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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 유산 백제 유적, 부소산성, 낙화암

작성일 작성자 사랑

백제는 부여로 도읍을 옮긴 뒤로 강성해져 이전보다 더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강 유역을 두고 벌어진 삼국의 갈등 끝에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만다.

 538년부터 660년까지 약 120년 동안 가장 찬란했던 백제의 도읍지라는 영광과 마지막 도읍지라는

아픈 역사 를 동시에 껴안은 부여는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백제의 자취가 뚜렷하다.

비성의 진산, 부소산의 아름다운 숲을 거닐고 백마강을 바라보며 면면히 이어지는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만끽해 볼만합니다.

구드래공원

부소산 정문

부소산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부여의 진산으로 해발106m이며,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다. 한 쪽은 산세가 완만하여 앞쪽에 시가 지를 이루고 다른 쪽은 가파르며 백마강과 맞닿았는데

산성을 비롯하여 백제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부소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의 뜻이 있어

부소산은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보는 학설이 우려하다고 합니다.

부소산성 

 부소산의 산 정상부에 둥글게 쌓은 테뫼식 산성과 능선을 따라 쌓은 포곡식 산 성이 합쳐진 산성이다.

총 길이는 2.5km 정도로 돌로 기초와 석축을 쌓고 겉은 흙을 다져 만들었으며, 사비성의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나성과 동서 방향 으로 연결되어 있다.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될 만큼 경관이 남다르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나지막한 마을 뒷산을 산책 하듯

편안하게 오르내리면 여러 유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자루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원래 달맞이 하던 '송월대'가 있었다.

1919년에 백제 때에는 망대가 있었을 법하 이 곳에 1824년에 세운 임천관이의 정문 '배산루'를 옮겨

놓고 '사자루'라는 현판 을 달았다.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글씨가 새거진 금동석가래어

 입상 보물 제 196호이 빌견되어 현재 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금남정맥은 전라북도 무주의 주화산에서 북서로 뻗어 계룡산에 이르고, 계룡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부여의 부소산(扶蘇山)까지 약 118km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금남정맥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금남호남정맥이 끝나는 주화산에서 왕사봉(王師峰) · 배티 · 대둔산 · 개태산, 또는·계룡산 · 널티  ·

망월산등으로 이어져 부소산의 조룡대에 이른다. 이 산줄기의 동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의

상류를 이루고 서사면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루며,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든다고 합니다.

정맥길의 끝이 대개 바다가 되는 데 금남정맥은 마지막 봉우리인 부소산 (106m)조봉대에

이르러 백마강에서 끝난다고 합니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며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지라 한다 . 두 몸이  하나가 된다 하여 흔히 남녀사이의 애틋한 사랑에 빗대어

"사랑나무" 라고다 부릅다고 합니다

반월루

백마강과 부여 시가지가 필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1972년 세운 이층 누각이. 특별한 내력이 있는

건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름답. 부여군수가 지은 현판 반월루가는 반월성에

기대서서 멀리 바라보니.. 시작한다. 사비도성을 방비하는 부여라성이 하늘에서 내려나보면

반달같이 생겼다고 해서 '반월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군창지

부소산성 동쪽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군창지는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는데

발굴 조사를 통해 불에 탄 곡식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확인 이 되었고, 가운데 공간을 두고 동서남북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ㅁ"자 모양으로 만든 대형 창고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해서 이용했던 것으로

조사 되었다. 군사목적의 건물지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다.

영일루 

 왕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랏일 또는 일과를 구상 했다고도 전해지는

영일루는 부소산의 동쪽 봉우리에 자리 잡은 이중 누각 건물이다. 달맞이와 해맞이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풍광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삼충사

 위기로 치닫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백제의 세 충신을 보 시는 사당이다.

사당에는 성충, 홍수, 계백 세 분의 영정이 모서져 있다. 삼층사 사당 건물의 용마루 양끝에는

치미(망세)가 장식되어 있다. 이 치미는 부소산 절터(서복사지)에서 출토된 것을 복제하여

장식하였는데 진품은 부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백화정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낙화암 정상 바위 위에 육각 지붕으로 세워진 정자로 백제

멸망당시 (서기 660)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9'부풍시사'라는 시모임 에서 건립했다고 합니다.

백마강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km

금강을 일컫는데 백제는 부소산 기슭을 따라 흐르는 백마강 뱃길을 통해 넓은 서해로 나아가

 중국 일본 등과 교류하며 해상왕국의 이름을 널리 떨쳤다고 합니다.

백마강과 유람선 

숲길산책만으로 부소산 관람을 끝내면 못내 아쉽다면 강 길 유람을 해보는 것더 좋을것 같습니다.

 강길에서 부소산과 낙화암, 백마강가의 절경을 보아야 비로

부여의 진산 부소산을 이해하게 된다고 합니다.


고란사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하고 있는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질로 백제시대에는 이곳에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 건립된 듯 하다. 고란사란 절이름은 뒷쪽 바위에서 자라는 고란초에 유래하였는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고란초의 전설이 유명하며 백마강을 바라보는

주위경관은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낙화암

  백마장가에 서 있는 높이 40m의 절벽이다. 삼천궁녀가 몸을 던져 꽃처럼 떨어 져 죽었다는 전설의

비경이 되는 장소로 부소산성에서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낙화암이라는 이름은 궁녀의 죽음을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한 후 대의 표현이 굳어진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여 백마강 레저파크 공연장

이곳에서 무대를 향하여 보면 이름다운 낙화암 절경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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