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은 절망을 몰아낸다 ▒



일찍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고 간파하였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으로 인해  인생을 망치고 있으며
또 소중한 생명까지 잃고 있는가.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절망'이라는 죽을병에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생활전선에 위기가 닥치고 하는 일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

극심한 불안과 절망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극복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도 사정은 영 달라지지 않는다.

이토록 어려운 일도 이치를 알면 금세 쉬워진다.
'희망은 절망을 몰아낸다'는 원리가 바로 그  답인 것이다.



런던의 길 한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는 소년이 있었다.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던 것이다.
소년은 매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행인들의 구두를 닦았는데,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소년에게 물었다.
"구두 닦는 일이 뭐가 그렇게 좋으니?"

그때마다 소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당연히 즐겁지요.

지금 저는 구두를 닦는 게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거든요."

이 소년이 바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세계적인 천재
작가 찰스 디킨스다.

소년 찰스는 일반 사람들 눈에 불쌍해 보일 수밖에 없는,
시쳇 말로 '불우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삶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콧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희망'이었다.

희망은 절망을 몰아낸다.
절망감이 엄습할 때 절망을 상대로 씨름을 해 가지고는

절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절망이 밀려올 때 절망을 보지 않고 희망을 붙들면

절망은 발붙일 틈이 없게 된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를 '대체의 법칙'으로 해명할 수 있다.
심리학에 기초를 둔 이 원리는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의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곧 사람의 머리에는 오직 한 의자만 놓여 있어서 여기에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희망이 함께 앉을 수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절망이 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올바로 깨닫기만 해도 우리는 절망을 쉽사리 대적할 수 있다.
내가 불안해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에게 평화가 올 수 없다.

내가 평화를 선택하면 불안이 들어오지 않는다.
의자는 하나다.  절망하고 있을 땐 희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절망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희망을 붙잡아라.
절망하고 싸우지 마라.

자꾸 희망을 가져라.
이루어지든지 말든지 계속 좋은 것을 상상하라.

그러면 된다.
연거푸 희망을 품는 것이 절망을 몰아내는 상책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말한다.
"불행을 치유하는 약, 그것은 희망 이외에는 없다."


- 좋은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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