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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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토골 일기

겨울로 가는 길,

햇꿈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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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둥이와

먼 도회의 친구와

예겸이 까지 합세한 김장을 했다.


#.

벌거벗고 들 뛰기를 일삼던 쌍둥이들이

무 썰어 김치소 넣고

이런 저런 일을 제몫으로 해 낸 올 김장은

달보드레한 김치소에

흡족한 사랑조차 넘치게 버무려졌으므로


#.

고요하던 산 중이

잠시 화들짝

잔치 분위기였다.


#.

어두운 고샅을 조심조심 걸어

저 아래 주막거리쯤

가물거리는 등잔 불 하나 밝힌 채

깊은 어둠속에 옹크려 있는 점방문을 두드려 구 할 수 있었던

조악했던 과자며 군것질 거리들에 대한 기억의 뿌리를 타고


#.

한 밤에 배달된 통닭 두마리,

아이들 노래와 춤은

통닭보다 더 기름지고 고소 하다며 깔깔대소,


#.

그리고 비,


#.

시린 빗줄기 틈새

검정 물감같은 어둠이 번지고

뒷산 고라니 울음소리가 

촉촉한 물기 속에 춥다.


#.

습기 가득한 더위 속을 부초처럼 떠돌다가

고르지 않은 길을 덜컹거리던 꼬물차가 멈춰 선

아누라다푸라의 고원.

물속 같은 습기와 추위,

시장 귀퉁이에서 함부로 난자되던 비릿한 바다 생명들

그 생경한 도시 속에서

나는 발가락 끼워 신는 조리를 두개 샀고

검은 피부와 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메우며

낯선 밤이 오는 것을 보았다.


#.

빨강

노랑

초록

주황이거나

어쨌든 온통의 색깔들을 뒤 섞으면

검정이 되는 것 처럼


#.

붉은 화살촉 홑잎과

태양빛 단풍잎

누른빛의 고로쇠 잎과

노란색 자작나무 잎

조금 덜 붉어진 철쭉 잎도 넣고

앞, 뒷산에서 함부로 쏟아진 온갖 나뭇잎들 위에

바람이 얼키듯 설키듯 버무려지면

무채의 겨울이 되는 것이다.


#.

사방 어디에도

태양빛 닮은 따듯한 나뭇잎 하나 없으므로

겨울은

추울 수 밖에 없는 계절,


#.

이제 곧 소설,

큰 길의 고개 아래에는

눈 보다 먼저 제설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

얼마나 추워지려는지

여전히 찬 비 오시고

찰박찰박 젖은 걸음으로 어둠이 내렸으므로

이제는 밤,

산골의 밤,

승냥이 대신 고라니 길게 우는 밤,


#.

이제 이승에 있지 아니한 사람의 번호로

기어이

전화라도 한통 해 보고 싶은 밤,


#.

결국

춥고 긴 밤이 밝도록 비 내리시고

나는 또 잠 못 들고 뒤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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