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얼마나 행복해?

 

 

고래가 창간 5주년을 맞아 초등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지, 고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제주도를 뺀 전국 24개 초등학교 1,496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어른들은 대개 어린 시절을 가장 행복한 때로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훗날 오늘을 뒤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은 초등학생 때 동무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과 대화로 되살아난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떤 모습일까?

 


조사방법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자기기입식 조사
표본추출방법 

모집단 교육인적자원통계(2006, 교육인적자원통계)의 지역별 초등학교 재초등학생수.
추출방법(군집추출, Cluster sampling) 전국을 9개 권역으로 군집(Cluster)화하여 각 군집별 초등학교를 선정했다. 선정된 각 학교의 학급은 무작위로 추출하고, 학급의 초등학생 전수(30~40명)를 최종 표본으로 추출했다. 분석의 신뢰성을 위해 지역, 성별, 연령 등 각 Cell별 최소 표본 수를 30명 이상으로 했다. 최종 분석단계에는 모집단 비율을 가중치로 적용했다.
표본오차  신뢰구간 95%일 때, 표본 신뢰도 ±2.53%.
조사기간  2008년 10월10일~10월15일

설문조사 분석  안상평, 박찬석 (조사분석전문가)

 

 

 


행복, 고민 그리고 스트레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아이는 절반이 채 될까 말까 하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는 초등학생이 가장 많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행하다고 느끼는 초등학생이 늘었다. 어른을 대상으로 최근 여러 설문조사에선 행복하다고 대답한 어른이 늘 절반은 넘었다. 한국엔 불행하다고 느끼는 아이가 어른보다 많다. (최근 중앙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1.3%가 아주 행복하다 또는 행복한 편이라고 답했다. 반면 행복하지 않다는 응답은 13.2%에 불과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는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였다(41.6%). 학교에 있을 때(15%)와 혼자 있을 때(14.9%)와 비교하여 학원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초등학생은 매우 적었다(2.6%).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초등학생은 크게 늘었다(4학년 8.5% → 6학년 21.2%). 반대로 부모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비율은 크게 줄었다(4학년 56.3% → 6학년 29.2%).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와 성적에 대한 부모의 요구가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게 무엇이 이루어지면 가장 행복할까? 초등학생들은 공부 잘하기를 바란다. 압도적이다. 학년이 올라가면 돈이 많기를 바라는 초등학생이 두 배쯤 늘었다(4학년 15.8% → 6학년 33.2%). 부유한 지역엔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초등학생이 가난한 지역보다 10%가량 많다. 가난한 지역엔 돈이 많기를 바라는 초등학생이 부유한 지역보다 7%가량 많다. 
초등학생들은 잔소리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37.3%).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엄마 아빠가 서로 싸울 때가 그 뒤를 이었다. 시간이 나서 마음껏 하고 싶은 것으로 여자 초등학생은 친구 만나기(64.0%), 남자 초등학생은 컴퓨터(43.8%)를 꼽았다.

 

 

공부는,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초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원하는 직업을 갖으려고 공부한다고 대답했다. 부모에게 혼나지 않으려 공부한다는 초등학생은 약 8%고, 이 비율은 고학년일수록 높다. 

 

초등학생의 80%가량이 1개~4개의 학원에 다닌다. 부유한 지역 초등학생이 더 많은 학원에 다닌다. 가난한 지역 초등학생은 학원 1곳에 다니거나 1곳도 안 다니는 초등학생이 56.3%다(부유한 지역은 25.1%).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평균 3시간이다. 3시간 이상 학원에서 공부하는 초등학생도 전체의 40%나 된다.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부유할수록 길다. 2시간 이상 학원에서 공부하는 초등학생 비율은 부유한 지역(82.8%)이 가난한 지역(61.8%)보다 20%가량 많다.

