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의 여유로

폴 고갱(1848~1903)의 그림 세계- 타이티의 여인

작성일 작성자 금동이

 

 

폴 고갱(1848~1903)의 그림 세계

이름 : 폴 고갱 (Paul Gauguin)
출생 : 1848년 6월 7일
출신지 : 프랑스
직업 : 화가
데뷔 : 1876년 풍경화비로플레숲의잔디살롱입선
대표작 : 타히티의여인들, 언제결혼하니, 자화상타히티기행
특이사항 : 대표적인 후기인상파 화가



고갱은 1848년 2월 혁명의 여파로 정치적 소요가 심했던 시절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남미로 이주해 페루의 리마에서 4년 간 머물렀다. 이 시절의 이국생활이 후일 남태평양의 섬에 대한 동경심을 키운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865년 하급선원이 되어 대서양 항로를 오가는 무역선에서 일했고, 몇 년 후 파리 소재 금융회사인 베르탕 상사에서 근무했다.

 

1873년 거리에서 알게 된 덴마크 여인 소피와 결혼해 다섯 아이를 얻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고갱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부터인가 '회화의 악마'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27~28세 때부터 인상파 작품을 수집하며 일요일마다 본격적으로 회화연구소에 다녔다. 1876년 살롱에 처음으로 출품하여 피사로,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게 되었다. 특히 피사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본격적인 화가가 되기로 결심해 1883년 증권거래소 직업을 포기했다. 그러자 곧 생활이 어려워져 부인과 자식들은 고갱을 떠나 코펜하겐으로 가버렸다.

 

1886년 6월에는 생활고에 지친 나머지 남불 퐁타방 지역으로 이사한 뒤 종래 인상파 풍의 외광 묘사기법을 탈피해 자신만의 명확한 선과 특이한 색조로 구성되는 장식적 화법을 추구했다. 같은 해 11월 파리로 다시 돌아와 고호와 로트렉 등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고호와 깊이 사귀게 되어 1887년 남대서양의 마르티니크 섬을 다녀온 뒤 아를 지방에서 잠깐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화풍과 기질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차이점들이 속속 발견되어 심각한 갈등을 겪다 고호의 귀 절단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갈라서고 말았다.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고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만 더해져 마침내 1891년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났다. 유럽의 문명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현지인들과의 교유를 통해 원시적 삶의 역동성을 만끽하며 서구 미술사를 크게 바꾸어 놓을 뛰어난 명작들을 차례차례 만들어 내었다. <해변의 타히티 여인들>, <이아 오라나 마리아>, <언제 결혼하려나>, <아레아레아> 등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그럼에도 타이티에서의 현실적 생활은 여전히 빈곤과 고독, 그리고 병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원주민의 건강한 인간성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시련 속에서 인생 후반부에 만개한 그의 예술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고갱은 인상주의에 접하며 회화세계에 입문했지만 인상주의가 추구했던 시각적 효과보다 꿈과 상징, 그리고 내면성에 더 비중을 둔 표현을 선호했다. 이를 위해 점묘적 기법보다 널찍하게 분할된 원색 화면과 평면적 구성으로 대상의 장식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회화정신은 문명과 관습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원시주의로 흘렀고, 드디어 타히티의 원시림 속에서 강렬한 색채와 건강한 인간의 내면에서 뿜어 내어지는 근원적인 역동성을 발견하여 완성시킬 수 있었다

 

 

남과여

 

 

 

 

선물

 

앞 쪽의 작품들이 대부분 타히티에서 일상적인 모습들을 그리는 듯하면서도, 상당히 고갱 내면적인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는 상징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본 다면, 이 무렵에 그린 그의 작품들은 그런 그의 강한 의식을 떠난 순수한 일상적인 현실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타히티 시대의 대표적인 모자상 (母子像)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히바 오아 섬에서 그린 이 작품에는 섬사람들의 일상 생활의 단면을 통한 고갱의 애정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에게도, 그것을 지켜 보고 있는 왼쪽의 여인에게도 양식적(樣式的)인 강조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일상성을 묘사한 풍속화적인 작품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고갱이 인간의 내면을 투시하는 관찰안(觀察眼)과 닦아온 그의 조형적 형식미의 승화와의 사이에 이루어진 균제의 예술적인 격(格)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나부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Detail from The Left Part

 

 

그림 왼쪽 윗부분에는 타히티 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의 여신 히나의 상이 있고

여신 곁에는 고갱의 딸 알리느가 그려져 있다.

