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복의 의미와 기능

1. 점복의 의미

사람은 왜 점을 치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과학이 덜 발달했을 때부터 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오늘날까지 점복이라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점복이 미신이라고 하여 멸시하며, 대다수의 사람들도 점복이 하나의 인정된 학문이나 과학이라고는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과학이 발달하면 점복이라는 이 현상은 점차 사그러들 것 같이 생각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점복업자들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점복 현상과 신앙 관계를 살펴보면 재미있다. 일반적으로 불교 신자들은 점복하는 일을 별로 꺼리는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옛부터 스님들 가운데 부차적인 능력으로 또는 하나의 잡술로 점복능력을 갖춘 분들이 있어 왔기에 그리된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천주교도이건 개신교도이건 간에 점복하는 일을 상당히 꺼리는 것 같다. 이는 아마도 기독교 신앙이 기본적으로 유일신앙으로서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다는 관점에서 점복자의 권능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관찰이라고 할 수있다. 상당수의 기독교도들도 은밀히 점복 행위를 하고 있음을 필자가 점복 조사 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럴 때 기독교도들의 점복에 대한 태도는 '이는 하나의 재미요 참고일 뿐이지 결코 믿는 것은 아니다'는 말로 대개 합리화된다. 또 한편으로 상당수 기독교도들 중에는 방언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는 언제 휴거가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신도들이 많으며, 심지어는 그 날짜까지 예견하여 그것에 자기 인생을 걸고 있는 일부 신도들도 있다.

이와 같이 본다면 기독교 신도들이라고 해서 점복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보다 윌등히 낮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그 형태가 종교 내적인 형태로 나타나거나 또는 조금 은밀히 이루어진다고 지적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의 점복에 대한 태도도 일률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어떻든 그들은 점복에 대해 신앙인들보다 자유로운 처지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점복 행위에 참여할 수 있다.

점복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태도를 살펴보면 이 또한 흥미롭다. 여자가 남자보다 점복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그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일반적으로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발달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남자보다 여러 가지 힘이 약하여 그만큼 더 점복에 의지할 필요성이 더 커진다고 볼 수도 있다. 또는 결혼한 뒤의 여자는 그 집안 가족들의 안위, 행복을 밑받침하는 구실을 하게 되므로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자는 실제로 여자보다 점복에 대한 관심이 적은가?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살펴보면 또 다른 면이 있다. 예로부터 뛰어난 점복자들 중 남자가 여자보다 결코 적었다 할 수 없다. 무당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다른 분야 즉, 관상, 수상, 풍수 등에서는 오히려 남자들이 훨씬 더 많았고 또 유능했다.
점복 의뢰인을 살펴보아도 그렇다. 상기숙의 『한국 무점의 실태연구』의하면, 현대 서울의 점복 의뢰인의 남․녀 비율은 13:87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점복자를 찾아가는 비율은 실제로 남자가 여자에 비해 낮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점복 그 자체에 무관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남자들은 점복자를 찾아가지 않고 자기 혼자 점복 행위를 많이 행한다. 예를 들면 어릴 적엔 손바닥에 침을 뱉어 그 침이 튕겨나가는 쪽을 뜻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그 밖에도 이상한 신비 현상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또 자라면서 혼자 수상(手相)책을 읽고 익혀서 자기 또는 남의 손금을 보아 주려 들기도 한다. 또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여기(餘技)로 관상을 익혀서 사람들을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는 참고로 삼았다. 스님들 또한 시주 얻으러 다니면서 그 집 아이들의 관상을 말해 주곤 하였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어떤 기업가는 신입사원을 면접할 때 반드시 관상가와 함께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남자들은 사위나 며느리를 맞을 때가 되면 궁합을 많이 보며 선거를 앞둔 후보자 및 승진을 앞둔 관리, 회사 중역 등도 점복자를 많이 찾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또 대부분의 남자들은 내기를 좋아하여 경마나 도박 그리고 증권 투자 등을 즐기는데, 이도 또한 점복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본다면 남자들이 점복자를 자주 찾지 않는다고 해서 점복 그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편,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점복 행위를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별리점[星占]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점복 현상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 과학의 발달 여부, 신앙인과 비신앙인, 남자와 여자 등 모든 구분과 별 관계없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즉 점복 현상이란 시간(시대)과 공간(지역), 성별, 신앙 유무를 초윌하여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점복 현상이 왜 생기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시간, 공간, 성별, 신앙 등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 점복 현상은 오로지 우리 인간의 심리 밑바닥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기본적인 심성의 하나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심성은 지(知), 정(情), 의(意)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점복의 의미를 각각 지적 측면, 정서적 측면, 의지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 보고자 한다.





(1) 지적측면

점복은 사람이 스스로 어떤 일을 시도하여서 그 일의 결과를 점치는가, 또는 이미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을 놓고 그 뜻을 점치는가에 따라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최길성의 '비논리적 세계를 전제로 하는 점복(한국인, 1986.10)'이라는 글에 의하면 앞의 것을 '적극적 점복'이라고 하고 후자를 '소극적 점복'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점복이라고 말할 때는 보통 앞의 것 즉 '적극적 점복'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는 좁은 뜻의 점복이 된다. 김태곤은 ꡔ한국 민간신앙연구ꡕ에서 소극적 점복을 따로 '예조(豫兆)'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넓은 뜻으로 보면 '소극적 점복'도 일종의 점복임은 틀림없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최초의 점복은 이 소극적 점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저절로 나타난 자연 현상이나 신체 현상, 사물의 출현과 변화 등을 보고 그것이 도대체 어떤 뜻(의미)을 지니고 있는가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 아마도 최초의 점복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자연적 현상을 놓고 그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던 '지적 호기심의 본능적 발로'야말로 점복이라는 문화 현상을 낳은 가장 근원적인 인간 심리라 할 수 있다.

