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걸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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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문학/문학의 이해

모던걸 최정희

금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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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가을 어느날/좌로부터 춘원 이광수, 이선희, 모윤숙, 최정희, 김동환/춘원 옆을 끼어든 이선희 때문에 모윤숙의 애절함이 역력하다. 반면 최정희는 자리는 잘 잡았으나 김동환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감출 수가 없다. 김동환 일행의 차림으로 보아 춘원 댁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의 모던 걸 시대, 최정희, 모윤숙, 노천명, 이선희 등은 당대 여류 문인들 중 문학활동을 포함 신여성의 지명도에 있어서 비교적 상위층에 있었다. 앞서 1세대인 윤심덕, 라혜석, 김일엽 그룹의 파격적 각인으로 오히려 뒷세대의 운신의 폭은 편했다고 볼 수 있다. [/정월, 일엽의 당시 성적 윤리관/ 첨삭]

 

그들도 잠 못 이루는 로맨스로 모로 누운 가슴앓이의 세월이 있었다. 격자 문살을 숨어 보며, 그녀들은 반다지 깊숙한 곳에 아름다운 편지를 접고 상채기도 접고 때론 사랑도 접었지만 자물쇠를 채우지는 않았다.

1906년 12월 3일 함북 성진군 예동에서 태어난 최정희는 숙명보통학교를 1928년에 졸업한다. 졸업 후 경제적인 이유와 '이 학교에 가면 노래와 춤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중앙보육학교에 입학하여 1년만에 졸업하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유치진, 김동원등이 주도하는 '학생극예술좌'에 참가하기도 한다. 다음 해 귀국 후 카프 영화 '유랑'과 '혼가'의 연출자인 김유영이 마련한 오디션에 나감으로써 그녀 인생의 변곡점을 맞게 된다. 최정희는 당시 지식인 그룹이었던 작가나 화가 주축의 예술인 코스를 밟지 못했을 뿐더러 교육계나 기자가 될 인문학적 소양도 갖지 못했다. 그 무렵 최정희가 김유영을 만난 것은 어찌보면 그 과정을 점프하는 계기가 되었고 더불어 지식인 그룹의 대열에 들 수 있는 흔치 않은 호기였다. 둘은 바로 동거에 들어가 사실혼의 관계가 된다.

 

 


 

한편 1928년 '유랑'에 이어 다음해 2월 10일 설날을 겨누어 개봉한 임화 주연 '혼가'마저 흥행에 실패한 김유영은 1930년 중외일보(7월 5일~9. 2)에 이효석, 안석영, 서광제, 김유영 4인이 연작으로 연재한 시나리오 <화륜>을 그해 10월 10일에 촬영을 개시한다. 이효석이 각색 편집한 '화륜'은 1931년 3월 11에 개봉되나 카프 영화의 난해함은 여전히 관객을 끌지 못했다. 김유영은 영화 실패의 근본적 문제에 봉착하고 카프 영화를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 집착은 계속되는데 1932년 서광제와 함께 다시 교토 일활촬영소로 영화 연수를 떠난다.

 

그 무렵 김유영의 심신은 초토화되고 자연히 최정희와의 관계도 삐걱댄다. 불화는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영화예술인으로서의 김유영과 약간 드세기도 한 생활인인 최정희의 부부 정서는 실로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김유영이 떠나고 최정희는 잉태한 몸으로 잡지사 《삼천리》에 취직을 한다. 여기서 최정희 생애의 일대 획을 긋는 한 시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주간이자 발행이기도 한 파인 김동환이다. 처음 그녀는 사환처럼 잡지사의 주변을 챙기다가 김동환의 배려로 차츰 저널리즘적 사고와 리얼한 기사를 접하면서 기자 정신을 체득하는 수순을 거친다. 습작의 악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수준 낮은 단편을 지면 확보의 절대적 이점인 삼천리의 문예란에 깔았다.