 

 

성적에 대한 생각은 매우 현실적이다. 70.9%의 초등학생이 성적이 좋지 않으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없다고 생각한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왕따 당할 것이라고 믿는 초등학생도 있다(11%).
초등학생들은 어떤 교사를 좋아할까? 초등학생들은 자기 고민을 들어주는 교사를 원했다(42.9%). 성적을 올려주는 교사는 그 뒤였다.(31.7%). 화내거나 때리지 않는 교사를 원하는 초등학생도 꽤 많다(17.7%).  

 

 

전문직>운동선수>연예인

초등학생이 제일로 꼽는 직업, 그리고 자기 부모가 제일로 좋아할 것 같다는 직업은 전문직이다. 전문직을 선호하는 비율은 부모(41.5%)가 자녀(18.7%)보다 훨씬 높았다. 여자 초등학생과 남자 초등학생의 생각은 꽤 다르다. 남자 초등학생은 운동선수,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고 여자 초등학생은 연예인, 예술가, 교사가 되고 싶어 한다.
부유한 지역에는 전문직을 선호하는 초등학생이 많고, 가난한 지역에는 운동선수를 선호하는 초등학생이 많다. 중산층 지역에선 연예인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자기가 가장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초등학생, 그리고 자기 부모 생각도 그럴 것이라고 대답한 초등학생이 가장 많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돈벌이의 비중이 높아졌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초등학생들에게 공부, 직업, 돈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현실적인 의미로 통한다. 공부는 원하는 직업(전문직)을 갖으려고 하고, 원하는 직업은 전문직(고소득)인 것이다. 우리 사회 어른이 직면한 현실은 가공되지 않은 채로 아이들의 현실이 됐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초등학생(31.5%)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초등학생이 좀 더 많았다(39.1%). 학교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어른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부담을 느끼는 초등학생이 늘었다. 돈을 벌 수 있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초등학생 비율은 가난한 지역(18.0%)에 비해 부유한 지역(38.1%)이 두 배가량 높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지금의 삶과 인간관계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학년이 낮은 초등학생, 그리고 여자 초등학생의 비율이 좀 높다. 상급 학교 학업과 노동에 대한 불안감이 그 뒤를 이었다. 엄마 아빠가 일하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는 것이다. 부유한 지역에선 이런 대답은 하나도 없다.  

 

친구 따라 친구 왕따 시킨다

16.9%의 초등학생이 왕따 당한 경험이 있다. 이 비율은 저학년과 고학년,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비슷하다. 여자 초등학생(18.3%) 비율이 남자 초등학생(15.6%)보다 조금 높다. 친구를 따라, 남들이 왕따 시키니까 나도 한다는 경우가 가장 많다. 왕따 시키지 않으면 내가 왕따 당한다는 이유가 그 뒤를 이었는데, 앞의 경우와 일맥상통한다. 둘 다, 차라리 왕따 시키는 편에 끼겠다, 그래야 안전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다(40.9%). 복수하겠다(21.8%), 죽어버리고 싶을 것이다(12.6%), 학교를 옮기거나 이사 가자고 하겠다(12.5%)…… 초등학생들은 자기가 왕따 당할 때 대책을 이런 순서로 꼽았다. 
사귀고 싶은 친구로는 재미있는 친구(75.0%)와 공부 잘하는 친구(19.3%)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재미있는 친구 비율이 높아지고 공부 잘하는 친구 비율은 낮아진다. 왕따와 친구 문제는 빈부의 차이가 거의 없는 편이다.
함께 있으면 가장 즐거운 사람으로 친구를 꼽았다(39.4%). 그 뒤는 엄마(30.8%), 형제자매(15.9%)였다. 아버지(8.1%)와 선생님(0.3%)은 심각할 만큼 낮았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함께 있어서 즐거운 사람은 없다(5.5%)고 대답한 경우일 것이다.
최근 가장 화난 일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도 초등학생들은 친구 관계를 꼽았다(26.4%). 그 다음은 잔소리 들었을 때(11.0%), 형제자매와의 다툼(9.1%)이었다. 