그 보기로 하늘을 보고 날씨 등을 점치는 천기점(天氣占)을 들 수 있다. '햇무리가 지면 비가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살핌으로써 날씨를 예측하여 농사 등의 일에 미리 대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때 햇무리가 지는 현상을 보고 사람마다 각자 자기 나름으로 그 현상을 해석해 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가장 원초적인 점복행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행위를 여러 번 거듭하다가 드디어 경험적으로 '햇무리가 지면 비가 내린다'는 결과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초의 점복 행위는 상당히 과학에 가까운 면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천기점도 점차 발달하다 보면 그 전날의 날씨로 다음날의 날씨를 점치는 수준에서 나아가서 그 전달의 날씨로 다음달의 날씨를, 심지어는 한 해의 첫날 곧 설날의 날씨를 보고 한 해의 풍흉을 점치게까지 되었을 것이다. 즉 '설날 하늘이 흐리면 풍년의 징조다'와 같은 말이 그것이다. 이러한 소극적 점복은 그러므로 인간의 지적 본능인 호기심과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꾸준한 관찰이 결합되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관상이나 수상이나 풍수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생각된다.
이러한 '지적 호기심의 본능적인 발로'는 점복 행위의 원초적인 원인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은 사실상 인류의 모든 문화를 만든 원동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지적 측면에서 점복의 의미는 '긴박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고자 하는 지적 분투심(奮鬪心)의 학구적인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점복에는 소극적 점복 외에 '적극적 점복'이 있음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적극적 점복은 사람이 어떤 적극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무엇을 점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의 소극적 점복이 이미 있었던 자연스런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적 점복'이라면 이 적극적 점복은 소극적 점복의 경우보다 무언가 더 급하고 절실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 때문에 생겨나게 된 '인위적 점복'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의「부여국조(夫餘國條)」를 보면 '군사에 관한 일이 있을 때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그 발굽으로 일의 길하고 흉한 것을 점친다'는 구절이 있다. 군사에 관한 일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급박하고도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일을 당하여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 그 싸움이 잘 되기를 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도와주기를 빌고 다른 한편으로는 점복을 통해서 그 결과를 예측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 어떤 근거에서인지 지금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당시로서는 소발굽점이 가장 영험한 점복의 하나로서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소극적 점복에서처럼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서 당면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적 분투심의 발동이 적극적 점복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적극적 점복의 한 예로서『삼국유사(三國遺事)』권2 「거타지조(居陀知條)」에 실린 이야기다.

아찬 양패는 왕의 막내아들이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후백제의 해적들이 진도에서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 쏘는 사람 50명을 뽑아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 10여 일 동안 묵게 되었다. 양패공은 이것을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서 점을 치게 하니, '섬에 신지(神池)가 있으니 제사를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못 위에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 길이나 넘게 치솟았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 양패공에게 이르기를,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두면 순풍을 얻을 것이오.' 하였다. 양패공이 깨어 그 일을 좌우에 물었다. '누구를 남겨두는 것이 좋겠소?“ 무리가 말하였다. '나뭇조각 50개에 저희들의 이름을 각각 쓴 다음 물에 띄워 가라앉게 해서 제비뽑기를 하면 될 것입니다.' 공이 이 말을 좇았다. 군사 거타지의 이름이 물에 잠기었으므로 그 사람을 남겨두니 문득 순풍이 불어 배가 거침없이 잘 나갔다.

위의 이야기에서 적극적 점복이 두 번 나온다. 첫번째는 풍랑이 그치지 않는 자연 현상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를 알고 싶어서 점을 친다. 즉 당면한 어렵고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적 분투심에서 점을 치는 것이다. 두번쩨는 꿈에 계시된 일을 실행할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어서 점을 친다. 이 또한 앞과 같은 지적 분투심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지적 측면에서의 점복의 의미를 살펴 보았는데, 그 하나는'지적 호기심의 본능적인 발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어렵고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적 분투심의 발동'이었다. 대개 앞의 것은 소극적 점복과 연관되어 비롯하였고 뒤의 것은 적극적 점복과 연관되어 비롯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점복 행위는 이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이루어진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이 두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가장 발달된 점복 형태의 하나가 『주역』이라고 생각된다.

