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샤넬 코리아 특강-2018년 크루즈 라인을 해석하기

작성일 작성자 패션 큐레이터



이번 생에 샤넬 강의는 처음이다. 프랑스발 다른 명품 브랜드들의 강의는 자주 맡아왔지만 이번 샤넬의 2018년 S/S 크루즈 라인을 보는 순간 강의를 자청하고 싶을 만큼, 고전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화적 영향력이 강력하게 배어났다. 강의 횟수가 무려 9회다. 매 회차 샤넬 임직원들과 함께 고전 그리스 시대의 문화사와 패션에 용해된 그 흔적들을 설명하고 있다. 고전 그리스는 인간을 가장 아름다운 자연물이라고 믿었던 시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미적 가치들이 이때 태어났다. 



특히 이번 컬렉션엔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샤넬 브랜드의 장인정신을 떠받치는 9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샤넬공방들의 협업이 더욱 빛났다. 암 커프스, 옷의 플리츠 주름, 지중해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컬러감, 마치 백팩을 맨 듯 실제 끈으로 개인적으로 연출한 듯 보이는 자유로운 의상들이 런웨이를 빛냈다. 그리스 신화와 묶어서 등장하는 많은 모티브들과 상징들이 커스텀 주얼리와 단추에도 알알이 새겨져있다. 고전은 항상 현대의 거울이자, 영원한 향수를 끌어올리는 원천이다. 



기존의 복식사에서는 그리스 복식의 형식미를 주로 가르친다. 이러한 형식미학이 말하지 않는 고대의 풍성한 영감과 정신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고전 공부를 하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를 수십번 독해하며, 고전적 어휘의 다양함과 그 색조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최근엔 그리스의 법제사를 공부하기 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두꺼운 연구서를 놓고 한참 머리를 쥐락 펴락 해야했다. 



한 사회의 복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표면의 색채와 실루엣, 소재와 디자인을 공부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입었던 인간에 대한 연구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땅에서 서양복식사 연구가 매우 한정적이고 발간되는 논문들이 하나같이 빈약한 것은 복식의 역사를 매우 한정된 방법론으로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사와 경제사, 담론사, 미를 둘러싼 집단의 채택과 그들이 만든 미의식의 실체를 읽기 위해서는 정밀하고 다층적인 독해가 필요했다. 



국내에 나온 고대 그리스 시대의 복식을 다룬 박사학위 논문들을 봤는데, 굉장히 빈약하고 화가 날 정도로 그 토대가 약했다. 물론 복식미학이란 관점에 머물러 있기에 그렇겠지만, 나처럼 패션을 통해 한 사회의 다양한 양상들, 심지어는 제조업으로서의 옷의 제작과 유통, 리테일, 마케팅 전략, 기업조직의 형성과 진화, 소비의 양상, 소비자 행동들, 그들을 하나로 묶는 철학과 이념을 다 살펴보다보면, 그저 고전시대를 공부한 게 아니라, 이미 현재의 우리가 다 들어차있던 한 시대의 양상을 읽게 된다. 난 이런 공부가 좋다. 


고대 그리스/로마 복식사만 따로 묶어서 책을 쓰려고 지금껏 수없이 논문들을 읽고, 현대의 변주된 작품들을 찾고, 적용하며 글을 쓴지도 꽤 되었다. 라틴어와 헬라어까지 해야 실제로는 고전 그리스 시대의 복식문화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게 엄밀한 사실이다. 이번 크루즈 라인을 설명하면서, 스타일링과 철학, 그리스 문화사를 함께 묶어내는 작업은 매우 도전적이지만 내겐 흥미로운 시간이다. 남은 5회의 강의를 잘 마무리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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