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행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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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이야기

조선은행권 이야기.

은자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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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도감등에서 화폐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화폐에 대한 자료들도 오류가 넘쳐나고 앞뒤가 안맞는 설명을 많이 보게 됩니다.


특히 조선은행권과 환권들 관련해서는 더욱 더 부정확한 자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도감등에 의하면 흔히 조선은행권을 금권, 개권, 갑권, 을권, 병권, 정권, 무권 으로 7가지 종류로 분류는 명확하게 되어 있는데, 설명들이나 분류는 상당히 모호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이번에 갑천원 미발행 지폐를 하나 구하게 돼서, 도감등의 설명을 살펴보다 보니 역시나 잘못 기술 되어 있는것 같아, 조선은행권 들의 분류 및 이유에 대해, 제가 조사한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조선은행권 태동 및 금권 까지


전에 제가 작성한글 견양권 이야기에서도 한번 적었었는데, 도감등에 의하면 우리나라 지폐에 시작을 제일은행권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전 개인적으로 제일은행권은 우리나라의 화폐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제일은행권은 광무6년인 1902년 부터 한국에 진출해 있던 일본 은행인 제일은행이 임의로 발행한 사설화폐입니다.  화폐의 단위도 원(圓)으로 일본 화폐 단위 입니다.


이 당시 대한제국시절 사용하던 정식 화폐단위는 원() 이었고, 반원들과 같은 동전들이 정식으로 만들어 지고 있었습니다.

1909년 구 한국은행이 설립된후, 1910년 8월 강제 병합후에도, 한국은행을 통해  대한제국의 정식화폐 단위인 원() 지폐가 1912년 까지 발행되었습니다.

 

 

1911년 8월 일제가 조선은행법을 만들어서,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변경되면서, 당시의 조선은행은 업무인수인계 과정에서 한국은행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제일은행으로 부터도 사설화폐였던 제일은행권을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것으로 간주하여 두은행으로부터 인계를 받았기에, 기존의 불법지폐인 제일은행권이 한국의 최초의 근대지폐로 인정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엔 이건 아닌거 같습니다.

강제 병합후, 일제 강점기때 일본 화폐 단위인 圓으로 바뀌어 사용한 금권이후의 지폐는 그렇다고 쳐도, 우리나라 화폐의 정통성은 대한제국의 원()이 엄연히 있을때, 일본이 임의로 사용하던 불법지폐를 나중에 우리돈 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일제는 그러기를 바랬어도, 수집하는 우리는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 좋을듯 하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몇십년전까진 (적어도 70~80년대 까진) 화폐를 수집하시는 나이드신 분들은 일제강점하에서 교육을 받으시고, 향수가 많았던 분들이어서, 일제 시대에 한국에서도 사용되던 일본 은화와 조선은행권에 관심이 많이셨고, 별 저항없이 수집들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엔 그분들이 어릴때 귀하게 봤던, 일본은화들과 조선은행권들이 한국 수집계에서 고가에 거래가 되었는데, 지금은 조선은행권은 환권보다 쳐주지를 않고 있으며, 일본은화들은 더이상 우리나라 돈으로 전혀 쳐주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것들을 볼때 앞으로, 새로운 수집인구가 늘어날수록, 우리나라 지폐는 구 한국은행에서 발행했던 원() 부터로 보는 것이 타당할것 이라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도입부가 길었지만, 조선은행권들의 시작은 일명 1914년부터 발행된 금권 이었고, 이후 오랫동안 쓰이다가, 1931년 9월 18일 발발한 일명 만주사변을 계기로 통화량이 팽창을 꾀하고 만주사변의 군자금등을 충당하고자 더 이상 금과 바꿔주지 않을수 있는 개권을 발행하게 됩니다.

 

 

2. 만주사변 및 중일전쟁 때문에 태어난 개(改)권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개권은 만주에서의 활용될 통화및 군자금등을 조선은행을 통해 조달하고자 발행된 거라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1932년 1월 4일부터 개일원 권이 발행 되었고, 1932년 6월 1일 부터는 십원권, 1935년 6월부터 오원권 이 새로 나오게 되고, 개백원은 1938년 12월 1일이 돼서야 발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간혹 백과사전이나, 다른 자료에 의하면 개권을 전쟁 통화를 위해 발행했다고 기술한 것들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1931년 9월 18일에 발발한 만주사변에서는 일본이 채 몇 개월이 되지 않아 만주를 점령하고 일본의 괴뢰정부를 수립하고, 그곳의 통화도 조선은행을 통해 공급하고자, 개일원권과 십원권을 먼저 발행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면 되고, 일본이 추가로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은 1937년 7월부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중일 전쟁의 전비등을 본격적으로 부담하고자 해서 중간기지로 활용하고 있던 조선은행권을 통해 고액권인 개 백원을 발행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주사변을 통해 조선은행권이 만주까지 공급 되었고, 중일전쟁을 통해 조선은행권이 중국까지 공급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함)


