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의 여유로

카스타뇨 . Andrea del Castagno . (1410? ~ 1457)

작성일 작성자 금동이

Andrea

del

Castagno

 

(Italian, 1423~1457)

 

 

 

피렌체에서 활약한 초기 르네상스 사실파의 대표자이다. 선배인 D.베네치아노로부터 유채화법을 배우고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 마사초의 영향을 받았으나 1444년 피렌체로 돌아와서부터는 도나텔로의 조각에 자극되어 작풍을 바꾸었다. 초기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작품이 많이 분실되었기 때문에 그의 미술의 발전과정을 밝히는 일도 어렵다. 일찍부터 재능을 발휘했으며 피렌체의 팔라초델포데스타에 코시모 데이 메디치의 반대자들(거꾸로 매달린 반란자들)을 주제로 한 벽화를 그려 안드레이노 델리 임피카티(교수형에 처해진 사람들의 작은 안드레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1442년 베네치아에 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산차카리아 교회의 프레스코에는 그와 프란체스코 다 파엔차의 서명과 연대가 적혀 있다.

 

초기의 주요작품으로는 피렌체의 산타포로니아 구(舊)성당미술관에 있는〈그리스도의 수난 Passion of Christ〉에서 따온 세 장면과 〈최후의 만찬 Last Supper〉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현재 체나콜로 디 산타폴로니아 또는 카스타뇨 미술관으로도 알려져 있는 예전의 산타폴로니아 수도원(피렌체)에 그려진 것들이었다. 마사초의 3차원적인 화면 구사의 영향과 카스타뇨 자신의 독특한 과학적 원근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웅장한 프레스코들은 널리 찬사를 받았다. 마사초의 색조인 농담에 의한 공기(空氣)원근법 대신 기하학적인 선(線)원근법을 구사함과 동시에 인각적(印刻的)인 명확한 윤곽과 예리한 명암대비에 의해 엄밀한 사실을 추구, 그리스도나 성자들을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피렌체의 산미니아토프라레토리 교회를 위해 그린 제단화인 〈성모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에서는 국제 고딕 양식과 비슷한 화풍을 보여준다.

1451년 카스타뇨는 일찍이 도메니코 베네치아노가 그리기 시작한 산에지디오 교회의 프레스코들을 이어 그렸다. 카스타뇨가 유명한 〈성 율리아누스 St. Julian〉(1454~55)에서 사용한 밝은 색조들은 베네치아노의 영향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레냐이아에 있는 빌라 카르두치 판달피니의 개랑(開廊)에 그린 작품에서는 예전의 양식들을 버리고 그림으로 그린 테두리 안에 실물보다 더 큰 규모로 〈유명인사들 Famous Men and Women〉(현재는 피렌체의 카스타뇨 박물관에 있음) 연작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카스타뇨는 단순히 숙련된 솜씨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신체와 얼굴 표정의 움직임을 묘사함으로써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냈다.

 

카스타뇨는 건축물의 벽감을 배경으로 인물들을 그려넣음으로써 그것들이 실제의 조각품인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그는 방패에 그린 〈청년 다비드 Youthful David〉(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성취했다. 그는 힘의 표현에 관심을 가져 데생의 엄밀성을 추구, 마사초의 인상주의적인 색채묘사법을 그림에 도입시켜 15세기 후반의 피렌체파 회화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 카스타뇨의 정감적 사실주의는 도나토 도나텔로에게 크게 영향받은 것이며, 거꾸로 카스타뇨의 작품은 다음 세대의 피렌체·파도바의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카스타뇨 [Andrea del Castagno, 1423~1457.8.19]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사실파의 대표화가. 마사초의 인상주의적 색채묘사법을 그림에 도입해 15세기 후반 피렌체파 회화에 지배적 영향을 끼쳤다. 기하학적 선(線)원근법, 명확한 윤곽, 예리한 명암대비로 엄밀한 사실을 추구, 그리스도나 성자들을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냈다.

피렌체에서 활약한 초기 르네상스 사실파의 대표자이다. 선배인 D.베네치아노로부터 유채화법을 배우고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 마사초의 영향을 받았으나 1444년 피렌체로 돌아와서부터는 도나텔로의 조각에 자극되어 작풍을 바꾸었다. 피렌체의 산타포로니아 구(舊)성당미술관에 있는 《그리스도의 수난》 《최후의 만찬》 《9인의 인물상》 등의 벽화에서는 마사초의 색조인 농담에 의한 공기(空氣)원근법 대신 기하학적인 선(線)원근법을 구사함과 동시에 인각적(印刻的)인 명확한 윤곽과 예리한 명암대비에 의해 엄밀한 사실을 추구, 그리스도나 성자들을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만년의 피렌체대성당의 《니콜로다 트렌티노장군 기마상》의 벽화 등은 사실적 정열의 권화라고도 할 수 있다. 힘의 표현에 관심을 가져 데생의 엄밀성을 추구, 마사초의 인상주의적인 색채묘사법을 그림에 도입시켜 15세기 후반의 피렌체파 회화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






Last Supper and Stories of Christ's Passion
1447

최후의 만찬


도가 수난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가진 만찬. 신약성서(마태 26:20, 마르 14:17, 루가 22:14)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열두 제자와 만찬을 함께하고, 유다의 배신을 모두에게 일러주고, 빵과 포도주로써 제자들을 축복하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라는 말을 하면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을 함께 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교회에서 행해지는 의식이 성찬식(聖餐式)이다.

이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은 많은데, 특히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텔레그라치 교회에 현존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벽화는 걸작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기 전날 밤 12제자들과 함께 가진 만찬. <신약성서> ‘마태복음(26: 20∼30)’ ‘마가복음(14: 17∼25)’ ‘누가복음(22: 14∼23)’ 등에 그 기록이 전한다. 이때 그리스도는 자신을 배신하려는 제자가 있음을 지적하였고, 빵과 포도주를 축복한 뒤 성찬의식을 행하였다. 서양에서 많은 예술작품의 주제로 다루어졌는데, 특히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 마리아델레그라치에성당 식당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벽화는 그리스도가 12제자와 이별하는 만찬에서 배신자를 지적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천장ㆍ벽걸이ㆍ식탁ㆍ마루로 구성된 구심적 구도에 충격받은 제자들의 표정과 체념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대조시킨 위대한 걸작으로 인정되고 있다.

‘주의 만찬(Lord's Supper)’이라고도 함. <신약성서>(마태 26:17∼29, 마르 14:12∼25, 루가 22:7∼38, Ⅰ고린 11:23∼25)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에서 가졌던 마지막 식사. 이것을 근거로 성찬식이 제정되었다. 성서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는 2명의 제자를 보내 식사를 준비하도록 했고, 다락방에서 모든 제자를 만났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빵과 포도주를 축복한 뒤 제자들에게 먹고 마시도록 주면서 그것이 그의 언약의 살과 피라고 말했다.

공관복음서와 교회 전승은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에 있었다고 단언한다. 그렇지만 <요한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설명을 보면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의 식사일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해석가들은 공관복음서의 설명을 받아들인다. 전통적으로 최후의 만찬의 2가지 측면이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묘사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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