 

1963년 중년에 접어든 그녀는 그해 현대문학 6월호에 「凶家를 쓴 무렵」이라는 산문에서 이런 고백을 남긴다.

 

 

(전략)​

 

나는 원고지 메꿀 줄도 변변히 몰랐다. 여기자로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원고청탁이 오곤 하는데 청탁이 오면 으레 그걸 쓰야만 되는 줄로 알았다. 쓰지 않으면 여기자 노릇도 못하고 좇겨난다고 겁을 먹고 있엇던 것이다. 유치원 보모 노릇을 하다가 시원찮아서 옮긴 직장이기도 하려니와 시골엔 소학교를 졸업하고 이태식 놀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가슴 속엔 어떻게 해서라도 동생을 데려다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원고청탁을 받으면 수필이건 소설이건, 받는대로 써 보냈다. 주로 일본 헌 잡지에서 베껴내다시피 했던 것이다. 수필이 무엇이며 소설이 어떤 것인지 모르면서 그런 짓은 어덯게 했던지 스스로 탄복하게 된다. 그런 짓을 하면서도 웬일인지 나는 마음의 가책 같은 것을 느겨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 이름이 활자화 되어 나오는 경우에 즐겁거나 한 일도 없었다. 곤궁하고 더할 수 없이 처절했던 내 생활이 툭툭 터져나가는 헌 자루를 꿰매듯 분망한 탓도 있었겠지만 문학이 어떤 것이며 또 그것은 어떤 자세로서 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몰랐던 탓이기도 했다.(「凶家를 쓴 무렵」, 1963년 현대문학 6월호) ​

 

그러나 이 시기에 모윤숙, 이선희, 노천명 등과 교유하면서 문학적 소양을 습득한다. 때론 문예 대담의 사회자로 나서면서 차츰 그녀의 글이 다듬어지기 시작한다. 동화 같던 글이 기승전결의 운을 넘을 동안, 당시 최악의 심신의 역경을 이겨낸 건 그녀

 

특유의 투혼 때문이기도 했다.

1932년 출산으로 인해 잡지사에서 나온 최정희는 그해 가을에 춘원 이광수의 자택에서 파인을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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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최정희 작품은 당시의 비평가들에 의해서 동반자 작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1934년 최정희는 카프의 맹원이 아니면서도 경향파적 작품에 연루되어 전주 형무소에서 8개 월의 옥고를 치르고 1935년에 출옥한다. 김광섭의 글에 의하면 이때부터 김유영과는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지맥', '인맥', '천맥'에 나오는 남편없는 여자주인공의 공통된 설정은 당시의 최정희의 상황이 투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물네 살, 모던 걸 답게 케리어 우먼으로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하여 그해 '흉가'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2년 후 조선일보를 퇴사하고 양주군 덕소로 집을 옮기고 1938년 그리운 김동환이 있는 '삼천리'로 재입사하면서 연인의 곁에서 꺼지지 않은 사랑의 불씨를 지핀다.

1940년 김유영은 영화 '수선화'의 개봉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뜬다. 두 집을 오가는 불륜의 김동환, 덥친 친일의 사회적 지탄과 더불어 4남매를 둔 유부남의 외도, 그를 기다리는 덕소의 과부 최정희, 참으로 사랑도 어렵다. 1942년 이들 사이에 첫 딸이 태어난다. 그해 5월에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이 뇌막염으로 짧은 생을 살다 간다. 상가는 평양 창전리이다. 당시의 관습으로 여성의 상가 문상은 이례적이었지만 모던 걸의 트로이카 최정희, 모윤숙, 노천명이 이효석 상가에 나타난다.

 

오명근('그 이상은 없다'의 작가)팩션에는 이들의 대화가 있다.

 

#장면1-모던 걸 트로이카 자리

 

모윤숙:도오깐상(김동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최정희:그 이야기는 제발 좀 꺼내지 마.

노천명:(모윤숙을 보며,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제발 생각하고 말 좀 해.