(2) 정서적 측면
사람은 힘이 약하다. 말처럼 빠르지도 못하고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이와 발톱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러한 모든 동물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아야만 했다. 고기를 얻기 위하여 무서운 이를 가진 멧돼지도 잡아야 했고 가죽을 얻기 위하여 더 무서운 호랑이도 사냥해야 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냥하러 나가기 전에 엄청난 불안과 긴장에 시달렸을 것이다. 우선은 그 무서운 짐승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불안이고 다음으로는 과연 오늘 몇 마리나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불안과 긴장을 이겨내기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집단으로 둥그렇게 둘러서서 무기를 들고 노래하며 춤도 추었을 것이다. 또는 자기들이 잡을 짐승들을 미리 잡는 시늉도 해 봄으로써 주술적 효과를 기대하기도 했을 것이다. 앞의 것에서 음악과 무용이 나왔고 뒤의 것에서 연극이 나왔을 것이다. 또 우리가 알타미라 동굴벽화 둥에서 보듯이 미리 짐승을 잡은 그림을 그림으로써 주술적 효과를 노리기도 했을 것이며 여기에서 미술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여러 장치들을 고안해 냄으로써 사냥꾼들은 그날의 사냥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적은 여러 가지 행위에 더하여 또 한 가지 행위, 곧 점복 행위가 그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요구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그들이 어떤 짐승을 잡아야 무사히 또 많은 양을 잡을 수 있는지와 또는 어떤 방향의 어느 곳으로 가야만 행운이 있을지를 미리 알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해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것만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훨씬 더 안심하고 자신감에 차서 사냥길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아마도 여러 동물을 상징하는 그림이나 또는 어떤 물건들을 놓고 그 중의 하나를 골라내는 행위를 하였을 것이다. 또 어느 방향으로 가야 좋은지를 알기 위하여 손바닥에 침을 뱉어 탁 쳐서 그것이 튀어 나가는 방향으로 가기로 한다든지 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든 그들은 거기에서 나타난 현상을 사실로 믿고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고 희망을 가지고 사냥터로 나갔을 것이다. 이것은 그 뒤 농업 시대나 산업 시대로 변해오는 동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앞날을 완전하고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한 생존 또는 생활의 문제에서 언제나 위험, 실패의 위협 속에 놓여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기상학이나 통계학 등을 발달시켜 과학적으로 그러한 위험을 덜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또는 은행이나 보험 등을 발달시켜 실제적으로 그런 위험을 낮추는 방법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위험의 정도를 낮출 뿐이지 결코 그 위험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현대로 오면 올수록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따라서 위험 부담이 더 커지는 경향마저 생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종교로, 점복으로, 어떤 방법으로든 간에 불안한 심리를 해소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신이 아닌 한, 예나 지금이나 생존과 생활이 위험 앞에 놓여 있으며,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불안한 심리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로 점복을 이용해 오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3) 의지적 측면
인간이 점복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운명 또는 자기가 속한 사회나 국가의 운명을 되도록 좋은 쪽으로 이끌어 가보자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의지도 다시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점복의 결과가 좋게 나오건 나쁘게 나오건 간에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의지를 지닌 사람은 그 점괘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왔을 경우에는 그 점괘를 변조시키거나 파괴시켜서라도 자신의 운명을 좋은 쪽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다음은 『삼국유사』 권1에 실린 신라 제 4대왕 석탈해(昔脫解)의 이야기다.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더니 돌집을 짓고 이레 동안 머물렀다. 거기에서 성 안에 살 만한 곳이 있는가 바라보았더니 산봉우리 하나가 마치 초사흘달 모양으로 보이는 것이 오래 살 만한 곳 같았다. 이내 그곳을 찾아가니 곧 호공의 집이었다. 아이는 이에 속임수를 썼다.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옆에 묻어 놓고 이튿날 아침 문앞에 가서 말했다. “이 집은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집이오.' 호공이 그렇지 않다고 하여 서로 다투었다. 시비가 가려지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관청에 고발하였다. 관청에서 묻기를 '무엇으로 네 집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하자 아이는 '우리 집은 본래 대장장이였고, 잠시 이웃 고을에 나갔다 온 사이에 다른 사람이 취하여 살고 있소.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해 주시오.' 하였다. 그 말을 따라하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이에 아이는 그 집을 취하여 살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석탈해는 땅으로 인간의 운명을 살피는 상지(相地) 곧 풍수 행위를 하였다. 이는 일종의 점복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석탈해는 그 점괘에 따라 자기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자 했다. 사기 수법을 써서라도 마침내 그 명당을 빼앗아 자기 집으로 만들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
『삼국유사』 권1 「태종 춘추공조(太宗 春秋公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신라군과 당군이 진군하여 서로 합쳐서 백마강의 나루 입구에 닥치어 진을 치고 있었다. 이 때 홀연히 새가 나타나 소정방의 진영 위를 빙빙 돌았다. 이에 사람으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니 반드시 원수[소정방]가 상하리라 하였다. 소정방이 두려워서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그만두려 하였다. 김유신이 소정방에게 이르기롤 '어찌 날아다니는 새의 괴이함으로써 하늘이 준 때[天時]를 어기려 하십니까? 하늘에 응하고 사람에 순해서 불인자(不仁者)를 치는데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이에 곧 신검(神劍)을 빼어 그 새를 겨누어 가로 베어서 소정방이 앉은 앞에 떨어뜨렸다. 이에 소정방이 백마강의 왼쪽 언덕으로 나와서 산을 등지고 진을 쳐 싸우니 백제군이 대패했다.

김유신이 운명을 바꿔 나가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는 이야기는 또 ꡔ삼국유사』 권41 열전 「김유신조(金庾信條)」에도 실려있다.

