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산업지인 어패럴 뉴스의 특별기고란에 <김홍기의 패션인문학> 코너를 만들었다. 두 달에 한 번 꼴이라 부담도 없다. 한국일보와 조선일보에 정기적으로 패션칼럼을 써오다가 산업지에 쓰게 되니 조금 놀랍기도 하다. 첫 글은 고전 그리스의 클래식과 패션에 대해 썼다. 2018년 샤넬 크루즈 라인에 대한 해석을 내려보려고 했다. 클래식의 힘은 우리를 지치지 않도록 잡아준다. 고전에 눌려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단지 과거의 시간 누적된 인간의 욕망과 성취가, 그 오래된 생각이 새롭게 잉태될 생각의 어머니란 점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과거는 딱 그 지점에서 지혜를 알려주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인 셈이다.  누가 읽어줄까 하는 마음도 있어서 걱정도 된다. 산업지의 특성상 찰라의 산업지형과 변화들을 주로 다른 글들 속에서 패션의 인문학을 주창하는 글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게 될지도 걱정이다. 


올해 써야 할 책 앞에서 많이 망설였다. 사실은 강의 스케줄이 너무 얽혀있었고 매번 강행군이었다. 글빚도 많이 진 상태다. 계약을 해 놓고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원고들 앞에서 나는 항상 죄송하다. 앞으로 선보여야 할 책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7쇄 정도 넘어가면 제목 본따고, 표지 본따서 책을 내는 유사도서 메이커들과는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 <옷장 속 인문학>을 본 떠 만든 책을 봤다. 저자가 불쌍해보였다. 자칭 대학에서 패션 크리틱을 가르친다는 자의 수준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이건 좀 뜬다하는 책들을 골라내 교묘하게 유사도서로 포장해 파는 법만 연구하는 에디터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짓거리를 하는 자들 때문에 가장 먼저 컨셉을 소개하고 이에 언어의 살을 붙이는 이들은 손해를 본다. 누군가 먼저 쓰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책들. 그러나 중요한 표제어와 표지까지 비스무레 베껴서 매대를 사서 책을 파는 자들. 이런 것들이 이 나라에서 출판을 한답시고 살아간다. 정말이지 역겹다. 


나는 항상 어떤 컨셉을 사회에 제일 먼저 소개하는 사람이었고, 필자였다. 그 자부심 하나로 지금껏 유쾌하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이미 재산은 많으므로. 자칭 학계에 있다는 자들이 지식소매상의 글을 베끼는 세상에서, 그걸 추동시키는 몰지각한 책 편집자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내가 그들을 비웃으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지금껏 나를 믿어준 이들을 위해, 항상 내 에너지를 써왔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힘이었고 지치지 않도록 해주는 환약이었다. 2017년이 지나간다. 18년 강의 스케줄도 얼추 나온다. 미술관 12곳과 특별강의, 마스터 강의 일부를 달력에 표시해놓고 또 길게 한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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