모윤석:사랑에는 국경도 없다잖아. 눈치는 왜 봐!

최정희:(한숨을 쉬며)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후유.

노천명:그래도 넌 사랑을 쟁취했잖아.

모윤석:우린 이리 마음이 쓰린데... 혹시 긴상(김광진)이 오지 않을까?

노천명:듣기 싫어!(말은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 눈치로...)

 

#장면2-평상의 구인회 맴버들 자리

 

박태원:장안의 불륜들이 다 모였군. 낯을 들고 어찌 평양까지 왔을꼬.

정지용:그게 무슨 말이야? 불륜이라니.

박태원:아따, 형님은 장안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도 못 듣고 사시우. 모윤숙

은 이광수 따라다니는 스토크고, 노천명이는 김광진이랑 바람났고,

최정희는 김동환이 애까지 낳고 동거한다는 얘기 못 들었어요?

이태준:어허, 이 사람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체신머리 떨어지게.

정지용:이게 무슨 말이야! 김유영이 죽은 지가 언젠데, 벌써 개가를 해.그것

도 유부남으로다가 말이야. 이렇게 염치없는 사랑이 있을 수 있나.

이태준:지용, 맑은 귀 더러워지네. 못 들은 체 하게나.

박태원:태준이 형님도 뭔가 찔리는 게 있지요? 그러니 딴소리를 하지.

이태준:(당황하며)어어, 이제 화제를 좀 돌리지.

 


#장면3-천막의 멍석자리

백철과 1940년 그가 '문장'에서 추천한 지하련, 카프의 임화, 안회남, 서정주가 보인다. 화가 난듯한 서정주가 자리를 뜬다.(오명근은 팩션을 동원하여 백철과 미당이 임화의 두 번째 아내인지하련을 좋아했다고 기술한다.)

김남천, 김종한도 오고, 드디어 노천명이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김광진이 유진오랑 왕수복과 같이 들어온다.(왕수복은 이효석의 연인이었고 김광진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윤숙은 이광수를 죽도록 사랑했지만 이룰 수는 없었다. 모윤숙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에서 춘원을 향한 연모의 정을 '렌의 애가'처럼 사무치게 하소연한다. 한 여인의 사랑에 대한 집착이 이리도 강렬하고 끈질긴지 늘 '사랑'이란 단어에 닭살인 필자가 어찌 감을 잡으랴!

 

한편 김동환과 최정희 사이에 강력한 방해자로 김종한이 등장한다. 그는 최정희에게 노골적이고 야성적인 방법으로 끈질기게 구애했다. 김동환과는 고향 후배로 각별한 사이였고 그는 무엇보다 당대의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으로 당선되고 39년 문장지의 정지용으로부터 '귀로', '고원의 시', '할아버지' 등이 추천되어 시인으로서의 자리는 확고했다.

정지용은 박태원의 천변풍경처럼 김종한의 시를 "경쾌한 코닥 카메라 취미의 명암이 적확한 회화"란 표현으로 극찬했다. '윤동주와 한국'을 쓴 오무라 마쓰오는 1945년 그가 급성 폐렴으로 요절하지 않았으면 청록파는 4인이었을 것이다라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태준과 최정희의 관계는 임옥인의 등단과 관계가 있다.함북 길주 출신인 임옥인은 최정희에게 문장지로 등단하고 싶다고 늘 보채는지라 이태준에게 청탁을 하게 되는데 3회나 추천을 하도록 그녀의 등단을 까다롭게 했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김사량과의 관계는 그가 39년 동경제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잠시 귀국해 조선일보에 기자로 근무하면서 알고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최정희는 이효석과도 친분이 두터웠는데 생전의 그녀의 '조광, 삼천리 시절'에 잘 나타나 있다. 수송동 이효석의 집엔 부인이 친정에 가도 칼도마질 소리가 났다. 여자를 넥타이 갈아매는 기분으로 사귀었다고 최정희와 부인에게 실토했다고 한다. 효석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뜬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2001년 김동환과 최정희의 후손들은 그들이 소장하고 있던 해방전 문인들의 서신을 공개했다. 이 서신에는 트로이카 외에 월북한 이선희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함흥 출신의 이선희는 1934년 단편 '불야여인'으로 등단했으며 그녀 역시 유부남이었던 연극인 박영호와 결혼하고 해방 이후 월북했다.