분신처럼 아끼던 딸 알리느를 여신의 힘을 빌려 되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Detail from The Right Part

 

 

그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세 여인과 누워 있는 어린 아기를 통해

순결한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며 우리의 과거를 묻게 되고,

그림 중앙에 서서 익은 과일을 따는 젊은이는

인생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로서,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보게 된다.

 

 

또 상단 그림의 왼쪽 화면에서 웅크리고 귀를 막아

닥쳐올 고통을 괴로워하는 늙은 여인의 모습에서는

우리의 미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새들과 배경은 인생의 풍요를 의미한다.

그는 지상의 낙원 속에서의 그 인물들의 모습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심오한 질문들을 던진 것이다.

 

 

(Rave te htit aamy [The Idol]. 1898)

 

 

Eiaha Ohipa (Not Working).

1896. Oil on canvas.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Ia Orana Maria (Hail Mary)

Oil on canvas 1891

113.7 x 87.7 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로 처음 여행 갔을 때 그 기간 동안 그린 것으로

Ia Orana Maria는 <마리아여, 당신께 예배드린다.>라는 타히티 말이다.

마리아를 경배하는 종교적 의미의 그림으로서

고갱이 스스로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칭하는 작품이다.

마리아와 예수를 타히티 사람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경배하는 두 명의 타히티 여인 뒤에

꽃나무 사이로 노란 날개의 천사 가브리엘도 보인다.

화면 가득히 정열적인 원색들이 춤을 추며

남태평양의 뜨거운 작은 섬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뜨거운 정열의 섬, 아름다운 타히티!

 

 

 

‘그림을 한 점 그렸는데

노란 날개를 가진 천사가 두 사람의 타히티 여인에게,

타히티 사람인 마리아와 예수를 나타내고 있는 그림이야.

그것은 파레오를 걸친 나체화이지.

파레오라고 하는 것은 꽃모양이 있는 일종의 면포(綿布)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는지 허리에 감는 거야.

배경은 지극히 어두운 산과 꽃이 피어 있는 나무들,

길은 짙은 보라색으로 전경은 에메랄드그린, 왼편에는 바나나가 있다.

 

 

손을 뻗어 과일 하나를 집어 든다.

아삭, 한 입 깨물어 먹으니 달콤함이 온몸 구석구석 퍼진다.

태양처럼 빠알간 옷을 입은 여인이 아름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저 뒤에 선 두 여인이 그녀를 보고 손을 모아 절을 한다.

여인의 맨발을 본다.

나도 신발을 벗는다.

햇빛을 머금은 나무 내음을 맡는다.

맨발로 온 들을 거닐고 오니 다시 여인이 그리워진다. ’

 

 

- 1892년 3월 11일 몽프레에게 -

 

 

 

 

 

 

망고의 女人

 

'나는 세로 1미터, 가로 1미터 30센티의 그림을 막 끝 낸 찰나다.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초록의 바닥에 나체인 여왕이 비스듬히 기대이고, 시녀가 과일을 따고, 두 노인이 굵은 나무곁에서 지혜의 나무에 대하여 말을 주고 받고 있다. 배경은 해안이다 .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색채의 점에 있어 이렇게도 무게있고 장대한 울림을 가진 것을 그려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개는 당번을 서고, 오른쪽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울고 있다.' (1896년 4월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 1895년 3월 고갱은 다시 타히티로 갔다. 다시 그곳에서 한 해를 넘긴 그의 희열이 이 장대한 색채와 행복감에 차 있는 이 미묘한 하모니 속에서, 점점의노랑과 빨강을 빛내며 안정감을 전달하여 준다.

 

 

 

"나는 세로 1미터, 가로 1미터 30센티의 그림을 막 끝 낸 찰나다.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초록의 바닥에 나체인 여왕이 비스듬히 기대이고, 시녀가 과일을 따고,

두 노인이 굵은 나무 곁에서

지혜의 나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다. 배경은 해안이다.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색채의 점에 있어

이렇게도 무게 있고 장대한 울림을 가진 것을 그려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개는 당번을 서고, 오른쪽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울고 있다."

