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 / 김규항 _ 고래 발행인 삼촌이야.

 

“유리는 참 이상하네,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데 왜 굳이 왜 이민을 가려고 하지?” 딱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삼촌은 정말 속상하네. 그래, 유리 말이 맞아. 한국은 아이들이 살기에는 너무 힘든 나라야. 언젠가 삼촌은 그런 상상을 했어. ‘만일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지구의 모든 나라들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고를 수 있게 한다면, 한국을 고르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참 적지 않을까? 아니 있긴 할까?’

 

아이들은 그저 부모님이 낳아주는 나라에서 태어나잖아. 어른들이 좋은 세상을 마련해놓으면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지만 나쁜 세상을 마련해놓으면 꼼짝없이 나쁜 세상에서 살게 되지. 그래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유리 앞에 한국의 모든 어른들은 죄를 지은 셈이야. 삼촌도 그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해. 그런 미안한 마음 때문에 고래가그랬어를 만들고는 있지만 미안함이 가시진 않는구나.

 

유리가 이민을 가는 일에 대해 삼촌은 지금 바로 또렷한 도움을 주긴 어렵단다. 부모님이 유리의 생각에 찬성한다고 해도 혼자 이민을 가는 건 어려운 일이야.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하는 것도, 어지간한 나라들은 아이들이 노동하는 게 금지되어 있어 어렵단다. 어떻든 먼저 부모님과 의논을 해야겠지? 유리는 좀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거지, 이민이 본디 목적은 아니잖아? 부모님과 의논을 하고 찬찬히 생각하다보면 더 좋은 해결 방법이 나올 수도 있을 거야.

 

삼촌은 대신, 왜 유리를 비롯한 한국의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게 되었는지 잠깐 이야기 해볼게. 그 사연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참 길어. 또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니 삼촌은 살아온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볼게.

 

유리 말대로 한국 아이들이 살기 힘든 건 ‘교육 문제’ 때문이잖아. 그런데 그 교육 문제라는 게 따지고보면 ‘대학 입시’ 문제를 말하는 거거든. 그런데 대학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대학 입시도 오래 전부터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 문제가 지금처럼 중요한 문제가 된 건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나와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야. 사실 대학을 안 나오면 여러 가지 불리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그런데 삼촌이 좀 다르게 생각하는 건, 그 불리한 게 과연 행복한 삶에 불리한 것인가 하는 거야.

 

우리 역사를 죽 보면 참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절이 많았잖아. 그런데 그런 시절은 소수의 지배자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내는 통에 그렇게 된 것이지 보통 사람들의 책임은 아니었어. 대부분의 사람들, 즉 정직하게 일해서 먹고사는 보통 사람들은 늘 비슷한 삶의 방식을 이어왔어. 그건 바로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삶이야. 다들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았지만 남보다 많이 가진 걸 오히려 불편해하고 자기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고, 그런 삶 속에서 행복과 인생의 즐거움을 얻었지.

 

수 천 년 동안 그런 삶의 방식이 이어져왔고 농촌의 경우엔 엄마 아빠 어릴 적까지도 그랬거든. 그런데 언젠가부터, 꼭 집어 말하면 박정희라는 군인이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는 “잘 살아보자!”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어. 그는 돈이 많거나 큰 집을 갖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주장했지.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돈이 중요해. 뭐든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지나치게 가난하면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어렵지. 그런데 사람이란 돈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혹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역시 자존심을 잃게 되거든.

 

하여튼 그때부터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하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선 남을 이기고 자기가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했어. 처음에 그런 생각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골 사람들에게도 물들기 시작했지. 가난하더라도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던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진 게 행복이고 더 큰 집을 갖는 게 행복이고 더 큰 자동차를 갖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래서 그런 행복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아귀다툼을 벌이기 시작했지.

 

대학을 나오면, 특히 일류 대학을 나오면 그런 아귀다툼에 유리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대학 입시가 교육 문제의 전부가 되어버렸지. 사실 공부라는 것도 적성이잖아. 어떤 사람은 공부를 해서 자기 일을 찾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적성대로 일을 찾아야 하는데 모든 부모들이 되든 안 되든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일류대학을 가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 아이들은 고된 생활을 하기 시작했지. 처음엔 초등학생들은 아니었지만, 경쟁 바람이 점점 세지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온 거야.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경쟁이 시작된다고들 하지?

 

삼촌은 일류 대학을 나오는 게 나쁘다거나 일류 대학을 나오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 삼촌이 걱정하는 건 일류 대학을 나오면 무작정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야. 행복은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니니까. 대학을 안 나와도 가난해도 행복할 순 있지만, 일류 대학을 나오면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믿음을 가지는 순간 우린 불행해지는 거거든. 그건 이미 행복이 뭔지 잊어버렸다는 거니까. 행복이 뭔지 잊어버린 사람이 행복할 순 없겠지? 슬프게도 오늘 한국의 어른들은 행복이 뭔지 모두 잊어버린 것 같구나.

 

유리야. 고백하자면, 삼촌도 때론 어디 다른 나라로, 아직 행복이 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삼촌이 떠나지 않고 고래를 만들고 어른들을 향해 이런저런 활동을 벌이는 이유는 이게 유리와 삼촌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가 이 어리석은 행진을 멈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은 떠나는 것보다 좀 더 행복한 일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야. 어리석은 생각일까? (끝)

 

 

고래가그랬어 61호(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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