2001년에 '대한매일'에서는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비사'를 연재했다.

지하련과 미당의 관계도 거기에 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사연이 지친 민생을 망각으로 내몰며 비켜가고, 이념에 함몰된 박태원의 처절함이 시대를 관통하던 해방공간에 서면 정인택과 분단을 넘은 박태원의 치열함에 숨이 찬다.

그러나 그의 천변의 추억에 서면 '모던 걸' 트로이카가 화면을 채운다. 여급들이 세 든 천변 판잣집 위, 세 여자가 양장을 하고 서 있다.

 

***강나루/2006. 8. 9/[타 매체에 연재중, 무단 게재 금지]

 


[참고한 서적]

 

1.최정희 선집/어문각 1977

2.카프 시대에 대한 회고와 문학사/임규찬/태학사 1989

3.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조이담/바람구두 2005

4.그 이상은 없다/오명근/바람구두 2006

5.인물상세 정보

 

 

[주]김동환(金東煥)}

1901∼? 시인. 본관은 강릉. 아명은 삼룡(三龍), 아호는 파인(巴人).

1926년 동환으로 개명하였다. 함경북도 경성출신. 아버지는 석구(錫龜), 어머니는 마윤옥(馬允玉)이다.

6남매 중 장남이다. 출생지와 본적지는 같고, 1926년 신원혜(申元惠)와 혼인하여 분가한 이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으로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1913년 경성보통학교(鏡城普通學校)와 1921년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를 거쳐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가,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그뒤 함경북도 나남에 있는 북선일일보사(北鮮日日報社, 1924)·동아일보사(1925)·조선일보사(1927)기자를 지냈다.

1929년 6월 종합잡지 《삼천리 三千里》를 자영하였으며, 1938년에는 그 자매지로 문예지 《삼천리문학 三千里文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942년 5월 《삼천리》를 《대동아 大東亞》로 개명하면서 황국신민화운동을 벌이는 등 친일적인 행각을 시작하였다. 이런 친일적인 행각으로 광복 후 반민특위(反民特委)에 의하여 공민권 제한을 받다가 6·25남침 때 납북되었으며, 그뒤 행적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문단활동은 1924년 《금성 金星》 5월호에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를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뒤 《조선지광 朝鮮之光》·《조선문단》·《신민 新民》·《동광 東光》·《삼천리》·《신동아 新東亞》·《조광 朝光》·《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 등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5년에는 제1시집 《국경의 밤》과 제2시집 《승천(昇天)하는 청춘(靑春)》 2권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1929년에는 주요한(朱耀翰)·이광수(李光洙)와 함께 제3시집 《삼인시가집 三人詩歌集》을 펴냈고, 이어 1942년에는 제4시집 《해당화 海棠花》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국경의 밤〉·〈북청(北靑)물장수〉등 북방의 정서를 보여준 초기시와, 〈우리들은 칠인(七人)〉·〈오호 태평양상(嗚呼 太平洋上)의 군신(軍神)〉 등 자기 안주를 위하여 현실에 순응하여 친일성과 야합한 중기 시, 그리고 〈무명전사(無名戰士)묘 앞에〉·〈33인의 송가(頌歌)〉 등 자신의 친일적인 행각을 참회하고 애국주의를 표방한 광복 후의 후기시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국경의 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두만강일대의 겨울밤을 배경으로 하여 밀수꾼으로 위장하고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통하여 망국민의 민족적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세계의 커다란 맥을 형성하는 일련의 민요시들 가운데 〈산(山)너머 남촌(南村)에는〉은 따사로운 자연과 순박한 인정을 노래한 것으로 곡을 붙여 널리 불리고 있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그밖에 그가 납북된 후 최정희(崔貞熙)가 유고를 모아 펴낸 제5시집 《돌아온 날개》(1962)가 있으며, 《삼천리》에 실린 논설들을 모은 산문집 《평화(平和)와 자유(自由)》(1932)가 있다.

