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조 Correggio(1489~1534)


안토니오 알레그리라는 이름보다 코레조(correggio)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출생지명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에밀리아지방의 전통적 화풍을 배운 뒤, 만토바에서 L.코스타(1460∼1535) 및 A.만테(1431∼1506)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고, 인체묘사에서는 단축법을 배움과 동시에 베네치아파의 색채묘법을 흡수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도 코레조의 가장 중요한 기법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1518년 파르마로 가서 이듬해까지 상파울로수도원의 한 방을 신화를 주제로 한 벽화로 장식하여 그의 예술은 개성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인간 감정에 가득 찬 독자적인 감각적 표현을 이룩하였다.

 

1520~1524년 파르마의 성조반니 에반젤리스타성당의 원형천장화 <성모의 승천>을 비롯한 기타 장식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고 1524년부터는 파르마대성당의 원형 천장화와 벽화장식에 착수하여, 무수한 천사와 성자들에게 둘러싸여 승천하는 성모를 환상적으로 그렸으나, 바로크적인 경향의 과도한 과장으로 교회로부터 악평을 받고 중단한 채 1530년 파르마를 떠나 미완성으로 남았다.

 

파르마회화관의 <성히에로님스의 성모>, <스코델라의 성모>와 드레스덴미술관의 <성야(聖夜)>, <성조르조의 성모> 등은 1527∼1530년 겨울의 추위로 원형 천장의 일을 쉬고 있을 때 제작한 것으로, 종교화로서는 그의 마지막 대작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종교적 감명보다는 현세적 희열이 넘친다. 그후 파르마를 떠나 죽을 때까지 코레조에 있으면서, 보르게제미술관의 <다나에 Danae>, 베를린의 카이제르 프리드리히미술관의 <레다>, 빈미술사미술관의 <주피터와 이오>, <가니메데스의 유괴> 등 신화적 주제의 작품을 그렸다.

 

그의 주제해석은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만큼 깊이는 없었지만, 뛰어난 감수성과 경쾌한 필치에 의하여 독자적인 환상적 표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예술의 본질은 빛과 그늘에 의한 조형성의 추구였으며, 격렬한 움직임을 통한 리듬의 창조와 자유로운 구도에 의한 장식적인 화면의 구성이었고, 몽환적·관능적 정서의 구가였다. 기술에 관한 한 명암법의 완성, 빛의 배치, 채색의 선명함 등에 있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회화의 최고의 발전단계에 도달하였으며, '빛과 색의 화가'로서의 본질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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