 

 

-1896년 4월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

 

 

Nave Nave Moe (Sacred Spring).

1894.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테 레리오아 : 꿈

 

'군함이 10일쯤 출항을 연기한 것을 이용하여 다시 한 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서둘러서 그렸지만 지금까지의 것보다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테 레오리아 : 꿈>이라는 것이 그 제목이다. 이 그림에 있어서의 모든 것이 꿈인 것이다.

아이도, 모친도, 오솔길을 가는 말에 탄 인물도, 말하자면 이것은 화가의 꿈인 것이다. 그런 것은 그림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다분히 그런 일은 없을 줄 안다.'

 

(1897년 9월 12일 몽프레에게) 이 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은 고갱의 오두막집이다.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왼쪽은 화실로서 '나는 이것을 조각으로 장식하여 제법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두 인물은 들라크로아의 <알제리의 여인>을 상기시키는 포즈를 잡고 있다.

 

 

 

 

 

해변에서

 

이 그림은 커다란 나무 등걸을 화면 중앙에 옆으로 눕혀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누고 있다. 위쪽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세 인물을 배치했는데, 앞 왼쪽의 여인은 곧 바다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향하여 엎어지려는 순간으로 신선을 유도한다. 고갱의 타히티 작품 속에서도 이 작품은 가장 장식적인 쪽의 하나로, '나는 화가보다 공예가에 적합하다.'라고 그는 편지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그림과 함께 많은 목각 부조(木刻浮彫)를 장식적으로 만든 것이 많고, 그것들은 그의 개성이 넘치는 독특한 착색(着色)에 의하여 훌륭한 그의 체취(體臭)를 풍기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그런 장식적인 재능이 신선하게 부각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쪽의 보라색이 감도는 분홍 색은 이를테면 그의 마음의 눈이 본 모래의 색이며, 나무 등걸 위의 빨간 꽃, 분홍색 모래와 노랑의 풀잎 등 그 장식적 효과는 찬란하다.

 

 

바이루 마치

 

바이루마치란 원래 마오리 신화에 나오는 종족의 창시자 타아로아의 아들 오로의 아내이다. 오로는 인간의 여자를 아내로 맞고 싶어서 어떤 호수의 근처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 작품 속의 바이루 마치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밝은 빨강의 배경에 금색으로 빛나는 육체를 비스듬히 기대고, 그 뒤에 옥좌(玉座)와 같은 의자, 두 사람의 시녀, 도마뱀을 밟고 선 노랑새가 함께 엑조틱한 화면을 이루고 있다.

 

'노아 노아'의 초고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 그녀는 키가 큰 여자로 타는 듯한 태양빛이 그 황금색의 어깨 위에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젊은 아가씨는 바이루마치라고 불려지고 있었다.' 고갱은 타히티의 여인들에게서 이러한 신화를 투시한 것일 게다.

 

 

 

세명의 타히티인 또는 대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그 구도가 대담하고 힘차다. 섬사람들의 일상적인 단면을 그의 장식적인 수법에 잘 끼워 맞추어서 현실과 환상이 야릇하게 교차한 느낌이다. 과일을 한 손에 들고 돌아선 여인의 과일에서, 또 어깨로 움직이는 선이, 몸을 둘러싸는 빨간색의 파오리와 서로 응답하며 만드는 부드럽고도 풍만한 정감은 정말 아름답다. 왼쪽에서 중앙으로 내려온 그녀의 어깨선이 중앙에 배면으로 선 남자의 어깨선에서 안정감을 구하고, 오른쪽 꽃을 든 여인의 어깨선을 통하여 위쪽으로 뻗는다. 이 세 인물의 몸을 나타내는 색조는 초록과 노랑과 밝은 분홍 등의 흐르듯 깔린 색과 함께 묘한 뉘앙스를 이루고 있다. 그려진 인물의 검고 건실한 얼굴의 정감이나, 어깨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살붙임, 평면적이고 무정형적(無定形的)인 배경의 색은 이 무렵의 특질을 잘 나타낸다.

 

 

 Les Parau Parau (Conversation).