또, 시·소설·평론을 함께 묶은 《조선명작선집 朝鮮名作選集》(1936), 명사들의 기행문을 모은 《반도산하 半島山河》(1941), 수필집으로 《꽃피는 한반도(韓半島)》(1952) 등이 있다.

 

 

 

 

 

웃은 罪

 

즈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었지요.

 

평양성(平壤城)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 신세기 (1938년 3월)

 

 

金東煥/웃은 죄/이어령

 

巴人 金東煥은 國境의 밤 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시인이다. 남성적이고 대륙적인 굵 은 골격으로 이루어진 그의 敍事詩는 敍情

 

詩 위주의 한국 詩史에 매우 희귀하고 특출한 자 리를 차지하고 있다.

반드시 장편 서사시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웃은 罪 와 같이 아주 짧은 시에서도 우리는 국경의 밤 과 같은 파인의 서사시적 특성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서사 문학을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 란 말이 될 것이고, 이야기를 풀어서 말하면 여러가지 사건이나 행동을 엮어나가는 사슬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은 죄 는 다섯행 미만의 단시(短詩)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서사 문학이 갖고 있는 모든 요소가 압축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서사 문학의 가장 큰 요소인 행위의 코드를 보자.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는 소설로 치면 발단에 해당하는 행위(사건)이다. 행위 코드를 요약하면 지름길을 묻다 와 대답하다(가르쳐주다) 이다. 이 문답은 하나의 행위 사슬에서 한 단위를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의 단위를 이야기 구조 의 기능적인 요소로 요약하면 요구하다 와 들어주다 가 된다.

작은 이야기이든 큰 이야기이든 서사 예술에서 다루는 행위의 사슬은 예스 와 노 의 두 선택지(選 擇枝)의 가지를 타고 전개되어 간다. 그러므로 예스의 긍정축으로 서낵된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행위로 이어진다.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가 그것이다. 길을 묻는 행위가 물을 달라는 행위로 이어지고, 길 을 가르쳐 주던 응답은 샘물을 떠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구조는 똑같이 요청하다…들어주다 이다. 그리고 다시 그 행동은 3행째의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었지요 로, 인사하다(답례하다) 로 끝난 다. 행동 코드로 보면 요청하다…들어주다 의 두 행위를 마무리짓는 종결 분에 해당된다. 사사예술의 구조를 시작…중간…끝 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이론 그대로 길을 묻고 대답하는 첫행은 발단 부분의 시작 (起)이고, 두 행째의 물 한 모금 달라기에 떠주었다는 것은 중간 (承), 그리고 마지 막 인사를 주고받다는 끝 (結)에 해당한다.