선덕여왕 말년에 대신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명활성에 주둔하고 관군은 월성에 주둔하였는데 공방이 10여 일이었지만 풀리지 않았다.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 등이 군사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별이 떨어진 후에는 반드시 유혈(流血)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여왕이 패진할 조짐이다.' 하였다. 그리하여 반군 군사들이지르는 소리가 땅을 울리매 여왕은 듣고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김유신이 이에 왕을 뵙고 말하기를 '길흉은 무상하여 오직 사람이 하기에 따른것입니다. ······ 그러므로 덕이 요사(妖邪)를 눌러 이길 수 있으니 별의 변이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했다. 이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연에 실어 날려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사람들을 시켜 길거리에 말을 퍼뜨리기를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적군(賊軍)들을 의심케 하였다. 또 흰 말을 잡아 별 떨어진 곳에서 제사드리며 축원하기를 '······별의 괴변을 왕성에 보인 것이라면 이는 신(臣)의 의혹하는 바 비할 데 없습니다. ······ 신령의 부끄러움이 없게 하소서.' 하였다. 그리고 여러 장졸들을 독려하여 힘껏 치니 비담들이 달아날 때 쫓아가 목 베고 9족을 멸하였다.

위의 두 사건에서 김유신은 하늘이 내린 점괘를 그의 적극적인 의지로 깨뜨리고 끝내는 운명의 신을 자기 편으로 돌려 놓았다.
또 민담에서도 이러한 점복에 대한 적극적 의지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떤 스님이 시주 받으러 돌아다니다가 한 아이의 관상을 보고 단명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부모가 스님에게 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한다. 하는 수 없이 스님은 내일 어느 산에 올라가서 바둑 두는 두 분에게 빌어 보라고 한다. 그 말대로 하자 한 노인은 응낙하는데 다른 노인은 거절한다. 언쟁 끝에 마침내 그 노인이 인간 수명부를 꺼내 고쳐 주어서 그 아이는 장수하게 되었다. 그 노인이 바로 인간의 수명을 맡아보는 북두칠성님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들과 같이 점괘를 바꾸어서라도 운명을 좋은 쪽으로 돌려 놓으려는 적극적 의지가 언제나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삼국사기』 권28 「의자왕조(義慈王條)」에 다음과 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의자왕 20년 6월에 귀신이 궁중에 들어와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고 소리치고는 곧 땅속으로 들어갔다. 왕이 그것을 이상히 여겨서 사람으로 하여금 땅을 파 보게 하여 석 자 가량 파니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그 등에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이다.'는 글이 씌어 있었다. 왕이 이것을 무자(巫者)에게 물으니 '보름달은 가득 찼으니 이지러지고 초승달은 덜 찼으니 점차 찰 것입니다.' 했다. 왕이 노해서 그를 죽였다. 그러자 누가 '달이 둥근 것은 성하다는 것이고 초승달은 힘이 약하다는 것입니다.'고 했다. 이에 왕이 기뻐했다.

이와 같이 의자왕 또한 김유신과 비슷하게 점괘를 고쳐서라도 자기 운명을 고쳐 보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또 ꡔ삼국유사』 권 1 「태공 춘추공조」에는 성부산(星浮山)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서울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을 얻고자 하여 아들에게 큰 횃불을 만들어서 이 산 위에 올라 치켜들게 하였다. 이날 밤에 서울 사람들이 불을 바라보고 모두 말하기를 이상한 별이 그곳에 나타났다 하니 왕이 듣고 두려워하여 사랍들을 모아 기도하라 했다. 그 아비가 장차 거기에 응모하려 하였다. 일관(日官)이 아뢰되, '이는 큰 괴변이 아니고 다만 한 집의 아들이 죽고 아비가 울 징조입니다.'하여 그만 두었다. 그날 밤에 그 아들이 산에서 내려오다가범에게 물려 죽었다.

이 이야기에서 그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의 점괘를 조작하고자 하였다. 이는 앞서 김유신이 떨어진 별을 거짓으로 하늘로 만들어 올린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같지 않았다. 이로써 보면, 점괘를 거스르고 운명의 방향을 돌려 놓으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때에 따라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점복 행위를 하는 의지의 다른 하나는 '소극적 의지'라고 할수 있다. 이는 점괘(점복 현상)가 좋게 나오건 나쁘게 나오건 간에 무조건 거기에 순응해 버리는 것이다.
스님이 된 분들 중에는 명이 짧은 팔자이니 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불가에 귀의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
충주 청룡사(靑龍寺), 보각국사(普覺國師), 정혜원융탑(定慧圓融塔)의 비문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대사는 어려서 아이들이 잘 걸리는 병을 자주 앓았다. 점을 쳐보니 이 아이는 출가해야 비로서 병이 나으며 큰스님이 될 것이라 했다. ······ 점치는자의 말이 그러하여 대선사에게 맡겨 그를 이어 스님이 되도록 하였다.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소극적 의지' 가운데서도 가장 단적인 예에 해당한다.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1932년에 서울에서 조사하여 『조선의 점복과 예언』에 실은 이야기이다.