1891.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신의 날(1894)

 

 

이 그림은 고갱이 1894년 일시 파리로 귀환해 그린 작품이지만 단순하고 명쾌한 색채 구사가 완전히 타이티풍으로 정착

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브루타뉴 시절 고갱이 추구하던 종교적 체험을 화폭에 담는 제작 모티브는 여기서도 실행되고 있

으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등에서 추구하던 성서적 주제는 이제 토속신의 이미지로 대치되고 있다

 

 

아레아레아(1892) -기쁨

 

이 그림의 중앙에 그려진 땅은 따뜻한 색상으로 채워지고 있는데 실재하는 것이 아닌 상상의 공간이다. 있는 그대로 대상을 재현하려 하지 않고 선과 색의 배열 사이에 있는 그 어떤 신비감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왼쪽 위에 부드럽운 색상으로 채색한 신상은 달의 여신을 나타낸 것이고, 중앙의 인물이 연주하는 피리는 타히티의 밤에서 고갱이 느낀 고요함을 표현한 것이다. 왼쪽의 불그스름한 털 빛의 개는 그 어떤 악의 이미지로 대비시키기 위해 고갱이 집어 넣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마치 티치아노나 조르조네와 같은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이원적 대치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자주 등장시켰던 화면적 공식을 타히티의 무대에서 한번 실험해 보려는 듯이...

 

 

어마, 질투하고 있니?

 

1892년 7월 고갱은 몽프레에게 '나는 최근 모델없이 나체화를 한 장 그렸다. 물가에 두 여인이 있는 그림이다. 지금까지 그린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쓰여 있다. 바로 이 그림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샤를르 모리스는 이 정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영(水永)을 하러 온 두 자매가 더운데도 동물과도 같이 우아하게, 싱싱하게 몸뚱이를 뻗치고 중얼중얼 하며 지금까지의, 또 지금부터의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돌연 말다툼이 벌어진다. 뭔가를 생각해 낸 것이다. '어마, 질투하고 있니?' 이 대담한 구도에 두 인물의 누움과 앉음의 배치, 양광(陽光)과 음영(陰影)의 배치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회화(會話)를 누구나 상상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히티란 한 원시적인 낙원에 사는 한가로운 주민(住民)의 생활을 단면적(斷面 的)으로 잘 느끼게 해준다.

 

 

 

Ford (Running Away)

Oil on canvas 1901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세차게 몰아치는 푸른 파도와 붉은빛의 모래 밭,

짙고 투명한 보랏빛의 나무그림자, 이슥한 깊은 숲길로의 도망일까....!

강열한 색감들의 풍요로운 제전이다.

 

 

 No te aha oe riri? (Why Are You Angry?) 

1896. Oil on canvas.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Manao tupapau (The Spirit of the Dead Keep Watch)

Oil on canvas 1892

72.4 x 92.4 cm

Albright-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타히티에서 1892년에 완성한 이 그림은

서구 문화에 염증을 느끼며 단절을 꿈꾸던 고갱의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타히티의 원주민 여성이 등을 돌리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엎드려 있다.

아마도 제목이 시사하듯,

왼쪽에 검은 망토 같은 것을 두르고 있는 앉아 있는 것이 죽음의 정령일 테다.

 

 

고갱이 직접 체험에 의한 것을 화폭에 담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여행을 하다 새벽에 귀가한 고갱이 방문을 열었을 때의 전경이다.

테후라는 갑자기 유령 같은 침입자에 공포에 질린 듯

날카로운 눈길로 벗은 채 꼼짝 않고 엎드려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를 난 처음 보았다.’

그녀의 공포심을 느낀 고갱은 자신마저 불안해져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 할까봐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하며

‘어쩜 그녀의 눈길로 보아서는 유령쯤으로 생각했었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고갱은 테후라와 연인 사이로, 고갱이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다

파리로 돌아갈 때까지 동거생활을 했다.

2년 후, 고갱이 다시 타히티로 돌아와서 테후라를 찾으니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Ta Matete (We Shall Not Go to Market Today)

Oil on canvas 1892

73 x 91.5 cm

Kunstmuseum Basel, Basel Switzerland

 

 

서구 문화에 의해 파괴된 타히티의 문화와 원주민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오늘은 시장에 가지 않을 거야.>라는 은유적인 제목으로 발표되었지만

실제로는 ‘오늘은 매춘을 하지 않겠다.’는

원주민 여인들의 한이 어린 마음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고갱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으로서,

중앙에 일렬로 앉아 있는 원주민의 여인들이

'이집트 벽화' 에서보이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매우 이채로운 작품이다.

