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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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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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소박하고 격조 있는 선비의 기품이 남아잇는 민가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 진사동에 있는 가람 이병기선생의 생가는 한식건물로 1973623일 시도기념물 제6로 지정되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시조 문학 부흥에 한 획을그었으며, 현대시조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당시 한문시조의주류에서 한글을 사용하며, 향토적인 냄새를 풍기는 작품으로민족을 일깨운 문학가였다. 1913년 사범학교 졸업하고 전주의 보통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3.1운동 때 서울로 가서 큰일을 도모하게 된다. 이 생가는 1901년 건축된 것으로 특별한 특징은 없으나 양반집의 배치에 따르며,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정자 등 여러 채의 초가로 이루어졌다 입구에 있는 승운정이라는 단칸 규모의 작은 모정이 있고, 승운정기의 현판도 걸려있다. 그 옆에 아주 오래된 탱자나무가 하나 있다.

창  - 가람 이병기-

우리 방으로는 창으로 눈을 살았다. 종이 한 장으로 우주를 가렸지만. 영원히 태양과 함께 밝을 대로 밝는다.

나의 앞에서는 술 먹기도 두렵다. 너의 앞에서는 참선키도 어렵다. 진귀한 고서를 펴어 서권기나 기를까.

나의 추와 미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나의 고와 락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그러나 나의 임종도 네 앞에서 하려 한다.

수우재

소박함과 격조 있는 선비정신으로 대변되는 가람 이병기 선생 그리고 그의 체취를 간직하고 있는 생가

그가 일생을 보냈던 수우재에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안채, 연못,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잇는 탱자나무까지 곳곳에 가람 선생의 살아생선 모습 처럼 단아하고 소탈한 기품이 서려 있다. 조선 말기 선비집안의 배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가람 선새의 옛집은 소박함 그 자체 안체는 자연석으로 쌓은 무릎 높이의 축대 위에 세워졌고, 방의 일부가 부엌과 연결돼 있는 ""자형의 가옥이다.

 

연못

이병기선생 생가 탱자나무

탱자나무는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4~5월에 꽃이 피고 9~10월에 탱자가 열린다. 호남과 영남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강화도가 북한계선이라고 하나 강원도 양양지방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탱자나무의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있어 울타리용으로 많이 식재되었다. 이병기 선생 생가의 탱자나무는 흉고둘레 60, 높이 5m 정도이며, 수형과 수세가 좋은 편이다. 수령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이병기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20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람' 이라는 호

영원, 완전, 조화 그 근원도 무궁하고 끝도 무궁하니 영원하며 이 골물 저 골물 합하여 진실로 떳떳함을 이루니 완전하며 산과 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어 물을 기름지게 하니 조화함이다. 이 세 가지 뜻을 붙이어 지음이라.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만방열재각서동 - 만방이 열재하여 각기 동서인데

홍철범위의부동 - 홍철의범위도 뜻이 같지 않네

기단취장진취지 -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진취하여

영도독립육주중 - 육주중 영원한 독립을 이루리라

 

수우재

수우재 현판이 걸려있는 사랑채 옆에는 '승운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놓여 있다

가람문학관

수우재 바로옆 가람 이병기 선생의 수 많은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7년 문을 연 가람문학관은

가람 선생의 대표 시조를 시조 낭송으로 듣기도 하고 대형 이미지나 그래픽 영상으로 보며 감상할 수 있는

'가람실' 가람선생의 주요 활동과 업적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영상실 및 '상설전시실' 관람객이 머물며

가람 정신을 체득할 수 있는 '체험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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