 단순한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인상주의란 사조에 미련을 갖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인스타그램이며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도 현대의 일상을 조각조각, 많은 사건들을 기록하는 저장고 같은 것이 아닐까? 타인들에 대한 관음증까지 아니더라도, 누군가 자신의 아이 사진을 올리거나, 아이의 성장과정, 혹은 사랑스러운 가족적 일상의 풍경을 올릴 때마다 우리는 좋아요 버튼을 누르게 된다. 적어도 그런 동영상이며 사연을 읽는 순간만큼, 내 삶의 작은 일상적 풍경과 중첩되며, 타인의 삶은 내 삶의 경계션으로 밀려 들어오며 내게 '행복한 순간의 기억'을 되살려내보라고 응원한다. 



평생 6천점에 가까운 다작을 남긴 작가 르누아르, 그가 그린 그림 속 여인들의 모습을 느린 시간 속에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상주의가 태어난 19세기 중후반은 고도의 경제/산업의 성장기였다. 과거의 화가들이 자신의 후원자를 비롯해, 상류층 인사들을 모델로 삼았다면, 이들은 도시의 부산한 풍경들, 카페, 극장,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오페라를 보러 간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서양화는 전통적으로 역사, 종교, 신화와 같은 진중한 소재를 채택, 사진에 가까운 재현을 잘 한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줘왔다. 



하지만 사진의 발명과 더불어 현실에 대한 회화적 재현은 그 힘을 잃게 되었고, 사람들은 회화란 매체 자체의 의미, 존재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려운 말 같지만, 사실 별 거 아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라질 때, 적어도 역사를 통해 관통해온 회화란 장르, 혹은 기술, 예술의 영역이 새롭게 변모하는 시대에 맞추어 그 '위상값'을 정해야 하는 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건 회화가 아니어도 여전히 모든 다른 영역에도 적용되는 문제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열심히 한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 집단을 이뤄서 새로운 시대의 문법을 보여주고, 그것을 따르도록 해야 하는 집단이 나와야 한다. 인상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살롱이라는 기존의 미술계의 권력체계에서 떨려나온 이들이 모여,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보여준 것이다. 



새롭다는 건 참신하다는 말 대신, 기존의 것에 익숙한 이들에겐 찬밥이 될 수 있으며, 기존의 미학과 아름다움의 기준에 젖어있는 이들에게 수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능적으로 뛰어난 개념제품들이 시장화에 실패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결국 오랜 시간 속에서 살아남으며, 저변을 확대하고 그 미학을 공감해주는 이들을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인상주의는 성공한 사조다. 그들은 교훈이나 가르침 보다,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언제나 발견할 수 있었던, 하지만 '일상'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어온 요소를 밖으로 끄집어내고 소통한 것이다. 


탈지면으로 물감을 빨아낸 듯, 강하나 윤곽선도 지워진 그림은, 환한 햇살 아래 우리가 빛나는 표면을 볼 때 시각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담기 위한 장치였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러니까. 첫 아이의 탄생과 함께 행복의 조건을 다시 묻고, 자신의 그림으로 화답한 르누아르. 그의 그림 속에서 이제 막 2살이 되어가는 딸을 생각하고, 언젠가는 아이의 모습을 화폭에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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