내가 사는 근처에 다른 집으로 일을 다니는 한 부인이 있있다. 그 부인에게는 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날 병이 들어 위독하다는 급보를 받았다. 그러나 부인은 이미 저녁 때가 되어 지금은 갈 수 없으니 하던 일이나 마저 마치고 가겠노라며 그대로 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숨을 거두려 한다는 전갈을 전하러 오는 심부름꾼을 만났다. 그제서야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부인은 그렇게 슬픈 기색을 내지 않고 지극히 태연하였다. 이에 그 이유를 묻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점자(占者)에게 점을 쳤더니 그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이 아이가 요절의 운을 면하게 되면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사망하게 될 것이라 하였으니 아이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였다. 만일 이 아이가 죽지 않았다면 남편과 자기 중 어느 한 쪽이 죽게 될 운명이니 결국 이 아이가 두 사람의 운명을 대신한 것이므로 불쌍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체념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으로 점복을 인간의 의지적 측면에서 살펴 보았는데, '적극적 의지‘와 ‘소극적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적극적 의지와 소극적 의지가 뚜렷이 구분된다고 보기 보다는 대개 섞여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개 점복의 결과(점괘) 그 자체에 완전히 순응치 아니하고 또한 완전히 거부하거나 무시하려 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점괘를 보아서 좋은 점괘면 대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의지로 그 점괘만 믿고 있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점친 사람은 그 점괘로 회망을 얻되 또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지는 소극적 의지에 적극적 의미가 곁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점괘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싶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완전히 무시해 버리기에는 꺼림직하므로 부적을 쓰는 행위를 하거나 또는 최소한 조심이라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의지는 적극적 의지에 소극적 의지가 곁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점복과 관련된 행위에서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간에 어떻든 제액 초복(除厄招福)의 의지를 나타내며 나아가 행복을 추구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상으로 인간이 점복 행위를 하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먼저 인간의 점복 행위는 신앙심 유무와 관계없기 때문에 인간의 보편적 심층심리 현상의 하나로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전제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지적 측면, 정서적 측면, 의지적 측면의 세 측면으로 나누어서 살펴 보았다.

그 결과 각각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어서 생각해 볼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점복 행위를 할 때 인간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고 또 어떻게 운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또 나아가 점복을 한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그러한 결과를 만들었으며 인간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먼저 첫 번째 문제, 곧 점복 행위를 할 때 인간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고 또 어떻게 운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느냐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옛날의 우리 조상들은 대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마음 먹기 따라서 우리 인간의 운명이 뒤바뀐다고 믿었다. 그 존재란 곧 '신'으로서 하늘의 하느님으로부터 잡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이 있다고 믿어 왔다. 김태곤의 ꡔ한국 민간신앙 연구』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무속에서 믿어온 신은 무려 273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 밖에도 가택신이라든지 동신 등이 또 있었으니, 우리 조상들은 신들에게 둘러쌓여 늘 신들과 함께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상들은 그 신들이 우리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액이나 불운을 만날 때 그것은 자신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신이 화가 나서 주는 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불운을 가져다 주는 원인은 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초자연적인 운명의 법칙같은 것도 또다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관상․풍수․사주 등은 신의 뜻보다는 어떤 초자연적인 운명 법칙․우주의 법칙을 찾아내고자 하는 점복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점복의 목적은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신의 뜻 또는 초자연적인 운명 법칙, 우주 법칙을 알아내어 제액 초복(除厄招福)하자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점복은 과연 사람의 운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의 문제도 점복의 의미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앞에서 들었던 예 중에서 김유신과 비담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김유신의 경우는 새가 소정방 원수의 장막 위를 휘돎으로써 객관적으로는 하늘이 흉조를 내린 것으로 모두에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김유신은 과감히 그 흉조를 거부함으로써 그 난관을 극복하고 오히려 승전할 수 있었다.

반면에 비담의 경우는 별이 그들 반군에게 길조를 내린 것으로 모두에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패배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김유신이 연을 날려 그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 공작과 하늘에 올린 제사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명백히 길조를 얻고도 실패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명백히 흉조를 얻고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이로써 점복이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점복을 풀이하는 자의 해석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물론 그들의 풀이에 대다수는 인식을 같이하고 공감하였지만 결국은 그 풀이가 잘못된 결과로 나타났다. 이로써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점복의 풀이도 틀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점괘에 나타나는 현상을 사람의 힘으로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객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공감하는 점괘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만약 김유신마저 새로 인한 점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 버렸다변, 하늘이 조화를 부리기 이전에 이미 나당 연합군은 사기가 떨어져서 스스로 전의를 상실하고 패전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은 그 점괘를 뒤집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과감히 그 흉조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백제 정벌)의 정당성을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인간 세계의 순리임을 역설함으로써 소정방 이하 위축된 군사들의 사기를 다시 끌어 올렸다. 만약 하늘이 인간사를 주재한다면, 이 때 하늘은 그들이 애초에 계획했던 일의 결과를 취소하고 계획을 바꿔서 김유신의 뜻을 받아들인 셈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하늘도 인간의 정당한 신념과 불굴의 의지에는 굽히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정당하지 못한 신념이라면 아무리 인간이 강한 의지를 보일지라도 하늘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김유신이 비담 등의 반군과 싸울 때 김유신이 정의로운 관군(왕군)이었기 때문에 김유신이 떨어진 별을 거짓으로 다시 하늘로 올려 보내자 하늘은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반면에 성부산 이야기의 부자(父子)는 김유신처럼 거짓으로 별을 하늘로 올려 보냈지만 그들이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은 결코 그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 같은 예로서 의자왕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의 정사가 문란했기 때문에, '백제는 망한다'고 외치는 귀신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는 '백제는 보름달'이라는 말을 '백제가 망한다'로 푼 일관을 죽이면서까지 그 점괘를 거부하려고 하였으나 그것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따라서 점복과 인간과의 관계, 곧 점복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부정할 수도 없되 또한 완전히 인정할 수도 없는 일면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ꡔ삼국사기』 권41에서 김유신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좋은 시사가 되고 있다.