3.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태어난 갑(甲)권

일제의 입장에서는 개권만 해도 금권에 비해 통화 팽창을 시킬수 있는 화폐였지만, 일제가 1941년 12월에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수행하다 보니 물자도 더욱 부족해졌고, 돈도 더 많이 필요했기에 개권에 비해 종이 지질도 조잡하고, 색도도 줄인 갑권을 1944년 2월 1일 갑 오원과 십원(유번호)을 시작으로, 10월 15일에는 갑일원권을,  11월 1일 부터는 갑백원, 11월 15일 부터는 갑십원 무번호, 45년 2월 15일에는 갑오원 무번호를 발행하게 됩니다.  (갑일원의 경우 도감에는 개일원 무번호로 되어 있지만, 갑일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갑오원 무번호의 발행일은 44년 2월이 아니라 45년 2월인 것 같습니다)

 

 

4. 을 권 및 병권


갑(甲)권 까지는 일제강점기하에 일본에서 인쇄해서 가져온 지폐 이기 때문에 명확히 구분이 되는데, 을권과 병권은 발행년도도 대광사 도감과 오성사 도감이 서로 다르고, 인쇄한것도 대장성 내각인쇄국인지 조선서적인쇄주신회사 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을권과 병권은 기호를 제외하고는 도안의 차이가 없으며, 지폐에는 일본제국인쇄국제조로 적혀있음)


을권과 병권에 대해, 제 나름 대로 조사하고 열심히 지폐를 들여다 보고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전쟁후반부인 1944년 부터는 제해권및 제공권을 거의 상실 했기 때문에, 그동안 일본에서 찍어서 한국으로 가져와서, 중국까지 보내야 했던 조선은행권들의 발행지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변경할것을 고민 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1945년 8월 해방직전까지, (그동안 일본에서 인쇄되서 한국으로 공수되던 갑권과는 달리), 일본이 아닌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일본 기술자들이 , 미발행 갑천원권 70억원과 을 100원 21억원을 인쇄하고 발행할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45년 8월 15일 갑작스런 종전이 되자, 일본인들이 이 돈을 무단 인출하여 일본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함께 근무하던 한국인 들의 반대로 무산되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 있던 을 100원 권 인쇄원판을 몰래 탈취해서, 일본인이 운영하던 근택인쇄소에서 8월 하순부터 약 보름간 을 백원권을 제조, 30억원을 인출하여 일본으로 도주 하였고, 이로 인해 조선은행권 발행잔량은 해방직후 48억원에서 보름뒤에는 80억원으로 늘어 나게 됩니다.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된 미발행 갑천원권 70억원과 을백원 21억원은 인쇄된 상태로 금고에만 있었기에 발행량에는 잡히지 않았음.  참고로 조선은행권의 발행량은 1914년 2천만원, 1937년 중일전쟁 직후에는 2억 8천만원, 44년 말에는 31억 4천만원, 45년 3월에는 35억 7천만원, 45년 8월 48억 4천만원, 45년말에는 87억 6천만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도감등에 을 백원의 발행일이 45년 8월 15일 혹은 9월 1일로도 되어 있는데, 해방과는 무관하게 미리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고, 8월 15일 이후에도 일본 기술자들에 의해 정식 경로를 거치지 않고 추가로 인쇄되었기에 둘다 맞는 표현이라고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가끔씩 영화등을 보면,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이 라디오에서 나오자 마자,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들이 자주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는 다른 설정입니다.  실제 당시의 기록등을 보면, 미군 진주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방의 기쁨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조선총독부하에서 일상이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미군이 인천에 상륙 한것은 9월 8일 이고,  당시 조선총독으로부터 남한의 관리권한을 인계받아, 지방까지 군정청 업무가 연계된 것은 두달정도가 더 걸렸다고 합니다.


아무튼 미군군정이 시작되었지만, 45년 11월 2일 군정법령 21호에 의해 조선은행법 효력이 존속되어 조선은행권이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미군 군표도 함께 통용)


그 동안 조선 정판사 사건에서 만들어 졌던 조선은행권 위조지폐의 종류가 어떤 것이 었는지, 매우 궁금했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을 100원권 이었음을 확실히 알게된 성과가 있었습니다.

 

조선공산당이 해방후 근택인쇄소를 무단 점유하여, 공산당 기관지를 인쇄하다가, 종전 직후 일본 기술자들이 근택인쇄소에서 작업을 하다 놔두고 간 100원 지폐원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해서 45년 10월 20일에서 6차례에 걸쳐 위조지폐를 찍어내다가 46년 5월에 검거 된 사건인데, 그 위조지폐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을 백원권 이었습니다.