 

 

 

Parau Api (What's New)

Oil on canvas 1892

Gemaldegalerie Neue Meister Dresden Germany

 

 

 

Tahitian Women (On the Beach)

Oil on canvas 1891

69 x 91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전체적으로 우울한 느낌이 든다.

수년 간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타히티.

두 여인이 입고 있는 의상에서

서구 문화의 강제 침범 같은, 새로운 풍습과 전통의 충돌이 느껴진다.

흰 티아레 꽃무늬가 그려진 전통의상 ‘파레오’를 입고

똑 같은 꽃을 머리에 꽂은 전형적인 타이티 여인,

향기가 나는 듯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에 구리 빛의 건강한 피부가 돋보이지만

기력 없이 내려 깔은 폐쇄적인 눈길이 안쓰럽다.

종려나무 잎으로 모자를 짜다가 ‘이걸 짜봤자...’ 하는 듯 생기 없는 표정의 여인은

서구문화의 옷으로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목까지 감싸고 꽁꽁 옷에 가려져 있다.

배경의 바다는 검은 색으로 어둡고....

 

 

 

 I Raro Te Oviri

 

 

Te Tamari No Atua (Nativity)

Oil on canvas 1896

Neue Pinakothek, Munich, Germany

 

 

오랜 세월을 같이 동거하던 파우라가 낳아준 딸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되자,

고갱은 그 상황과 슬픔을 화폭에 담았다.

침대 위에 지친 아내가 누워 있고, 그 옆에 있는 아기에게는 후광을 그려 넣어

이제는 자신들의 곁을 떠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그 아이를 신의 아이로 다시 탄생하기를 믿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그려내었다.

 

 

Alone

Oil on canvas 1893

73 x 50 cm

Private Collection

 

 

샛노랗고 빨간 강열한 원색에

대담하고 단순하게 화면을 가득 메운 다갈색의 검은 피부.

햇살이 내려 쪼이는 모래사장일까,

붉은 파레오마저 바짝 끌어 올린 채

아무렇게나 들짐승처럼 웅크린 듯 엎드려 있는 자세.

원시의 투박하고 건강한 관능이다!

 

 

 

English: Poor Fisherman

 

 

 

네바모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것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나는 단순한 나체화에 의하여 지금까지 미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호사함을 암시하려고 했던 거야. 전체는 일부러 어두운 색으로 가라앉혔지. 이러한 호사함을 만드는 것은 비단으로도, 빌로도로도, 삼베로도, 금으로도 되는 게 아니고, 화가의 손에 의하여 풍부한 것으로 되는 마티에르, 오직 이것으로만 가능해. 잡다한 것은 필요없고, 단지 인간의 상상력만이 그 환상에 의하여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는 것이지. 제목은 <네바모아>, 에드가 포의 큰 까마귀가 아니라 문지기가 딸린 악마의 새야. 그리는 것은 서툴지만- 지나치게 신경이 쓰여 발작적으로 일을 하고 있음-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나로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1897년 2월 14일 몽프레에게)

 

 

 

 Faa Iheihe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Oil on canvas 1897

137 x 374.7 cm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MA USA

 

 

고갱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그려진 대작이다.

당시 그는 악화된 건강과 생활고, 그리고 사랑하는 딸 알리느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살을 결심했고 죽기 전 마지막 유언으로 이 작품을 그리고자 마음먹는다.

단 한 달간의 짧은 기간에 자신에게 남은 모든 정력을 이 작품에 쏟아 붓듯이

열정 적으로 작품에 몰두하였다.

 

 

원제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것인가?>는

고갱의 가장 크고 야심적으로 모든 것을 종합해 넣은 작품으로

자신의 무의식과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 작품이

고갱이 이전의 작품들을 능가하는 역작이라고 생각했듯

장편의 신비스런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의 3과정을 그린 것으로 해석되는데

고갱은 이에 대해 세부적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명상적으로 감상되고 경험되기를 원했다.

그가 헛된 것이라 여기는 말로서

작품을 정의 내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미술사상 가장 철학적인 작품 제목으로

지금도 우리 자신이 물어야 할 질문임에 틀림없다.

과연 우리는.....!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