유신이 왕을 뵙고 말했다. '길흉은 무상하여 오직 사람이 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紂)는 붉은 새가 모임으로 해서 망하고, 노나라는 기린을 잡음으로 해서 쇠약해졌으며 고종은 꿩이 울므로써 일어나고, 정공은 용이 싸움으로 해서 창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덕이 요사를 눌러 이길수 있으니 성신(星辰)의 변이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마십시오.'

여기서 김유신이 '덕이 요사를 눌러 이긴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그는 이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천도(天道)에는 양이 강(剛)하고 음이 유(柔)하며 인도(人道)에는 인군(人君)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혹시라도 그것이 바뀌면 곧 큰 난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비담 등이 신하로서 인군을 도모하여 아래가 위를 범하니 이것은 이른 바 난신적자(亂臣賊子)로서 사람과 신령이 함께 미워할 일이요, 하늘과 땅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이 만일 여기에 무심하여 도리어 별의 괴변을 왕성에 보인 것이라면 이는 저(김유신)의 의혹하는 바가 비할 데 없습니다. 하늘의 위임으로 사람의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선을 선으로 하고 악을 악으로 하여 신령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결국 인간에 미치는 점복의 영향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하늘의 뜻이나 또는 우주 법칙은 대개 점괘에 의해서 인간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다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그 점괘를 받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그 신념이 투철하며 또한 나쁜 점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하고 정성이 지극하다면 하늘이나 우주는 이를 받아들여 점괘와 다른 결과를 베풀어 주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정당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는 그 시도가 실패하여 도리어 더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이제 끝으로 점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서 점복의 의미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점복은 사람이 자기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현재․미래의 일을 살펴서 신이나 또는 우주 법칙의 뜻을 알아내고자 하는 행위다. 사람은 그 뜻을 알아 냄으로써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미리 판단하여 대비하고 또는 처방하여 제액 초복(除厄招福)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점복의 기능
점복의 기능은 다양하다. 크게 보자면 개인 점복의 기능과 집단 점복의 기능으로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두 가지가 일치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러한 구분을 하지 않고 나열식으로 서술해보고자 한다.

(1) 지적 본능 충족 기능
앞에서 점복 행위를 인간의 지적 측면에서 살펴볼 때 이미 지적하였던 기능이다.
사람은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기나 또는 자기를 포함한 어떤 집단의 운명과 관련되는 사실이라고 할 때 사람은 그것에 대해 더욱 강한 호기심을 갖게 마련이다. 점복 행위는 그러한 본능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집단에서 무엇을 잃어버렸거나 또는 괴이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범인이나 원인을 찾고자 하는 점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가 아무리 자연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 자연 과학이 인간과 우주의 모든 일을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명백히 밝혀 주지 못하는 한 그 나머지 부분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본능은 끊임없이 점복 행위를 추구해 나갈 것이다.

(2) 정서적 불안 해소 기능
이 항목도 앞에서 나왔던 것으로서 인간의 정서적 측면에 바탕을 두고 생겨난 기능이다. 사람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불안한 마음을 가진다.
이 대상이 시간일 수도 있다. 즉 사람은 자기가 겪었던 만큼의 시간 곧 과거만 알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일어났던 일도 현재에도 아직까지 그 인과 관계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 일도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자기가 겪은 시간을 넘어선 범위의 시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어떤 알 수 없는 깊은 연못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 한다. 즉 과거의 알 수 없는 일과 앞으로 닥칠 미래의 일에 대해서 인간은 끝없이 불안해 하는 것이다.
또 이 대상이 공간(장소)일 수도 있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공간에 대해서는 익숙하여 편안하다. 그러나 낯선 공간, 아직 가보지 않은 공간에 대해서는 불안감 또는 공포감을 지니고 있다.
또 이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은 자기와 낯익은 사람에게 대해서는 편안한 마음을 느낀다. 그러나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를 대할 때 잘 알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또 이 대상이 어떤 일일 수도 있다. 사람은 자기가 익숙히 해온 일에 대해서는 편안하다. 그러나 새로이 어떤 일을 대하게 되면 익숙치 못하여 그 일을 알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반드시 생기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사람은 어떤 알지 못하는 시간, 공간, 사람, 일 등에 대해서는 막연한 불안감, 초조감, 공포감을 가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점복 행위를 하면 이러한 알 수 없던 대상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니까 그 정서적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은 그 대상에 대해서 익숙한 대상처럼 자신을 가지고 행동해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3) 운명의 제액 초복(除厄招福) 기능
이 항목도 앞에서 나왔던 것으로서 인간의 의지적 측면에 바탕을 두고 생겨난 기능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에 닥치는 액을 물리치고 복을 끌어들이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이다. 점복 행위는 바로 이러한 사람의 제액 초복 의지를 실현시켜 주는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즉 점복 행위 그 자체로 제액 초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액의 원인을 밝혀내고 복을 불러들일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점복의 덕분인 것이다. 따라서 제액 초복을 하기 위해서는 점복 행위 이후에 따로 부적, 비손, 굿, 적선, 천도 등 어떤 부수적인 행위를 해야 하겠지만 이전에 반드시 점복 행위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4) 농사 등에 쓰이는 과학적 기능
옛날에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은 하늘의 기상 현상 등을 살펴서 경험적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이런 일을 꾸준히 계속하여 오다보니 어떤 기상 현상에는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이 하나의 공식적인 법칙처럼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것이 이른바 농점(農占)으로서, 대개 한 해의 풍흉(豊凶)을 예측하는 데 쓰였다.
예를 들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정윌 대보름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오른다. 이것을 달맞이[영월(迎月)]라 한다. 먼저 달을 본 사람이 길하다고 한다. 그리고 달빛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한다. 달빛이 붉으면 가물 징조라 하고, 희면 장마가 질 징조라고 한다. 달이 뜰 때의 형체의 크고 작음이나 뜨는 정도의 높고 낮음으로 점을 친다. 또 달의 윤곽이나 사방의 두터움과 얇음으로써 연사(年事)를 점친다. 사방이 두터우면 풍년이 들 징조이고 엶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며 조금도 차이가 없으면 평년이 들 징조이다.