을백원권은 이렇게 정식 경로를 거치지 않고 발행되었고 불법유통된 위조지폐도 많았기에 미군정하에서 대부분 회수되어 교환 후 폐기 되었기에 남아 있는 을백원권이 거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남아 있는것도 위조지폐가 대부분인 이유입니다.


을 1원권은 기존에 준비됬던 대로, 45년 10월 20일부터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가 된 것으로 보이며, 을백원권은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해방과 더불어 소리 소문없이 인쇄가 된 상태였고, 인쇄원판도 실종된 상태였기에,  병백원의 경우 일본 내각인쇄국에 인쇄원판만을 다시 요청해서 만들었는지, 아니면 인쇄원판과 더불어 일부 혹은 전부를 인쇄해서 가져 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광사 도감등에는 병 100원권은 당초 계획에 따라 일본 대장성에서 인쇄하여 45년 12월 10일 가져 왔다는 본문내용과, 인쇄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가 했다고 되어 있는 상반된 표현이 함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병백원의 경우 대장성에서 인쇄원판과 일부를 새로 인쇄하여 가져 왔고, 그 이후 한국에서도 일부를 인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병백원 견양권의 경우 견양권에 찍혀 있는 3번지폐의 견양인쇄는 일본에서 인쇄된 견양인쇄와 일치하며, 4번과 7번 지폐에는 목도장과 비슷한 견양도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봐서 한국에서 인쇄한 지폐의 견양을 알리고자 찍은 것으로 사료 됩니다. )

 


 

 

 

그동안 개인적으로는 을 십원과 병십원을 아무리 쳐다봐도 기호를 빼고는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여러번 토로 했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원래 같은 권종이었음을 확인한 셈이네요. ㅎㅎ

 

 

4. 정권 및 무권


일부 옛날 도감에 정백원권은 1945년 7월 1일, 십원 권은 45년 10월 10일에 한국에서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를 통해 인쇄된 것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으나 (이것 때문에 해방직전 한국에서 찍어낸 돈이 정 백원이고, 조선 정판사 사건때의 위조지폐도 정 백원이라고 혼동하는 분들이 생길수 있으나, 1945년은 1946년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1946년 7월 1일과 1946년 10월 1일이 맞습니다)


을권과 병권은 지폐에 대일본제국인쇄국제조로 적혀 있어 인쇄된 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도 혼동이 있었지만 (을권은 오히려 한국에서 인쇄한 것이 확실해 졌지만..), 정백원 부터는 지폐 좌측하단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라고 적혀 있고, 병백원에 비해 앞면 왼쪽에 있던 큰 오동문양은 백원글자쪽 가운데로 옮겨놨고, 수노인상 위쪽 기호 위에 있는 꽃모양도 무궁화 꽃으로 바뀌었으며, 뒷면도 병권과는 다르게 붉은 자색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뒷면 가운데 상단 오동 좌우에 있는 꽃모양등도 무궁화 꽃으로 바꾸는등 나름대로 일제의 잔재를 털어 내고자 노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47년 6월 3일부터 인쇄된 무백원권은기호는 10A에서 48번까지 있으며, 정권과는 달리 뒷면의 색상이 파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무번호중 48A번 기호는 한국동란중 북한에 의해 한국은행이 점령당한 후, 남아 있던 원판을 이용 많은 양을 불법으로 찍어 냈기에, 다른 기호들과는 달리 대접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동란 당시 북한은 한국은행에 남았던 미발행 신천원도 불법 유통을 시켰는데, 조선은행권 미발행 천원에 대해서는 도감등에 더 많은 오류를 포함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도감이나 인터넷 자료등에, 조선은행권에 대해 진술이 얻갈리는 것은, 당시의 기록들이 거의 보존이 되어 있지 못하고, 전쟁 및 화폐 발행에 대한 관련자들의 진술도, 전쟁만 해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으로 4번이 있기 때문에 혼동하여 생긴 것들이고, 해방후에도 즉시 정부가 수립된 것이 아니고, 미군 군정치하에 있다가 1948년 8월 15일이 돼서야 비로소 정부가 수립이 되었기에 발생한 혼동이라고 사료됩니다.


조선은행권을 금권, 개권, 갑권, 을권, 병권, 정권, 무권 으로 7가지 종류로 나뉘게된 중요한 이유로는, 한일강제병합(1910),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45년), 해방(1945), 정부수립(1948) 을 기점으로 조선은행권 화폐 종류가 바뀌었으며, 이를 기준으로 분류되었다고 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됨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조선은행 미발행 천원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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