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의 條件

중세.근.현대화가***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 큰 푸른 말들 / 독일 뮌헨 출생 화가

작성일 작성자 준호 할배

 

[우정아 아트스토리]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 큰 푸른 말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말 세 마리가 원색의 풍경 속에 모여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몸통은 육중하고 강인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둥글고 원만해서 유순한 그들의 성질을 드러내준다. 말들의 목과 등허리를 잇는 부드러운 곡선은 뒤편에 서있는 산봉우리의 능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초원에서 자연에 순응하여 평화롭게 살아가면서 생명력과 고결함을 간직한 동물들의 세계가 바로 독일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1880~1916)가 추구하던 이상향이다.

프란츠 마르크, 큰 푸른 말들, 1911년, 캔버스에 유채, 105.7×181.1㎝,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 소장.

 

프란츠 마르크, 큰 푸른 말들, 1911년, 캔버스에 유채, 105.7×181.1㎝,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 소장.

 

마르크는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와 함께 '청기사파(靑騎士派)'라는 미술가들의 그룹을 이끌었다. 마르크는 푸른색을, 칸딘스키는 기사를 유난히 좋아했기에 나온 작명(作名)이었다. 각각의 색채에 추상적 의미를 부여하곤 했던 그들에게 푸른색은 바로 정신성(性)의 상징이었다. 원래 신학을 공부하고 성직자가 되고자 했던 마르크에게 세기 전환기의 유럽은 자본주의가 낳은 물질 만능주의와 도덕적 불안감, 퇴폐적 풍조가 뒤섞인 암울한 세상이었다. 마르크는 정신적 타락과 피폐한 영혼의 시대에 고귀하고 순수한 정신을 되살려 줄 선구자적 존재가 바로 푸른 말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1914년, 세기말의 불안은 끔찍한 현실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마르크는 군에 자원했다. 떠나는 그에게 칸딘스키는 "다시 보자"고 인사했고, 그는 "안녕"이라고 대답했다. 1916년, 마르크는 전쟁사상 가장 길고 잔혹했던 전장(戰場)으로 꼽히는 베르덩 전투에서 포탄을 맞고 사망했다. 전쟁터에서 보낸 편지에 그는 차라리 죽음을 바랄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지금 평온한 청마(靑馬)의 세상에 있을까?

출처 / premium.chosun.com / 우정아 포스텍 교수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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