 

 

엄마 아빠가 가장 많이 하는 말

공부 좀 해라! 고학년일수록 이런 핀잔을 자주 듣는다.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고마워요, 사랑해요, 라고 한다(28.4%). 배고파, 맛있는 거 해 줘(23.4), 싫어, 몰라(19.1%), 술 좀 먹지 마(16.0%), 라는 말도 자주 한다고 대답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초등학생들은 잔소리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37.3%). 초등학생 열에 적어도 넷은 학업과 성적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초등학생들은, 자기 부모가 평소에 하는 걱정으로 가족의 건강(41.5%), 자기 성적과 진로(36.6%), 생활비(18.8%)를 꼽았다. 부유한 지역(44.9%)에서는 가난한 지역(39.3%)보다 성적과 진로 비율이 높다. 가난한 지역(19.3%)에서는 생활비 비율이 부유한 지역(9.7%)보다 월등히 높다.

 

 

야, 대한민국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는 그래도 한국이다(59.9%). 미국(17.7%)이 뒤를 이었다. 말문이 트이자마자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나라. 먹을 것, 아동범죄, 교통안전 …… 무엇 하나 마음 놓지 못하는 나라. 아이들이 처한 환경이 세계 최악인 나라에서 놀라운 결과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국가주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나타난 결과라고 보인다. 아이들은 한국의 가장 큰 문제로 남북분단을 꼽았다. 한국의 현실을 어둡게 만든 것들―좋은 대학 가야 인정받는 세태, 부익부 빈익빈은 그 뒤였다. 앞서 자기가 행복하다고 대답한 초등학생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비율도 높다(66.1%). 자기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초등학생 중에서 50.3%가 한국을 선택했다. 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학년 간 지역 간 차이가 컸다. 4학년 초등학생의 12.9%, 6학년 초등학생의 26.8%가 부익부 빈익빈이 한국의 가장 큰 문제라고 대답했다. 부유한 지역(10.8%)과 가난한 지역(19.0%)의 차이도 컸다.

 

 

 

 

 

 

 

 

 

 

 

 

 

 

 

 

 

 

 

 

 

 

 

한국이 어떤 나라가 되면 좋을까? 초등학생들은 ‘누구나 고르게 잘사는 복지국가’를 원했다. 여자 초등학생과 남자 초등학생은 한국의 미래상에서 차이를 보였다. 여자 초등학생은 복지국가(57.1%)와 경제대국(16.9%)을 원했다. 남자 초등학생은 과학기술대국(25.0%)과 경제대국(23.6%)을 원했다. 남자 초등학생 절반은 결국 잘사는 부자 나라를 원한 것이다. 군사대국을 바라는 것에서도 남자 초등학생(11.2%)과 여자 초등학생(2.7%)의 차이가 컸다.

  

 

어린이? 작은 어른?

“고래 거실에 놓인 설문지들을 보니까, 뭐랄까, 좀 슬픈 느낌입니다.”
“왜?”
“아픔이 쌓여 있는 느낌이 들어서요.”

설문지를 취합하고 데이터 입력을 진행한 한 고래 식구가 한 말이다.
한국 초등학생이 어린이가 아니라 작은 어른, 예비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무한 경쟁이니 입시 지옥이니 하는 한탄은 어느덧 먹고살자니 별 수 있나, 하는 체념으로 거의 넘어갔다. 한국 어른은 어린이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짓고 있다. 우리 어린이는 어린 시절을 몽땅 빼앗겼다. 누구든 돌이켜보면 기억할 것이다. 어린 시절은 그 자체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무를 사귀고 동무와 어울리고 동무와 다투고 동무와 화해하며, 남을 존중함으로써 자신도 존중받는다는 진실을 깨닫는 시간.
작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 어린이는 이미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다. 왕따 시키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비정한 사회생활. 공부가 부담스러워 어서 어른이 되고 싶고, 공부가 부담스러워 나이 먹기가 두려운 어린이들. 이런 것들이 요즘 아이들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켜켜이 쌓이고 있다.  (고래가그랬어 60호, 창간 5주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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