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삼태봉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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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삼태봉을 오르다

갈파람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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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국제신문 근교산 그너머 기사에 경주 삼탭봉이 소개되었다

"불국토 관문 지킨 원원사(遠願寺) 감싸 안다

원원사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도는 원점회귀 코스

오름길 곳곳 전망대… 봉서산 정상 위치 정립 필요

은방울 군락지·진달래 동산 등 봄 산행에 매력적"


이른암침 부전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울산 호계역 까지 .....

시내버스420번을 타고 울산 외동읍 모화 종점까지....


뒤쪽은 치술령 능선이 앞쪽은 삼태봉 능선이 보인다


모화삼거리에서 건너 굴다리 아래로 들어간다


상모마을로 진입하고


상모 마을끝에서 좌측 능선을 오른다


첫번째 전망바위에서 멀리 치술령이 보인다



기암들



모화에서 올라온길과 능선


모화지


건너 삼태봉이 보이고


봉서산도 보인다



경주 풍력발전


이철탑을 지나고


둥글레꽃


바위속에서 살고있는 나무





ㅎㅎ 고사리


후덥지근한 무더위속에 힘겹게 올라온 봉서산



삼태봉으로 가는길 연달래꽃


풍력단지가 점점 가까워져 간다


은대난초



족도리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미나리아제비


풍력단지 전망대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임도를 벗어나 다시 숲길로...


연달래 꽃속길..


전망바위에서 내려 보이는 모화지


가짜 삼태봉

길따라가다간 이곳을 지나칠수 있는곳이다


연달래 군락지

와우~~꽃속에 빠진다


삼태봉 정상으로 갔다가 이곳으로 돌아 나와야 한다


정상가는길의 초고터널..


삼태봉 정상

정상은 사전적으로 '산 맨 꼭대기''그 이상 더없는 최고 상태'를 뜻한다

산 정상은 멧부리 혹은 산봉우리, 산마루 등으로 불리는데 산에서 뾰족하게 솟은 부분을 지칭한다

이른바 능선을 산등성이라고 부르고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을 산봉우리나 산마루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예외가 있다

삼태봉이 그런 경우다 삼태봉은 해발 630m 지점에 정상석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에 이르는 산등성이에 647봉과 650봉이 있다

정상보다 더 높은 지점이 두 곳이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산꾼들은 그 두 지점을 삼태봉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삼태봉 삼각점


다시돌아 내려 오는길의 연달래 군락


삼거리에서 좌측샛길로 하산을 한다


산불이 났던 흔적이다


길을 낼려고 훼손을 했는지

안타까운 맘으로 절개지를 타고 내려간다


사방댐 공사하다 말았는지??

하천길을 따라 내려간다


너무덥기도 하고 ..해서


시원하게 씻고 조금더 내려오면 모화지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돌아서


우측 큰계곡에서 한번더...ㅎㅎㅎ  계곡치기를 해서 원원사쪽으로 오른다



원원사입구




중국 당나라 때, 엄양 존자가 먼 길을 걸어 조주 선사를 찾아왔다

"어떻게 왔느냐?"고 조주가 물으니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엄양이 말했다

그 말에 조주는 "방하착(放下着)"을 외쳤다 '내려놓아라'는 뜻이다

엄양은 그 말을 좇아 손에 든 염주와 지팡이를 내려놓고 조주를 올려다보았다

그럼에도 조주의 대답은 똑같았다 "방하착!" 엄양은 잊은 게 있는 듯

등에 진 걸망을 내려놓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이제 더 이상 내려놓을 것이 없다는 무언의 답변이었다.

 그때 조주가 내뱉었다 "착득거(着得去)!" '정 내려놓기 싫으면 그대로 지고 가라'는 얘기다

우두커니 서 있던 엄양은 비로소 깨달았다 조주가 지칭한 것은 마음이었다

온갖 번뇌와 갈등, 원망, 집착을 다 내려놓아라는 가르침이었다


경북 경주 삼태봉(三台峰·630.0m) 들머리인 원원사 주차장에서 천불보전에 오르는 계단 옆 돌비에

'방하착'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주와 엄양의 선문답을 되새기며 원원사 마당을 가로질렀다 마당에는 묘한 것이 눈길을 잡았다 붉은 고추였다.

 오신채(五辛菜·자극성이 있는 5가지 채소)라고 해서 스님들이 삼간다고 들었는데

사찰에서 태양초를 만들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이해'는 순전히 '오해'였다

원원사는 천태종 계열의 사찰이라 조계종과 달리 오신채를 특별히 삼가지 않는다

금기도 마음속 짐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다 내려놓으면 금기도 없어지는 것을.


원원사 (遠願寺)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鳳棲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천태종에 속한다 옛 절터 밑에 새로 지은 소규모의 사찰이 있다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開祖)인 명랑법사(明朗法師)가 세운 금광사(金光寺)와 더불어

통일신라시대에 있어서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사찰이다

명랑의 후계자인 안혜(安惠)·낭융(朗融) 등과 김유신(金庾信)·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

국사를 논의하던 중요한 인물들이 함께 뜻을 모아 세운 호국사찰이다

창건 이후의 역사 및 폐사시기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4대덕(四大德)인 안혜·낭융·광학(廣學)·대연(大緣)의 유골이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혔기 때문에 사령산조사암(四靈山祖師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부도(浮屠) 4기와 동·서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일반적인 신라의 탑들에 비하여 탑신이 가늘어 가냘픈 느낌이 들지만

이러한 약점을 탑에 조각된 사천왕상과 12지신 상이 보강해주고 있다

비교적 크고 안정된 이중기단은 상층기단의 12지신 상 조각을 위한 것이다

이 탑은 1933년에 도괴되었던 것을 일본인이 복원하여 세워놓은 것이다

또한, 석탑의 동북쪽 500m 거리에 부도 3기가 있고 서북쪽 300m 지점에 최근 발견된 1기의 부도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서북쪽의 부도는 원좌(圓座)내에 범자삼자(梵字三字)를 새겨놓았고

연화문 등의 조각이 다른 부도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조형미가 있다 옛 절터는 사적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 절터에 7m 높이 삼층석탑 두 기

 옛 원원사 터는 원원사 뒤편에 있다

그곳에 7m 높이의 삼층석탑이 동·서로 서 있다  석탑은 헌걸찼으나 상처가 심했다

탑의 역사는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처럼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1931년 경주고적보존회의 복원 이후라고 했다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됐고 기단면석 4면에는 평복을 입은 십이지상이 연화좌 위에 있었다

옛 원원사는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 삼국 통일의 신라 영웅들이 뜻을 모아 세운 호국사찰이었다





원원사 입구 사천왕석상


도로를 따라 ..


모화지를 지나 도로를 따라 내려 온다


하모마을 개곡을 따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뒤쪽 산행한 능선을 배경으로

유적지와 유물이 함께 있어 한산 새로운 맘으로 산행 을 마친다

다시 기차를 타기위해 호계역으로..

   渴波濫 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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