이와 같은 기상 현상을 보고 그 해의 농사를 점치는 행위에는 두 가지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과학적 기능이다. 위와 같은 점복의 법칙을 정하게 된 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친 기상 관찰이 있었을 것이다. 또 일단 법칙이 생긴 뒤에도 지금까지 이 점괘가 없어지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데에는 계속된 관찰과 그 확인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농점 행위에 과학을 대신하는 과학적 기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와 같은 농점의 속설은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확률이 높다고 인정되고 있다. 사실상 현대적 자연 과학의 법칙이라는 것도 통계에 바탕을 둔 확률이 높은 법칙일 뿐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인들의 오랜 관찰 끝에 나오고 또 검증되어 온 농점이 일부 과학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또한 농점 이외에도 풍수설(상지), 관상, 수상, 그리고 주역(역학) 등도 일종의 통계학으로서 과학적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5) 정해진 방향으로 유도하는 주술적 기능
위의 농점이 가지는 기능 중에 다른 하나는 주술적 기능이다. 이 기능은 과학적 기능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것들은 유사의 법칙, 감염의 법칙등에 따라서 점괘를 내리는 것들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평안북도에서는 정윌 보름날 밤, 달이 떠올라 산의 북쪽으로 숨으면 북조선은 풍년, 남쪽으로 들어갈 때는 남조선이 풍년이라고 한다.
매년 정초에 서울 만리현에서는 돌싸움(石戰)이 벌어진다. 삼문 밖 젊은이들과 아현 젊은이들이 편을 갈라 싸우는데, 삼문 밖 편이 이기면 경기도 안이 풍년이 들고 아현 편이 이기면 다른 도들이 풍년이 든다고 하다.
정윌 보름날 달빛이 백색이면 백도(白稻) 재배에 적합하고 적색이면 홍도(紅稻) 재배에 적합해서 수충(水蟲) 등의 해가 없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예에서 보듯 다분히 주술적 기능을 지닌 점복 법칙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복의 주술적 기능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보기의 경우 풍년이 든다는 점괘가 나타나는 지방은 희망을 가지고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농사를 지을 것이요 흉년이 든다는 지방은 더욱 조심하며 애써서 곱절의 노력을 하여 농사를 지을 것이니, 양쪽 다 손해볼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정초에 지방에 따라 편을 갈라 벌이는 줄다리기, 동채싸움, 횃불싸움 등도 그 의미가 같다. 또 세 번째 보기의 경우도 어차피 그 해 농사지을 농작물의 선택은 현대 농업에서도 어려운 문제인데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를 선택하되 그것이 잘된다는 희망을 북돋우게 된다면 그것 나름으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특히 어떤 선택의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 이 점복 행위를 통하여 그 점괘에 의해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 희망과 확실한 신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이 주술적 기능은 하나의 심리적 기능으로서 중요하다.
전쟁에 임했을 때 승부점을 쳐서 이긴다는 점괘가 나왔다면 사기가 저절로 올라서 싸우기도 전에 이미 이기고자 하는 기백이 천지를 뒤흔들 것이다. 한편, 진다는 점괘가 나왔을 경우에는 반대로 사기가 저하되어 싸우기 전부터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기 쉬울 것이니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 또한 주술적 효과가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런 나쁜 점괘가 나왔을 경우에도 명장 김유신 장군같은 이는 신념과 용기, 그리고 정성으로 그 점괘를 뒤집을 수 있었다. 따라서 주술적 기능의 부정적인 면은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니 정당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주술적 기능의 폐해를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6) 수신과 노력을 가르치는 교육적 기능
점복의 내용이 소망스러운 미래를 점지해 줄 때 사람들은 그 점괘대로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게 된다. 반대로 점괘가 자기가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애초에 자기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그 전보다 더욱 분발하고 힘쓰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점복은 인간에게 수신(修身)과 노력을 가르치는 교육적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하루는 꿈을 꾸었다. 꿈에 만(万) 집의 닭이 일제히 울기 시작하더니 천 집의 다듬이질 소리가 동시에 들려오고 자기는 부서진 집에 들어가 서까래 셋을 지고 나오매,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떨어져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하도 이상하여 이성계는 이 꿈을 설봉산 암자의 중을 찾아 해몽 부탁을 하였다. 그 결과 왕이 되리라는 점괘를 받았다. 이에 이성계는 크게 고무되어 끊임없이 노력하여 훗날 과연 왕위에 올랐다. 이 유명한 이야기를 보면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이 해몽 때부터라고 해석된다. 따라서 이 꿈이 이성계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자신감을 북돋워 준 것은 물론 그전보다 더욱 조심, 노력할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점복을 건전하게 받아들일 마음 자세만 갖춘다면 점복 그 자체는 적어도 해로운 것은 되지 않을 것이다. 주역을 통한 역점(易占)이 강조하는 바가 바로 점괘에 앞서 마음을 바르게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역점이 내놓은 점괘도 잘 되면 잘 될수록 그 세를 타되 그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라는 것이다. 또 괘가 나쁘면 나쁠수록 근신하고 조심하되, 오히려 미래에 희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궁즉통(窮則通), 즉 궁한 것이 다하면 곧 통하게 되어 있으며 음과 양은 순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풍수실의 상지(相地)에서도 '남향에 동쪽 대문한 집은 3대 적덕을 해야 얻는다'는 말이 있다. 명당을 얻는 데는 그만큼 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답산가(踏山歌)」 또는 「금낭가(錦囊歌)」라는 유명한 풍수노래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적선적덕적악(積善積德積惡)으로 부귀빈천(富貴貧賤)의예셰라. 부귀도 내 명이요 빈천도 내 명이다. 그래도 지극정성하면 천지도 감동하나니.