그러나 요청 하고 받고 하는 행위는 행위의 주체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웃은 죄 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행위주(行爲主)의 신분과 성격을 나타내는 인물 코드가 곳곳에 숨 어 있다. 지름길 묻길래 라는 행위를 행위주의 신분과 성격을 나타내는 코드로 분석하면 나그네 가 되고, 길을 가르쳐주는 측(側)은 그 고장에 사는 사람으로, 마을사람/바깥사람 , 定着者/旅行者 의 대 립적인 인물 코드를 형성한다. 그러나 두번째의 물 한 모금 달라와 샘물을 떠주는 행위항(行爲項)에서는 男/女의 성별을 드러내게 된다. 샘물을 떠주는 것으로 그 화자는 행동의 장소가 샘터라는 사실과 샘물을 떠주는 행위주는 샘터에 서 일하고 있었던 여성이었음을 알려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사 예술의 또다른 요소인 문화적 코들르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샘터는 문화 풍속으로 볼 때 여성에 속하는 젠더 공간 이며, 봉건적인 규방(閨房) 문화에 얽매어 있던 여성들에게는 유일한 열려진 공간으로 낯선 외간 남자와 만날 수 있는 로맨스의 극적 장소 의 하나인 까닭이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샘물을 떠주고 거기에 버들잎을 띄워주는 것으로 남녀의 사랑 이 싹트는 이야기들은 민요, 민속, 속담과 같이 문화적 코드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기술된 행동의 연쇄가 사사예술로 의미를 갖는 것은 마지막 연의 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 / 난 모르오 // 웃은 죄밖에 의 그 두 행이다. 왜냐하면 이 두 행에 의해서 수수께기 코드라고 하는 해석학적 코드와 상징코드를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웃은 죄 라는 말은 웃음이라는 행위 속에 감춰진 진짜 의미를 알려주는 것으로, 실은 인사하다…인 사받다 가 행위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길을 묻다 , 물을 달라고 하 다 , 인사를 하다 의 세 행위항의 연쇄에서 마지막 인사하다 도 실은 앞의 것과 마찬가지로 요청하 다…받아들이다 로 풀이된다. 즉 인사는 구애(求愛)의 프로포즈이고, 인사를 받다에서 그 웃음은 단순한 인사에 대한 받아들이다 가 아니라 그 프로포즈에 대한 예스로, 또 하나의 긍정축이었던 셈이다.

그뿐아니라 행위코드에서는 단순히 인사를 받아들이다 의 표시지만, 상징코드로 보면 웃음은 욕망의 금제(禁制)나 억제(抑制)와 대림하는, 닫힌 것으로부터 열린 곳으로 나가는 의미가 된다. 즉, 사랑의 상징코드인 것이다. 평양성에 해 안 떠도 나는 모르오 는 일종의 문화코드이기도 하지만 해석적 코드와 상징코드에 속한다.

해석코드는 규방 처녀가 길가던 나그네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숨겨진 사건 찾기가 되고, 문화코드 로 보면 남녀유별의 도덕적 파계(破戒)나 사회적 관습에서 일탈(逸脫)된 한국적 애정이나 그 정서를 보 여주는 것이다.

평양성에 해가 안 뜬다는 것은 천륜을 어기거나 사회적 질서의 일탈성과 파괴로 일어나게 되는 것을 천변(天變)과 관련시킨, 일종의 속담같은 봉건사회에서의 문화코드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말에서 우리는 사랑을, 어쩌면 첫사랑을 하게 된 시골처녀의 수줍고 천징한 성격을 짐 작하게 한다. 즉, 인물코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화자의 연극적 대사를 통해서 우리는 앞에서 읽은 모든 행동의 연쇄를 거슬러 다시 읽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길묻기, 물달래기, 인사하기로만 보여졌던 일련의 행위들이 다시 거슬러 읽게됨 으로써 실은 그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그 요청과 응답도 역시 심도(深度)와 은밀성(隱密 性)을 증대시켜 가는 것으로 인식된다. 말하자면 해석학적 코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웃은 罪 에는 일체의 정감적 언어가 배제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말, 그리움이라는 말, 혹은 그 비밀 을 간직하고자 하는 혼자만의 고민 등이 단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서사 예술의 기법과 연극적 대사를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행위코드, 인물코드, 해석적코드, 상징적코드, 그리고 문화적코드의 다섯가지 코드에 의해서 국경의 밤 과 같은 사랑의 서사시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행위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그려진 한 여인과 그 사 랑의 발견…. 평양시가 아니라 평양성이라고 부르던 옛날 북녘 시골 여인의 정감을 우리는 마치 장터에 서 팔던 딱지소설이 아니면 구성진 변사의 목소리와 함께 돌아가던 무성영화처럼 그리움 속에서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http://kr.blog.yahoo.com/sockokyu/1473601.html)

 

 

***강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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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gold9055/1502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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