(7) 화투점 등의 놀이 기능
점복은 애초에는 경건한 종교의 행사나 심각한 문제 해결을 꾀한 일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다. 또 그 뒤에도 점복이 지닌 성격상 적어도 어느 정도 그 행위에 심각성과 무게가 실려 온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점복의 역사도 오래되다 보니 요즘에는 재미로 또는 오락으로 점을 치는 일까지 생겨났다. 어떤 사람들은 심심풀이로 윷, 화투, 카드 등으로 그 날의 운수를 점쳐 본다. 물론 이에 약간의 심각성이 없다고 할수 없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하나의 재미요 또 홍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이러한 점을 치는 사람들이 그 점괘가 좋지 않게 나왔을 때 한 번에 끝내지 않고 두 번 세 번 그 점복 행위를 되풀이하는 데서 드러난다. 원래 점복 행위란 온 정성을 다하여 딱 한 번을 해야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한다는 것은 원래의 점복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많이 행해지고 있는 복권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바로 이러한 놀이 기능을 지닌 점복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즉석식 복권은 자신의 힘으로 즉석에서 그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다. 또 경마장에서 경마를 보면서 마권을 사서 앞으로 벌어질 경기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돈을 거는 행위도 이러한 점복의 놀이 기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슬롯 머신과 같은 것도 오늘날 유행하는 도박으로서 이 또한 점복의 오락적 기능으로 볼 수 있다.
어떻든 모든 내기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점복의 놀이 기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을 충족시키는 유사 점복 행위는 자꾸만 늘어가는 추세다. 이는 점복의 세속화 또는 대중화, 일상화라고 말할 수도 있다.

(8)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정치적 기능
옛날에 임금이 얻은 점괘는 그 효력이 나라 전체에 미쳤다. 또 전쟁에 나가는 장군이 얻은 점괘는 모든 군사들에게 그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점복은 그 점복 행위를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일개인의 범위를 넘어서서 사회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오늘날도 사회를 움직여 나가는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유권자의 표에 의해 운명이 갈리는 불안한 상태에 있는 정치가들의 경우에는 점복행위에 상당히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때 이들이 얻은 점괘는 단지 그 개인의 선거 당락에 그치지 않고 그의 지지자들, 나아가 사회 전체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대통령직을 넘겨다 보는 이른바 대권주자들의 경우 그들이 받은 점괘는 온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옛날에도 오늘날과 비슷하여 점복의 이러한 사회적 기능을 이용하여 대권을 잡은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씨가 나라를 얻으리라[목자득국(木子得國)]'이라는 참언(讖言)을 적절히 이용하여 왕이 되었다 할 수 있다. 물론 '목자(木子)'란 이씨 성을 가진 이성계를 가리킨 말인데, 사람들이 이 말을 할 때마다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을 기정 사실화하게 됨에 따라 저절로 이성계의 정치적 기반은 확대되고 튼튼해졌던 것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점복의 이 사회적 기능 또는 정치적 기능을 자기좋은 쪽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반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대개 이러한 점복의 정치적 기능, 사회적 기능을 조작해 놓고 일을 벌였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잡지 등에서는 대권주자들에 대해 되는 말, 안되는 말을 있는 대로 또는 조작해서까지 점복한 결과를 떠벌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삼갈 일이라고 생각된다. 원래 천기(天機)는 누설하지 말라고 했다.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사실이 우연히 뭇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어떤 정치적 의도를 띄고 일부러 공개하고 나선다면 이는 운명을 주재하는 하늘 또는 우주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일이 너무 심해지면 하늘 또는 우주 법칙은 그들이 예정했던 바를 궤도 수정하여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점복의 기능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점복 행위에는 지적 본능 충족 기능, 정서적 불안 해소 기능, 운명의 제액 초복 기능, 농사 등에 쓰이는 과학적 기능, 정해진 방향으로 유도하는 주술적 기능, 수신과 노력을 가르치는 교육적 기능, 화투점 등의 놀이 기능,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정치적 기능 등 여덟 가지의 기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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